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상은 구조다. 구조는 액션이다. 액션은 동사다. 구조론에서 구조는 명사로서의 구조물뿐만 아니라 동사로서의 구조하다를 의미할 수도 있다. 세상은 외부의 힘에 의해 수동적으로 창조된 것이 아니라 존재 내부의 자발성에 의해 능동적으로 구조된 것이다. 창조는 없는 것이 생겨나는 플러스 변화다. 구조는 일어날 일이 일어나는 마이너스 변화다. 구조는 방해자가 제거되어 잠복된 것이 드러나는 변화다. 마이너스는 문제 속에 답이 있으므로 의심할 수 없다. 껍질이 벗겨져서 내부가 드러나는 변화는 믿어야 한다. 아기의 탄생은 엄마의 자궁을 탈출하는 마이너스다. 구조는 마이너스다. 플러스 변화는 외부에서 사후에 유입되므로 의심할 수 있다. 마이너스 변화는 내부에서 사전에 확정되므로 의심할 수 없다. 아빠는 친부가 맞는지 의심되지만 엄마를 의심할 수는 없다. 창조는 무에서 생겨나는 플러스 변화이므로 질량보존의 법칙을 어겨서 의심되지만 구조는 이전 우주가 무너져서 우리 우주가 생겨나는 마이너스 변화이므로 의심되지 않는다. 전부터 있던 변화가 나란해져서 모습이 바뀌면 질량보존의 법칙을 어기지 않는다.
### 원자는 정지질량이 있고 원자가 모여서 우주를 건축하는 플러스 과정은 운동질량이 있다. 정지질량에 운동질량이 더해지므로 원자론은 질량보존의 법칙을 어긴다. 구조론은 2의 대칭으로 이루어진 계가 1+1로 쪼개지므로 질량보존의 법칙을 어기지 않는다. 구조론적 세계관의 핵심은 자명성과 자발성이다. 자명성은 문제 속에 답이 있고 자발성은 사건 내부에 원인이 있다. 수학은 1이 잘 정의되면 2는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 구조는 동사가 명사를 겸하고 운동질량이 정지질량을 겸하므로 변화의 설명이 필요없다. 멈춘 것이 갑자기 움직이면 왜 그런지 설명해야 한다. 원자론이 넘을 수 없는 벽이다. 움직이고 있던 둘이 간섭하여 나란해지면 외부 관측자의 눈에는 멈춘 것으로 보인다. 왜 멈췄는지 설명이 필요없다. 정지는 운동을 겸할 수 없지만 운동은 정지를 겸한다. 운동의 간섭에 따른 결맞음이 외부 관측자에게는 정지한 원자로 보인다. 관계가 변했을 뿐 변하지 않았다. 플러스와 마이너스는 동전의 양면이다. 다르게 보이는 것은 다른 관점에서 봤기 때문이다. 플러스를 마이너스로 바꾸어 관측하면 스스로 명백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