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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6201 vote 0 2016.07.15 (13:29:59)

     

    완전성의 문제


    자석이 쇠를 당기든 자석과 쇠가 자기장에 묶여있든 자연의 사실 자체는 변하지 않는다. 문제는 이를 보는 관점과 그 관점을 반영하는 언어다. 6하원칙에도 맞지 않는 어설픈 언어표현이 문제다. 사람들이 말을 성의없이 하는데 화가 났다. 전제가 충분히 제안되지 않았는데도 진술로 얼버무리는게 잘못이다.


    충성이나 효도니 애국이니 하는 것은 진술에 해당하니 마땅히 걸맞는 전제가 받쳐줘야 한다. 전제가 없이 함부로 진술하니 몸에 두드러기가 나서 도저히 못듣고 있겠다. 초딩을 무시해도 유분수지 이걸 교과서라고 써놓고 사람 가르치려드나? 결국 인간의 언어가 원초적으로 불완전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완전한 것은 무엇인가를 생각지 않을 수 없다. 완전한 것은 체계적인 것이다. 체계는 몸통에 팔다리가 이어져 있다. 말을 할 때는 몸통과 팔다리를 구분하고 다시 둘이 어떻게 이어져 있는지를 말해야 한다. 충성이나 효도는 대립개념이다. 대립된 것이 팔다리면 둘을 하나로 묶어주는 것은 몸통이다.


    자석과 쇠가 팔다리라면 자기장이 몸통이 된다. 반드시 자기장의 역할을 하는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애국이든 충성이든 우정이든 노력이든 흔들리는 상대주의 팔다리니 결코 흔들리지 않는 절대주의 몸통은 무엇인가? 사랑의 몸통은 무엇인가? 예수는 사랑을 가르치기 전에 사랑의 몸통부터 말했어야 했다.


    몸통을 건너띄고 팔다리를 흔들어대니 언어가 어설프다. 말이 말같지 않으니 개소리다. 몸통과 팔다리가 이어지면 족보를 이룬다. 분명히 족보가 있을 것인데 누구도 말하지 않더라. 꼬맹이 때 국어사전찾기 숙제를 하다가 발견한 사실이다. 그렇다면 내가 족보를 만들겠다. 구조론의 착상은 여기서 나온 거다.


    중학생이 되어 린네의 생물분류법을 배우니 ‘종속과목강문계’가 생물의 족보를 이룬다. 그렇다면 무생물의 족보는? 구조론의 다섯 매개변수다. 충성이니 효도니 하는 것이 장님 코끼리 만지기가 되니 팔다리를 만지되 몸통을 만지지 못한다. 몸통은 집단의 의사결정이라는 일이다. 이렇게 족보가 만들어졌다.


    족보가 되는 것은 부부가 있기 때문이다. 구조론의 용어로는 대칭이다. 대칭이면 경쟁한다. 경쟁에 이기려면 대집단을 만들어야 한다. 대집단을 이루려는 데서 충성이니 효도니 단결이니 애국이니 하는게 나온 것이니 충성과 애국이라는 팔다리를 보지 말고 집단의 의사결정이라는 몸통을 봐야 진실이 드러난다.


    대집단이 승리하지만 대신 의사결정이 느리다. 소집단의 의사결정이 빠르므로 북한이 빌어먹을 애국질 하다가 망한다. 소집단의 빠른 장점과 대집단의 이기는 장점을 동시에 살리는게 민주주의다. 이념에도 족보가 있으니 보편주의≫평등주의≫민주주의≫자본주의≫사회주의로 순서를 정해서 들이대야 한다.


    족보는 일에 의해 생긴다. 에너지가 없으면 일은 일어날 수 없기 때문이니 에너지가 가는 순방향이 결을 이루니 결따라 가면 만사형통한다. 찾고자 하는 완전성은 일에 있으니 일을 보는 관점을 얻고 일에 맞추어 언어를 조직해야 한다. 이것이 깨달음이다. 인간의 언어는 상대방의 말을 받아치는 구조다.


