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지어도 기초부터 차근차근 쌓아올려야 하는 법이다. 그런데 인간들의 생각은 너무 뜬금 없다. 갑툭튀가 다반사다. 진리도 있고, 질서도 있고, 도道도 있고, 법法도 있고, 이理도 있고, 이론도 있고, 법칙도 있다. 이들 사이에 계급과 서열은 서열은 어떻게 되지? 어느게 주춧돌이고 기둥이고 대들보고 도리고 서까래인가? 그냥 마구잡이로 개념들을 투척한다. 장님 코끼리 만지기다. 그 중에 살아남은게 원자론과 인과율이다. 그런데 이들의 족보는 어떻게 되지? 원자는 불변의 재료를 담당하고 인과는 변화의 시공을 담당한다. 원자가 벽돌이면 인과는 조적이다. 원자는 공간을 차지하고 인과는 시간을 진행한다. 원자의 불변과 인과의 변화를 합치면? 그것은 생각해 본 사람이 지구에 없다. 그러고도 잠이 오는가? 밥이 목구멍에 넘어가는가? 원자와 인과의 세트로 가는 것은 초딩도 알 수 있다. 구조의 구는 공간의 얽음새고 조는 시간의 지음새다. 배틀의 씨줄날줄처럼 직조되는 것이다. 날줄이 종의 공간이고 씨줄이 횡의 시간이다. 지구본이라도 경도가 있고 위도가 있다. 그런데 틀렸다. 지구의 위도와 경도는 북쪽을 향해 앉아서 베 짜는 사람이 기준이다. 태양이 지구를 돌리므로 시간이 바뀌는 경도가 위사다. 적도를 날줄로 삼아 해가 가는 방향으로 날짜라는 베를 짠다. 문제는 이런 것을 들여다 본 사람이 없다는 거다. 도무지 뇌를 사용한 흔적이 없다. 필자의 의견과 달라도 상관은 없다. 뭐라도 내밀어봐야 한다. 이런 근본이 안 되는데 무슨주의 무슨주의 하고 주의백화점을 차린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다른 사람이 주장하면 그건 아닐세 하고 반박해주는게 재미진데 말이다. 이쯤 되면 서구문명을 지탱하는 원자론과 인과율이 부속품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원자보다 큰 것은 장이다. 장이 뭔지는 애매하다. 장은 경험적 표현이다. 인간이 개입하여 오염된 귀납적 접근이다. 세상이 원자로 되어 있다고 말하기 보다는 의사결정단위로 되어 있다고 말해야 한다. 쪼개지지 않는다는 설정은 난폭하다. 쪼개는 범인은 인간이다. 거기에 왜 인간의 경험이 끼어들어? 초딩의 이해를 돕기 위해 콩이나 팥으로 숫자를 대신할 수도 있지만 중딩만 되어도 주먹구구는 하지 않는다. 추상적인 표현을 써야 한다. 구조론으로 보면 질과 입자다. 원자는 입자다. 입자는 장을 유지하는 밸런스 균형점이다. 원자가 균형이라면 균형을 도출하는 것은 상호작용이다. 원자는 상호작용의 부속품이다. 상호작용 위에 있는 것은 복제다. 상호작용이 위치의 유지를 담당한다면 복제는 붕괴를 담당한다. 우주의 본질은 붕괴다. 입자의 안정적 유지는 그 붕괴의 이차적인 효과다.
