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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6515 vote 1 2016.07.11 (19:48:06)

     

    이게 어려운 이야기인 모양이다. 몇몇 사람에게 물어보니까 당췌 뭔 소린지 모르겠다는 반응이다. 내가 한 살 때 생각한 것이므로, 한 살 아기의 마음으로 돌아가서 읽는 것이 방법이 될 수도 있겠다.


    여러번 했던 아기 때 이야기지만, 어머니와 내가 동일체라고 턱없이 믿고 어리광 부리다가, 문득 어머니가 타인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우주가 무너지고 마는 것이다. 어머니는 어머니고 나는 나라는 사실이 천붕天崩이다.


    "어머니. 실례지만 소자 배가 출출해서 찌찌를 세 모금은 먹어야겠는데 혹시 허락해 주실 의향이 있으십니까?" 이럴 수도 없잖은가 말이다. 어색하고 낯설다. 그리고 불안하다. 그날 이후 찌찌는 한 모금도 먹지 못했다.


    아기의 고민은 대문을 나서서 첫 번째 모퉁이 돌아 한 번 더 꺾을 수 있느냐다. 한걸음 뗄 때마다 세 번씩 뒤돌아본다. 내가 모퉁이를 꺾는 동안 우리집이 어디로 도망가 버릴지도 모르니까.


    20년 후 태어난 고향에 가보니까 30미터도 되지 않는 짧은 거리더라. 그 지름 50미터 쯤 되는 세계가 나의 우주다. 그 바깥은 다른 세계다. 이 세계가 만족스러운데 바깥세계를 내가 받아들여야 할까? 왜 내가 그 낯설고 부자연스로운 곳으로 숙이고 들어가야 하는가?


    ‘이런 고민 아기때 다들 하잖아.’ 하고 사람들에게 물어봤더니 ‘안했는데? ‘기억이 없는데.’ 라고 말해서 할말없게 만든다. 어릴 때 생각하는게 그렇다. 나는 어쩌면 알파고 속의 아바타일지 모른다. 지름 50미터 우주 안쪽은 샅샅이 수색했고 그 바깥은 영화 트루먼 쇼와 같은 가짜일지 모른다.


    설령 진짜라고 한들 내가 왜 그것을 받아들이지. 천국이 좋다면 당연히 안 가지. 남의 동네를 내가 왜 가? 답답하면 지들이 오든가. 인생이 달콤하면 당연히 뱉어내지 그걸 왜 삼켜? 미늘이 박혀 있을지 모르는데?


    이야기에는 전제가 필요한 것이며 그 전제의 전제가 필요한 것이다. 짚고 넘어갈 것을 짚고 넘어가자는 말이다. 내가 눈을 감으면 우주는 없는 것이다. 내가 왜 이런 몸뚱이로 이 시점에 이곳에 태어난 것이며, 내가 왜 이 식구들 속에 섞여서 태어난 것이며, 내가 왜 남자사람인 것이며, 내가 왜 한국사람인가? 이걸 내가 왜 받아들여? 전부 거부해야 한다.


    거기가 원점이다. 모든 사유의 출발점 말이다. 온전한 백지상태에서 시작하는 거다. 나의 본능조차도. 배가 고프다고 먹으면 지는 거다. 복종하지 않는다. 납득할만한 설명이 주어져야 한다. 살고 싶다고 사는게 어딨어? 


    쾌락이라는 것은 화학적 전기신호에 불과하다. 알파고 속에서 돌아다니는 데이터들에 불과하다. 살고 싶다면 그것은 내 본능이라는 그 녀석의 소관이다. 그래 본능 너는 살고 싶어라. 나는 승인한 적이 없다. 그것은 본능 네 문제다.


    길이 둘 있는데 이 길이 옳은 길이고 저 길이 그른 길이라고 하면 그래 너는 옳은 길 해라. 난 관심없어. 그게 옳다고 해서 내가 왜 그것을 따라야지? 옳으면 옳은대로 됐고 그래 너 잘났고, 네 똥 굵은거 인정하고 내가 받아들이는건 별개다.


    좋은걸 삼키고 나쁜걸 뱉는건 보통사람들의 방법이다. 나쁜 것 중에서 좋은걸 찾아보는게 미식가의 고급취향이 아니던가? 그것이 옳다고 해서 내가 그것을 따라야 한다는 근거는 당연히 없다. 나를 납득시킬만한 설득력있는 논리가 필요한 거.


    우주 안에 나를 설득시킬 수 있는 언어는 없다. 동의하고 공감하고 동조할만한 아이디어는 없다. 꼬맹이때 다들 이렇게 생각하잖아 말이다. 그래서 하루는 학교에서 배아프다 둘러대고 조퇴하여 수업 중에 밖으로 나와봤는데 그것도 어색했다.


    남들 다 하는데로 튀지 않고 자연스럽게 묻어가는 것도 어색한데, 그 흐름 밖으로 삐져나오는 것은 더 어색하다. 그래서 학교는 12년 동안 얌전하게 다녔다. 속 생각을 털어놓을 사람은 당연히 없고 말이다. 내게는 인간군상들이 다들 외계인처럼 보였던 거. 적에게 왜 본심을 털어놔? 나와는 다른 세계의 사람인데.


