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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5278 vote 0 2011.01.21 (00:02:50)

 

전투와 전쟁


전쟁은 전장 안에서 동원력≫기동력≫돌파력≫조직력≫세력 순으로 모듈화된 정도를 높여가며 승부가 나지만 실제 전쟁의 지휘는 그 반대의 순서로 전개된다. 나폴레옹은 프랑스 혁명을 통하여 민중의 지지를 끌어냄으로써, 국민개병제를 실시하여 얼마든지 배후지에서 병력을 증원받을 수 있는 세력의 시스템을 구축하여 두고 있었다. 혁명을 하지 않은 나라들은 소수의 귀족이 아니면 스위스 용병을 돈 주고 사서 써야 했기 때문에 대규모 병력을 동원할 수 없었던 것이다.


나폴레옹은 혁명을 통하여 세력을 얻은 다음, 민중의 지지를 이용하여 포병위주의 잘 편제된 조직을 꾸렸다. 당시 포병은 무거운 대포를 끌고 다녀야 했기 때문에 하층민이 담당하고 있었고, 잘 훈련된 귀족은 당연히 기병을 도맡고 있었다. 말을 타는 것이 훨씬 폼나기 때문이다. 포병출신인 나폴레옹은 자신이 잘 아는 포병을 앞세웠으며 이는 혁명으로 시민계급의 신분이 올라갔기 때문에 가능했다. 다른 나라들은 귀족의 기병과 평민의 포병으로 갈라져 서로 간에 소통이 되지 않았던 데 비해 귀족이 없어진 프랑스는 포병을 앞세워도 받아들여질만큼 민주화 되었고 의사소통의 질이 높아진 것이다. 다른 나라였다면 포병을 앞세울 경우 귀족들이 크게 반발하여 팀웍이 깨졌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계급이 타파된 프랑스의 조직력이 향상된 것이다. 이는 히딩크 감독이 선배에게서 후배에게로만 가는 일방통행식 의사소통을 비판하고 쌍방향 의사소통을 강조하여 활발한 콜플레이를 가능하게 한 예와 같다. 민주화가 되어야 조직력이 살아난다.


나폴레옹의 장기는 돌파였다. 적의 종심을 쳐서 둘로 쪼개는 방법으로 적은 숫자로 많은 숫자를 이기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경우 나폴레옹은 신속한 행군으로 적이 전장에 도착하기 전에 먼저 도착했으므로 쪼개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적은 이미 쪼개져 있었다. 전체병력은 나폴레옹이 적었으나 전장에서는 항상 나폴레옹군이 더 많았다. 결국 나폴레옹은 최종단계인 숫적 우세로 이긴 것이다. 그러나 이는 그 이전에 세력, 조직력, 돌파력, 기동력이 앞서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전체적인 전쟁의 양상은 동원력≫기동력≫돌파력≫조직력≫세력의 순서로 싸움이 발전하지만 전장에서 하나의 단일 전투는 그 반대 순서인 세력≫조직력≫돌파력≫기동력≫동원력 순서로 전개된다. 세력 속에 조직이, 조직 속에 돌파가, 돌파 속에 기동이, 기동 속에 숫자가 감추어져 있다. 그것을 단계적으로 꺼내는 것이다. 전체적으로는 나폴레옹 군대의 숫자가 적어도 전장 안의 승부처가 되는 공간과 시간의 한 지점에서는 언제나 나폴레옹군의 숫자가 많았다. 이는 고도의 모듈화를 통해 병력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아무리 병사가 많아도 한 차례의 회전에서 장군이 직접 지휘하여 움직이는 병력 숫자는 많아야 3만이다. 그 이상의 숫자면 장군의 명령이 말단 사병까지 곧바로 전해지지 않으므로 차라리 예비병력으로 돌리는 것이 낫다. 물론 전쟁은 여러 전투의 연속으로 이루어지므로, 병력이 적으면 사병들이 충분한 휴식을 취하지 못해 결국 불리하지만, 그 부분을 제외한다면 이론적으로는 단 3만병으로 세계를 정복할 수도 있다. 서너번만 전투에 연속하여 이기면 전투경험이라는 플러스 알파가 가미되어 불패의 부대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 전쟁의 확산 - 동원력≫기동력≫돌파력≫조직력≫세력
◎ 전투의 종결 - 세력≫조직력≫돌파력≫기동력≫동원력


전쟁은 처음 동원력 대결로 시작하지만 전쟁의 불길은 점점 세게 타올라서 마침내 세력대결로 가게 된다. 그러나 처음 전쟁을 도발하는 공격측은 세력대결로 가기를 원하지 않는다. 전쟁이 장기화 되어 세력대결로 가면 기본적으로 수비가 유리하기 때문이다.


