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읽기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7065 vote 0 2014.11.30 (22:18:22)

    세 번의 YES와 두 번의 NO


    세상은 에너지와 일로 되어 있다. 물질이나 원자로 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물질이나 원자라는 관념은 인간 위주의 상대적인 관측으로 자연의 실제와 맞지 않다. 자연은 존재하고 인간은 인식한다. 존재와 인식은 방향이 반대이므로 상대성이 성립한다. 좌우가 바뀌어 나타나는 거울에 비친 상처럼 오류가 있다. 인간의 입장을 버리고 자연에 기준을 두어야 한다. 해가 지구를 도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지구가 해를 돌 듯이 기준을 자연에 둘 때 바른 이해가 가능하다.


    에너지는 일을 하여 세상을 일군다. 일은 사건으로 나타난다. 사건은 기승전결로 시간을 따라 전개한다. 우리는 공간과 시간을 추적하여 사건을 판단할 수 있다. 실제로 작동하는 것은 시스템과 구조다. 시스템은 일의 단위다. 일은 기승전결로 진행하다가 중도에 그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시스템보다 단위가 작은 구조를 보아야 한다. 구조는 의사결정단위다. 에너지는 5회에 걸친 의사결정으로 1단위의 일을 생성한다. 그것이 시스템이다.


    ◎ 자연은 에너지다.
    ◎ 에너지는 일을 한다.
    ◎ 일의 단위는 시스템이다.
    ◎ 1 시스템은 5 의사결정구조를 가진다.
    ◎ 다섯차례의 의사결정으로 자연은 한 가지 일을 한다.


    system은 쌍sys으로+선다stand는 뜻이다. 어떤 A가 가면 B도 가는 현상이 있다. 어떤 A와 B가 제 3의 C를 공유할 때 쌍으로 서는 시스템 현상이 일어난다. 두 사람이 한 배를 탔을 때 한 명이 물에 빠지면 다른 사람도 물에 빠진다. 배가 침몰했기 때문이다. 우리말로는 체계體系다. 체는 몸통이고 계는 가지다. 두 가지가 한 뿌리를 공유한다. 형제가 있는데 형이 자기 아버지를 죽이면 동생도 아버지를 잃는다. 하나가 결정되면 다른 것도 결정된다. 시스템이다.


    ◎ 시스템은 쌍으로 일어선다.
    ◎ 시스템은 어떤 A와 B가 제 3의 C를 공유한다.
    ◎ 시스템은 하나의 체體가 몸통을 이루고 두 가지가 계系를 이룬다.
    ◎ 시스템은 하나가 결정될 때 다른 것도 결정된다.


    여당이 강하면 야당도 덩달아 강해지고 반대로 여당이 지리멸렬하니 야당도 지리멸렬해지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토대의 공유를 이룰 때 이런 현상이 일어난다. 이때 토대를 공유하는 A와 B는 대칭을 이룬다. 그리고 외부에서 에너지가 들어오면 5회의 의사결정을 통해 에너지를 처리한다. 에너지는 밖에서 안으로 들어왔다가 내부에서 처리된 다음 다시 밖으로 배출된다. 그리고 에너지가 들어올 때 한 번, 나갈 때 한 번 두 번의 반전을 일으킨다.


    사건의 기승전결은 1회의 반전을 나타내지만 실제로 자연의 시스템은 공간에서 한 번, 시간에서 한 번 두 번의 반전을 일으킨다. 공간의 반전은 힘으로 이기는 개인전이요 시간의 반전은 팀으로 이기는 단체전이다. 한 번 이기고 만족하여 전진을 중단하다가 낭패를 당하게 된다. 한 번 이긴건 예선전이다. 만족하지 말고 다음 게임에 나서야 한다. 한 번 이기는건 실력으로 이기는 소승의 승부이고 두 번 이기는건 이념으로 이기는 대승의 승부이다. 두 번째 이겨야 진짜다.


