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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6002 vote 0 2016.07.13 (15:11:13)

    

    정리하자. 사람들이 말을 어색하게 하더라. 납득되지 않더라. 타자는 적인데 갑자기 친한척 하며 내게 말을 붙여온다. 서론과 본론을 생략하고 결론만 말하는데 개소리다. 그 감추어진 서론과 본론은 무엇일까? 예수가 ‘사랑하라.’고 결론을 말하기 전에 깔아둔 밑밥은 무엇이었을까? 천국이니 구원이니 원죄니 이런 개똥같은 소리를 나더러 믿으라는건 설마 아니겠지.


    확신에 찬 어투를 보면 뭔가 있기는 있을텐데. 숨은 전제를 찾아보자는 거다. 전제와 진술은 묶여있어야 한다. 무엇으로 묶는가? 사건으로 묶고 에너지로 조인다. 우리는 덩어리로 공간에 묶이는 것에 대해서는 잘 알지만, 도미노처럼 시간으로 묶이는 것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파쇼’의 어원인 Fasces는 ‘묶음’을 의미한다. 단결이라는 이름으로 국민을 묶자는 거다.


    ◎ 공간의 묶임에 대해서는 안다. 그러나 잘 안 묶인다.
    ◎ 시간의 묶임에 대해서는 모른다. 그런데 잘 묶인다. 


    그런데 그런 걸로 안 묶인다. 왜냐하면 ‘난 반댈세.’ 때문이다. 타인은 지옥인데 뭘 묶여? 호남과 영남을 묶어서 수도권에 맞서자는 전략은 당연히 실패한다. 그거 원래 안 되는 거다. 그러나 서울과 호남, 서울과 충청, 서울과 영남의 묶음은 성공하니 이건 되는 묶임이다. 서울에서 지방으로 가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먼저 유행하고 지방에서 나중 흥행한다.


    공간으로 묶지 못하므로 시간으로 묶어야 한다. 영남과 호남의 공간묶음은 실패하고, 서울과 지방의 시간묶음은 성공한다. 공간은 대칭되므로 찢어지고, 시간은 호응되므로 묶인다. 정답은 ‘사건’으로 묶는 것이다. 사건은 무엇으로 묶는가? 사건의 사건으로 묶어낸다. 사건의 사건은 무엇으로 묶는가? 이렇듯 계속 추구해 들어가면 마침내 진리에 이르고 신에 이른다.


    우주는 하나의 동력원을 가진 하나의 단일사건임을 깨닫게 된다. 에너지에 의해 모두 하나로 묶여있다. 궁극적인 에너지 출처가 있으니 우리는 근원의 샘에다 빨대를 꽂아야 한다. 사건은 사건을 복제하니 족보에 의해 묶인다. 그렇다면 학교에서 가르치는 충성, 효도, 우정, 애국 따위는 무엇인가? 그것은 옛날 고수들이 상투적으로 써먹던 루틴이자 기믹에 불과하다.


    기믹에 넘어가면 안 된다. 객관적으로 보는 훈련을 했다. 모든 지당한 말씀에 ‘~라고한다.’를 붙이면 납득된다. 선생님이 ‘이것은 하지마라.’고 가르치면 ‘아 저 상황에서는 저 루틴을 쓰는구나.’ 하고 알아듣는다. ‘김대중은 빨갱이다.’ 하고 가르치면 아 박정희 전매특허 수법 또 나왔구나 하고 알아듣는 거다. 그런데 세상을 그렇게 객관적으로 바라보면 결국 허무해진다.


    이걸로 적에게 속아넘어가지 않을 수 있으나 적을 제압할 수는 없다. 적을 이기려면 자체 에너지가 있어야 한다. 충성, 효도, 우정, 애국 따위의 개떡같은 소리에서 에너지가 나와줄 리는 없다. 에너지는 대등한 만남에서 얻어지는 것이며, 그러려면 일대사건이 일어나야 한다. 파리아 신부와 에드몽 당테스의 만남이 그러하다. 학식이 높은 파리아 신부가 절대 유리하다.