무적의 한니발도 막판 세력대결로 가서는 로마를 이기지 못했고, 나폴레옹도 막판에는 세력대결로 가서 연합군에게 패망하고 말한다. 최후의 세력대결로 가면 옳은 쪽이 이기고, 민주적인 쪽이 이기고, 대의명분을 가진 쪽이 이긴다.


전쟁을 도발하는 쪽은 동원력 대결로 승부를 내고 적이 그만 항복하기를 바란다. 지리적으로 고립된 경우에는 이것이 먹힌다. 일본은 고립된 섬이다. 토요토미 히데요시 사후에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동군과 이시다 미쓰나리의 서군이 세키가하라 평원에서 동원력 대결을 벌였다.


누가 더 많은 병력을 끌어모으는가 경쟁이었다. 동군 10만 4천, 서군 8만 2천이 세키가하라 평원에 집결했다. 겉으로는 대등한 숫자이지만 토요토미는 적을 상당히 매수해 놓고 있었기 때문에 실제로는 압도적인 동군의 우세였다. 문제는 현장에 집결한 18만 병력이 모두 싸우러 온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대다수는 이기는 쪽에 붙을 목적으로 눈치를 보며 참관하고 있었다. 전투는 여섯시간만에 끝이 났다. 사망자는 서군 3만, 동군 4천에 불과했다. 서군 8만명 중 실제 전투에 참가한 숫자는 3만 5천에 불과했다.


일본땅은 좁아서 일단 후퇴했다가 후일을 도모한다거나 하는 수는 없다. 등을 보이는 즉시 중도에서 관망하던 자들이 일제히 적으로 돌아선다. 일본식 전쟁에서 전진할 수는 있어도 후퇴할 수는 없다. 일본은 확실히 동원력 대결이 먹히는 나라다. 그러나 대륙은 다르다. 명분이 있으면 어떻게든 살아남아 후일을 도모할 수가 있다.


징기스칸은 3만의 대군을 동원한 자무카와 토오릴 칸에게 배신당해 연전연패한 끝에 동쪽 바이칼호 주변까지 쫓겨가서 늪지대에 숨어 겨울을 났다. 그때 징기스칸에게는 겨우 2600여명의 병력이 남았을 뿐이었다. 토오릴 칸은 ‘이 정도면 혼줄을 내줬다’고 생각했지만 오산이었다. 징기스칸은 연전연패 하면서도 부대의 대오가 무너지지 않았고, 목숨을 내던진 여러 번의 결사대 돌격을 성공시켰다. 여자와 어린이를 보호하면서 성공적으로 도주했기 때문에 고원에서 징기스칸의 명성은 오히려 올라갔다. 징기스칸은 각지에 사자를 파견하여 토오릴 칸의 배반을 성토하는 선전전을 펼쳤다. 중간에서 관망하던 다수는 그 사건 이후 오히려 징기스칸 편이 되었다. 왜냐하면 약자가 강자를 칠때 오히려 손에 떨어지는 먹잇감이 크기 때문이다. 약자인 징기스칸을 털어봤자 약탈하여 먹을 것이 별로 없지만 강자인 토오릴 칸을 털면 짭짤한 수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이라면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전쟁이 장기화 되고 전면화 되면 무조건 대의명분을 가진 쪽이 세력전을 펼쳐 이긴다. 그러나 고립된 지역, 특정한 국면, 제한된 전장, 국지전이나 단기전에서는 그 반대가 된다. 그러므로 승리의 요체는 먼저 큰 세력을 갖추고, 다시 거기서 핵심적인 조직을 끌어내며, 먼저 조직을 갖추고 다시 거기서 돌파를 끌어내며, 먼저 돌파력을 갖추고 거기서 다시 기동력을 끌어내며, 먼저 기동력을 갖추고 그 상태로 어떻게 결정적인 승부처가 되는 한 지점에서의 동원력 우위를 보이는가에 있다. 최종적으로는 한 지점에서의 동원력 대결로 가서 건곤일척의 큰 승부로 대세를 결정짓고 전쟁을 종결시킨다. 이쪽의 바른 판단으로 98프로 승세를 얻을 수는 있어도 적군 중에 뛰어난 리더가 있다면 백퍼센트의 완전한 승리는 어렵다. 막판에는 적을 막다른 골목에 몰아넣고 시간공격을 해서 적이 내부로부터 스스로 무너지게 해야 한다.


