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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8008 vote 0 2014.11.04 (16: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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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은 모두 무한이다. 무한이므로 얼마든지 내용이 추가될 수 있다. 그러나 간은 진행되면서 제한을 가한다. 간은 비어있고 비어 있으므로 무한하지만 빈 칸에 내용을 채우면 유한해진다.


    다섯가지 무한의 영역이 있다. 다섯 개의 비어있는 주머니가 있다. 카메라 렌즈는 얼마든지 데이터를 추가할 수 있다. 하나의 눈이 사방에서 오는 1백만개의 빛 신호를 동시에 처리해낸다.


    그러나 실제로는 눈이 밝은 사람이라도 포커스에 들어오는 하나의 대상에 주목할 뿐이다. 실제로는 뇌가 많은 신호들 중에서 하나를 처리한다. 이것을 보고 있으면 저것을 보지 못한다.


    뇌는 일대일로 대칭시켜 정보를 처리한다. 단 시간이 무한하다면 무한히 많은 상대를 모두 일대일로 격파할 수 있다. 렌즈 하나에 무한히 많은 정보가 동시에 들어오는 것이 중첩간이다.


    일대일로 처리하지만 무한히 많은 사람과 일대일을 이룰 수 있는 것이 대칭간이다. 프로레슬링은 시합 중에도 대결상대를 바꿀 수가 있다. 공간이란 어떤 진행을 바꿀 수 있는 것이다.


    탁구는 공을 주고받는 같은 동작이 반복된다. 같은 동작이 무한히 반복되는 것이 시간이다. 이러한 과정을 중단할 수 있는 것이 원소간이다. 다섯가지 무한의 영역이 있어 추가할 수 있다.


    공간은 바꾸기를 계속 추가할 수 있다. 시간은 반복을 계속 추가할 수 있다. 컴퓨터라면 하나의 정보에 굉장히 많은 링크가 걸려 있다. 구글 초기화면 하나를 수십억 컴퓨터가 공유한다.


    그런데 실제로 데이터를 주고받는 것은 일대일이다. 동시에 공유하지만 동시에 처리할 수는 없다. 굉장히 빠르게 정보를 주고받는 파트너를 바꿔줘야 하므로 해커가 공격할 여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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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알고 있는 도형은 시간과 공간의 절대좌표가 존재하고 그 위에 물질이 떠 있다는 전제를 깔고 들어간다. 상대성이론에 의해 그 전제가 깨졌으므로 도형에 대한 개념도 바꿔야 한다.


    도형은 에너지의 중첩, 대칭, 비대칭, 연속, 불연속에 따른 간의 형태다. 도형은 에너지의 변화를 나타낸다. 에너지의 변화가 없는 상태는 점이다. 도형은 어떤 논리를 가진 점의 집합이다.


    점의 집합에 논리를 부여할 때 그 논리는 중첩, 대칭, 비대칭, 연속, 불연속이며 6각형이나 7각형은 그런 논리를 부여할 수 없다. 집합이 성립되지 않는다. 5각형 이상은 도형의 집합이다.


    도형은 점의 집합이므로 5각형 등은 도형이 될 수 없다. 물론 학자가 갖다붙이기 나름이므로 도형의 집합도 도형에 포함될 수 있다. 다만 구조론의 도형이 수학의 도형과는 다르다는 말이다.


    좌표로 나타내는 그래프도 도형의 집합이다. 집합은 대칭으로 성립한다. 중첩, 대칭, 비대칭, 연속, 불연속은 모두 대칭의 형태들이다. 대칭이 간을 이루고 그 간의 형태다. 간은 집합이다.


    ◎ 중첩- 에너지의 중첩 : 다각형이 중첩되면 원 ○이 된다.
    ◎ 대칭 – 중첩의 해체 : 사각형 □은 대칭을 이루고 있다.
    ◎ 비대칭 - 대칭의 해체 : 각 ∠는 비대칭이다.
    ◎ 연속 – 비대칭의 해체 : 선 ━는 점의 연속이다.
    ◎ 불연속 – 연속의 해체 : 점 ●는 선의 불연속이다.


    시간과 공간과 물질과 도형과 차원 개념은 에너지의 변화라는 하나의 논리로 설명되어야 한다. 물질이나 시간이나 공간이나 차원의 개념에는 숨은 전제가 있다. 그것은 관측자와의 대칭상태이다. 


    관측자가 개입한 허구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대상을 관측자와 대척점에 두고 분별하여 판단하는 오류를 저지른다. 모든 의사결정은 대칭을 필요로 하고, 대칭하기 위해 자기를 개입시키는 거다.


    지구가 평평하지 않고 둥글다는 사실이나 깃털과 볼링공이 같은 속도로 떨어진다는 것은 수업시간에 배워서 아는 것일 뿐 봉건시대의 배우지 못한 사람이 직관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다.  


    지구가 평평하다는 관념은 하늘과 땅의 대칭을 의미한다. 지구본을 보면 남반구와 북반구의 대칭이 발견된다. 잘못된 대칭의 인식은 바른 대칭에 의해 대체될 뿐 그 자체로는 잘 교체되지 않는다. 