    방랑하던 중에 가끔 오전 10시 쯤인데 가야할 학교에 안 가고 당산나무 그늘 밑에서 혼자 도시락 까먹는 소년을 본다. 그 행동을 가만이 지켜본다. 도시락은 벌써 해치웠고 제자리서 맴돌며 앉았다 섰다 하는게 영 어색하다. 가라는 학교는 땡땡이치고 혼자서 들판을 뛰어다니며 잘 노는게 아니고 혼자 잘 못 놀더라.


    가장 어색한 것은 운동장 조회다. 이런 미친 짓을 왜 하냐? 나야 숫기가 없고 내성적인 성격이라서 얌전하게 서 있지만, 누가 ‘나 안해!’ 하고 용감하고 금 밖으로 뛰쳐나가버리면 호응할 준비가 되어 있는데, 그렇게 하는 넘이 없더라. 서 있으라고 하니까 서 있더라. 소도 아니고 참 이게 무슨 꼴이냐고? 인생의 비참이 그 가운데 있다. 말하자면 그런 식이다.


    그런데 말이다. 소설 몽테크리스토백작의 설정은 재미가 있다. 감옥에서 만난 동료 할배가 죽으면서 보물의 위치를 내게 알려준다. 아 이런건 받아들인다. 이건 납득이 된다. 좋고 말고. 모든 것을 의심하고 거부하며 나와 상관없는 바깥세계의 소식으로 치는데 이것만은 만세 부르고 받아들인다.


    어떤 사람이 산에다 장뇌삼을 심어놨다고 나더러 캐가라고 하면 그것을 캐갈 용의는 있다. 모든 것을 거부하지만 이런거 환영한다. 누가 찾아와서 숨은 친척이라며 유산 100억을 준다면 당연히 거절하지 않는다. 챙길건 일단 챙기고.


    무엇인가? 일 안에서 에너지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에너지가 있다. 그것이 정답이다. 일의 다음 단계가 있다. 그렇다면 계속 가는 거다. 에너지 흐름에 올라타고 가보는 거다. 그 에너지만큼은 진실하다. 기승전결의 기에 서서 승으로 초대하면 나는 그 초대장을 수락한다. 에너지 낙차가 있으니깐.


    그렇게 내가 역사의 초대를 받고, 진리의 초대를 받고, 문명의 초대를 받고, 신의 초대를 받았다는 사실을 안 순간, 이 뒤틀린 역사가, 이 웃기고 자빠진 대한민국 무대가, 그 우스꽝스런 운동장조회가 사실은 파리아 신부의 숨겨둔 보물지도였다는 사실을 알아챈 순간 팔뚝에 불끈 하고 힘이 들어가는 것이었다.


    내가 원래 남의 말은 절대로 안 듣지만, 앞의 말은 듣는다. 앞에서 뒤로 넘어가는 과정에 에너지가 끓어오르기 때문이다. 역사에는 반드시 앞뒤가 있으니 진보다. 그건 납득이 되고 수용이 되는 거다. 남의 유혹은 내가 당연히 거절하지만 미래로의 연결은 결코 거절하지 않는다. 그것은 내게 의사결정권이 있기 때문이다. 스위치가 내 손에 쥐어져 있기 때문이다.


    무엇인가? 어머니는 내게 타자이지만 내 자식은 내게 타자가 아니다. 내가 쓴 글도 내게 타자가 아니다. 어색하지 않다. 자연스럽다. 내 안에서 쏟아져 나온 것은 타자가 아니다. 자식을 위해서 내가 죽어야 한다면 즐겁게 죽을 수 있다. 이건 확실히 이해가 된다. 자식은 나의 신체일부이니까.


    내가 결정하여 남이 그 일을 이어받는 것도 이해가 되고, 남이 결정하여 내가 그 일을 이어받는 것도 이해가 된다. 이건 시간에서 일어나는 호응이다. 공간에서 이것을 선택하고 저것을 거절하라는 말에는 ‘조까!’ 한 방을 날려주지만, 시간에서의 호응은 충분히 납득이 되는 것이다. 받아들일 수 있다. 에너지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50년간 머리에서 떠나지 않은 생각. 그것은 에너지 흐름이다. 그 흐름에 타고 가는 것이다. 큰 에너지는 큰 만남에서 얻어진다. 그것만이 진실하다. 강물에 노를 저어 계속 가는 것이다. 이것은 나의 의사결정이니까.


    사람들은 행복을 주장한다. 거절한다. 불행한 소크라테스가 행복한 돼지보다 낫다. 쾌락이든 성공이든 출세든 명성이든 죄다 거절한다. 그것은 바깥세계의 것이니까. 나와 타자 사이에 강이 있으니 강폭은 안드로메다 만큼 멀다. 그래서 타인은 지옥이다. 타자는 적이다. 이곳을 떠나 그 세계로 가지 않는다. 


