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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3052 vote 0 2022.12.27 (14:23:36)

    사유는 원론에 의해 뒷받침 되어야 한다. 원론은 변화의 출발점을 찍는 문제다. 세상은 곧 변화라는 대전제를 깔고 시작한다. 서구가 원론을 사유했지만 변화의 세계관에는 이르지 못했다. 다른 분야에 영향을 끼쳤을 뿐 원론은 수학이라는 좁은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했다.


    이데아론, 인과율, 원자론, 일신론, 사원소설, 삼위일체설 따위가 조금씩 원론의 역할을 대행한다. 대개 억지로 말을 맞춘 거지만 나름대로 뭔가 근거를 가지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들에게는 우주를 질서로 보는 코스모스의 세계관이 있다. 여기엔 긍정과 부정의 측면이 있다. 


    코스모스의 세계관으로 보면 신의 걸작품인 우주는 절대적으로 안정된 무오류의 구조물이며 혜성의 출몰은 별이 제 위치를 잃고 떠도는게 아니라 안개나 벼락과 같은 일종의 기상현상이다. 하늘이 혜성을 통해 도를 벗어난 군주에게 경고를 한다는 동양적 세계관과 다르다. 


    코스모스의 세계관이 변화를 부정하는 정체의 세계관이이라면 동양은 역성혁명을 긍정하는 변화의 세계관이다.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겠느냐며 수백 명의 왕을 때려죽인 중국과 달리 그들은 왕을 죽이지 않는다. 신의 특별한 은총을 입은 귀족의 신분을 존중하는 거다. 


    매년 홍수가 황토지대를 쓸어버리면 대란대치가 자동으로 일어나는 중국과 다른 것이다. 정체의 세계관은 문제를 개별적으로 하나하나 파악하게 한다. 문제를 일으키는 자를 찾아서 한 놈씩 제거한다. 그 경우 사람탓을 하게 된다. 언제나 사람이 문제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결국 사람을 죽이게 된다. 천하의 일을 이 방법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사람탓이 소란소치라면 혁명은 대란대치라 하겠다. 권위적인 질서를 경멸하는 장자의 혼돈 개념을 떠올릴 수도 있다. 밑바닥까지 탈탈 털어버려야 뭐가 바뀌어도 바뀐다는 생각을 중국인들이 한 것이다. 

  

    총이 등장했다. 골칫거리가 등장한 것이다. 총을 발명한 사람을 죽이면 된다. 그것이 정체의 세계관이다. 이게 다 누구 때문이라며 사람탓 하고 그 누구를 죽이려고 한다. 소란을 다스리는 소치다. 이미 총이 발명된 이상 돌이킬 수 없다. 번져가는 요원의 들불을 끌 수단은 없다.


    불은 더 이상 태울 것이 남아있지 않을 때 꺼진다. 한 사람이 총을 쏘면 다른 사람도 총을 쏜다. 모두가 총을 가져서 총에 의한 균형이 만들어진다. 총이 사람을 죽일 수도 있지만 총이 적의 침략을 막을 수도 있다. 매도 먼저 맞는게 낫다. 변화를 선점하고 적응하는게 낫다. 


    이것이 변화의 세계관이다. 미국 갱스터는 한국 조폭처럼 티 내지 않는다. 모두 총을 갖고 있기 때문에 술집에서 힘을 과시하지 않는다. 총은 약자도 쏠 수 있다. 총에 의한 평등이 이루어진 게다. 모든 총을 제거할 수 없다면 이미 풀려버린 총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용한다.


    서구의 원자론은 정체적 세계관이다. 주역의 음양론은 변화의 세계관이다. 물론 우리가 주역을 높이 평가할 이유는 없다. 주역은 조화를 중시하는 변화의 세계관이지만 실제로는 변화를 상징하는 음을 불길하게 여기는 등의 많은 모순이 있다. 막연한 조화타령은 의미가 없다. 