    인식도 대체재가 주어질 때 기능하는 것이다. 귀신을 물리치려면 세균이라는 대체재를 투입해야 한다. 그냥은 절대 교체가 안 된다. 그러므로 음모론을 깰 때는 동사가 아닌 명사로 조져야 한다.


    동사는 가지를 치지만 명사는 대체재로 기능하기 때문이다. 음모론이 먹히는 이유는 역시 대칭원리에 따른 무의식적 판단 때문이다. 착시현상과 마찬가지로 뇌 안에서 물리적인 방해가 일어난다. 


    냉철하게 보아야 한다. 엄밀하게 따지만 공간만 직관적 경험으로 알 수 있다. 시간도 추론에 의해 아는 것이지 순수한 논리로는 인식될 수 없기 때문에 타임머신이라는 잘못된 말이 나오는 거다.


    타임머신은 불가능한게 아니고 그러한 단어가 없다. 언어적으로 불성립한다. 시간여행은 시간여행이 아니고 시간 안의 또다른 공간여행이다. 즉 공간 외에 또다른 공간이 숨어있다는 주장이 된다.


    구조론으로는 공간의 원소가 시간이므로 불성립이다. 명사가 동사 속으로 들어간 바 언어적인 불성립이다. '학교에 갔다'는 말이 되지만 '갔다에 학교'는 말이 안 된다. 동사에는 주어가 들 수 없다.


    에너지로 보면 답이 보인다. 차원개념, 시간개념, 공간개념, 물질개념을 한 줄에 꿰어 집합시키는 논리를 제공한다. 통합적으로 보자는 거다. 모든 의사결정은 대칭을 따르며 모든 집합은 대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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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 사람이 나란히 앉아 좌우로 턴을 반복하며 사과를 하나씩 나눠가지면 가운데 앉은 사람이 더 많은 사과를 가지게 된다. 나란히 앉으면 안 되고 원형으로 둥글게 앉아야 한다


    세 사람이 나란히 앉아 좌우로 턴을 반복하며 사과를 하나씩 나눠가지면 가운데 앉은 사람이 더 많은 사과를 차지하게 된다. 그러므로 나란히 앉으면 안 되고 원형으로 둥글게 앉아야 한다.


    시공간이란 개념은 휘어지거나 느려지지 않는다는 전제로 출발한다. 시공간이 휘어진다면 그것은 이미 시공간이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인가? 그것은 보이지 않는 에너지의 요동이다.


    에너지의 짝짓기에서 대칭의 꼬임과 풀림이 휘어지거나 느려지는 것이다. 텅 빈 시공간의 바다에 물질이 떠 있다는 관념을 버려야 한다. 시간과 공간과 물질이 별개의 존재라면 곤란해진다.


    그것을 태울 또다른 무엇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활과 화살이 별개로 존재한다면 둘을 통일시킬 궁수가 반드시 필요하다. 어쨌든 시간과 공간은 휘어지거나 느려진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러므로 물질과 시간과 공간이 별개로 존재한다는 가설은 깨진 것이다. 별개가 아니면 하나일 수 밖에 없다. 그것은 물질이 아니다. 물질이면 시간과 공간을 설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중력이 강한 곳은 시간이 느리게 흐른다. 그렇다면 중력은 시간이 느려진 정도로 볼 수 있다. 에너지의 중첩에 의해 운동이 쏠린다. 모든 존재는 내부에서 운동하고 있다는게 에너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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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간과 시간을 이해하면 굉장한 자신감을 얻습니다. 구구셈을 모르면서 장사하던 사람이 구구셈을 배웠때만큼 의기양양하게 됩니다. 세상과의 게임에서 을이 아니라 갑이 되는 것입니다. 물질로 보면 시공간이 보이지 않지만 에너지로 보면 시공간이 보입니다. 무한한 시공간의 바다에 물질이 떠 있다는 관념은 착각입니다. 하나의 에너지가 무한한 가능성 중에서 하나의 파트너를 만나 한 가지 용도를 특정해내는 것입니다. 암흑 속에는 무한히 많은 요괴들이 살지만 불을 켜면 사라집니다. 


[레벨:7]새벽이슬2

2014.11.04 (17:48:44)

감사합니다^^*
[레벨:5]yhy

2014.11.04 (18:19:52)

.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4.11.04 (18:34:37)

주어는 없습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20]아란도

2014.11.05 (02:03:52)

' 엄밀하게 따지면 공간만 직관적 경험으로 알 수 있다. '


공간만 직관적 경험으로 알 수 있는 이유는, 닫힌계 형성 때문. 경계가 있어야 가둘 수 있기 때문. 즉, 시간은 닫힌계 안에서도 계속 흐르지만, 닫힌계가 설정되면, 그 공간만의 에너지가 형성됨. 그것을 느끼는 것이 직관임.