물고기가 바다로 도망쳐 버리면 잡을 수 없다. 적을 좁은 개울로, 막다른 골목으로, 낭떠러지로 몰아야 한다. 넓은 바다쪽에 서서 막다른 골목을 바라보는 것이 포지션의 우위다. 세력≫조직력≫돌파력≫기동력≫동원력으로 점점 판구조를 좁혀서 적의 전투의지를 완전히 고갈시키는 것이다.


문제는 어디가 넓은 곳이냐다. 땅이 넓다고 넓은 곳이 아니다. 의사결정의 폭이 넓어야 진정으로 넓은 것이다. 의사소통이 막히고, 대체재가 없고, 연락이 끊어지는 곳이 궁벽한 곳이다. 때로는 넓은 곳이 오히려 궁벽한 곳이 될 수가 있다. 계곡과 같이 좁은 곳은 강도 많고, 숲도 많고, 바위도 많아서 숨을 곳도 많고, 도망갈 샛길도 많으니 오히려 의사결정의 폭이 넓다. 반면 황토지대와 같은 넓은 곳은 어디로 도망가도 멀리서 다 보이니 오히려 좁은 곳이다. 바둑을 둔다면 가운데 천원보다 귀퉁이 화점이 오히려 의사선택의 폭이 넓다. 언제라도 넓은 곳에 서서 좁은 곳을 바라보면 이긴다. 그러므로 중국의 역대 왕조는 큰 산을 끼고 오랑캐와 연결되며 교통이 좋은 북쪽에 도읍을 정했다. 그곳이 더 지형이 복잡하므로 의사선택의 폭이 넓은 것이다. 반면 황하하류는 땅만 넓을 뿐 등 뒤가 바다라서 도망칠 수 없으니 낭떠러지와 같아 도읍하기에 불리한 것이었다. 남쪽 왕조들은 늘 북쪽 왕조에 패배하곤 했다.


 

 

포지션의 우위


화장품 가게는 명동과 같이 번화한 네거리에 있어야 한다. 고객은 화장품도 사고, 가방도 사고, 신발도 구입하려 한다. 네거리는 여럿 중에서 한 가지를 선택하기에 유리한 위치다. 넓은 공간에서 여러가지 카드를 쥐고 있다가 상대가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자신의 대응카드를 선택할 수 있는 것이 포지션의 우위다.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자동차를 이용하는 아베크족이 모텔을 찾는다면 어떨까? 번화가가 오히려 불리할 수 있다. 모텔행은 두 사람이 합의해야 한다. 자동차는 빠르게 진행하는데 두 사람의 에로틱한 합의는 시간이 걸리므로 모텔은 바닷가처럼 막다른 곳에 위치하는 경우가 많다. 그곳이 자동차가 멈추는 지점이기 때문이다.


물론 기차역 주변에도 모텔은 많지만 이는 자동차가 없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다. 창고형 대형매장도 복잡한 도심보다는 자동차가 진입하기 쉬운 교외에 있어야 한다.


식당가는 한식과 중식, 일식, 양식이 다양하게 모여있는 경우도 있고 반대로 떡볶이골목, 순대골목, 족발골목처럼 한 가지로 획일화 된 곳도 있다. 전자는 선택의 폭을 넓혀주고, 후자는 반대로 선택하기 쉽게 해준다. 선택의 폭을 넓혀주는 것은 공간의 잇점이고, 선택하기 쉽게 해주는 것은 시간의 잇점이다.


◎ 공간 - 선택의 폭이 넓을수록 포지션의 우위다.
◎ 시간 - 의사결정이 쉬울수록 포지션의 우위다.


