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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5791 vote 0 2014.11.16 (23:25:22)

     

    한글은 자음과 모음이 합쳐 하나의 소리를 이룬다. 어떤 둘이 만나 한 세트를 이루고서야 기능을 획득한다는 점은 물리학의 양자개념을 떠올리게 한다. 구조론은 ‘ㄱ’과 ‘ㅏ’라는 자모 각각이 아니라 둘 사이의 관계에 주목한다. 기능은 개체 그 자체에 고유한 것이 아니라 2차적인 관계로부터 획득된다.


    용연향은 자체의 향기가 없다. 단지 다른 향을 잘 보존할 뿐이다. 평범한 향료가 용연향을 만나면 향이 흩어지지 않고 잘 보존된다. 상어지느러미나 제비집요리는 자체의 맛이 없다. 흰 쌀밥이 좋은 반찬을 만나고서야 제 맛을 내듯이 좋은 소스를 만나고서야 비로소 진미가 된다.


    바둑알은 흰돌이건 검은돌이건 자체의 속성이 없다. 희고 검은 것은 단지 색깔을 구분한 것일 뿐, 장기의 말과 같은 정해진 역할이 없다. 대신 주변의 어느 위치에 다른 돌이 놓이는가에 따라 2차적으로 역할이 획득된다. 구조론의 이러한 내용은 일상에서의 경험으로 충분히 유추할 수 있다.


    조금 더 진도를 나가줘야 한다. 관계가 곧 존재다. 존재를 부정하고 대신 관계를 긍정하는게 아니라, 존재를 긍정하되 처음 지목된 개체가 아니라 그 개체들 사이의 관계가 바로 존재의 진짜 정체라는 거다. 무엇이 다른가? 관계는 자란다. 진짜 존재는 자라는 것이다. 그냥 우두커니 놓여있는 것은 존재가 아니다.


    보존제인 용연향이 향료를 만나 비로소 제 색깔을 내듯이, 상어지느러미나 제비집이 소스를 만나 비로소 진미를 이루듯이 쌀밥이 반찬을 만나 제 맛을 찾듯이 만나고서야 이루어진다. 바둑이 포석을 하면서 점차 기능을 획득하듯이 만나고, 성장하고 진도 나가주는 바로 그것이 존재다.


    존재는 그렇게 살아있다. 아무런 속성이 없는 허虛나 무無나 공空인 관계가 의미있어지는 것이 아니라 실은 관계가 바로 색色이고 칼라이고 존재의 진짜배기 몸통이었던 것이다.


    집과 집 사이에 길이 있다. 길은 사람이 다니는 통로다. 그 통로가 집과 집을 연결한다. 집이 존재라면 통로는 관계다. 집은 번듯한 형태를 갖추고 있지만 통로는 텅 비어서 형태가 없다. 허虛와 같고 무無와 같고 공空과 같다. 천만에! 착각하지 말라. 통로가 집이다. 사람이 먹고 자고 쉬는 거기가 바로 통로다.


    인간은 원래 노숙자다. 지붕있는 통로의 노숙자냐 지붕없는 통로의 노숙자냐 하는 정도의 차이 뿐이다. 그러므로 구조론의 관계는 불교에서 말하는 허虛나 무無나 공空의 개념과 상당히 유사하면서도 오히려 그 반대이다. 존재들 사이에 관계가 있는게 아니라 관계가 바로 존재의 실체였던 것이다.


    사물들 사이에 텅 빈 허虛나 무無나 공空이 있는게 아니라 허虛나 무無나 공空이 바로 사물이었던 것이다. 그렇다. 그것은 텅 비어있지 않다. 오히려 꽉 차 있다. 단지 눈이 어두운 자가 그 꽉차있음을 보지 못할 뿐이다. 꽉차 있을 뿐 아니라 살아서 호흡하고 약동한다. 만나고 관계맺고 성장한다.


