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읽기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5850 vote 0 2016.07.12 (23:47:56)

 

   
    나머지 이야기


    이해했다는 분도 있지만 그래도 찜찜한게 있으니 몇 자 더 보태자. 철학자들이 이런저런 소리를 하지만 거의 개소리고 눈에 번쩍 띄는 글은 없더라. 언어란 것은 전제와 진술로 조직되어야 하는데, 전제도 없이 진술만 늘어놓으니 일단 언어가 아니다. 언어가 아니므로 말이라고 할 수도 없어 헛소리다.


    백지상태에서 새로 시작하자. 인간이 당연히 행복을 추구하지 않을까, 당연히 본능을 따르지 않을까, 당연히 출세를 원하지 않을까 하는건 당연히 의심되어야 한다. 그런 따위는 세상이 만들어놓은 허상이다. 어쩌면 한 살 아기 때의 생각이야말로 순수할 수 있다. 한 살이면 죽음의 두려움조차도 없다.


    인간이 원하는 것은 대부분 사회 안에서의 스트레스 반응이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한 바 무의식의 작용이니 이미 왜곡되어 있다. 출세를 원하고, 미인을 탐하고, 금전을 원하는 것은 결국 사회적인 열등감이나 우월의식이 작용한 거다. 열등의식이든 우월의식이든 남의 시선을 의식한다는 점에서 같다.


    한 살 아기에게 열등감이고 우월의식이고 있을 리 없다. 부족민들은 그런거 없다. 심지어 성욕도 그다지 없다. 성욕은 죽음의 두려움이 작용한 즉 후손을 퍼뜨려 유전자를 남기고자 열망하게 되는 것이다. 죽음이 두려움이라고 표현하지만 반드시 사망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금 밖으로 밀려나는 것이다.


    집단에서 배척되고 소외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다. 그런 두려움이 클수록 사람에게 느끼는 애착이 큰 것이며 성욕은 상당부분 애착에서 나온다. 그런 식의 길들여진 가짜들을 배제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돌아가서 인간을 움직이게 하는 근원의 동인이 무엇이냐다? 내가 선택할 수 있다면 일단 가짜다.


    선과 악 중에서 선택하면 가짜다. 인간은 옳고 그름, 진과 위, 선과 악, 성과 속, 미와 추 중에서 선택한다. 미를 선택하든 추를 선택하든 가짜다. 비교되므로 이미 가짜다. 진짜는 선택하지 않는다. 그것은 풍덩 빠져버리는 것이다. 급류에 휩쓸리듯 떠내려가는 것이다. 누군가 내게 묻는다고 치자.


    ‘너는 왜 그 길로 가느냐?’ 나는 가는게 아니다. 급류에 휩쓸려버린 것이다. 빠져나갈 수 없다. 그래서 흘러가는 것이다. 무엇인가? 에너지가 있다는 말이다. 그 에너지에 갇힌다. 술꾼은 술에 갇힌다. 잡혀버린다. 도박꾼은 도박에 잡힌다. 묶여버린다. 깨달음에 묶여버린다. 진리에 묶이고, 역사에 묶인다.


    신에게 묶여서 아주 하나가 되어버린다. 그렇게 묶여서 나는 네가 되고 너는 내가 된다. 둘은 하나가 된다. 묶여야 진짜다. 인간은 결국 만남을 원하는 것이며 그 만남에 의해 묶이게 되는 것이다. 그 묶는 보자기의 출처를 나는 찾고자 하는 것이다. 사람과 사람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묶어버린다.


    사랑하라고 하면 안 된다. 너 그러다가 사랑에 묶이는 수 있다고 말하는게 정답이다. 역사에 묶이고 진리에 묶이고 신에게 묶이는 수 있다. 소가 풀을 뜯고 사자가 사슴을 먹는 것은 선택사항이 아니기에 자연스럽다. 내가 이 길을 가는 것은 선택사항이 아니기에 내게는 자연스럽다. 묶이면 자연스럽다.


    독립투사는 그 길에서 벗어날 수 없기에 계속 가는 것이다. 에너지 때문이다. 이미 묶여 있다. 작가는 한 번 든 붓을 놓을 수 없어서 계속 쓴다. 누던 똥을 중간에서 자르기 힘들어 계속 누듯이 말이다. 가수는 부르던 노래를 중간에 끊지 않는 법이고, 먹보는 먹던 숟가락을 중간에 놓지 않는 법이다.


    그렇게 에너지에 태워져야 완전한데 철학가들의 개소리는 그 에너지가 없어 느낌이 와주지 않는 거다. 세상의 다른 모든 언설도 마찬가지다. 납득되지 않는다. 행복이든 돈이든 명성이든 무엇이든 다 사람과 친해야만 하는 관문을 거쳐야 하는데 나는 거기서 딱걸린다. 묶이지 않고 어긋난다. 미끄러진다.