예로, 깨닫는다 하는데, 굳이 자신이 스스로 갇히거나 가두거나, .... 닫힌계를 형성하는 이유...에너지의 밀도 때문임.
에너지의 밀도가 올라가면 반드시 하나가 밀려서 툭 튀어나옴. 이것이 깨달음. 이럴때 닫힌계에 외부 자극이 주어지면, 바로 튀어 나오고자 하는 것을 자극시킴. 바로 그것이 깨닫는 순간. 또, 닫힌계가 형성되면, 새로운 에너지가 형성되므로, 바로 전달 되기도 함...그 흔한 말 - 섬광처럼 전달되어 알게 되는..., 혹은 이심전심..., 그러나 깨달음은 조건이 사람일지라도 자연과 일대일을 형성할때임. 구조가 그러함. 즉, 자연을 통과해서 오는 것임. 이것이 , 모두 직관으로 알게 되는 것. 직관의 구조임. 인간은 공간에서만 깨달을 수 있음. 물론 시공이기는 하지만, 닫힌계 형성이라는 것은 시간을 공간에 가두는 것임. 초침으로 흐르는 시간은 닫힌계 안도 마찬가지로 적용되지만, 그건 관측자의 입장일뿐, 닫힌계 안에서는 같은 시간대에 전혀 다른 시간이 생성됨. 즉, 환경이 달라짐. 공간에서만 깨달을 수 있다는 말과 몸이 있어야 깨닫는다는 말은 같은 말임.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4.11.05 (11:41:32)

우리가 식물이라면 공간을 느낄 수 없습니다. 

지구의 중력이 시시각각으로 변한다면 자신의 체중변화를 느낄 수 있겠지요.

전투기 조종사만 느껴볼 수 있다는 7G의 세계.

우리가 공간을 직관적 경험으로 알 수 있는 것은 우리가 동물이라서 움직일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비행기 조종사 훈련을 받지 않았으므로 중력은 잘 느끼지 못합니다.

어쨌든 높은 곳에서는 중력이 약해집니다. 

엘리베이터를 타면 살짝 느낍니다.

시간은 오래 살아보면 확실히 느낄 수 있지만 

그것도 논리적으로 좀 생각을 해봐야 하는 것입니다.

갓난 아기라면 시간의 의미를 알아채지 못합니다. 

인간은 바닷물 속에 떨어진 잉크 한 방울과 같습니다.

그 잉크가 투명한 잉크라면 자기 자신의 존재조차 자각할 수 없습니다.

밀도가 균일하면 자기 존재조차 느낄 수 없다는 거.

인간은 무리지어 날아가는 백만마리 새떼와 같습니다.

새떼 바깥으로 나가보기 전에는 자기 존재를 느낄 수 없습니다.

느낄 수 없다는건 변화를 알아채지 못한다는 거. 

백만마리 새떼는 백만개의 세포로 이루어진 하나의 생명체.

그 생명체의 기동을 느끼지 못하는 거지요.

권력을 쥔 사람은 자기도 모르게 사고가 경직된다고 합니다. 

대칭간을 느낀거지요.

간들을 느낄 수 없다는 말은 역으로 느끼려고 작정하면 느낄 수 있다는 말입니다.

연예인들은 인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인기가 늘거나 줄거나 간에 그 인기의 출렁임이 예리하게 느껴집니다.

중첩간을 느낀다는 말이지요. 

노숙자는 물론 절대로 느낄 수 없지요.

자고 일어났더니 세상이 바뀌었더라가 아니라 

자고 일어났는데도 세상은 어제와 같고.

주의하기로 하면 굉장히 많은 간을 느낄 수 있다는 말입니다.

공간과 시간만 안다면 섭섭하다는 말씀. 

간은 변화의 가능성입니다.

공간은 위치를 옮길 수 있다는 가능성.

시간은 오래 살 수 있다는 가능성.

갓난 아기는 알 수 없죠.

죽음을 목격한 적이 없으니까.

그렇다면 스타가 인기를 올릴 수 있다는 가능성은?

권력중독은 어떤 느낌일까요?

질량은 변하지 않는데 질량이 변할 수 있다는 가능성은?

조종사는 그것을 느낀다는 거지요.

공간은 더 많은 땅을 차지할 수 있다는 변화의 가능성.

그렇다면 더 많은 친구를 사귈 수 있다는 변화의 가능성은?

만원버스를 타면 느껴지는게 있을 것입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12]wisemo

2014.11.06 (04:21:03)

"실제로 데이터를 주고받는 것은 일대일이다. 동시에 공유하지만 동시에 처리할 수는 없다. 굉장히 빠르게 정보를 주고받는 파트너를 바꿔줘야 하므로"


*이것을 속독이해로 연결해 봅니다;


정보는 중첩으로 동시에 받지만('중첩간' 이지만) 처리는 일대일 대칭으로('대칭간'으로) 할 수밖에 없다. => 책을 읽을 때 알아야 되는 법칙같아요, 이것이 속독을 이해하기 위한 지름길 같기도 합니다. 게다가

공간(상태의 변화가능성)과 시간(무한 반복)이 있으니 이 4간을 가지고 동시에 책 전체(목차)를 보지만, 자구는 일대일로 파악하고, 쉬지도말고 서둘지도 말며, 읽어나가면 속독이 저절도 되지 않겠나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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