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의 말이 군사용어 느낌이 난다고 지적하는 사람이 있었다. 적확한 용어를 쓰고 싶기 때문이다. 적확 나왔다. 정확과 적확은 다르다. 적절, 적당, 적법, 적중을 보면 알 수 있다. 정확은 맞고 틀린 문제에 쓰는 말이고 적확은 확실하거나 애매한 표현에 관한 것이다. 다윈의 진화론이든 성선택설이든 큰 틀에서는 맞는 말이다. 세부적으로는 안 맞다. 적확하지 않고 애매한 부분이 있다. 위하여냐 의하여냐가 그렇다. 위하여나 의하여나 한 끗 차이지만 두 끗, 세 끗 모여서 열 끗까지 가면 큰 차이로 벌어진다. 갈수록 어긋나는 것이다. 신문 기사에 나오지만 스티브 잡스, 빌 게이츠, 일론 머스크 세 사람의 공통점은 다른 사람의 말에 쉽게 공감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과연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들일까? 아니다. 공감하려면 약간 업되어 있어야 한다. 여고생은 길바닥에 굴러가는 말똥만 봐도 웃는다. 요즘은 말똥이 없어져서 낙엽으로 바뀌었다. 여중생은 굴러가는 낙엽만 봐도 웃는다. 그들은 뭔가 들떠있는 모습이었다. 별것 아닌 걸로 깔깔거리고 난리다. 나와는 웃음포인트가 다르다. 나도 막걸리가 한 잔 들어가주면 동조화되지만 보통은 뭔가 긴장하고 있다. 사람들은 주변의 눈치를 보고 분위기에 맞춰주고 리액션을 하고 '너도 그러니? 나도 그런데!' 하며 동조화된다. 인간의 사회적 본능이다. 입바른 말을 해서 산통을 깨는 것은 아스퍼거의 특징이다. 그런 것을 따지는 데 흥미를 느끼기 때문이다. 아와 어가 다르잖아. 두 가지다. 하나는 사람 앞에서 긴장하므로 쉽게 공감하지 못한다. 둘은 아 다르고 어 다른 문제에 흥미를 느낀다. 창피한 것은 신경쓰지 않는다. 그런데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때는 스트레스를 받는다. 모욕과 손가락질은 상관없으나 치워버리지 못하는건 괴롭다. 실내가 정돈되어 있지 않으면 괴롭다. 악플이 널려 있으면 괴롭다. 내 눈에 안 띄면 된다. 스티브 잡스는 직원을 울게 만들었다. 빌 게이츠는 F를 남발했다. 일론 머스크도 요즘 욕을 먹고 있다. 이런 사람은 절대 다른 사람 밑에서 일하지 못한다. 그래서 오너가 된다. 잡스는 왜 해고했을까? 빌 게이츠는 왜 날마다 직원들에게 호통을 쳤을까? 노홍철은 지저분한 것을 참지 못한다. 축제가 끝났는데 혼자 쓰레기를 치우고 있다. 잡스가 해고하는 이유와 노홍철이 쓰레기 줍는 이유는 같다. 자기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두는 것이다. 사회생활에는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과학자는 편견을 버리고 물리적 실재를 객관적으로 봐야 한다. 각종 음모론, 사차원, 초능력, 환빠, 종교, 유기농, 신토불이, 성찰, 진정성, 생태주의 따위 각종 개소리의 공통점은 타인의 공감을 얻으려고 하는 것이다. 나는 공감술로 수작을 부리는 행위가 괴롭다. 너절한 것으로 기술을 걸어 사람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실 자체가 짜증이 난다. 처세술로 돈 버는 자들은 정말이지 때려주고 싶다. 짜깁기 처세술 서적을 100만 부 넘게 팔아서 유명 연예인과 결혼한 사람도 있다더라. 