    내가 왜 이 인간들 속에서 부대끼며 비위맞추며 함께 살아줘야 하는 거지? 저 지옥 속으로 나더러 들어가라고? 미쳤나? 어림없는 일이다. 지구촌 인간들과 나 사이에 강이 있다. 그 강을 넘을 수 없다. 나는 그들과 묶여 있지 않다. 결별한다. 돈이든 성공이든 사랑이든 뭐든 그것은 당신네들 관심사다.


    나는 그 우스꽝스런 인간들의 연극에 참여할 생각이 없다. 엑스트라도 싫고 주연도 싫다. 인간들 너희들끼리 그러고 놀아라. 그러다 죽는 거지만. 수평의 공간에서 온 것들은 모두 가짜다. 옆으로 들어온 것은 모두 가짜다. 공간에서는 대칭이기 때문에 결코 묶이지 않는다. 축을 중심으로 날개가 벌린다.


    겉돌게 되는 것이다. 어떻게 묶일 수 있나? 보자기가 있어야 한다. 동사에는 명사가 있어야 하고, 명사에는 주어가 있어야 하고, 진술에는 전제가 있어야 하고, 그 모든 것의 이전에 담론이 있어야 한다. 묶어주는 것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무엇인지 나는 묻는다. 인간은 시간의 호응으로 에너지에 묶인다.


    예수는 사랑하라고 했다. 나는 다르게 받아들인다. 묶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랑하라는 진술인데 전제가 안 보인다. 제자가 5천명 쯤 되어야 먹어주는 루틴이구나 하고 받아들인다. 사랑? 그것은 예수의 루틴일 뿐이지. 요즘 그런거 먹히잖아. 근데 제자가 5천 쯤은 되어야 먹힌다구. 객관적으로 본다.


    나도 제자가 한 5천명 생기면 이런거 3종세트로 함 써먹어봐야겠구나 뭐 이런거 아니겠는가? ‘~라고 한다.’의 법칙이다. 선생님이 뭐라고 말하면 아 그렇구나로 받는게 아니라 아 선생님쯤 되면 이 상황에서 이런 식으로 말하는구나 하고 넘어간다. 있어야 되는 전제를 말하지 않으니 내가 찾아내는 거다.


    요리사가 열심히 요리를 하고 마지막에 MSG 한 숟갈로 화룡점정하듯이 마지막에 ‘사랑하라’로 맺조지 해주면 완벽! 분위기 후끈 달라올라주고. 뭐 이런거 아니겠는가? 공간에서의 방향판단을 시간에서의 우선순위로 바꾸면 완전히 다른 세상이 열린다. 결국 인간을 묶는 것은 일의 우선순위다. 에너지다.


    너를 사랑한다고 말하면 선택이다. 선택은 바뀔 수 있다. 묶여있어야 한다. 에너지가 작동하기 때문에 벗어나지 못한다.


   


[레벨:15]떡갈나무

2016.07.13 (07:54:20)

자투리 이야기를 읽는 즐거움의 이 쏠쏠함은 멀까요?
김동렬 선생님의 글에 풍덩 빠져버렸습니다 ^^
[레벨:4]혜림

2016.07.13 (10:46:44)

<창조성과 고통> 이라는 책에서, 프리다 칼로의 말을 인용한게 떠오르네요.

"나는 그림을 그린다. 왜냐하면 그리지 않을 수 없기에"
List of Articles
No.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공지 설의 어원 update 김동렬 2024-12-25 5433
3571 구조론 총정리 4 김동렬 2016-07-19 6523
3570 모든 것의 근원 김동렬 2016-07-18 6161
3569 사랑 123, 화수분 인생 1 김동렬 2016-07-18 5705
3568 완전성으로 출발하라 image 1 김동렬 2016-07-17 5734
3567 언어의 족보를 찾아라 1 김동렬 2016-07-15 6202
3566 계속 가는 자가 승리자다 1 김동렬 2016-07-13 6241
3565 나머지의 나머지 6 김동렬 2016-07-13 6002
» 나머지 이야기 2 김동렬 2016-07-12 5850
3563 진짜 이야기 마지막 6 김동렬 2016-07-11 6517
3562 진짜 이야기는 이런 거다 김동렬 2016-07-09 6627
3561 평론하는 비겁자는 되지 마라 김동렬 2016-07-09 5714
3560 진짜 이야기를 하자 4 김동렬 2016-07-08 6442
3559 보편 평등 민주 자본 사회 김동렬 2016-07-07 6309
3558 사랑 120, 갈 길이 멀다 1 김동렬 2016-07-07 5679
3557 모순이 있어야 정상이다 1 김동렬 2016-07-06 6309
3556 알아서 해라 5 김동렬 2016-07-05 7108
3555 공자의 최종결론 김동렬 2016-07-05 6303
3554 승리자의 길로 가야 한다 김동렬 2016-06-29 6669
3553 공자선생의 정답 김동렬 2016-06-28 6287
3552 사랑 119, 사랑의 통제권 1 김동렬 2016-06-27 57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