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구조 ‘마음의 구조’가 전하는 메시지는 한 마디로 ‘정신 차리라’는 것이다. 정신을 차리려면 ‘탑 포지션’을 차지해야 한다. 뾰족한 정상에서 돌아가는 판의 전모를 볼 수 있다. 그것이 존엄의 경지다. 먼저 나를 존중하고, 거기에 레벨을 맞추어서 타인을 존중하고, 서로 존중하는 가운데에서의 수평적 소통을 끌어내는 것이 제대로 정신 차리는 것이다. 집안이라면 어머니, 혹은 가장의 위치, 조직이라면 리더, 혹은 CEO의 위치를 차지하는 것이 탑 포지션이다. 세상과 나의 기본적인 관계설정 문제이다. 신의 관점을 얻어야 한다. 신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아야 한다. 그 관점으로 훈련되어 있어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은 어리광에 빠져 있다. 역할놀이에 빠져 있다. 상대주의 관점에 빠져 있다. ‘네가 이렇게 하니까 나는 이렇게 한다’는 식이다. 상대의 행동을 보고 거기에 연동시켜 자기 행동을 결정한다. 그 경우 종속되고 만다. 휘둘리게 된다. 주도권을 놓친다. 중독되고 의존하게 된다. 잘못되고 만다. 절대주의여야 한다. 상대가 어떻게 나오든 상관없이 내가 가는 분명한 길이 정해져 있어야 한다. 역할을 끊어내고, 어리광을 끊어내고, 돌아가는 판 전체를 책임지며, 코뿔소의 뿔처럼 당당하게 가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은 그러하지 못한다. 어리광이 몸에 잘 맞는 옷처럼 편안하게 여겨진다면 실패다.
- 이 글은 방송을 소재로 삼았을 뿐 방송과는 상관없다. -
화성인 바이러스 ‘철 없는 아내’ 편을 보았는데 사실은 철이 흘러 넘쳤다. 그게 다 계략이다. 나이 많고 능력있는 남자와 젊고 예쁜 여자가 결혼을 했다. 그런데 부인이 집안일을 전혀 안 하는 거다. 남자가 재촉하여 서둘러 결혼하는 바람에 살림을 못 배웠다는 거다. 그건 핑계다. 애초에 의지가 없다. 그럴듯한 이유도 있다. 남편은 그동안 여러 사람을 만나면서 많은 것을 겪었지만, 자신은 남자의 재촉때문에 젊은 나이에 연애도 못해보고 덜렁 시집을 와서, 청춘을 희생하고 있으니 응당한 보상을 받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거다. 데이트 할 때는 남자들이 여자를 공주님처럼 받들어 모신다. 남자 쪽에서 재촉해서, 공주님처럼 떠받들어져 보지도 못하고 떠밀려서 결혼했으니, 여자 입장에서는 신혼기간이라도 데이트 하는 기분으로 대접받으며 살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건 구실이고 본질은 따로 있다. 이건 만들어낸 논리일 뿐이다. 안 하는게 이득이니까 안 하는 거다. 집안일이나 하는 여자가 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하루는 남편이 음식쓰레기 분리수거 하는 요령을 알려주고, 분리수거날에 쓰레기를 버리고 오라고 시켰으나, 차마 할 수가 없어서 현관문 앞에 던져놓고 도망왔다고 무용담을 자랑한다. 왜 할 수 없었을까? 그때 그 쓰레기 버렸다면 평생 ‘쓰레기나 버리는 여자’로 살아야 하는 거다. 여기에 명백히 의도가 숨어 있다. 문제는 그 의도가 통하느냐일 뿐, 의도 자체는 나쁘지 않다. 방송에서 표현된 내용대로라면 의도는 일단 적중했다. 남편 길들이기 성공이다. 잘했다. 문제는 정신차리지 못했다는 거. 본인의 숨은 의도를 깨닫지 못한 점. 의도된 행동이면 자신의 의도를 분명히 파악해야 한다. 자신의 의도를 깨닫지 못하면 남의 의도 역시 깨닫지 못한다. 착각과 오해에 빠지고 만다. 바로 불행은 시작된다. *** 여기서 짚고 넘어갈 부분, 여자든 남자든 무서운건 똑같다. 여자라서 더 무서운건 없다. 아마존 오지의 부족민이라면 여자가 더 잘 한다. 문제는 전략이다. 일관성의 문제다. 쥐가 나타났다면 어떨까? 남자든 여자든 쥐가 무서운건 똑같다. 남자는 쥐가 언젠가 또 나타날 거라는 사실에 스트레스를 받는다. 