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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5439 vote 0 2011.03.03 (01:22:39)

 

형식이 내용을 규정한다.


어떻게 창의할 것인가? 진정한 창의는 원인과 결과, 시작과 끝, 기승전결로 전개되는 구도 안에서 되도록 이전단계를 혁신하는 데서 얻어진다. 구조론으로 보면 질, 입자, 힘, 운동, 량으로 전개되는 다섯 단계들 중에서 질과 입자의 앞선단계를 혁신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은 마지막 단계에서 창의하려 한다. 보통 발명에 대해서 말한다면 주어진 재료를 떼고, 붙이고, 바꾸고 하면서 변화를 꾀해보지만 의미없는 말단부의 혁신이다. 진정한 혁신이 아니다.


발명관련 무슨 단체에서 ‘발명특허’ 절대로 하지마라는 책을 냈다든가 어쨌다든가 하는 이야기가 있던데, 다 이유가 있는 거다. 말단부를 혁신하려 하므로 잘해도 절차에 치여죽고, 잘못하면 아이디어를 약탈당한다.


예컨대 의자에 관해서 창의한다면, 의자는 앉는 것이라고 정해놓고 어떻게 앉을 것인가를 두고 창의한다. 그림에 대해 창의한다면 그림은 그리는 것이라고 정해놓고 어떻게 그릴 것인가를 궁리한다. 이건 아니다.


전제를 깨부수어야 한다. 요리를 예로 들 수 있다. 일본음식에는 탕이 없다. 숟가락이 없기 때문이다. 일본인들은 매운탕, 삼계탕, 해물탕을 맛볼 수 없다. 찌개도 잘 없다. 한국음식의 특징인 국물요리가 일본에는 거의 없다.


중국음식도 마찬가지다. 숟가락 비슷한게 있지만 그걸로 국물이나 떠먹을 수 있을 뿐이다. 인도음식이라면 차가운 냉면도 없고 뜨거운 음식도 없다. 손으로 먹기 때문이다. 형식이 내용을 규정한다. 국물요리는 역시 숟가락이 있어야 제대로 먹을 수 있는 것이며 그것도 한국식 숟가락이어야 한다.


스파게티는 말하자면 비빔국수다. 이탈리아 요리에 면요리가 있어도 단조롭다. 나이프와 포크, 스푼으로 먹을 수 있는 음식은 한정되어 있다. 영국음식이 맛없는 이유는 원래 맨손으로 먹기 때문이다. 한국음식은 뜨거워서 탈이지만 유럽음식은 대부분 찬 음식이다. 맨손으로 찬 음식과 빵을 먹는다. 영국에 나이프와 포크가 일반화 된 것은 세익스피어 시대 이후다. 이탈리아는 유럽에서도 비교적 이른 시기에 나이프와 포크를 사용했지만 역시 오랫동안 맨손으로 빵을 뜯어먹고 포도주를 마셨다.


형식이 내용을 규정한다. 어떤 도구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내용이 제약되는 것이다. 형식을 깨지 않으면 안 된다.


음식문화도 중요하다. 중국음식에는 생선회가 없다. 중국인은 날음식을 먹지 못하기 때문이다. 임진왜란때 조선에 온 중국병사들은 조선병사가 쇠고기 육회를 대접하자 기겁을 했다고 한다.


포도주를 곁들이고 대화를 나누며 요리를 즐기는 프랑스 음식문화가 한국보다 발달해 있다. 중국도 마찬가지다. 중국은 일찍부터 석탄을 사용해서 화력을 높였고 식용유를 사용해 다양한 요리를 발달시켰다.


그러나 서민음식 위주로 보면 한국이 발달한 측면이 있다. 모든 중국인이 제비집요리와 상어지느러미 요리를 먹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모든 프랑스인이 캐비어와 송로버섯과 푸아그라를 먹는 것은 아니듯이.


한국의 다양한 탕과 부침개와 죽은 외국에 없는 것이다. 물론 비슷한 것이 있지만 숟가락이 없기 때문에 역시 한계가 있다. 한국에 파전 고추전 같은 전이 발달하고 메밀국수 등 다양한 국수가 있는 것은 밀가루와 관계가 있다. 빵굽는 강력분으로 파전을 구울 수는 없다.