    그러나 나이가 많은데다 병들었기 때문에 서로 대등해졌다. 그렇게 대등해져야 한다. 어떻게 대등해질 수 있는가? 이 본질을 말하지 않은 채로의 사랑타령이라면 개소리다. 사랑하라고 말하기 앞서 어떻게 서로 대등해지는 지를 말해야 한다. 하기야 천국 가면 죽어서 대등해지겠지만 그런 개소리 말고 납득할만한 말을 해달라는 거다. 인간은 대등해져야 움직이는 존재다.


    반공도서 읽기운동이 있었는데 국정원 하는 일이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으니 그 반공도서라는게 다분히 야설이다. 초딩을 야설로 유인한다. 백두산 중턱에 초대소라는게 있는데 통나무집이다. 3대 붉은기 꽂기 운동을 하는데 한겨울에 눈이 무릎까지 쌓여 있고 강풍이 거세게 불어온다. 여성동무가 깃발을 들고 앞서갔는데 뒤에 쫓아온 당간부가 성폭행을 저지른다.


    쓸데없이 묘사가 자세하다. 초딩에게 야설 권하는게 당시의 반공교육이니 작금의 일베충 양성과 같다. 문제는 진술만 있고 전제가 없다는 거. 언어가 어색하다. 왜 당간부는 성폭행을 하는데? ‘빨갱이니까 그렇지.’ <- 이걸 나더러 믿으라고? 반대로 받아들인다. 자본주의 재벌은 여비서에게 이런 짓을 하는구나. 지들이 늘 저지르는 짓이니까 거기다 그렇게 써놓은 거다.


    숨은 전제는 반드시 있다. 묶어버리는 것은 반드시 있다. 권력 메커니즘이 남한에서 재벌과 여비서를 묶고, 북한에서 당간부와 여성동무를 그렇게 묶어버리는구나. 그래서 사람들이 권력을 좋아하는구나. 박정희가 그렇게 미쳐갔구나. 상부구조에 반드시 묶어주는게 있다. 묶임의 원리는 보편되니 북이나 남이나 권력으로 사람을 옥죄고 묶어서 지배하는 본질은 같은 것이다.


    이런걸 찾아낸다. 그 묶는 보자기는 반드시 있어야 하며 없으면 문장이 어색하고, 어색하면 등에 두드러기가 돋는다. 체온이 올라가고 등이 따끔따끔해진다. 물리적 반응이므로 견디지 못한다. 교회에서 하는 말씀은 한 마디만 들어도 전신에 두드러기가 돋는다. 저걸 인내심있게 듣고 있는 예수쟁이들은 존경해줘야 한다. 어찌 보면 그것도 대단한 수행방법이라 하겠다.


    하루는 자연수업으로 자석실험이 있었다. 자석에다 쇠붙이 따위를 붙여보는 실험을 마치고 발표하란다. 다들 한 마디씩 했는데 누구도 선생님이 원하는 답을 내놓지 못했다. 나는 ‘자석과 쇠 사이에 일정한 힘의 방향성’이 어쩌구 하며 대답하였는데 선생님이 말을 끊고 화를 냈다. 내 이야기를 들어주지도 않은 거다. 결국 선생님이 스스로 실험결과를 털어놓게 되었다.


    실험결과는 ‘자석이 쇠를 당긴다’는 것이다. 딱 걸렸다. 도대체가 이런 식이라니까. 언어는 전제와 진술이 하나의 동력원에 묶여있어야 하는데 도대체 뭐가 묶여있다는 거지? 그때는 ‘자기장’이라는 단어를 내가 몰라서 설득력있게 답하지 못했지만 자석과 쇠는 자기장으로 인해 하나로 묶여있다. 그 묶어주는 주체를 콕 찍어서 말해야 모양나게 말같은 말이 되어주는 거다.


    전제가 없이 진술만 말한다면 말이 아니다. 자석이 쇠를 왜 당기는지 왜 말하지 않나? 사실은 자기장에 묶여있으므로 쇠가 거기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이다. 자석이 쇠를 당길 리가 없다. 당기려면 잡아야 하는데 뭘로 잡지? 당긴다는 말 자체가 언어적으로 불성립이다. 꽤 화가 나서 이걸 몇 년간 생각했다. 문제는 언어다. 사실 자체는 그대로다. 예컨대 이런 거다.