어떻게든 쥐를 쫓아낸다. 확실히 제거해야 편안해진다. 여자는 쥐와 신체적으로 접촉했을 경우 더 스트레스를 받는다. 쥐가 무섭다고 말하여 어떻게든 접촉을 피하는게 여자에게 유리하다. 무서운건 같고 어느 부분에 스트레스를 받느냐가 행동의 차이를 결정한다. 그에 따라 남자는 훈련된다. 여자는 훈련을 안 하는게 이득이다. 계속 스트레스를 받는 것보다는 낫다. 이익에 따라 행동이 결정된다. *** 여자가 잘못했는데도 남편이 잘해주면 ‘이 남자 좋은 남자구나’하고 편하게 생각해 버린다. 과연 그럴까? 천만에! 남자가 잘해주는 이유는 좋은 사람이기 때문이 아니다. 남자에게는 남자의 계략이 있기 때문이다. 이걸 조심해야 한다. 남자 역시 자기 컨셉을 가지고 있다. 신혼생활은 이런거다 하는 개념이 서 있다. 그 컨셉을 깨기 싫은 거다. ‘쓰레기 버려라’는 말을 자존심 상하게도 열 번이나 반복하여 하느니, 차라리 나중에 ‘이혼하자’를 한 번 말하는게 낫다. 쓰레기 버리기 싫은 여자를 설득하여 쓰레기 버리도록 만드느니, 적당한 때 파트너를 바꾸는게 빠르다. 이런걸 꿰뚫어봐야 한다. 그게 정신 차리는 거다. 알아야 할 것은 신의 의도다. 본능의 의도, 유전자의 의도다. 모든 여자에게는 얼마간의 악녀 유전자가 있다. 그 유전자는 하녀로 평생을 망치느니, 공주로 대접받으며 살라고 속삭인다. 그 위대한 악녀들 덕분에 영웅은 만들어진다. 역사상의 위대한 인물 주변에는 항상 그 인물을 갈구는 부인들이 있었다. 징기스칸 역시 한 성질 하는 어머니와, 만만찮은 부인 때문에 영웅이 될 수 밖에 없었다. 징기스칸의 어머니 허엘룬은 병단을 이끌고 직접 참전하였을 뿐 아니라 전투에서 세운 공을 근거로 1만호를 요구했을 정도, 부인 보르테 역시 자무카의 수하로 편안하게 살려는 징기스칸을 들들 볶아서 독립하게 만들었다. 이런 것은 단순히 개인의 판단이 아니라 유전자의 작용이다. 철없는 아내가 집안일은 손도 안 대기 때문에, 남편은 가사도우미를 불러야 하고 그러려면 돈을 더 벌어야 하고, 철없는 아내가 홈쇼핑으로 마구 질러대기 때문에 남편은 더욱 출세해야만 하고, 결과는 남편의 성공으로 되는 것이며, 이는 본능적인 유전자의 작용이며, 여자는 그저 ‘남편 갈구기’라는 할 일을 하는 것이며, 따라서 매우 철든 행동이다. 쓰레기 버리란다고 버리는게 오히려 철없는 행동이 아닌지 자문해봐야 한다. 남편과 자신을 같이 망친다. 쓰레기 잘 버리는 여자의 경우도 관찰한 적이 있다. 어떤 부인은 요리솜씨가 뛰어나서 매운탕집으로 크게 성공했다. 남편은 당연하다는 듯이 그 번 돈을 사업자금으로 가져가서 홀라당 날려먹었다. 그러기를 서너차례 반복. 그 아들도 줄곧 사고를 쳐서 날려먹기 대열에 가담했다. 부인은 뛰어난 솜씨로 식당을 중소기업 수준으로 키웠다. ‘너희들이 아무리 사고를 쳐봐라 내가 다 수습하고 말지.’ 하는 식이다. 남편 역시 철이 들어서, 부인이 식당을 성공시키지 않을 수 없는 상황으로 몰아간 것이다. 남편과 아들이 마치 약속이나 한듯이 도무지 쉴틈을 주지 않고 사고를 쳐댔던 것이다. 그러니 식당은 번성할 수 밖에. 계략이다. 무의식적으로 하는 행동에도 포지셔닝의 원리가 작동하고 있으며 남편을, 혹은 아내를 갈궈서 성공시키겠다는 계략이 숨어 있으며, 그 역할을 잘 해내고 있다. 문제는 정신차리지 못하면 자신의 계략을 파악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자신의 계략을 모르므로 계략에 계략으로 맞서는 남편의 흉계 역시 꿰뚫어보지 못한다. 그 결과는 잘 하고 내쳐지는 것이다. 공동체를 위하여 자신을 희생시킨 결과로 된다. 마지막에는 자신만 피해자가 된다. 남편을 성공시키는 좋은 일을 하고 욕을 바가지로 얻어 먹는다. 당장은 부인이 집안일을 안 하니까, 답답해진 남편이 직접 집안일을 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말로 잔소리를 하느니, 적당한 때 파트너를 바꾸는게 낫다는 계산이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은 모르고 있다. 