    하나의 사건은 5회의 의사결정을 일으키지만 실제로 판단하는건 YES와 NO 둘 뿐이다. 일의 진행과 중단 뿐이다. 진행은 YES, 중단은 NO다. 인간은 오직 YES와 NO를 판단할 뿐이다. YES는 길이고 NO는 집이다. 사건은 에너지로부터 격발된다. YES는 에너지를 받아들여 계속한다. 그러므로 길이 된다. NO는 에너지를 저장하여 방향을 바꾼다. 에너지는 내부에 비축된다. 그러므로 사건은 멈춘다. 그런데 우리는 보통 NO를 존재로 여긴다. 물질이나 입자 개념이다.


    자연에는 에너지와 일이 있을 뿐이지만 우리는 어떤 딱딱한 것, 막힌 것, 차단된 것을 보고 존재를 인식한다. 화살이 날아가다가 어딘가에 막히면 그곳에 무엇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장님이 주먹을 휘둘렀는데 무언가 주먹에 맞았다. 주먹의 진행이 막혔다. NO를 당한 것이다. 그 경우 인간은 그곳에 무언가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는 과연 현명한 판단일까? 아니다. 자연의 자연스러운 모습은 물흐르듯한 YES다. NO는 막힌 것이며 부정된 것이다.


    에너지의 관점으로 볼 때 배가 강물을 따라 잘 나아감은 존재다. 반대로 배가 가지 못하고 사업이 망한다면 존재가 없는 것이다. 말 타고 초원을 달리는 유목민은 방해받지 않을 때 존재인 것이며 반대로 성곽에 의지하는 농경민은 성벽에 막혔을 때가 존재다. 이는 관점이 다른 것이다. 우리는 무작정 NO로 막힐 때 그것을 존재라고 여긴다. 그러므로 모든 것을 잘못 알게 된다. 길처럼 뚫렸을 때 그곳에 시장이 존재하는 것이며 막히면 시장은 없는 것이다.


    ◎ 상인, 유목민의 관점 – 뚫리면 존재, 막히면 부재다.
    ◎ 농민, 정착민의 관점 – 막히면 존재, 뚫리면 부재다.


    인간은 하나의 사건 안에서 5회의 YES와 NO를 판정한다. 처음은 에너지를 받아 진행하므로 YES다. 에너지가 들어와야 사건이 촉발되기 때문이다. 세상의 어떤 존재도 에너지가 들어오는 입구가 없으면 그것은 존재로 기능하지 못한다. 집이 있는데 대문이 없다거나 총이 있는데 방아쇠가 없다거나 칼이 있는데 손잡이가 없다면 그것은 집이 아니요 총이 아니요 칼이 아니다. 반드시 에너지가 들어와야 사건은 시작되며 그러므로 첫 번째 그대의 대답은 YES다.


    에너지를 받았다면 저장해야 한다. 그냥 에너지를 통과시킨다면 그대의 존재는 부정된다. NO를 구사하여 에너지의 진행을 정지시켜야 그대의 존재를 인정받는다. 명령은 대대장에서 중대장, 소대장, 분대장을 거쳐 병사에게 전달되고 정보는 그 역순으로 보고된다. 그대가 YES만을 행하면 병사는 그대를 건너뛰고 상사에게 직접 보고할 것이다. 그대의 존재는 무시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가끔 NO를 때려서 그대의 서랍에 보류시켜야 한다. 그래야 존재가 인정된다.


    그러므로 그대의 두 번째 응답은 무조건 NO다. 처음 외부에서 정보를 받아들이는 것이 질, 그대 안에 잠시 보류시켜 두는 것이 입자다. 그리고 다시 힘은 YES, 운동은 NO, 량은 YES가 된다. 그대는 하나의 사건 안에서 세 번의 YES와 두 번의 NO를 구사하게 된다. 우리는 역설 혹은 반전을 통해서 거기에 무엇이 있음을 알게 된다. 성문의 문지기가 모든 사람을 통과시킬 뿐 한 명도 붙잡아 세우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성문에 문지기가 없다고 여길 것이다.


