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에서는 어린이를 악마로 몰아 죽이거나 버리곤 한다. 뉴스에는 8개월 동안 거리생활을 했다는 두 살짜리 아기를 덴마크인 자원봉사자가 구조한 이야기가 나온다. 기생충과 영양실조로 죽기 직전이었다고. 주술사가 마녀사냥을 주도하지만 교회도 가담한다. 복음주의 교회 중심으로 나이지리아에서 10년 동안 1만 5천 명이 버려지고 1천 명이 퇴마의식 중에 살해되었다고 한다. 한국에서도 종종 일어나는 일이다. 과학은 무력하다. 지식은 힘이 없다. 바보는 약이 없다. 이성은 본능을 이길 수 없다. 인간이 원래 그런 존재다. 자신이 살아남은 러시아 짜르 니콜라이 2세의 후손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었다. 유해를 발굴하고 유전자 검사를 해서 가짜라는 사실이 입증되었다. 이와 유사한 사건은 많다. 족보는 자기가 증명해야 한다. 내가 짜르의 후손이 아니라는 증거를 대봐. 이건 아니지. 지구공동설이든 지구평면설이든 수법은 같다. 내가 틀렸다는 사실을 네가 증명해봐. 역할 떠넘기기다. 문제는 그것을 증명하는데 비용이 든다는 점이다. 나사 사이트를 방문해서 데이터를 긁어와야 한다. 기껏 증명해놓으면 다른 트집거리를 찾아놓고 기다린다. 작정하고 애를 먹이는 자들을 설득할 수 있다면 21세기에 마녀사냥, 악마사냥이 벌어질 리가 없다. 아프리카 전역으로 확대해 보면 매년 수만 명의 어린이들이 살해되고 있다. 더 끔찍한 일도 많다. 왜 이런 떨거지들을 한 방에 보내지 못할까? 족보가 없기 때문이다.
족보는 죄다 연결되어 있고 한 칸도 끊어지면 안 된다. 할아버지와 손주 사이가 비어 있을 수는 없다. 외부에서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세상이 그런 족보의 원리로 만들어져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납득해야 한다. 그래야 거짓말하는 사람이 증명하게 만들 수 있다. 우리가 진리나, 원리나, 이론이나, 법칙이나 이런 말을 쓰는 것은 뭐든 다 족보가 있다는 전제를 깔고 들어가는 말이다. 우리는 말 안 해도 암묵적으로 알고 있다. 갑자기 여우가 둔갑해서 호박이 되는 일은 없다는 사실을. 존재는 사건이며 사건은 빅뱅부터 이어진다. 열역학 1, 2법칙에 의해 보증된다. 끼어들 틈이 없다. 문제는 족보라는 개념이 우리의 머릿속에 없다는 것이다. 족보가 있다는 것은 복제된다는 것인데 인류는 복제에 대한 개념조차 없다. 이는 존재론의 영역이다. 인류가 존재가 뭐냐에 대해 먼저 합의를 봐야 한다. 현재로는 각종 개소리를 막을 방법이 없다. 일일이 증명하여 퇴치하자니 피곤하다. 증명해봤자 듣지도 않는다. 증명하면 다른 트집거리를 들고나오는데 그게 이전에 증명한 것과 같은 것의 반복이니 무한루프에 걸려버리는 것이다. 진실은 비용이 들고 거짓은 쉽다. 무식을 무기로 작정하고 어깃장을 놓으면 방법이 없다. 많은 경우 관객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 문제는 관객들이 거짓말의 편을 든다는 점이다. 구경거리가 되기 때문이다. 인터넷에서는 더하다. 초딩이 물을 흐리면 방법이 없다. 그들은 게임의 논리로 무장하고 있다. 어떻게든 개소리를 해서 남의 시간을 소비하게 만든 다음 내가 이겼다고 선언하는 것이다. 나는 너를 엿먹이는데 1분의 시간을 투자했지만 너는 그것을 해명하는데 무려 30분을 투자했으니 결국 내가 30 대 1로 이긴 거야. 캬캬캬. 이런 자들은 상대해주면 지는 거다. 창조과학회는 창조설이 맞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단지 진화론이 틀렸다고 말할 뿐이다. 진화론이 조금이라도 틀리면 자동으로 창조설은 다 맞는 것이 된다고 암시를 건다. 이게 교활한 수작이다. 진화론이 일부 틀린 것과 창조설이 다 맞는 것은 아무런 관계가 없다. 암시를 거는게 일종의 최면술과 같다. 