    ‘밥 먹자.’ ‘왜?’ ‘배고프니까.’ <- 이건 말이 안 된다. 배고픈건 니 사정이고. 누가 물어봤냐고? 자기소개는 곤란하고 서로가 묶여있다는 증거를 들이대야 한다. 말이 말다워야 말이지 ‘어버버버’ 하면 안 된다. 다시 들어가자. ‘밥 먹자.’ ‘왜?’ ‘점심시간이니까.’ <- 이거 말 된다. 점심시간에 의해 묶여 있다. 그러므로 도미노처럼 자빠져도 같이 자빠지는 것이다. 납득된다.


    세상 모든 것은 묶여있기 때문에 그리되는 것이다. 묶는 것은 사건이고 사건을 지배하는 것은 에너지다. 사랑하는 것도, 충성하는 것도, 우정하는 것도, 효도하는 것도 사건 안에서, 에너지의 흐름 안에서 성립하는 것이다. 우리가 어떻게 사건에 묶였는지를 해명해야 한다. 묶는 끈은 무엇이고 끈을 조이는 에너지는 어디서 왔는가? 이 본질을 먼저 해명하고 말해야 한다.


    우리는 묶여 있다. 사건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처음은 무질서한 군중이었다. 인질범이 총을 들이대면 운명공동체로 묶이는 거다. 묶으려는 자들이 인질범을 데려왔는지도 모른다. 인질범의 총구 앞에서 모두는 평등해진다. 거기에 남자 여자가 없고 흑인 백인이 없다. 그렇게 대등해진 다음에야 의사결정은 가능하게 된다. 지도자가 나서면 호응하여 인질범을 제압한다.


    시장은 시장원리에 의해 묶여 있고, 마음은 정신작용원리에 의해 묶여 있고, 정치는 의사결정원리에 의해 묶여 있다. 사건이 일어난 것이며 사건은 사건의 사건에 의해 묶인다. 모든 것을 묶는 근원의 사건은 무엇인가? 도무지 우리에게 어떤 사건이 일어났길래? 인류문명 사건이 일어나버린 것이며, 역사진보 사건이 일어나버린 것이다. 그래서 우리 형편이 이렇게 되었다.


    그러한 배경설명이 없이 하는 이야기는 개소리이며 납득되지 않는다. 식욕도 성욕도 생존본능도 명성도 출세도 지위도 사건 안에서 작동하는 것이며 사건 속의 두드러진 표지들에 불과하다. 진짜는 사건 그 자체이며 중간중간에 놓여있는 표지들에 낚이면 안 된다. 표지들은 바보들을 위한 보조수단이지 진짜가 아니다. 마라톤을 하는데 단번에 42킬로를 달리지 못한다.


    중간목표들을 세워두었으니 5킬로마다 ‘다왔습니다. 힘내세요. 여기에요.’라고 써붙여놨는데 막상 표지에 도달하면 ‘조금만 더 기운을 내세요. 딱 5킬로만 더!’ 이런 식이다. 우리는 묶여있지만 전라도와 경상도로 묶여있지 않고 서울과 지방으로 묶여있다. 공간으로 묶이지 않고 시간으로 묶여있다. 그 마디마디 마다 우리는 대등해진다. 선거 때는 권력과 민중이 대등해진다.


    파리아 신부와 에드몽 당테스처럼 평등해진다. 너와 내가 대등해지는 지점이 분명히 있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 사랑하고 공존하는 것이다. 없으면 그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백인과 비백인이 대등하도록, 서구와 동양이 대등하도록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한중일이 힘을 합쳐 태평양을 미국의 손아귀에서 빼와야 한다. 마땅히 전략을 가지고 설계 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레벨:7]으르릉

2016.07.13 (15:44:52)

늑대와 토끼가 친구가 될 수 있는 방법은 호랑이를 대칭으로 늑대와 토끼가 호응하는 방법으로 팀을 이룰 때에만 가능한 것인가요? 그 끝에는 신(?)과의 대칭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전 늑대가 토끼한테 물려 죽는 것을 상상해 봤는데 이건 아니겠지요?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6.07.13 (18:29:04)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소.