한국음식은 허겁지겁 먹는 편이다. 일본음식은 눈으로 즐기는 편이고, 중국음식은 약리효과를 주장하는 측면이 있다. 음식문화 전체로 보면 얼른 먹어치우고 아랫사람에게 물림상을 내려주느라 식사를 서두르는 한국의 음식문화가 뒤쳐진 점이 있다. (옛날 벼슬아치들은 계급순으로 물림상을 내리므로 하인들은 오후 4시가 되어야 점심을 먹을 수 있었다. 윗사람은 빨리 먹고 상을 내려야 한다.)


한국음식도 밥과 반찬으로 된 구조가 갖는 한계가 있다. 게다가 비빔밥과 같이 비비고 섞는 한국의 음식스타일이 식사속도를 빠르게 한다. 국에 밥을 말아버리면 더 빨라진다. 찌개가 짜면 더욱 빨라진다. 뜨거운 음식이 대부분이라 식기 전에 먹어야 하니까 말이다.


한국음식은 프랑스요리와 같은 조형성이 없다. 조형성은 역시 빵문화에서 발달했다고 보아야 한다. 한국은 무엇이든 국물에 담가버리므로 조형성이 살아날 수 없는 것이다. 각각 장단점이 있지만 대개 형식이 내용을 규정한다.


진정한 창의는 형식에서 나오는 것이다. 왜 요리를 먹느냐? 배를 채우기 위해? 밥그릇을 비우기 위해? 이렇게 목적을 정해버리면 왜소해진다. 포도주를 곁들이고 담소를 즐긴다든가 하는 쪽으로 형식을 바꿔야 한다.


모든 창의는 음식재료와 요리도구 식사도구를 정해놓고 그 정해진 구조 안에서 이리저리 뒤섞고 더하고 빼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도구 자체, 형식 자체, 목적 자체를 바꿔야 한다. 즉 이전단계에 대응해야 하는 것이다.


그림은 그리는 것이고, 옷은 입는 것이고, 의자는 앉는 것이고, 칼은 자르는 것이라고 하는 정해진 목적을 해체하고 그 이전단계로 돌아가야 진정한 창의가 가능하다. 옷은 입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의자는 앉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칼은 자르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려면 구조를 알아야 한다. 구조가 질 입자 힘 운동 량의 전개하는 단계들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옷은 입는 것이 아니다. 백화점에 가 보면 알 수 있다. 봄에 꽃밭을 거니는 소녀들처럼 옷향기 사이로 걸어다니려는 목적이 상당하다. 절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있어 옷은 관람용이거나 수집용이나 섬김용이다.


다른 모든 것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다르게 생각하는 훈련을 해야한다. 의도적으로 말이다. 옷은 입는 것이 아니고 음식은 먹는 것이 아니고 차는 타는 것이 아니고 신발은 신는 것이 아니다.


체와 용이 있다. 체에서 용으로 전개한다. 용은 입고, 타고, 마시고, 쓰고, 신고 하는 식으로 용도가 정해진 것이며, 체는 그 이전의 본래로 돌아가는 것이다. 진상을 보려면 용에서 체로 환원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용을 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 


체에서 창의해야 한다. 용에서 창의하려 하므로 아이디어를 약탈당하고 실패하는 것이다. 체는 훔칠 수 없다. 체는 도둑맞을 수 없다. 구조론은 훔쳐갈 수 없다. 그것은 가능하지 않다.  전기가 없는 나라에서 전구를 훔쳐가도 쓸 수가 없는 것과 같다.



http://gujoron.com




[레벨:12]부하지하

2011.03.03 (07:23:14)

싸워서 이기는것이 상책은 아니라고 착찹해 하는 손자
행위로는 구원이 없다고 강짜놓는 예수
옆구리 찔러 절받아봐야 의미없다니.
프로필 이미지 [레벨:30]ahmoo

2011.03.03 (11:19:58)

전송됨 : 트위터

틀을 만들고, 시스템을 만들고, 양식을 만들어야 문화가 만들어진다. 문화가 만들어져야 삶이 바뀌고 그에 걸맞는 온갖 내용들이 생겨날 것이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22]이상우

2011.03.04 (23:17:40)

폼을 만들어 놓고, 거기다 내용을 채워 놓으면 되는 것.

개콘을 봐도, 수업을 봐도 알 수 있는 것.

폼이 내용을 규정하는 것. 폼이 정도요, 내용은 아이디어.

폼좀 잡을 수 있는 사람 아니면, 감히 내용 운운하지 못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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