오히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신을 아껴주는 남편에게 감동하고 있다. 착각이다. 정신차려야 한다. 남편에게도 컨셉이 있는 것이고, 잔소리꾼은 되고 싶지 않은 것이다.(필자의 이러한 표현은 방송에 나온 실제사례와 상관이 없다. 일반의 심리가 그렇다는 말.) 필자의 결론은, 부인의 공주병은 계략이며, 마음의 구조에서 규명하고 있는 의도이며, 집안일이나 하는 여자가 되지 않겠다는 결의가 숨어 있으며, 그것이 보통 남편을 출세시키는 원인이 되는 것이며, 그 방법으로 공동체의 발전에 기여하는 것이며, 철이 없는게 아니라 사실은 철이 있는 것이며, 그 결과로 남편은 성공하게 되며, 대신 남편의 성공에 기여한 여자 자신은 희생된다는 거다. 막판에 남자는 보복한다. 일단은 성공부터 한 후에. 자신이 아쉬워서 결혼을 재촉한 남자는 사실이지 할말없다. 본인이 원했으니 감수해야 한다. 당장 집안일을 안 하는 여자에게 대응할 방법이 없다. 다퉈봤자 서로 감정만 상할 뿐이다. 길은 하나 밖에 없다. 갑이 되는 것이다. 주도권을 잡는 것이다. 더 많은 돈을 벌어서 가사도우미를 쓰고, 막대한 홈쇼핑 대금을 감당해내는 것이다. 그 방법으로 확실한 우위에 섰을 때 보복이 시작된다. 남자는 처음 여자가 귀여우니까 좋게 넘어가지만 조금 지나면, 여자의 지능이 떨어진다고 생각하게 된다. 집안일을 못하는건 철이 없어서가 아니라 분별력이 없기 때문이고, 그건 머리가 나쁘기 때문이고, 그렇다면 존경심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이때 ‘파트너를 바꾸자’로 된다. 물론 이런 점이 신혼 초에는 드러나지 않는다. 신혼초에는 멋진 이벤트들이 다양하게 존재하기 때문이다. 남자는 여자에 대한 존경심을 잃을 때 바꾼다. 공주병이라도 좋다. 된장녀라도 좋다. 본인이 자신의 가치를 올리겠다는데 누가 말리겠는가? 그러나 머리가 나쁜 경우는 다른 거다. 남자들은 똑똑하고 유능한 여자를 원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예쁘고 멍청한 여자를 선택하는데, 여기에는 다른 꿍꿍이가 있다. 남자의 계략이 있는 것이다. 꿰뚫어보고 정신차려야 한다. 반드시 대항할 수단을 마련해 두어야 한다. 어떤 경우에도 대항할 수단을 쥐고 있다면 여자는 매우 잘한 것이다. 방송에서는 여자가 정신을 차려서 살림을 배우겠다고 했지만 과연 그럴까? 정신차려야 한다. 여자든 남자든 상대방에게 100을 주었다면 받은 쪽은 ‘다음에는 200을 받을 차례군’ 하고 생각한다. 준 쪽은 그 반대다. ‘이번에 100을 주었으니 다음에는 100을 돌려받을 차례군’ 이렇게 된다. 중요한건 이 남자가 산전수전 다 겪은 남자라는 점이다. 20대라면 어떨까? 대책없이 치고받고 싸운다. 그러나 별꼴을 다 경험해 본 남자는 싸우지 않는다. 맞춰주고 살다가 적당한 때 바꾼다. 악녀를 만난 남자가 열심히 일한다면 그것이 여자에게 그다지 좋은 소식이 아닐 수도 있다. 정신차려야 한다. 환경은 변한다. 입장은 바뀐다. 사랑은 존경심을 전제로 한다. 대응수단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 먼저 존엄을 얻지 않으면 안 된다. 사랑이라는 단어 뒤로 숨지 말아야 한다. 정신차리는 것은 이런 아슬아슬하고 긴장된 구조 안에 있음을 아는 것이다. 그러나 보통은 ‘난 원래 성격이 그러니까’ 하고 포기해 버린다. ‘내 배우자는 좋은 사람이니까’ 하고 포기해 버린다. 스트레스를 덜 받는 방향으로 판단해 버리는 것이다. 파트너가 양보를 하면 ‘좋은 사람이구나’가 아니라 ‘조삼모사인데 일단 아침은 네개로 출발, 그렇다면..’ 하고 알아먹어야 한다. 이런 원리를 이렇게 나열식으로 일일이 설명하는건 허무한 일이고.. 모형을 가져야 한다. 안정되어 있을수록 오히려 그 구조 안에 고도의 긴장상태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구조론의 결론은 깨달음이며, 깨달음은 모형으로 아는 것, 모형은 다섯 뿐이며, 최고 단계의 모형을 가지는 것이 깨달음이다.