늑대와 토끼만큼 친한 커플을 내가 본 적이 없는데 참.

늑대는 개체수를 조절해주고 토끼는 고기를 상납하고 

누이 좋고 매부 좋고 토끼 좋고 늑대 좋고

친하지 않은 것은 늑대와 늑대가 친하지 않으니

한 여자를 사이에 두고 두 늑대가 다투기 다 반사. 

요즘은 입으로 싸우지만 옛날에는 결투 신청해서 바로 총 쐈음.

가을만 되면 사슴과 사슴이 싸우니 온 산에 뿔박치기 소리가 요란하고

사자는 같은 숫사자가 서로 물어죽이고

호랑이는 암호랑이가 영역을 두고 엄마와 딸이 다투고 

근데 아들호랑이는 행방불명이라 다투지 않소.

영역에 집착하는 딸호랑이는 엄마가 영토를 배분하는데 갈등이 있습니다.

모든 것을 의심하고 백지상태에서 출발해야 이야기가 되는데

말도 안 되는 거짓 전제를 잔뜩 깔아놓고 미늘을 감추고 사람 낚으려 하면 안 되지요.

계정 다 삭제하고 인생가입 새로 한다는 기분으로 접근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레벨:7]으르릉

2016.07.13 (21:36:50)

원천적으로 내가 남과 대등한 관계를 맺는 것이 가능한지에 대해 묻고 싶었습니다.


 '나는 백인입니다.'와 같이, 현실속에서 존재하는 자기소개 때문에, 나의 힘만으로는 너와 대등한 관계가 성립하기가 무척 어렵겠다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백인이 흑인과 한팀이 될 수 있을까? 일본인과 한국인이? 너와 내가?


저는 다음 계획을 공유하는 것만이 진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해법으로 읽었습니다. 그런데 그 해법이 현실상에서는 무엇이 될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면, 잘 모르겠습니다. 우스개소리지만 외계인이 침공했을 때, 백인과 흑인이 한팀이 될 수 있을까요?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6.07.13 (22:17:52)

당연히 대등할 수 있습니다.

그러려면 너와 나라는 관념을 떠나야 합니다.


음악을 논한다면 음악을 이해하는 수준이 같은 만큼은 대등해지고

씨름을 한다면 체중이 같은 사람과는 대등해지고


음식을 논한다면 뚱보가 아닌 이상은 대등해지고

우리가 하는 지향하는 일 안에서는 누구나 대등한 것입니다.


새로 시작하는 일 앞에서는 누구나 대등한 것이며

반대로 다 이루어진 것을 분배하려고 하면 당연히 차별이 일어납니다.


입학할 때는 누구나 대등하지만 

졸업할 때는 진학한 자와 그렇지 못한 자로 차별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단히 새로운 일을 일으켜야만 하며

그것이 바로 진보인 것입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18]챠우

2016.07.14 (01:20:38)

늑대와 토끼가 같이 길을 가다가 호랭이를 만났다.
늑대가 토끼보다는 강자다.
1. 늑대가 토끼를 호랭이한테 재물로 준다.
> 일단 시간은 벌었다. 근데 곧 배부른 호랭이가 힘을 내서 늑대도 잡아먹는다.

2. 늑대가 토끼를 설득하여 연합하여 함께 싸운다. 토끼는 선택권이 없지만 늑대는 있기 때문에 설득이 된다.
> 늑대도 토끼도 당장 죽을 수는 있지만 문제의 본질인 호랭이를 무찌를 수 있는 확률을 얻는다.

늑대를 토끼와 비교하면 힘의 우위를 늑대가 가져가서 차이를 발견할 수 있으나, 배고픈 호랭이 앞에서 둘 다 약자라는 조건은 동일해진다. 그러므로 연합할 수 있다. 연합하면 호랭이보다 강자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편 토끼는 일부러 늑대와 호랭이가 있는 곳으로 갈 수도 있다. 적어도 호랭이가 있는 동안은 늑대와 연합하게 되고 추후 대책을 위한 시간을 벌 수 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6.07.14 (10:49:46)

늑대다 토끼다 하고 규정하는건 편견입니다.

그런 편견을 버리게 하는데 이 글의 목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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