    그 밸런스의 주인인 에너지를 봐야 한다. 그 에너지의 치고 나가는 방향성까지 봐야 한다. 배터리가 에너지면 방향성은 회로다. 그 에너지의 자궁인 상호작용까지 봐야 한다. 밸런스가 상호작용의 조절장치라는 사실을 간파해야 한다. 변화의 메커니즘을 한줄에 꿰어야 한다.


    주역의 음양론은 태양을 정면으로 본 것이 아니라 반대편의 그림자를 본 것이다. 플라톤은 동굴의 비유를 통해 2500년 전에 이미 당신은 그림자를 보고 있다고 경고했는데 말이다. 나는 애초에 원자론을 의심했기 때문에 양자역학의 상보성이 직관적으로 받아들여진다.


     우주가 물질이 아니라 정보로 되어 있다는 직관이 바닥에 깔려 있다. 물질주의적 사고를 부정하는 것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하자. 제 위치를 지키는 물질로는 쓸만한 무언가를 만들 수 없다. 무한의 수렁에 빠지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정면으로 제기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북극의 북쪽은 없고 작은 것보다 더 작은 것은 없다. 이게 대충 뭉개고 넘어갈 일인가? 결단을 내려야 한다. 벌거숭이 임금님을 봤다면 벌거숭이라고 말해야 한다. 우주의 바탕은 물질이 아니라 성질이다. 물질이 위치라면 성질은 비례다. 비례는 밸런스 형태로 나타난다.


    물질이 제 위치를 지키는데 비해 성질은 모두 연결되어 한 덩어리로 있다. 물질이 국소성이라면 성질은 비국소성이다. 어떤 하나의 존재는 성질을 가질 수 없다. 우주 바깥에도 위치가 있을까? 우주 바깥이 관측가능한 우주의 바깥이 아니라 모든 지점의 미시세계라면?


    우주 안의 모든 지점이 미시적으로는 우주의 바깥에 해당된다. 1초에 1억개가 내 작은 엄지손가락의 손톱을 통과한다는 뉴트리노는 내 몸의 안에 있는가 바깥에 있는가? 내 몸과 상호작용을 하지 않는다면 밖으로 간주해야 한다. 안과 밖의 기준은 상호작용이기 때문이다. 


    이슬람교는 원래 자유로운 종교였다. 장사를 하는 상인의 종교였기 때문이다. 메카를 여자 시장이 다스린 일도 있다. 내세에 매몰되어 현실을 부정하는 중세 기독교 암흑시대와 달랐다. 아랍은 몽골의 말발굽에 짓밟히고 트라우마를 입어 이후 퇴행을 일으켰을 뿐이다. 


    오스만과 이란은 아랍이 아니다. 이민족의 지배를 받으며 아랍인의 자유정신은 완벽히 소멸된 것이다. 중국도 춘추시대는 자유로웠다. 식객들이 능력있는 군주를 찾아 떠돌아 다녔기 때문이다. 진시황 이후 동양이 변화를 부정한 것은 실제로 현실의 변화가 없었기 때문이다. 


    조선왕조 5백년 동안 별 일 없었다. 이렇게 지루한 역사는 유럽 어느 나라에도 없다. 변화를 잊어버렸을 뿐 동양적 사유의 바탕에는 변화가 깔려 있다. 변화가 한창일 때는 역성혁명도 하고 대란대치도 하고 천인감응도 해서 어떻게든 변화에 적응하려고 노력했던 것이다.


    구조론은 변화의 세계관을 요구한다. 변화를 부정하는 사람과는 한 마디도 대화할 수 없다. 애초에 다른 방향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변화는 촉발이 있다. 심지에 불을 붙이는 자가 있다. 스위치를 켜는 자가 있다. 에너지의 공급원이 있다. 상호작용의 밸런스 형태로 존재한다. 


    변화의 동력원과 방향성과 내부 조절장치를 한 줄에 꿰어 사유해야 한다. 시스템과 메커니즘을 사유해야 한다. 밸런스는 변화의 조절장치에 불하다. 우리는 전구를 바꾸어 조명의 세기를 조절할 수 있다. 음양의 밸런스는 전구의 교체다. 배터리가 나가고 회로가 끊어졌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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