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론이 어렵다는 사람은 첫째 자세불량.. 세상을 구조로 바라보겠다는 생각이 없이 구태의연한 생각을 유지하는 사람이다. 이는 마치 훈련소에 입영한 신병이 자기 집에서 하던 버릇을 못 버리고 아침 빵빠레 소리에도 기상하지 않는 것과 같다. 이런 사람은 한 번 오지게 깨져야 한다. 정신을 못 차린 거다. 둘째 구조치.. 원래 안 되는 사람이 있다. 음치나 길치처럼 구조와 맞지 않는 사람이 있다. 훈련해야 한다. 뱀을 두려워하는 사람이라면 오늘 이 시간부터 뱀을 두려워 하지 않겠다고 마음을 먹고 하나, 둘, 셋, 땅!. 이 순간부터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 그게 되는게 정상이다. 어떤 마사이 부락 사람은 시체를 두려워해서 이웃마을 사람에게 돈을 주고 시체를 치우게 한다. 그들의 시체에 대한 공포는 대단한 것이어서 백인이 시체를 옮기라고 명령하면 차라리 죽겠다고 한다. 자신이 죽는건 괜찮은데 시체에 손대는건 무섭다는 거다. 백인이 다친 마사이족 소년을 치료해준 다음 기독교식으로 세례를 했는데 1초만에 시체공포증이 사라졌다. 그 마사이 소년이 기독교 교리를 알 리도 없고 단지 세례식의 인상이 전부다. 사람이 마음을 바꾸면 1초만에 된다. 무려 3초가 지났는데도 안 되는 사람은 심한 고소공포증처럼 원래 뇌기능에 문제가 있는 거다. 생선이 비려도 받아들이기로 작심하면 향기가 된다. 그게 잘 안 되는 사람도 있지만 대개 마음이 비뚤어져 있어서 받아들일 마음이 없는 거다. 외국인이 김치냄새를 싫어하는건 정상이지만 한국에서 그 태도를 계속 유지하겠다면 분명히 인종차별의 의도가 있는 거다. 평생 시체를 무서워 했더라도 세례를 받으면 1초만에 시체에 손을 댈 수 있는게 정상이다. 셋째 넌센스.. 구조론의 기초단계를 생략하고 곧바로 양자역학을 해결해달라는 식으로 나오는 경우다. 바둑은 5분만에 배울 수 있지만 5분만에 이세돌을 뺨칠 수 없다. 구조론은 필자가 초딩때 구상한 것이므로 초딩도 배울 수 있다. 이창호, 이세돌도 초딩때 입단했다. 그러나 초딩 수준의 기초를 떼지 않고 월반할 수는 없다. 구조론은 쉽지만 일종의 수학이므로 어렵게 만들 수 있다. 쉬운 구조 놔두고 어려운 구조에 덤빈다면 곤란하다. 무엇보다 방향이 맞아야 한다. 수학은 숫자가 있지만 구조론은 기호가 없다. 수는 대칭되어 있으므로 숫자가 있고 구조론은 그 대칭이 성립하기 이전을 다루므로 숫자가 없다. 바둑의 포석과 같다. 장기는 상대방 말과 나의 말이 대칭되는데 바둑은 집을 크게 지어서 어울려야 대칭이 된다. 초반 포석단계는 대칭이 없는 거다. 바둑을 두기 시작해서 서로 5점씩 놓았다면 대칭이 되지 않았지만 보이지 않게 대칭이 있는 거다. 그 대칭은 정석대로 둔다는 전제 하에 성립한다. 둘 다 정석을 모른다면? 대칭은 없는 거다. 고수에게는 있고 하수에게는 없다. 고수에게는 보이고 하수에게는 안 보인다. 고수는 아직 두지 않은 미래의 바둑알까지 감안하여 판단하지만 하수는 두지 않은 바둑알은 두지 않았으므로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간단하다. 수학은 수가 모여 있다. 구조론은 그 모임을 깬다. 수학과 미학은 방향이 반대다. 수학은 딱딱하고 뾰족한 것이고 미학은 둥글둥글하고 부드러운 것이다. 수학은 대칭이 바깥에 노출되어 있고 미학은 안쪽에 감추어져 있다. 수학적 사고에 매몰되어 미학적 사고를 거부한다면 대화가 안 되는 거다. 포석단계를 생략하고 싸움바둑만 하겠다면 대화가 안 되는 거다. 미학과 수학은 반대의 성질을 갖지만 한 세트다. 고속도로 톨게이트 앞에 차들이 무질서하게 몰려있다면 미학이다. 톨게이트를 빠져나온 차들이 한 줄로 나란히 달린다면 수학이다. 미학이 미학인 이유는 그 무질서를 질서로 바꾸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미는 의도적으로 무질서를 조장해야 한다. 높은 음과 낮은 음, 빠른 음과 느린 음을 뒤죽박죽으로 섞어야 한다. 그냥 섞기만 하면 미가 아니다. 가지런하게 맞춰놓아도 미가 아니다. 뒤죽박죽은 미가 아니며 나란한 것도 미가 아니다. 미는 그 사이에 변화다. 벼가 도정기를 거치며 쌀이 되어 나오는 것과 같다. 도정되기 전은 미가 아니며 도정된 후도 미가 아니다. 요리되지 않은 음식재료는 미가 아니며 요리된 음식도 마찬가지로 미가 아니다. 미는 변화과정에 있다. 그림이 요리되면 예술이 아니라 상품이 된다. 수학은 요리된 것이며 그릇에 담겨진 것이다. 미학은 요리되는 과정이며, 구조론은 그 전후를 감독한다. 사람들은 수학의 질서정연한 세계를 좋아하지만 미학적 에너지가 넘치는 세계를 더 좋아한다. 요리된 음식만 찾는 사람은 그 에너지를 취하지 못한다. 그림이 아름답다며 좋아하는 사람은 그 그림 속의 기운을 취하지 못한다. 내 입에 맞게 가공된 음식은 당신의 주머니를 털어가는 자객에 불과하다. 우리 주변의 사물은 수학의 가공을 거친 것이다. 그것은 입에 맞지만 이미 당신의 지갑은 털렸다. 진정으로 가치있는 것은 기운있는 것이며 기운있는 것은 당신의 주머니를 털지 않는다. 댓가를 가져가지 않는다.
근본적으로 다른 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시체가 무서워서 절대 시체에 손을 대지 않겠다며 고집을 피우는 사람은 당연히 배척됩니다. '뱀이 무섭다고?' '그러니까 만져야지.' '생선이 비리다고?' '그러니까 먹어야지.' 훈련을 해야 합니다. 마음 속의 장벽을 걷어치워야 합니다. '그렇게는 못하겠다고?' 다른 인종으로 분류됩니다. 마사이족 소년도 일초만에 인생을 바꾸는데 못할게 무엇입니까? |
띄어쓰기가 안 되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