남녀가 데이트를 한다면 어떨까? 남자는 아무거나 먹자 주의다. 여자는 시간을 끌며 꼼꼼하게 찾아보고 선택한다. 여자는 선택의 폭이 넓은 것을 좋아하고, 남자는 선택해야 한다는 부담에서 빨리 탈출하기를 원한다. 그래서 남자는 전문점을 찾고 여자는 백화점을 찾는다. 여자는 공간적 포지션 우위를 추구하고 남자는 시간적 포지션 우위를 추구하는 것이다. 여자는 데이트 상황 자체를 즐기고자 하고 남자는 데이트를 다음 단계로 가기 위한 포석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두 가지 상반되는 가치 중에서 균형이 중요하다. 매일 먹는 점심은 되도록 선택의 폭을 넓혀주는 것이 좋고, 가끔 하는 외식은 반대로 선택의 폭을 좁혀주는 것이 좋다. 그러므로 점심은 온갖 종류의 음식이 모여있는 먹자빌딩으로 가고, 외식은 교외의 불고기타운이나 장어골목, 혹은 횟집골목으로 간다.


구조는 모듈화를 통해 두 가지 상반된 목표를 동시에 달성한다. 공간적으로 선택의 폭이 넓으면서 시간적으로 신속한 의사결정이 가능한 지점을 차지한다. 읍참마속의 고사를 상기할 수 있다. 마속이 산꼭대기에 진을 친 것은 권투선수가 스스로 코너로 들어간 것과 같은 어리석은 결정이다. 좁은 산꼭대기에서는 운신이 자유롭지 못하므로 선택의 폭이 좁아진다. 바보같은 결정이지만 이유가 있다.


젊고 지모가 뛰어나지만 실전경험이 없는 마속은 나이가 많은 베테랑 부하장수들의 신임을 얻지 못하고 있었다. 마속은 부하들을 통제하기 쉬운 곳에 진을 친 것이다. 산꼭대기는 좁아서 의사결정이 쉽다. 산밑은 숲이 우거져 있고 넓은 곳에 흩어져 있으면 자신에게 불만이 많은 노장들을 통제할 수 없다. 의사결정의 편의를 전투에서의 승리보다 더 중요시한 것이다. 보통 이렇게 망한다.


서생이 책상머리에서 말은 곧잘 하지만 막상 현장에 뛰어들면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는다. 가치없는 쓰레기 정보들과 중요한 고급정보들이 소나기처럼 쏟아진다. 매 순간 판단을 해야 한다. 이때 베테랑은 쓰레기 정보를 무시하고 중요한 한 두가지 정보에 집중한다. 다 해본 일이기 때문에 쉽게 알 수 있다. 그러나 경험없는 신출내기는 홍수처럼 쏟아지는 쓰레기 정보에 홀려 일의 경중을 가려보는 기준을 잃어버리고 판단불능상태에 빠진 나머지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환경을 만들려고 한다. 판단할 필요가 없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먼저 일거리 줄이기에 착수한다. 많은 스파이를 적진에 침투시키고, 포로를 심문하여 정보를 얻어내고, 휘하 부대를 순시하여 경계태세를 점검하고, 수시로 회의를 열면 그만큼 일거리가 많아지고 스트레스가 증가하므로 그럴 필요가 없도록 상황을 단순화 시키는 것이다. 그 방법은 높은 성곽을 쌓거나 깊은 벙커를 파고 자신을 고립시키는 것이다. 그 결과는 패망이다.


전투의 막바지단계에서 최종적으로 승리를 취하는 방법은 시간공격을 하는 것이다. 적을 정신없게 만들어서 내부로부터 무너지게 만든다. 베테랑은 이러한 심리전에 말려들지 않지만 신출내기들은 정신없게 만들어 놓으면 스트레스를 못 이기고 신경질을 부리게 된다. 지휘관이 신경질을 부리는 모습을 지켜본 부하들은 보고를 꺼리게 되고 의사소통이 단절되면 내부에서부터 붕괴된다. 의심의 공기가 막사를 감돌면 반드시 배신자가 나오게 되고 자중지란에 빠진다.


신립장군이 탄금대에 배수진을 친 것도 전투경험이 없는 병사들이 겁을 집어먹고 달아날까봐 이를 염려한 때문이었다. 지휘능력이 부족한 장수들이 흔히 이런 식의 오판을 저지른다. 뒤를 생각하지 않고 당장 발등의 불부터 끄려 하는 것이며 그것은 부하들을 억압하여 통제하는 것이다.


