[시론담론] 수요자의 시대 | ||||
이광서 아이부키㈜ 대표·논설위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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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호흡과 체온이 스며드는 섬세한 복지, 서비스, 상품, 개발 등 '맞춤형'에 대한 요구가 사회 전반을 흔들고 있다. 우리 사회도 우버택시 논란으로 주문형 경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주문형 경제(On demand Economy)'란 주문자의 요구에 따라 상품과 서비스의 공급이 즉흥적으로 이루어지는 경제시스템을 의미한다. 수요에 즉각적으로 대응해 효율적이고 직관적인 방식으로 공급하기 위해 보통 디지털 네트워크를 통해 그 효율성을 달성하는데, 이미 미국에는 맞춤형 변호사, 회계사 등의 서비스가 생겨나고 있다고 한다. 우리 사회에도 주문형 경제가 깊숙히 자리잡고 있다. 대리운전이나 퀵서비스는 맹아 단계의 주문형 경제의 예다. 주문형 경제는 공급시장의 유연성을 요구하고 있다. 공공의 영역으로 확장되면 맞춤형 정책이다. 맞춤형 복지라는 말은 너무도 익숙해진 정책의 핵심어가 됐다. 개발의 영역에서는 맞춤형 개발이다. 예전 같으면 그냥 집 모양만 갖추면 무조건 장사가 됐다. 그래서 서울의 뉴타운 환상을 팔아 정치 장사꾼들이 한탕 해먹을 수 있었다. 그러나 부동산 거품이 식기 시작하면서 더이상 예전과 같이 다 밀어버리고 아파트를 짓는 개발 방식은 지나간 시대의 유물이 됐다. 대신 이제는 재생이라는 화두가 도시 개발의 주요 모티브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하드웨어에만 치중하던 개발은 더이상 설 자리가 없어지게 된 것이다. 딱딱한 콘크리트 콘테이너가 아니라 사람들의 다양한 요구에 대응하는 'on demand 개발'이 절실해진 것이다. 수요자의 다양한 요구에 대응하려면 먼저 수요자를 발견해야 한다.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수동적인 수요자를 발견하고 이들에 대응하는 것은 정책 개발자들에게는 필수적인 감각이다. 얼마전 서울 금천구에서는 홀몸어르신 맞춤형 공공원룸이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지어졌다. 반지하와 같은 열악한 환경에서 흩어져 지내던 노인들이 원룸주택에 함께 입주하게 됐는데 단지 저렴하고 쾌적한 주거를 갖게 되었다는 점 이상으로 공동체를 통해 생기는 효과는 극적이라고 한다. 전체적인 주거 공급은 부족하지 않지만 여전히 주거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 즉 필요가 절실한 사람들이 많다는 점에서 맞춤형 개발은 더욱 부각될 것이다. 약자들은 흩어져있을 때 '요구'를 표현하지 못한다. 그러나 공동체를 이뤄 사회와 상호작용하는 법을 알게 되면서 비로소 요구를 갖게 된다. 사회의 다양한 요구들이 생겨나면 혼란이 가중되는 것으로 보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시민사회의 성장을 추동한다. 이럴 때 근대 이래의 핵심 가치인 인본(人本)-휴머니즘의 회복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된다. 르네상스가 권력을 대중으로 옮겨오는 기폭제가 된 것처럼 대중에게 권력이 있다는 아주 오래된 가치를 다시 되새겨야 한다. 물론 우리가 사는 시대는 과거와 달리 훨씬 더 많은 권력이 대중들에게 분배돼 있다. 과학이라는 도구가 정련됐고 민주주의라는 최신의 의사결정 방식이 창안됐고, 자본주의라는 상호교류의 방식이 작동하고 있다. 그러나 이면을 보자면 여전히 사회 전반에 미신과 맹신이 합리주의를 갉아먹고 있으며, 민주의 껍질속에 부정·부패와 독재의 잔재가 억누르고 있으며, 자본은 통제되지 못해 부의 불평등이 사람의 목을 조이고 있다. 사회에 숨은 다양한 수요가 수면위로 올라와 상호작용 총량이 늘어나야 국가가 발전한다. 미신과 부정과 독재, 불평등은 사회를 제약시키고 상호작용을 감소시킨다. 더 섬세한 요구에 귀 기울이고 그것을 사회적 표현으로 이끌어내는 정책과 서비스들이 개발돼야 사람이 살고 공동체 전체가 살아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