    무릇 존재한다는 것은 무언가의 진로를 차단하여 NO를 구사하는 것이다. YES는 지는 것이요 NO가 이기는 것이다. ‘NO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이라는 책도 있을 정도이니 짐작할 수 있다. 인생은 두 번의 NO라고 말할 기회를 가진다. 승부는 두 번에 걸쳐 일어난다. YES는 연결이고 NO는 끊음이다. YES는 길이고 NO는 집이다. 인간은 에너지의 연결로 태어나 NO로 각성한다. NO라고 말할 수 있을 때 비로소 한 명의 인격체로 인정받는 것이다.


    ◎ 질.. 아기는 YES로 엄마의 젖을 받아들인다.
    ◎ 입자.. 청년은 NO로 배우자를 선택하고 부모에게서 독립한다.
    ◎ 힘.. 장년은 YES로 회사의 월급을 받아들인다.
    ◎ 운동.. 리더는 NO로 창업하고 자기 부하를 얻는다.
    ◎ 량.. 은퇴할 때는 YES로 세상에 되돌려 준다.


    어린이는 성장한다. 초딩과 중딩과 고딩을 거쳐 계속 자라면서 YES를 통해 지식을 받아들인다. 소년은 성인이 될 때까지 길 위의 존재다. 길은 가는 것이다. 소년은 계속 가야만 한다. 언제 멈추나? 결혼할 때 멈춘다. 그리고 부모로부터 독립한다. 처음 NO를 구사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까지는 개인전이다. 입시를 해도 개인의 성적을 평가하지 팀플레이를 평가하지는 않는다. 아기에서 결혼까지 인생은 혼자 승부하는 것이며 소승의 승부이며 힘이 세면 이긴다.


    문제는 인생의 진짜 승부는 단체전이라는 거다. 회사의 업무는 개인을 평가하지 않는다. 삼성이나 현대에 입사한다면 삼성팀이나 현대팀의 팀원이 되는 것이다. 회사가 망하면 개인도 도매금으로 망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한국의 교육은 팀플레이가 아니라 개인기만 가르친다. 미국넘들이 잘 사는 이유는 미국팀에 들었기 때문이지 다른거 없다. 북한사람들이 가난한 이유는 개인기가 부족하기 때문이 아니라 팀장이 김정은이기 때문이다. 팀에서 중요한 승패가 결정된다.


    팀에 들어야 하기 때문에 다시 YES가 된다. 그런데 팀원으로 끝나지 않고 자신이 팀장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한 번은 NO를 해야 한다. 평생 YES만 한다면 말단을 면하지 못한다. 과장이나 부장이 존재하는 이유는 필요한 때 NO를 하라고 만들어놓은 자리다. 그러므로 인생은 두 번의 YES와 두 번의 NO로 완성되는 것이다. 그런데 최후에는 YES라야 한다. NO에 집착하는 것은 진보가 반대를 위한 반대만 일삼는 것과 같아서 승부에서 이기고 투표에서 진다.


    TV토론을 하면 항상 진보가 이기지만 투표함을 열어보면 보수가 이겨있다. 진보의 승리가 유권자의 패배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유권자는 자신을 패배시키는 집단에게 표를 주지 않는다. 그러므로 진정한 자는 마지막에 YES여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최후의 YES는 주로 이념, 이상주의, 문화, 예술, 패션, 디자인과 같은 분야에서 극명하게 확인된다. 정치가나 지도자의 업적은 세월이 흐르면 무시된다. 박정희의 업적? 그런거 없다. 지워진다. 그러나 예술은 남는다.