    우리가 나무라고 착각하는 기둥은 죽은 지구의 일부일 뿐이고 거죽이 바로 나무다. 장작으로 쓰는 목재는 나무가 아니라 나무가 버린 똥인 것이다. 그것은 생물학적으로 죽어 있다.


    우리는 나무냐 풀이냐를 따지지만 학자들은 웃는다. 왜냐하면 나무의 속은 나무가 버린 똥이고, 거죽만이 나무이므로 풀과 나무는 아무런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단지 일년생이냐 다년생이냐 차이인데 이는 온대지방에 해당되는 개념이고 열대지방에는 고추도 나무가 되어 계속 자란다.


    ◎ 우리가 나무로 아는 것은 실은 나무가 아니다.
    ◎ 우리가 집으로 여기는 부분은 실은 집이 아니다.
    ◎ 존재를 부정하고 관계인 허虛나 무無나 공空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허虛나 무無나 공空이 바로 존재의 실체 바로 그것이다.
    ◎ 존재들 사이에 텅 빈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니라, 실은 꽉 차 있으면서 살살 돌아다니며 새로 짝짓기하고 호흡하고 성장하는 관계가 그곳에 존재한다.
    ◎ 존재는 살아있는 것이며 살아있는 것은 점점 자라는 것이고 둘 사이의 관계는 자라지만 정작 애초에 관계의 비빌언덕이 된 그 둘은 자라지 않는다.


    바둑돌 사이에 행마가 있는게 아니라, 행마가 바둑이고 바둑돌은 그저 표식일 뿐이다. 소프트웨어가 컴퓨터이고, 하드웨어는 그저 컴퓨터가 잠시 빌려 쓰는 쇳덩이일 뿐이다. 옷은 사람이 아니고 사람이 잠시 빌려 쓰는 거죽이다. 그러므로 중국 프로그래머가 아이폰에 윈도98을 깔면 곧 컴퓨터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세상 모두는 크게 연결된다. 왜냐하면 자라기 때문이다. 컴퓨터가 자라서 네트워크로 연결되면 인터넷이다. 구글 페이지는 갈수록 늘어난다. 그렇게 자라는 것이 바로 진짜배기 존재다. 자라서 연결되고 연결되면 합쳐진다. 최종적으로는 모두 에너지 하나로 환원된다.


    다양한 창세설화가 있지만 처음에는 모두 1로 시작된다. 그리스 신화라면 처음 카오스가 가이아를 낳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1에서 2가 나온다. 무엇인가? 관계는 어떤 둘의 사이에 존재하는데 처음에는 그 어떤 둘이 없다. 처음에는 하나 뿐이므로 관계가 없다. 그렇다면 처음은 존재가 없는 거다.


    그렇다면? 어떤 둘 사이에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니다. 1이 정靜이고 정이 움직이면 동動이 되며, 정과 동이 대칭을 이루어 관계를 이룬다. 최초의 관계는 자기 자신의 동과의 관계다. 1인 2역을 한다. 여기서 물리학의 양자개념이 나와주신다. 마찬가지로 한글도 처음은 오직 모음 뿐이다. 자음은 없다.


    모든 음은 오직 성대에서 나온다. 그러므로 1이며 2는 없다. 그 성대가 외부로 몸통을 연장하여 전개한 것이 턱이다. 턱이 모음을 이루며 성대를 대리한다. 하나의 성대소리가 다양한 턱소리로 연출된다. 그러므로 원래 모음은 아에이오우 다섯 뿐이다. 턱을 움직이면 더 많은 소리가 만들어지나 다 하나의 성대로 환원된다.


    턱이 연출하는 성대의 모음이 혀와 입술과 이와 목구멍에 의해 24가지 한글의 자모를 연출한다. 혀는 ㄴㄷㄹ이고, 입술은 ㅁㅂㅍ이고, 이는 ㅅㅈㅊ이고, 목구멍은 ㄱㅋㅇ이다. 소리는 모음과 자음의 양자적인 결합이지만 실제로는 모음만 있고 모든 자음은 모음의 동動이다. 궁극적인 에너지원은 하나 뿐이다.