    그런데 왜냐고? 이 경우는 상대방이 내게로 온 것이니까. 에드몽 당테스가 파리아 신부에게 간 것이 아니라 파리아 신부가 에드몽 당테스에게 온 것이다.


    주는 에너지는 받아들인다. 에너지 흐름에 올라타고 가는 동안은 백명이 등을 떠밀어도 오히려 잘 간다. 에너지의 방향이 순방향이기 때문이다. 에너지는 만남에 있다. 누군가를 만나서 통하고 작당하는 것은 승인할 수 있다. 그것은 확실히 말이 되는 이야기다. 그 외에는 전부 가짜다.


    열심히 해라. 성공해라. 출세해라. 쾌락을 얻어라. 잘 먹고 잘 살아라. 천국 가라. 구원을 받아라. 적군을 물리쳐라. 다 개소리다. 그런 말을 내가 수용할 이유가 없다. 그것은 내 바깥의 것이며 신기루에 불과하다. 죽음의 위협이라도 고통의 위협이라도 그것으로 나를 움직일 수 없으나 일의 승계로는 나를 움직일 수 있다.


    천금의 돈으로도, TV에 나오는 미인으로도, 그 무엇으로도 나를 움직일 수 없으나 99퍼센트 완성된 그림에 마지막 눈알 하나는 네가 그려라. 아 요런건 내가 또 잘 받아들인다. 할 용의 있다. 시켜주라. 


프로필 이미지 [레벨:10]systema

2016.07.11 (20:20:10)

나와 타인 사이에 지옥이 있다. 그 어색함을 피하기 위해 잘도 호응을 이끌어낸다. 억지 웃음과 공통점 찾기. 그렇다. 니가 내편일리가 없다. 어색하게도 같은 편이라 말하지만 말이다. 세상은 타자이지만, 일의 흐름안에서 세상은 아군이 된다. 최초의 접점, 나와 우주의 관계. 에너지로 엮어줘야 완전하다. 이것은 인간이 가정하는 최초의 전제에 관한 이야기, 나와 우주의 관계에 관한 이야기이다. 

[레벨:6]산초

2016.07.11 (20:53:27)

친절도 하셔라... 덥다고 냉사이다 한잔씩 돌리시다니...

프로필 이미지 [레벨:18]챠우

2016.07.11 (21:10:06)

이제 좀 이해가 되네요. 시원해라.


##


내가 아닌 모든 것을 다 탈색하고 남은게 진짜라던데,

근데 그런거 원래 없음. 지우다보면 나도 없거든. 내가 아닌걸 자꾸 지우다 보니 남는게 없더라는거야. 뇌세포 중에 하나 남을까? 이왕이면 현실의 인지를 담당한다는 해마의 세포 중에 하나를 골라볼까?


그러니깐 망하는거야. 나는 애당초 내가 있다는 전제자체를 잘 못 둔거같더라고.

엥 그러면 어쩌지. 내가 없는데 뭘 어쩌지? 발을 딛을려고 해도 걸리는게 있어야 뭘 읇기라도 하지.


근데 그 순간, 나는 여태 나를 정말정말 사랑해서 나만 보고 있었는데,

그제서야 앞에 놓여있는 게 보이는거야. 왜 그럴때 있잖아. 졸라 망해야 주위를 좀 둘러보게 되는거.


난 망한거야. 철저히. 물론 너희들의 관점이지. 또한 나의 관점에서도 망한거야. 물론 과거의 나지만.

아무튼 뭔가 그 선을 넘으니깐, 상상력이 커지더라고.


누구말로는 길거리에 황금이 널렸다는데, 뭐 꼭 널린것까지는 아니더라도

살살 잘 찾아보면 해먹을건 좀 있더라고.


근데 우리 이왕 하는거 좀 크게 해먹자고. 상상력을 더 키워보는거야.

크기는 비교될 때 남에게 전달할 수 있는데,


이왕 내가 정하는거 재수없게 니가 비교할 수 없도록 너도 내 크기 안에 들어오는건 어떨까?

오, 이러니깐 제법 상상력이 좀 커진거 같아.


근데, 아직 아닌거 같아. 아직도 내가 들어있잖아. 

좀 더 해보자. 너도 지우고 나도 지우면 뭐가 남을까?


...


이제사 좀 보이는 거야. 

그래서 돌아왔지. 





[레벨:2]미호

2016.07.11 (22:07:05)

운동장 조회...
증오라는 감정을 배운곳이 바로 그곳이죠.

이시대 인간은 공간을 극복했습니다.
시간을 이기기 위해서 타인이 만든 잣대에 신경쓰지 않아야 하죠.

운동장 조회가 없는 시대이지만
우리에게는 시간이 많지 않으므로
진리에 빠르게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레벨:15]떡갈나무

2016.07.11 (22:45:59)

철학적 글 읽기의 즐거움 ^^
프로필 이미지 [레벨:23]의명

2016.07.12 (11:39:27)

나에게 너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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