    말대꾸 하다가보면 의미가 통한다. 그렇게 말대꾸하다가 심사가 틀어져서 사이가 나빠진다. 말대꾸하는 버릇을 극복해야 한다. 자본주의니 사회주의니 하고 논쟁하지만 말대꾸 수준이다. 심사가 틀어져서 브렉시트 되니 망한다. 팔다리가 아닌 몸통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집단의 의사결정을 보라는 말이다.


    집단의 의사결정으로 보면 그 집단이 아직 덜 만들어져 있음을 깨닫게 된다. 흑인과 백인이 섞이면 집단이 조직되기 힘드니 보편주의 문제가 제기된다. 억지로 집단을 만들면 강자와 약자로 갈라지니 평등주의 문제가 제기된다. 지도자를 뽑아 해결하니 독재로 치닫기 다반사라 민주주의 문제가 제기된다.


    이렇듯 문제를 해결할때마다 덧나서 더 골치가 아파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 단계로 진도를 나가는게 진보다. 반대로 첫 번째 단추인 보편주의를 방해해서 흑인과 백인이 겉돌게 유도하여 평등주의로 안 가도 되는 구실, 민주주의 단계로 안 가도 되는 근거를 만들려 하는게 보수꼴통의 방해행동이다.


    일의 논리로 보면 참과 거짓, 선과 악, 옳고 그름, 주와 종, 성과 속이 일에 의해 한 줄에 꿰어져 진리를 이룬다. 이렇듯 대칭되는 것은 모두 팔다리에 해당하니 흔들리는 상대주의 영역이며 답은 흔들리지 않는 절대주의 몸통을 찾아 조치하는 것이니 선과 악 속에서 분별하는 식이면 선에 이르지 못한다.


    진정한 것은 선이나 악에 대응하는 것이 아니며 오로지 집단의 의사결정능력을 발달시키는 것이다. 그것이 진짜 선이다. 선은 선이 아니고 악은 악이 아니며 집단의 문제해결능력의 진보만이 진정하다. 변하지 않는 상대주의 팔다리들 속에서 변치 않는 절대주의 몸통을 찾아내는 깨달음이 훈련되어야 한다. 


[레벨:11]큰바위

2016.07.15 (23:13:13)

완전성의 문제는 일관성과도 연관되어 있고, 온전성과 동의어로 사용할 수 있다. 


완전성은 어느 것 하나 아구가 맞지 않음 없이 모든 것이 딱 들어맞는다는 뜻이고,

일관성은 처음부터 끝까지 이랬다 저랬다 하지 않고 한큐에 뚫는다는 의미이며,

온전성은 전체를 하나로 아우르는 통일성이 있다는 말이다. 


한국 사회는 완전성도, 일관성도, 온전성도 없다. 

한국 사회뿐 아니라, 대부분의 사회가 그렇다. 


우리가 선진국 후진국을 나눌 때, 근거는 이 완전성, 일관성, 온전성만 들이밀어도 금방 답이 나온다. 

선진국일수록 적어도 어떤 일에 일관성이 있게 처신한다. 

법도 일관성이 있다. 


구조론이란 결국 완전성과 일관성과 온전성을 추구하는 체계다. 

그것을 언어로 설명할 수 있다는 전제가 있다. 


맨 마지막 문장에 "선은 선이 아니며, 악은 아니다"라는 표현이 있는데, 

항상 먼저 질문해야 할 것은 그 선과 악을 누가 규정하냐는 거다. 


결국 선과 악을 규정하는 숨은 계를 찾아내면 답이 쉬워진다. 


결국 종교가 말하는 선과 악을 말하고자 할 때, 진짜 선이 뭐고, 진짜 악이 뭔지 제대로 보여줘야 하는데

감정에 호소하고, 수치심 유발하고, 협박하는 수준으로 신을 소개하니 모든 종교가 저모냥이 되고 마는거다. 


그런 종교에는 희망이 없다. 

신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도록 만들고, 

가진자의 논리로 천국을 이야기하거나, 극락을 이야기하는 건

깡패짓과 다르지 않다. 


권선징악 뒤에 숨어 있는 파워스트럭처를 잘 보면 세상이 어떻게 이용되고 이용당하는 지 잘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말 (언어)에 속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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