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읽기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2927 vote 0 2022.12.20 (18:03:06)

    인간이 생각을 못 하는 것은 언어의 결함 때문이다. 절대성과 상대성의 문제다. 자연은 절대성인데 인간이 개입하면 관측의 상대성이 작용한다. 정지한 인간은 움직이는 것을 인식할 수 없다. 움직임을 인식하려면 나란히 움직이면서 자신의 움직임을 측정해야 한다.


    인간이 눈코입귀몸으로 자연을 인식하는 것은 관측자 자신에게 일어난 변화를 측정하는 것이다. 인식한다는 것은 객체의 움직임을 복제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해석의 문제가 제기된다. 거울은 앞뒤가 바뀌어 있다. 다 바뀐 것은 아니고 일부만 바뀌므로 헷갈린다.


    전진주차냐 후진주차냐. 어떨 때는 좌석이 순방향이고 어떨 때는 역방향이다. 주변의 동의를 구하고 좌석을 뒤집어 순방향으로 바꾸는 수도 있고 그냥 가는 수도 있다. 진화론은 있는데 퇴화론은 왜 없을까? 퇴화가 진화에 속하는 개념이라면 악은 선에 포함되는가?


    보수는 진보에 포함된다. 이것은 국어사전을 뜯어고치는 일이다. 구조론의 선악개념과 국어사전의 선악개념은 의미가 다르다. 자연수 1과 정수 1은 같은데 해석이 다르다. 인간의 악행은 타인의 대응을 의식하는 사회적 행동이며 맹수가 사슴을 먹는 것과 다르다.


    소년과 소녀라면 청년과 청녀인가? 장년과 노년은? Girl을 번역하다 보니 소녀가 된 것이다. 계집아이라고 할 수는 없잖아. 그럼 Boy는 어쩌고? Man은 맥락에 따라 전체 사람을 가리키기도 하고 부분의 남자를 가리키기도 한다. 반의어가 아니라 부분과 전체의 관계다.


    우리는 뭐든 반대라고 생각해 버린다. 우주 안에 반대는 없다. 상이 뒤집어져 보이는 카메라 렌즈처럼 관측자의 눈에 반대로 보이는 것이다. 마이너스는 플러스의 반대가 아니다. 플러스는 방향지정이고 마이너스는 방향전환이다. 그냥 편한 대로 하다 보니 헷갈린다.


    이 경우는 암묵적인 합의나 숨은 전제가 있다. 그냥 1과 플러스 1은 다르다. 하여간 이런 것을 시시콜콜 따지면 머리가 아파진다. 대충 넘어가다가는 누리호 발사가 실패로 돌아간다. 따질 것은 따져야 한다. 반대말이 아니라 부분말이다. 대칭이 아니라 비대칭이다.


    우리는 연역과 귀납을 반의어로 안다. 천만에. 구조론은 일원론이다. 모든 반대되는 것일 하나의 변화 속에서 다른 포지션으로 이해해야 한다. 반대되는 것은 관측자와의 관계다. 존재는 그냥 존재할 뿐 반대가 없다.


    1+1=2는 귀납이다. 1+1=2면 2+2=4가 연역이다. 귀납은 연역의 일부다. 악은 사회성의 일부다. 보수는 문명성의 일부다. 퇴화는 진화에 속하고 보수는 넓은 의미의 진보에 속하고 악은 넓은 의미의 선에 속하고 귀납은 넓은 의미의 연역에 속한다. 헷갈릴 만하다.


    우연히 맞춘 것은 지식이 아니다. 도박이 그렇다. 패를 맞춰서 돈을 따면 지식이 늘었는가? 아니다. 귀납은 연역에 필요한 단서에 불과하다. 귀납이 지식의 형성에 기여하지만 그 자체로는 지식이 아니다. 귀납해서 얻은 자원들을 원리에 대입하여 연역해야 지식이다.


