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칭의 추적 보이는 것 바깥에 하나가 더 있다. 드러난 형상의 배후에는 은밀히 작동하는 에너지가 있다. 우리는 표면의 형상을 보고 이면의 에너지를 추적해야 한다. 드러난 형상이 움직이므로 세상은 온통 역설인 것이며, 그 형상의 배후에 ‘하나 더 있는’ 에너지가 움직이므로 세상은 이중의 역설이다. 이중의 역설은 겉보기에 정설로 보이므로 깨닫지 않으면 알아챌 수 없다. 우리의 눈동자에 찍히는 필름은 정이다. 그러나 세상은 움직이는 동이다. 그 형상의 움직임을 이면의 에너지 움직임이 상쇄한다. 그러므로 세상을 정으로 보아도 큰 잘못은 없다. 그러나 리더가 되면 달라진다. 지도자는 스트레스를 받는다. 움직여야 한다. 움직이지 않으면 자신이 죽는다.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 대중의 압박에 지도자는 죽기 직전의 상황에 몰린다. 지도자가 움직이면? 세상은 시끄러워진다. 모든 계획은 어그러진다. 그러므로 능한 지도자는 자신은 움직이지 않으며, 세상을 움직이게 해놓고 그 흐름에 올라타고 간다. 대중은 지도자가 태산처럼 움직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신뢰하여 따른다. 어리석은 지도자는 그 반대다. 호들갑을 떨며 먼저 움직인다. 변덕을 부린다. 그러다가 변덕스런 대중에 의해 죽는다. 지도자의 변덕에 대중은 변덕으로 응답한다. 대칭은 손가락과 같다. 손가락은 마디가 이어져 있다. 손가락 첫마디의 대칭은 둘째마디다. 둘째마디의 대칭은 셋째 마디다. 대칭이 너무 많다. 손의 대칭은 팔뚝이요 팔뚝의 대칭은 어깨요, 어깨의 대칭은 상체요, 상체의 대칭은 하체요, 하체의 대칭은 신체요, 신체의 대칭은 땅이다. 대칭이 너무 많으므로 중간은 소거한다. 여야의 대칭은 손가락과 같다. 진짜는 국민과 지도자의 대칭이며 그 지도자가 스트레스를 받아 움직이면 반대쪽에 또다른 지도자가 출현하여 여야의 대칭으로 변한다. 이는 하부구조의 운동에너지다. 세상은 대칭의 둘로 되어있지만 그 둘은 허상이고 에너지 하나가 움직인 것이다. 그 하나를 잡아야 한다.
이면에 하나가 더 있습니다. 그 하나는 에너지입니다. 그 에너지가 움직입니다. 우리는 표면의 형상이 움직이는 것을 보되 그 이면의 에너지가 움직이는 것을 보지 못합니다. 그 에너지는 움직이지만 움직임의 상태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도리어 신뢰를 얻습니다. 배도 움직이고, 그 배를 태우고 가는 강물도 흘러 움직이지만 강은 언제라도 그 자리에 있습니다. 움직이면 연결되고 연결되므로 구태여 움직일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전화로 연결되므로 직접 찾아가지 않아도 무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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