이쪽에서 무너지면 찌꺼기는 저쪽에 쌓인다. 물질은 빅뱅이라는 거대한 붕괴의 파편이다. 은하계는 붕괴한 찌꺼기가 재차 붕괴한 것이다. 별들은 그것이 다시 붕괴한 것이다. 붕괴의 찌꺼기가 뭉쳐져 있다가 또 붕괴하고 그 부스러기가 다시 뭉치는 식으로 반복된다. 뭉치는 힘은 최초의 붕괴에서 이어지는 에밀레종의 맥놀이다. 붕괴는 언밸런스다. 우주의 근본은 언밸런스다. 언밸런스 둘이 만나면 밸런스가 되며 그것이 상호작용이다. 그렇게 절묘하게 만날 확률은 높지 않다. 상호작용은 밸런스의 축이 있다. 그것이 곧 입자다. 자연계의 모든 변화는 축의 이동이다. 모든 과학적 성과의 근거가 원자론과 인과율이라는 근대문명의 두 기둥으로 환원된다는 사실도 아는 사람이나 아는 것이다. 원자론과 인과율이 틀렸거나 부실하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당연히 없다. 과학의 최종근거가 뭐지? 그것을 묻는 사람도 없다. 세상이 이 모양 이 꼴로 가관인 이유다. 대충 뭉개고 넘어가니까 종교가 날뛰고, 환빠가 설치고, 음모론이 기승을 부려도 제압할 방법이 없다. 창조과학과 같은 헛소리를 반박하는데 애를 먹는 이유다. 근본문제는 근본으로 제압해야 한다. 명품이면 짝퉁이네 한 마디로 논쟁을 끝낸다. 과학은 더 쉽게 논쟁을 끝내야 한다. 근본이 틀렸는데 말단으로 증명하려니 언어가 길어진다. 창조과학회는 유사과학도 아니고 반과학인데 말이다. 과학을 정의하지 않으니까 비과학을 비과학이라고 말하지도 못한다. 과학은 체계가 있다. 그 체계가 뭐냐고? 복제다. 우리가 진리다, 이론이다, 원리다, 도다, 이다. 법이다, 이론이다, 법칙이다 할 때는 그것이 근원에서 복제된 것이라는 암묵적 합의를 깔고 들어가는 것이다. 일원론이다 이원론이다 하는 것도 마찬가지 복제론이다. 복제되지 않았다면 일원도 없고 이원도 없고 다원도 없다. 합리주의다 실용주의다 하는 것도 자본주의다 민주주의다 하는 것도 여기서 근거를 끌어대야 한다. 복제로부터 연역되는 과정을 낱낱이 해명해야 한다. 그냥 합리네 실용이네 하는건 뚱딴지 같은 갑툭튀다. 공장제품은 복제된 것이므로 합리적으로 미터법을 쓰고 시골 할머니가 파는 참깨는 실용적으로 척관법을 쓴다. 사고는 연역이어야 하며 연역은 복제다. 귀납은 연역을 구성하는 부품 조달이다. 귀납이 만드는 가설을 연역으로 검증해서 지식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왜 진리이고 원리이고 이론인가? 복제되었기 때문이다. 복제되었다는 것은 연결된다는 말이다. 족보가 있고 주소가 있는데 겹치면 안 된다. 같은 족보가 둘이면 곤란하다. 김씨의 아들이면서 동시에 이씨의 아들도 된다는 식은 피곤하다. 같은 주소가 여럿이 있다면? 집배원은 편지를 배달할 수 없다. 존재는 발생을 따라 경로를 추적할 수 있다. 에너지를 공급하는 루트가 있다. 우주 복제된 것이며 복제는 세포분열과 같은 붕괴이며 물질은 그 붕괴의 잔해들이며 살아남은 것은 상호작용이며 상호작용은 반드시 조절장치가 있다. 조절장치가 코어가 되면 외부의 눈에는 입자로 보이며 세상의 변화는 코어의 이동에 의해 일어나며 그것을 결정하는 것은 밸런스다. 아담과 이브로부터 내려오는 족보를 알아야 한다. 큰 틀에서 윤곽을 그려야 한다. 스케치를 하고 색칠은 그 다음에나 하는 것이다. 건물이라도 뼈대가 먼저 서고 인테리어는 그 다음이다. 최후에는 밸런스의 대칭과 비대칭으로 환원된다. 우주에 오직 안정과 변화가 있을 뿐이다. 창조설을 비롯하여 각종 음모론이나 환빠가 틀린 이유는 족보에 없기 때문이다. 빅뱅때부터 빈틈없이 모두 연결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