적을 섬멸하기 위한 마지막 단계에서의 시간공격은 발등의 불을 계속 지펴서 적이 눈앞의 상황에 연연하다가 전체상황을 읽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늑대가 사슴을 쫓으면 사슴은 차츰 스피드를 내게 되고 속도를 올린 상태에서는 방향전환이 불가능하게 된다. 좌우를 살펴보지도 못한다. 무작정 달리는데 그곳은 늑대가 유도한 절벽이다. 사슴떼는 절벽에 떨어져 죽고 만다.


중일전쟁에서 장개석은 적인 일본군과 싸우지 않고 같은 편인 공산군과 싸우는데 시간을 허비했다. 그 결과 민중의 신임을 잃게 되어 오히려 공산군에 힘을 보태주는 결과가 되었다. 내부적인 의사결정 문제에 골몰하는 리더는 최악의 리더이다. 무능한 히틀러 역시 러시아와 싸워 이기는 데 주력하기 보다는 행여나 부하들이 반란을 일으킬까 전전긍긍하여 현장에 나가있는 장군의 지휘권을 빼앗곤 했다. 이는 무능한 선조가 이순신 장군의 지휘권을 빼앗은 것과 같다. 외부대응보다 내부통제에 골몰하면 이미 망조를 보인 것이다.


한신은 마속과 마찬가지로 불리한 포지션에 배수진을 치고도 승리했다. 한신의 병사들은 급하게 모은 신병이라 오합지졸이었으므로 병사들이 도망치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배수진을 쳤던 것이다. 여기까지는 신립장군의 전술과 같다. 실제로 한신의 배수진으로 승리한 것은 그의 탁월한 지휘능력 때문이지 배수진이 전술적으로 탁월한 방법은 전혀 아니었다. 한신과 맞선 조나라의 진여가 신중한 사람이었다면 한신이 배수진을 쳤을 때 서서히 포위하여 고사시킬 수 있었다. 한신은 적장의 지휘능력까지 꿰뚫어본 것이며 실제로는 위험한 도박이었던 것이다. 운좋게 한 번 통했을 뿐 두 번은 써먹을 수 없는 수법이다.


한신이 배수진을 치자 진여는 어리석게도 성을 비워두고 있는 병사를 다끌고 나와 단숨에 쓸어버리려 했다. 한신은 배수진을 치는 한편 별동대를 보내 비어있는 성을 점령하고 적을 양쪽에서 공격하여 섬멸했다. 겉보기로는 배수진이나 실제로는 양동작전이었던 것이다. 한신 역시 전체적인 배치로는 포지션의 우위라는 원칙을 버리지 않았다. 만약 조나라의 진여가 위나라의 사마의가 서촉의 제갈량을 상대하듯이 서서히 포위하여 상대의 진을 빼고 지치게 하는 전법을 썼다면 한신의 배수진은 최악의 전술이 되었을 것이다. 배수진은 마지막 발악과 같은 것이며 결코 승리할 수 없는 전술이고 한신도 실제로는 양동작전에 의한 포지션의 우위로 이겼던 것이다.


전투에서 승리하는 방법은 첫째 유리한 포지션을 차지하는 것이며, 그것은 넓고 운신하기 좋고 변화에 대응하기 좋은 곳에 진을 치고 상대로 하여금 배수진을 치게 하거나, 산꼭대기에 진을 치게 하는 등의 퇴로가 없는 궁벽한 곳으로 몰아넣는 것이다. 적을 막다른 곳으로 몰았다면 90퍼센트 성공한 셈이나 마지막 10퍼센트를 채워 완성하려면 시간공격을 해야 한다. 그것은 서서히 숨통을 조이면서 지속적으로 스트레스를 가하여 상황을 판단할 틈을 주지 않는 것이다.


시간공격이 최후에 적의 숨통을 끊는 방법이라면, 반대로 경험없는 신출내기 가 패망하는 이유는 스스로 시간의 부담, 곧 연속되는 의사결정의 부담에 빠지는 것이다. 그것은 의사결정을 하기 어려운 복잡한 구조가 되었을 때 의사결정을 하기 쉬운 단순한 쪽으로 이동하여 가는 것이며 그것은 대개 막다른 곳이다. 그 결과로 유리한 포인트들을 놓쳐서 자멸하게 된다.