    피리소리는 갈대잎으로 만든 리드와 연주되는 구멍이 대칭을 이루지만 사실 그 구멍은 없어도 된다. 피리의 구멍은 소리에 칼라를 입히는 수단에 불과하다. 모든 존재는 대칭의 2에 의해 이루어지나 다시 에너지의 1로 환원되고 마는 것이다. 그러므로 허虛나 무無나 공空은 부정된다.


    구조론을 이해한다 함은 첫째 세상 모든 것이 어떤 둘이 아니라 둘 사이의 관계로 이루어짐을 아는 것이며, 둘째 실제로는 그 어떤 두 존재들 사이의 빈 곳에 관계가 있는게 아니라 관계 그 자체가 살아서 자라고 진도 나가주는 존재이며 애초의 그 둘은 그림자와 같은 허상임을 아는 것이다.


    거기서 멈추면 곤란하다. 더 진도를 빼줘야 한다. 셋째 관계는 항상 대칭을 이룬다. 상하, 좌우, 전후, 내외, 원근, 음양, 남녀 하는 식으로 짝이 있다. 그런데 둘은 잠정적인 조치에 불과하고 실제로는 하나와 그 하나의 동動이다. 넷째 오직 진리 하나가 존재할 뿐이며 그 진리가 다양한 칼라로 연출되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세상과 나의 일대일, 신과의 일대일이 포착된다. 일대일은 2다. 대칭되는 거다. 대칭은 의사결정이다. 모든 의사결정은 방향전환을 필요로 하며 방향전환은 대칭을 필요로 한다. 그 대칭은 2이며 그 2는 1에서 나왔다. 태극기처럼 빨강과 파랑이 마주보고 대립해 있는게 아니다.


    머리와 꼬리가 대칭되어 마주보고 있는게 아니라, 실제로는 머리가 몸통을 늘려서 꼬리를 만들었다. 그리고 방향전환에 성공하면 꼬리를 말아 회수해 버린다. 빛이 방향을 바꿀 때 어둠을 만들어내며 방향전환 후에는 어둠을 회수한다. 어둠은 잠시 나타났다 사라지고 만다.


    모든 대칭은 하나의 의사결정을 위한 잠정적인 조치다. 카오스가 자기 신체 일부를 떼어 가이아를 만들었다. 둘이 쌍을 이룬다. 서로 다른 2가 모인게 아니라 1이 동動을 연출하여 2처럼 보이게 만든 것이며, 이는 의사결정을 마치고 바로 사라진다. 그러므로 선은 계속 남아있고 악은 방향전환 후에 사라진다.


    진리는 1이다. 세상과 나의 관계에 있어서 인간은 관측자 포지션을 가진다. 즉 2가 되는 것이다. 외부에서 평가할 때는 3의 객관이 된다. 모두 허상이다. 1만이 진실하다. 진리와 나, 세상과 나, 신과 나, 우주와 나는 1로 돌아가며 2는 의사결정과정에 잠시 쓰일 뿐이다.


    나라고 하면 이미 2다. 나는 너의 존재를 전제로 한다. 너와 나 둘이면 이미 틀렸다. 너와 나는 없으며, 하나의 뱀이 몸통을 늘여 임시로 꼬리를 연출한 것이 너와 나로 보이게 된 것이다. 무엇이 다른가? 1로 돌아가면 성장이 보이고, 진보가 보이고, 선이 보인다. 그럴 때 의사결정해야 한다는 부담에서 자유롭다.


    ◎ 본래 하나이며 의사결정을 위해 2를 연출하고 다시 1로 환원된다.


    그렇다. 사람들은 집과 집 사이에 통로가 있다고 믿는다. 착각이다. 집도 들어가보면 방과 방을 연결하는 통로를 이루었다. 방도 들어가 보면 책상과 침대를 연결하는 통로를 이루었다. 책상도 들어가 보면 책꽂이와 서랍을 연결하는 통로를 이루었다. 책꽂이도 들어가보면 책이 드나드는 통로다.


