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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5862 vote 0 2016.07.25 (00:21:31)

    

    진리의 매개체는 무엇인가?


    오직 구조론만이 진리를 전달한다. 숫자가 없이는 수학을 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숫자가 매개수단이 된다. 구조론이라는 매개수단이 아니고는 진리에 도달할 수 없으니 애초에 그것을 표현할 언어가 인간에게 없기 때문이다. 언어가 없는 이유는 관점이 없기 때문이다. 관점이 없는 이유는 사건을 바라보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의 관점은 사건이 아닌 사물을 보는 관점이니, 인간의 언어는 사물을 표기하는데 적합하되 사건을 반영하기 어렵다. 사물은 공간에 모여있으니 관측을 통해 인식할 수 있으나, 사건은 시간에 흩어져 있어 추론을 통해서만 파악된다. 사물의 관측은 눈으로 살펴서 가능하나, 사건의 추론은 별도의 매개체가 필요하다.


    컵이 없이는 물을 따를 수 없으니 담아낼 매개체는 반드시 있어야 한다. 와이파이가 있어야 인터넷에 접속하고, 핸들이 있어야 자동차를 운전하고, 안장이 있어야 말을 타듯이 걸맞는 도구가 있어야만 한다. 인간의 언어는 터무니없이 불완전하니 그것으로도 진리를 멀리서 어렷품이 엿볼 수는 있으나 안개가 가득하다.


    도덕경의 ‘도가도 비상도, 명가명 비상명’과 같다. ‘진리는 없으며, 설사 있다고 해도 알 수 없고, 설사 안다고 해도 말로 나타낼 수 없으며 그러므로 타인에게 전달할 수도 없다’는 불가지론의 입장과도 같다. 그러나 이를 역으로 되짚으면 걸맞는 매개수단을 확보할 때 진리를 전달할 수 있다. 상명을 얻어 상도에 이른다.


    언어와 문자의 기능과 같다. 과연 인간에게 말이 없으면, 글자도 없고, 글자가 없으면 책도 없고, 책이 없으면 지식도 없다. 언어와 문자라는 매개수단이 없는 원시 부족민의 입장에서는 문명인의 지식도 불가지론의 영역에 안개처럼 있다. 역시 진리에 걸맞는 관점이 없으면 언어도 없고, 언어가 없으면 생각할 수도 없다.


    인간은 눈에 보이는 공간의 사물을 살펴보고, 나타내고, 전달할 수 있다. 눈이 매개체가 된다. 공간의 사물은 사방에 흩어져 있으나 눈은 그것을 소실점에 모아서 본다. 시간 속의 사건도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흩어져 있으니 추론의 방법으로 그것을 한 지점에 모아야 한다. 이에 걸맞는 매개수단이 필요하니 구조론이다.


    역사이래 진리를 본 사람도 없고 보려고 시도한 사람도 없다. 노자처럼 부정하거나, 니체처럼 회의하거나, 실존주의처럼 변명할 뿐이다. 애초에 매개할 그릇이 없으면 물을 담아 전달할 수 없으니 구조론이라는 그릇으로만 진리를 담아 전달할 수 있다. 언어의 한계를 넘어서는 언어가 되고, 시야의 한계를 넘는 눈이 된다.


    진리가 어렵지 않으니 매개변수가 다섯이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논하는 수준은 셋이다. 뭐가 보이면 동사를 쓰고, 그것이 변하면 명사를 쓰고, 그것을 전달할 때는 주어를 쓴다. 고작 매개변수 셋으로 복잡한 사건을 전달할 수 없다. 사건의 배후에는 반드시 에너지 작용이 있기 때문이다. 사건은 꼬여 있으니 원래 복잡하다.


    방정식과 같다. 두 개의 산식이 꼬여 방정식을 이룬다. 두 개의 식이 엮여서 매개변수가 셋이니 이를 한 번 더 꼬아주고 다시 한 번 꼬아주면 진리를 반영한다. 새끼줄을 꼬아도 끈 두 개가 필요하다. 두 개를 꼬면 셋인데 이걸 꼬아주면 넷이고 다시 꼬아주면 완전하다. 사물은 셋으로 전달하나 에너지를 태우면 다섯이다.


    매개변수라는 말에 당황할 이유는 없다. 파리가 날아가는 거리는 눈으로 보고 잴 수 있는데 그 파리가 달리는 버스 안에 있다면? 그 버스가 돌고 있는 지구 위에 있다면? 매개변수 셋은 누구나 알고 있으니 거기에 둘을 추가하는 것이 어려운 일은 아니다. 단 그것을 표현할 언어가 없는 것이다. 관점을 표현하는 단어는 없다.


    먼저 명사를 바꾸는 역설의 관점을 얻어야 하고 다시 주어를 바꾸는 이중의 역설을 알아야 한다. 이를 말로 설명하기가 쉽지 않으니 소실점을 설명하되 그림으로 그리지 않고 말로 설명하면 절대 못 알아먹는다. 원근법 개념이 조선에 전해진지 수백년 되어 김홍도의 그림에도 반영되어 있으나 바르게 적용되지는 않았다.


    전진주차는 쉽지만 후진주차는 어려운게 매개변수가 추가되기 때문이다. 조수석에 앉아서 말로 설명해봤자 운전자를 헷갈리게 할 뿐이다. 룸미러를 통해 해결할 수 있고 후방카메라를 쓰면 더욱 쉽다. 구조론은 후방시야가 막힌 화물차로 후진주차에 애를 먹던 초보운전자가 후방카메라를 달아 쉽게 주차하는 것과 같다.


    진리는 사건을 반영하니 사건의 매개변수는 다섯이다. 사건이 사물과 다른 것은 에너지를 유도하는 절차다. 사건은 에너지를 조직하는 절차와 격발하는 절차로 매개변수 둘이 더 있다. 세상은 매개변수 다섯인 사건으로 조직된다. 이를 희미하게 알아챈 사람은 많으니 옛부터 도道니 역易이니 깨달음이니 말해왔던 것이다.


    구조론이라는 도구가 없으면 진리를 타인에게 전달하지 못할 뿐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도 전달하지 못한다. 자신을 사건의 바깥으로 끌어내는 객관화에도 이르지 못한다. 사건의 계를 정하는 방법도 모른다. 계의 존재를 모르니 계 바깥으로 나가지 못하고, 사건 바깥으로 나가지 못하니 객관적인 관측방법은 애초에 없다.


    자석이 쇠를 당긴다는 사실을 눈으로 보고도 자기장의 존재를 알아채지 못하는 식이다. 에너지를 조직하고 전달하는 구조는 없는 듯 보여도 반드시 있다. 집이 그냥 서 있지 싶어도 중력에 힘겹게 버티고 있다. 돈이 그냥 돌지 싶어도 정밀하게 신용을 조직하고 있다. 바람이 그냥 불어대지 싶어도 기압골이 작동하고 있다.


    지구가 그냥 돌지 싶어도 태양을 열심히 뒤쫓아가고 있다. 중력이 그냥 무겁지 싶어도 공간을 격렬하게 진동시키고 있다. 보이지 않아도 그것은 있다. 에너지가 있고 그 에너지의 방향성이 결을 이루니 결따라 가야 한다. 인간의 언어는 사물을 반영한다. 사물의 배후에 사건이 있으니 사건을 전달하려면 훈련해야 한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18]챠우

2016.07.27 (01:36:03)

"보편>특수, 절대>상대"의 방향으로 사건진행
나의 특정한 행동이 본래는 진리의 보편 안에서 특수(나)하게 구체적으로 구현되는 것.
나는 이렇다.
너라도 그럴것이다.
누구라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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