마음의 구조가 새로 나왔습니다. 인간은 공동체적 동물이며, 마음은 언제라도 그대를 공동체의 중심으로 이끌고자 합니다. 공동체의 중심에 무엇이 있는가? 존엄이 있습니다. 존엄을 얻을 때 마음은 진정으로 다스려 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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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이든 뭐든 1차 게임이 오버되기 전엔 확실히 그런 면이 있소.
여자, 허세든 뭐든 값어치를 최대한으로 올려서 비싸게 팔아야 하는 것.
남자, 집중 공략해서 반드시 쟁취해야 하는 능력.
2차 게임이 시작되면 상황은 역전될 수도 있고, 훨씬 복잡한 역학관계가 등장.
이렇게 하면 되겠군요. 실컷 남자 갈궈서 편안하게 뜯어먹다가, 나를 버릴려고 하는 찰나에 후다닥 대변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무래도 동렬쌤은 결혼까지 전쟁판, 전투의 현장으로 보시는듯. 맞는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이래선 결혼해서 일가를 이루기가 무척 곤란하신 스타일이심. 이미 이루셨다면 부인이 엄청난 수행자일게 분명하심. "저 서방이란 작자, 나를 보면서 또 무슨 구조를 꿰뚫고 있는거야???? 아 기분나빠 진짜!!!!!" 이러실지도.
ㅎㅎ 방어적으로만 나가면 둘다 안될 수도 있소.
ㅋㅋㅋ 찔리는데가 있죠~ 우선 찔릴수 있다는 건 말랑말랑하기도 하다는 것.
제대로 뭘 아는 남자가 더 편할 수도 있소.
답돌이들은 처음에는 조절이 쉬울 수도 있지만
답돌이의 요구수준에 맞는 역할놀이와 포지션에 계속 만족하지 못한다면 그야말로 속터지는 감옥.
게임이 가능한 상대가 재미있지 대체 게임이 안되는 상대는 그야말로 답답.
주도권 게임도 서로의 성장없이 계속되면 피곤한 일.
일단 그런 상대는 동기부여가 안됨. 어쩌면 '인생 뭐 있어?' 하고 포기하고 사는 수 밖에 없음.
결혼은 뭐하러 하는걸까. 아니 우린 어떤 만남을 원하는 걸까....
진짜 파트너, 동업자를 만나 멋진 팀을 이루려면
서로 평등하고 존엄해야 하오. 소통할 수 있어야 하오.
기분 나쁘고 찔릴 게 없으면 되지. 시선을 맞출 수 있으면 되지.
모자라는 것 같다해도 내가 원하면 깨져도 해보는게 재미있지.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글이요.ㅎㅎ
약한 개인의 강한 결합이냐? 강한 개인의 널널한 연대냐? 의 차이.
여기에서 이미 결론이 났음.
역할극을 한다는 것은 저쪽에서 어떻게 나오는 반응을 보고, 이익을 취한다는 건데,
스스로 자기 삶에 주도권을 쥐고 있다면, 상대를 그 눈높이에서 바라보게 됨.
스스로 존엄하고, 상대도 존엄한데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전적으로 동의 합니다.
스스로 독립적이어야 사랑도 완성 할 수 있습니다.
그런거 있더이다, 이래줘야 끌리는 거.
여자, 세상 남자 다 거둘 기세, 너 아니어도.
남자, 세상 여자 다 버릴 기세, 너 아니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