    모든 대칭은 부분이고 모든 전체는 비대칭이다. 손과 발, 눈과 귀는 대칭이다. 모든 대칭은 부분의 것이다. 척추는 하나뿐이다. 에너지의 출입로는 하나뿐이다. 배꼽은 하나뿐이고 사과 꼭지는 하나뿐이다. 좋은건 입으로 가고 나쁜건 항문으로 간다. 대칭이 아니다.


    문명이 망해서 단 하나의 지식만 후손에게 전해줄 수 있다면 그 지식은 원자론이어야 한다고 말한 사람은 파인만이다. 원자론은 가만 놔둬도 그런 소리 하는 사람 나온다. 게다가 틀렸다. 귀납적 사고의 결과다. 밤이든 호두든 잣이든 다 한 알씩 있네. 물질도 그렇겠지.


    추측에 불과하다. 근원의 지식은 일원론이다. 가장 위대한 지식은 방향성이다. 그것은 2를 품은 1이다. 비대칭 속에는 대칭성이 들어있고 일원론 속에는 이원론이 들어 있다. 하나의 변화의 방향성이 관측자에 의해 둘이 된다. 물론 그 지식은 전해후손에게 줄 수 없다.


    인류는 아직 그것을 모르기 때문이다. 원자론이 아주 틀린 것은 아니다. 1은 단위다. 원자는 단위다. 원자는 쪼개지지 않는게 아니라 합치거나 쪼개지는 단위다. 세상은 불변의 원자가 아니라 변화의 단위다. 변화는 2다. 1 속에 2가 들어가 있는 화살표는 벡터다. 


    우주는 변화이고 변화는 방향이 있고 그 방향은 마이너스다. 인간은 귀납한 다음 연역한다. 대충 마구잡이로 아이디어를 투척하다가 하나씩 검증해서 그럴듯한 것을 추려낸다. 틀렸다. 연역 속에서 귀납해야 한다. 간단하다. 닫힌계를 지정하면 된다.


   공자는 죽었다.

   예수도 죽었다.

   공자와 예수는 사람이다. 

   공자, 예수와 사람의 관계는 원소와 집합의 관계다.(생략된 숨은 전제)

   집합의 성질은 원소가 결정한다.

   모든 사람은 죽는다. 


    귀납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연역이다. 핵심을 생략한 엉터리 연역을 귀납이라고 하는 것이다. 


   삶은 탄생에서 죽음까지다.

   모든 태어난 것은 죽는다. 

   공자는 태어났다.

   공자는 죽는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22]chow

2022.12.20 (19:03:46)

귀납된 지식은 관측자의 관점에 의해 오염된다.
List of Articles
No.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공지 설의 어원 update 김동렬 2024-12-25 2395
6150 작은수의 법칙 김동렬 2022-12-29 4739
6149 사건의 수학 구조론 김동렬 2022-12-28 3155
6148 한국인에게 주어진 역할 1 김동렬 2022-12-27 3790
6147 변화의 세계관 김동렬 2022-12-27 3052
6146 동양의 직관과 서양의 직관 김동렬 2022-12-27 3106
6145 원론과 공자 합리주의 김동렬 2022-12-26 3172
6144 초이성의 부름 김동렬 2022-12-25 3155
6143 이성이냐 본능이냐. 김동렬 2022-12-25 3093
6142 선비가 본 기독교 image 1 김동렬 2022-12-25 4995
6141 예수의 초대 김동렬 2022-12-24 3107
6140 뒤집어 생각하기 김동렬 2022-12-23 3076
6139 찰리 멍거의 방법 1 김동렬 2022-12-23 3023
6138 아바타 볼만하냐? 1 김동렬 2022-12-22 3092
6137 아프리카의 주술사들 김동렬 2022-12-22 3094
6136 존재의 족보 김동렬 2022-12-21 3040
6135 신데렐라 이야기 1 김동렬 2022-12-21 3274
» 연역과 귀납 1 김동렬 2022-12-20 2927
6133 구조론의 출발점 2 김동렬 2022-12-19 3159
6132 스티브 잡스와 일론 머스크의 기행 김동렬 2022-12-18 3135
6131 벌거숭이 인간들 김동렬 2022-12-18 30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