일곱 살 때 나한테 교묘하게 기술을 걸어서 선생님한테 싸대기 맞게 한 그 녀석과 같은 부류다. 하긴 그것도 재주는 재주다. 그런 약은 인간들은 도처에 넘친다. 공감이야말로 그들의 무기다. 눈물 살짝, 신파 조금, 감동 약간, 에로 조금, 액션 왕창 흥행대박 참 쉽죠잉. 그들은 확실히 인생을 쉽게 산다. 잡스든, 게이든, 머스크든 쉬운 인생을 어렵게 산다. 공감의 나쁜 예가 스노비즘이다. 김봉남이 엘레강스 해주고 환타스틱 해주면 공감하는 사람 있다. 아파트 이름이 갈수록 웃기고 자빠지는 것도 공감해주는 등신이 있기 때문이다. 공감본능은 사회적인 유대를 높이지만 과학의 적이다. 진리의 적이다. 동물의 본능에 불과한 것이다. ‘광주전남공동혁신도시빛가람대방엘리움로얄카운티 1차 정도는 기본이다. 리버뷰, 오션뷰, 레이크뷰, 파크뷰, 마운틴뷰 이런 수작에 짜증이 나지 않는다는 말인가? 왜 나의 짜증에는 공감하지 않는가? 솔직히 불편하잖아. 나는 말 길게 하기 협회와 진작부터 싸워왔다. 연예인들이 선배님 타령하는 것도 짜증난다. 남편을 장관님이라고 부르는 것도 짜증난다. 바이든은 그냥 바이든인데 윤씨는 왜 꼭 대통령님이라고 주워섬기나? 노무현과 문재인은 노, 문 한 글자로 조져대지 않았나? 세상인심이 이렇다. 과잉 수식어, 과잉 존댓말, 과잉 호칭, 너무 긴 아파트 이름 이런 불편한 것은 좀 알아서 치우자. 쓰레기가 길바닥에 널려 있어도 짜증이 나는 판에 언어가 길바닥에 널려 있으면 기분 좋냐? 공감쟁이들 때문에 말이 길어지고 너절해지는 것이다. 그냥 좋다고 하면 되는데 엘레강스하고 환타스틱 하고 쳐자빠져 있으니 귀한 내 시간을 뺏긴다. 이런 이야기 비웃는 사람 많을 것이다. 그렇다. 사회적 기술이 떨어지는 사람의 넋두리에 불과하다. 그런데 말이다. 과학은 원래 그런 거다. 사회적 기술이 과학을 잡아먹는다. 진리는 봐주는게 없다. 진리는 적확하다. 진리는 원래 에누리가 없고 유드리가 없다. 그리고 그런 깔끔함에 오르가즘을 느끼는 극소수의 사람이 세상을 발전시켜왔다. 잡스의 디자인 집착을 알 만한 거다. 나는 솔직히 현대차의 절망적인 디자인에 매일 괴롭다. 꼭 저렇게 무당같이 하고 다녀야 하나? 조폭이 문신을 하고 다니면 짜증난다. 현대차는 왜 디자인이 조폭 문신이냐? 그게 즐겁냐? 스노비즘은 공감에 약한 인간의 약점을 이용하는 소인배의 흉악한 상술이다. 문제는 스노비즘을 비판하기 위해 만들어진 진정성이 지금은 스노비즘이 되어 있다는 거다. 나도 신토불이나 유기농이나 진정성이나 성찰이나 생태주의라는 유행어가 처음 나왔을 때는 애용했다. 그런데 점점 스노비즘이 되었다. 진정성 없는 진정성 타령 말이다. 거리는 청소하면서 언어는 왜 청소하지 않는가? 기름은 아껴 쓰면서 언어는 왜 아껴 쓰지 않는가? 길바닥에 널려 있는 광고전단 짜증나지 않는가? 조중동에 널린 언어전단 짜증나지 않는가? 잡스, 게이츠, 머스크는 스노비즘 오염에 분노할 줄 아는 멋쟁이들이다. 영화라도 신파는 다들 비난하잖아. 쿨하다는 말은 스노비즘에 대항하는 말이다. 스노비즘의 흉악한 예는 부장님의 썰렁한 개그다. 왜 부장님은 회의를 오래 끌까? 자신의 썰렁한 개그에 공감해주기 바라기 때문이다. 회의시간 길게 늘리는 자가 스노비즘의 악마다. 3분 안에 자기 의견을 정리하지 못하는 자는 회의에 참석할 자격이 없다. 장광설을 늘어놓는 것은 자아도취에 빠진 것이다. 김건희의 빈곤 포르노, 유호정의 월드컵 포르노, 이준석의 봉사 포르노도 역겨운 스노비즘이다. 말장난은 비판하면서 카메라 장난은 봐주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