    YES는 길이고 NO는 집이다. YES는 동動이고 NO는 정靜이다. 우리는 자연의 존재를 물질이나 원자로 여기지만 이는 자연의 NO에 주목한 것이며 정靜에 주목한 것이다. 자연은 원래 에너지, 일이므로 YES이며 동動이다. 그리고 전개과정에서 두 번 NO와 정靜을 거친다. 그리고 최후에는 다시 YES가 되고 동動이 된다. 그것은 커다란 낳음의 자궁을 이루는 것이다. 뒤에 오는 누군가를 위한 길이 된다. 새로운 세력을 낳는 자궁을 이루어야 한다. 팀플레이로 가능하다.


199.JPG

   

    인생은 두 번의 YES와 두 번의 NO, 그리고 최후의 YES로 완결됩니다. YES는 도전이고 NO는 승리입니다. 첫번째 NO로 성인이 되고 두 번째 NO로 리더가 됩니다. 우리 사회는 첫 번째 NO로 이기는 법만 가르치고 두 번째 NO는 가르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첫 번째 패를 바꾸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첫 번째 승부는 실력으로 이기고 두 번째 승부틑 팀플레이로 이깁니다. 팀으로 이기는 방법은 합의가능한 미래를 제안하는 것이며 그것은 이상주의입니다. 이상주의는 음식에도 있고, 옷에도 있고, 차에도 있고, 우정에도 지란지교로 있습니다. 일본은 첫번째 승부에서 이겼으나 거기서 주저앉아 더 나아가지 않습니다. 일본의 외교는 지란지교가 아니라는 거지요. 


[레벨:17]눈내리는 마을

2014.12.01 (01:21:06)

일본은 첫번째 승부에서 이겼으나 거기서 주저앉아 더 나아가지 않습니다.

듣고 있나, 볼줄은 아나, 일본 깡따구 엘리트들...
[레벨:3]파워구조

2014.12.02 (00:50:47)

선생님의 절창에 어떻게 No할 수 있을까요. 

구조론에 대해서는 절대로 No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18]챠우

2014.12.02 (13:59:29)

조금 딴 소리를 하자면

유목민은 대륙에 의지하고 

농경민은 성에 의지하고

의사결정 토대 크기의 차이.


한편 

국민은 바른 소리만 하는 멍청이를 원하는게 아니라

태평양을 보여주고 함께 갈 선장을 원하는거.


희망이 미래다. 길이며 완전성이며 연속성이다. 

List of Articles
No.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공지 설의 어원 update 김동렬 2024-12-25 5034
3011 이중의 역설의 예 image 3 김동렬 2014-12-28 7769
3010 인류 최후의 지식은 무엇인가? image 3 김동렬 2014-12-25 7772
3009 이중의 역설을 쓰는 방법 image 1 김동렬 2014-12-21 8388
3008 이중의 역설을 훈련하라 image 4 김동렬 2014-12-20 7810
3007 구조론의 정수 image 2 김동렬 2014-12-19 7104
3006 자유 평등 박애 그리고 정의 image 2 김동렬 2014-12-17 7724
3005 존엄에서 행복으로 image 1 김동렬 2014-12-16 7191
3004 존엄이냐 행복이냐 image 3 김동렬 2014-12-13 8010
3003 사람을 사랑하는게 정답 image 15 김동렬 2014-12-12 9417
3002 존엄의 의미 image 3 김동렬 2014-12-11 7259
3001 행복의 비밀 image 11 김동렬 2014-12-10 8456
3000 명상하는 방법 image 5 김동렬 2014-12-09 8830
2999 마음의 구조 image 9 김동렬 2014-12-08 7840
2998 질≫입자≫힘≫운동≫량 image 1 김동렬 2014-12-07 6845
2997 존재의 중첩을 이해하라 image 1 김동렬 2014-12-07 6490
2996 구조로 보아야 역사가 보인다 image 2 김동렬 2014-12-04 7470
2995 구조론 요약 image 3 김동렬 2014-12-03 6514
2994 이상주의란 무엇인가? image 2 김동렬 2014-12-02 9180
» 세 번의 YES와 두 번의 NO image 3 김동렬 2014-11-30 7065
2992 북, 북소리, 연주 image 2 김동렬 2014-11-29 64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