암수를 거는 자와 대화를 해야 한다는 말인가? 진화론은 족보가 있지만 창조론은 족보가 없다. 진화의 계통은 있는데 창조의 계통은 없다. 진화의 잃어버린 고리는 있는데 창조의 그 무엇은 없다. 모든 족보가 없는 것은 가짜다. 우주가 족보로 되어 있다는 대전제에 합의해야 한다. 구조론이 족보다. 존재는 사건이며 사건은 복제된다. 복제된다는 것은 한 방향으로 흘러간다는 것이다. 생물의 계통과 같다. 38억 년 전후로 지구에 최초의 생물이 출현했고 우리는 모두 그 생물의 후손들이다. 외계에서 UFO를 타고 뒷문으로 끼어든 종은 없다. 수학은 수학자만 증명할 수 있다. 수학자가 증명해도 수학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의미가 없다. 구조론을 모르는 사람과 대화할 수 없다. 수학은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연결된다. 수학에 뜬금없이 끼어든 것은 없다. 유사과학은 있는데 유사수학은 없는 이유다. 점쟁이가 철학자 행세를 하고, 침구사가 의사 행세를 하고, 신천지가 종교 행세를 하지만 수학은 그런 빈틈이 없다. 수학은 애매한 것이 없다. 문제는 세상이 바로 수학의 연역원리, 복제원리로 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물질은 애매한 것이 있다. 사건은 애매한 것이 없다. 물질이 애매한 이유는 내부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겉은 황금인데 속은 납덩이라면 알게 뭐야. 사건은 변화하고 변화 중에 닫힌계가 만들어지고 거기서 내막을 들킨다. 물질은 뒤로 몰래 끼어들어 도와줄 수 있다. 사건은 비행기가 이륙하고 배가 출항하면 도와줄 수 없다. 인도의 입시는 엄마가 창문에 매달려서 수험생에게 답을 알려준다지만 잘못된 것이고 한국은 학생이 수능 시험장에 입실하면 도와줄 방법이 없다. 사건은 움직이고 움직일 때는 밸런스 때문에 다 들켜버린다. 우사인 볼트가 백미터 직선주로를 달리고 있는데 엄마가 도와줄 방법은 없다. 정지해 있으면 호주머니에 찐빵이라도 넣어줄 수 있지만 달리고 있을 때는 불가능하다. 움직이는 것은 밸런스 상태이며 건드리면 언밸런스 상태가 되기 때문이다. 물론 방해할 수는 있다. 마이너스는 가능하나 플러스는 불가능하다. 존재의 족보가 있는 것은 움직이기 때문이다. 할아버지에서 아들로 손자로 증손자로 계속 변한다. 머물러 있다면 거죽만 세워놓고 내용물은 빼갈 수 있지만 움직이는 것은 그렇게 할 수 없다. 보탤 수도 없고 뺄 수도 없다. 수학이 인류에게 인정되는 이유는 승부에서 이겼기 때문이다. 수학을 모르면서 주먹구구로 하는 에디슨이 지고 수학을 아는 테슬라가 이겼다. 에디슨의 직류로는 먼 거리에 전기를 보낼 방법이 없다. 직류는 마을마다 발전소가 있어야 한다. 구조론은 이겨야 한다. 실제로 많이 이겨왔다. 그래서 부단히 싸움을 거는 것이다. 일론 머스크든 스티브 잡스든 구조론에 걸리면 까임을 피할 수 없다. 우주가 정적 존재가 아니라 동적 존재임을 안다면 음모론은 불가능하다. 환빠는 불가능하다. 사이비는 불가능하다. 마녀사냥 못한다. 움직이는 것은 궤적을 남기기 때문이다. 모든 움직이는 것은 계통이 있고 족보가 있기 때문이다. 질, 입자, 힘, 운동, 량으로 전부 연결되기 때문이다. 거짓은 걸러지기 때문이다. 거짓말하는 사람이 증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우리 모두의 상식이 되어야 한다. 구조론은 신분상승을 체험하게 한다. 논쟁을 한 방에 정리한다. 그렇다면 구조를 한 번 들여다볼까? 이것만으로 게임은 끝이 난다. 남들은 구조를 보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감탄하게 만들 수 있다. 어떤 경우에도 다른 각도에서 보고 새로운 시선을 던질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