원소가 쳐들어오자 공손찬은 역경에 거성을 쌓아놓고 많은 식량을 비축하여 농성을 하기 시작했다. 방어가 완벽해서 10년도 버틸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런 식의 퇴행적인 행동은 대개 가중되는 스트레스 때문이다. 의사결정을 싫어하여 가부간에 판단을 하지 않으려는 것이다. 외부의 유리한 많은 촉수들을 스스로 잘라버리고 궁벽한 곳에 몰려 자멸하였다.


여포가 하비성에서 조조에게 포위되었을 때 진궁은 여포에게 일부 병사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성밖에 진을 치고 양쪽에서 조조를 협공하자고 했지만 여포는 이를 거절했다. 포지션의 우위를 포기한 것이다. 둘로 나누어졌을 때 서로에 대한 불신으로 서로 믿을 수 없게 될 상황을 염려한 것이지만 본질은 스트레스다. 진궁과 초선이 성에 남아있고 자신이 홀로 밖에 나가 있는 상황에서는 정신적으로 위축되어 아무런 의사결정을 할 수 없을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최악의 리더는 무수한 결정을 해야 할 상황에서 아무 것도 결정을 하지 않는 자다. 밴드 오브 브라더스에서 무능한 다이크 중위에 대한 이지중대원의 평이다. 전투가 벌어지면 때로는 1초에 서너가지 결정을 내려야 하며 말로 다 할 수 없어 손동작만으로 지시를 해야 하는 수도 있다. 그러한 결정을 회피하는 것이다.


무능한 리더는 복잡하게 전개되는 전투상황에서 불안해진 나머지 모든 보고가 자신에게 올라오도록 만든다. 현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정확히 알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몸소 현장으로 나가보지는 않는다. 현장에 나가지 않고 현장상황을 알려면 일선의 장수들이 자신에게 부족한 것을 요청하도록 해야 한다. 군량미라든가 보충병에 대한 권한을 자신이 틀어쥐고 일선에서 계속 사자를 보내 자신과 연락하게 만든다. 부속품 하나를 슬쩍 빼놓고 마음대로 운신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현장의 지휘관에게 전권을 넘기면 자신에게 보고할 일이 없게 되고 그 경우 자신이 불안해지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스가 모든 권한을 틀어쥐고 현장 실무자에 권한을 위임하지 않았을때 약한 고리가 드러나서 격파당하게 된다. 현장 지휘관이 배후에서 지켜보는 보스를 의식하고 결정적인 순간에 머뭇거리게 되는 것이다. 그 머뭇거리는 1초 사이에 천하의 운명은 결정되곤 한다.


지금 진보진영 일각에서 턱도없이 대통합을 주장하고 있지만 이것이 공손찬의 거성이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자신의 보폭을 좁히고, 안전하고 확실한 벙커를 찾으려는 것이 아닌지 생각해봐야 한다. 진궁은 여포에게 일군을 이끌고 성밖으로 나가서 협공하자고 했다. 참여당과 민노당, 민주당으로 나누어서 협공하는 것이 더 유리하다는 말이다. 통합되면 위기의식을 느낀 보수표가 한나라당 쪽으로 결집하지만 지금처럼 나누어져 있으면 한나라당 지지자들이 참여당에 엉뚱한 기대를 걸고 어정쩡하게 관망하게 되기 때문이다.


뭉치면 죽는다. 뭉치려는 것은 스트레스를 받은 나머지 의사결정 구조를 단순화 하자는 것이다. 그것이 자승자박이 된다. 이 경우 손발이 떨어져 나가서 현장의 유리한 포인트들을 잃고 고립되어 파멸하게 된다. 전략의 기본은 통제가 가능한 한도 안에서 최대한 폭넓게 간격을 벌리는 것이다. 그것은 최대한 덜 통제하고 현장의 지휘관에게 재량권을 넘기는 것이다. 그것이 민주주의다.


저쪽은 숫자가 많으므로 뭉쳐도 여력이 남지만 우리는 숫자가 적으므로 뭉치면 지켜야 할 좌우의 많은 거점들을 잃어버리게 된다. 이쪽 진영은 급진적인 민노당부터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민주당까지 다양한 거점들을 가지고 있다. 통합하여 중간으로 수렴되면 왼쪽 진지와 오른쪽 보루가 잘려나가서 맨 몸뚱이만 남게 된다. 오뚝이처럼 되어 제자리서 꼼지락거리다가 고립되어 말라죽게 된다. 뭉치더라도 그것은 건곤일척의 승부처에서 단 한번 모이고 재빨리 흩어져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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