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용과학 위에 순수과학 있다. 과학 위에 수학 있고 수학 위에 구조론 있다. 이들은 나무의 줄기와 가지처럼 모두 연결되어 있다. 순수과학이 줄기라면 응용과학은 가지다. 순수에서 응용으로 갈수록 내용이 추가된다. 반대로 추가된 내용을 하나씩 빼면 최후에 구조가 남는다. 살을 제거하면 뼈가 남는다. 최후에는 더 이상 제거할 수 없는 것이 남는다. 모든 존재는 복제된 것이므로 정상에는 복제의 원본이 있다. 물질이 집합의 원소로 되어 있다면 사건은 원본의 복제로 되어 있다. 절대 제거할 수 없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연결 그 자체다. 복제본은 원본 주변에 자리잡는다. 둘은 연결되어 있다. 아기와 엄마가 물리적으로 떨어져도 사건으로는 연결되어 있다. 엄마가 뿌린 것을 자식이 거둔다. 수학이 연결된 A와 B의 관계를 추적한다면 구조론은 그 둘의 연결을 본다. 수학은 궁수를 보고 과녁의 명중을 알아낸다. 대포를 보고 탄착점을 알아낸다. 궁수가 활을 쏠지 말지는 알 수 없다. 수학은 일단 포병이 대포를 쏜다고 전제한다. 이 부분이 매끄럽지 않다. 자연은 답이 정해져 있다.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수학 - A와 B는 연결되어 있다. A를 보고 B를 안다. 수학은 일단 대포를 쏜다고 가정하고 포탄의 낙하지점을 알아내지만 구조론은 그 대포를 쏜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원인을 보고 결과를 계산하는 것은 수학이고 원인을 보고 결과가 있다는 사실을 확신하게 하는 것은 구조론이다. A를 넣으면 B가 나오는 상자가 있다. A를 보고 B를 알아내는 것은 수학이다. 상자를 분해해서 상자 내부에 무엇이 들었는지를 보는 것은 구조론이다. 상자 속에는 의사결정구조가 들어 있다. 바퀴축이 10미터 전진했을 때 길이가 1미터인 바퀴살은 몇 미터 움직이는지 비례를 아는 것은 수학이다. 바퀴축이 움직이면 바퀴살도 움직인다는 사실을 아는 것은 구조론이다. 바퀴살의 움직임은 눈에 보인다. 그런데 자궁 속에서 일어나는 일은? 그것이 구조론이다. 구조론은 에너지의 성질에 의해 닫힌계 내부에서 자발적으로 일어나는 변화를 다룬다. 우리는 인과율을 탐구하지 않는다. 인과율을 의심하지도 않는다. 그냥 뭉개고 넘어간다. 사건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원인의 원인이 있고 결과의 결과가 있다. 그 사이에 의사결정이 있다. 동력조달 > 직접원인 > 의사결정 > 변화과정 > 최종결과가 있다. 인간의 행동은 대부분 집단을 의식하고 벌이는 것이다. 집단과의 관계가 본질적 원인이다. 거기서 동력이 조달된다. 우리는 이 부분을 대충 뭉개고 넘어간다. 집단으로부터 암시를 받고 심리적인 압박을 받아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 보통이지만 그냥 나쁜 놈이라서 그렇다고 선언해 버린다. 당구라고 하자. 수구를 치는 것이 원인이면 적구에 맞는 것은 결과다. 그 과정은 보인다. 원인을 보고 결과를 안다. 그러나 씨름이라면 어떨까? 내가 기술을 걸면 상대도 맞배지기로 나온다. 교착된다. 자연은 항상 맞배지기 상태가 되어 있다. 당구는 내가 친게 원인이지만 씨름은 일단 모래부터 중요하다. 샅바도 비중이 있다. 서로 공유하는 부분을 살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