    바깥으로 나가보자. 집 바깥은 마을과 마을이 길로 연결된다. 세상 모두가 연결된다. 그 길이 점점 자라서 내 집 안으로 침투하여 들어오면 방과 방을 연결하는 복도가 되고, 마침내 방 안으로 침투해 들어오면 책상과 침대를 연결하는 통로가 되고, 책상 위로 올라오면 책꽂이와 서랍을 연결하는 통로가 된다.


    이것은 자람이다. 계속 성장해 간다. 그것이 바로 존재다. 집은? 없다. 그것은 허상이다. 사실은 길이 집이다. 그 길은 모두 연결되어 하나의 통짜덩어리다. 침대는 막다른 길이다. 침대에 오르면 더 갈 곳이 없다. 길이 끝난다. 아니다. 거기서 중요한 방향전환이 일어난다. 중요한 의사결정은 침대에서 일어난다.


    막다른 길에 침대가 있고, 그 곳에서 존재의 비약적인 성장이 일어난다. 의미있는 의사결정이 일어난다. 개미집과 같다. 개미집은 길만 있고 집이 없다. 길이 집이다. 집은? 길을 표시하기 위해 지구의 흙을 빌려 포지션을 지정한 것이다. 집은 집이 아니라 말하자면 도로표지판 같은 거다.


    길은 계속 연결되며 막다른 곳에서 끝나지 않고 의사결정한다. 그것은 나무의 가지끝과 같다. 그곳에 생장점이 있다. 거기서 의사결정하여 자란다. 그러므로 길은 끝나는 곳에서 미래로 연결되는 것이며 결코 다하지 않는다.


111.JPG


    존재는 실체가 아니라 관계입니다. 관계는 관계가 아니라 실체입니다. 당신은 당신이 아니고 당신의 관계가 당신입니다. 당신의 관계는 관계가 아니고 바로 당신의 실체입니다. 나는 실체이고 세상에 알려진 나의 이미지는 허상이라는 착각을 깨야 합니다. 세상에 알려진 그 이미지가 바로 당신의 실체이고, 당신의 몸뚱이는 아직 배설되지 않은 똥입니다. 관계는 반드시 짝을 가집니다. 관계는 방향전환을 결정하고 그러므로 파트너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당신의 얼굴은 둘입니다. 당신은 진보이며 보수이고, 남자이며 여자이고, 양반이며 상놈이고, 강자이며 약자입니다. 당신의 진짜 얼굴은 이 중에서 하나이고, 나머지 하나는 당신이 방향전환을 위한 의사결정에 소용되는 거짓 그림자입니다. 잠시 빌려 쓰고 돌려주는 포지션입니다. 당신은 그 의사결정 과정에서 성장합니다. 당신은 길이고, 길은 어디선가 막다른 길로 끝나며 실은 거기서 끝나지 않고 의사결정하여 다시 미래와 만납니다. 그리하여 근원의 하나로 돌아갑니다. 1은 있고 2는 없습니다. 너와 나라는 생각은 이미 2입니다. 당신이 의사결정의 부담을 느낄 때 '나'라는 환영을 만들어냅니다. 나는 없고 오직 세상을 온통 뒤엎도록 자라는 것이 있을 뿐이며, 그것은 진리입니다. 혹은 신이기도 합니다.


[레벨:10]다원이

2014.11.17 (02:07:13)

잘 읽었습니다...
[레벨:4]참바다

2014.11.17 (08:54:46)

잘읽었습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18]차우

2014.11.17 (09:37:50)

이거구나. 침대의 예시가 머리에 와닿네요.
[레벨:6]나투나

2014.11.17 (13:45:19)

아름답습니다. 표현이..

[레벨:10]하나로

2014.11.20 (23:16:00)

아우 하나도 모르겠다. ㅠ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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