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의 원인은 에너지다. 그런데 헷갈린다. 에너지라는 말은 자연의 복잡성을 반영하지 못한다. ‘사용할 수 없는 에너지의 증가’라는 헷갈리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사용된 에너지라고 표현하는게 좋다. 에너지를 사용하면 사용된 에너지가 증가하는 것이 엔트로피다. 엔트로피 – 현재 사용 중일 때는 이미 사용된 에너지를 사용할 수 없다. 사용된 에너지도 모아서 나중에 재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 사용 중에는 사용할 수 없다. 쓰레기도 재활용하지만 당장 사용할 수 없다. 소화된 것은 소화시킬 수 없다. 불에 탄 것은 태울 수 없다. 이 말은 모든 에너지의 사용이 붙은 것을 잘게 쪼개는 것이라는 뜻이다. 이미 쪼개진 것을 쪼갤 수는 없다. 쪼개려면 다시 합치는 공정을 거쳐야 한다. 궁극적으로 보면 자연에서 모든 것은 쪼개진다. 에너지의 사용은 대칭을 이용하기 때문이다. 대칭은 둘이 하나로 합쳐진 것이다. 합쳐진 것에서 일어나는 어떤 변화는 그것이 쪼개지는 것이다. 변화는 다름이고 다름은 같음을 전제로 한다. 변화는 같음에서 다름으로 일어난다. 같음은 대칭의 일치에 의해 성립한다. 변화는 방향의 전환이며 방향이 바뀌려면 충돌해야 한다. ->와 <- 가 충돌하면 대칭이다. 방향이 -><- 에서 <-->로 변하는 것이며 그 외에 변화가 없다. 청소를 하면 쓰레기는 증가한다. 청소를 하지 않아도 쓰레기는 증가한다. 어느 쪽이든 쓰레기는 증가한다. 그런데 차이가 있다. 청소를 해서 증가하는 쓰레기는 쓰레기통에 증가해 있다. 청소를 하지 않아서 생기는 쓰레기는 방바닥에 널브러져 있다. 증가한 위치가 다르다. 흩어져 있느냐, 모여 있느냐의 차이다. 엔트로피 증가는 변화는 변화하는 방향으로 변화한다는 말이다. 변화라는 말속에 엔트로피 증가가 전제되어 있다. 동어반복이다. 변화는 곧 다름이므로 다름이 증가하는 것이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반대의 경우를 무수히 목격한다. 전체를 보지 않고 부분을 보기 때문이다. 쓰레기통을 들여다보지 않고 방이 깨끗해졌다고 믿는 것이다. 어딘가가 깨끗해져 있다면 다른 어딘가는 반드시 지저분해져 있다. 풍선효과다. 이쪽을 누르면 저쪽이 나온다. 이쪽을 보되 저쪽을 보지 않으면 착각을 하는 것이다. 전체를 봐야 한다. 그게 닫힌계다. 닫힌계를 잘 모르겠으면 앞에서 말한 사용중을 떠올리면 된다. 달리는 중에는 땀이 증가하고, 먼지가 증가하고, 체온이 증가한다. 뭐든 증가한다. 왜 열은 한 방향으로 움직일까? 온도가 높을수록 분자들이 달리기하는 중이기 때문이다. 뜨거운 것은 달리는 중이고 식은 것은 멈춘 것이다. 달리는 것이 멈춘 것 쪽으로 달려갈 수는 있어도 그 반대는 없다. 멈추었기 때문이다. 산 것은 죽을 수 있지만 죽은 것은 죽을 수 없다. 당연한 말이다. 죽은 것은 죽었고 산 것은 죽으므로 결국 모두 죽는 것이 엔트로피다. 의사결정은 산 것에서 일어난다. 대칭된 것에서 일어난다. 연결된 것에서 일어난다. 방향의 결정은 방향이 충돌하는 것에서 일어난다. 이미 방향이 결정된 것은 방향을 새로 정하지 않는다. 이미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현재 진행중인 것에 프리미엄이 붙는다. 왜 사회에 권력이 있을까? 권력은 현재 진행중이기 때문이다, 운전기사에게 권력이 있는 이유는? 버스가 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왜 왕에게 권력이 있을까? 모든 국가는 적국과 잠재적인 전쟁상태이기 때문이다. 달리는 말은 권력이 있다. 속도가 붙으면 멈출 수가 없다. 이기는 힘은 변화가 현재진행중인 것이 멈춘 것에 대해 의사결정에 있어서의 프리미엄을 가지는 원리다. 살아있는 소가 죽은 소보다 비싸다. 달리는 차가 멈춘 차보다 비싸다. 택시는 달리는 차를 세워서 타고 버스는 정거장에 멈춰 있는 차를 탄다. 요금이 다른 이유다. 달리는 것은 두 개가 연결되어 계를 이룬 것이다. 멈춘 것은 낱개들의 집합이다. 달리는 것은 이미 집합되어 있고 멈춘 것은 인간이 돈을 들여 집합시켜야 한다. 이미 집합되어 있는 것이 집합되지 않은 자원들의 합보다 더 비싸다. 집합에 드는 비용이 추가되기 때문이다. 엔트로피는 반대로 멈춘 것이 아무것도 못하는 것이다. 당연하다. 멈추어 있기 때문이다. 움직이려면 누가 발동을 걸어줘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이 옳으냐를 따지지 말고 무조건 현재진행중인 상태, 라이브 상태, 살아있는 상태, 상호작용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노인과 어린이가 물에 빠졌다면 어린이를 먼저 구하는 것이 맞다. 어린이는 변화중이고 노인은 멈추는 중이다. 살아있는 것에 권력이 있다. 관성력이 있다. 브레이크를 밟으면 보이지 않아도 내부에서는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이 관성력이다. 시동이 꺼진 채 주차된 버스보다 움직이는 버스가 우선이다. 도로교통법이라도 그렇다. 큰 도로의 빠르게 달리는 차에 우선권이 있다. 이면 도로에서 느리게 가는 차는 진입하지 말고 대기해야 한다. 버스와 승용차가 좁은 도로에서 마주치면 승용차가 비켜주는 것이 맞다. 버스가 더 에너지 총량이 많다. 그러므로 우리는 상호작용 총량을 늘리고 계속 사건을 연결하여 세력을 키우고, 관성을 태우고, 불씨가 꺼지지 않도록 유지하면 이긴다. 멈추면 죽는다. 옳아도 죽고 옳지 않아도 죽는다. 도덕적인 후진국보다 부도덕한 선진국이 이기더라.
그들이 더 내부에서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가 독재보다 상호작용 총량이 많다. 언제나 움직이고 있는 것에 프리미엄이 있다. 그것이 이기는 힘이다. 이기는 힘은 엔트로피 증가를 반대편에서 바라본 것이다. 부정이 아니라 긍정의 관점으로 봐야 한다. 연결된 것이 떨어진 것보다 에너지가 많다. 뜨거운 것이 차가운 것보다 무겁다. 1킬로그램의 쇳덩이가 두 개 있다고 치자. 차가운 1킬로그램보다 뜨거운 1킬로그램이 질량이 많다. 햇볕에 노출된 쇳덩이가 그늘에 있는 쇳덩이보다 무겁다. 발동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다른 조건이 같을 때 진행중인 것은 정지한 것 보다 세다. 움직이는 것은 멈추어 있는 것 보다 세다. 연결된 것은 떨어져 있는 것 보다 세다. 뜨거운 것은 차가운 것 보다 세다. 살아있는 것은 죽은 것 보다 세다. 원인측은 결과측보다 세다. 봄의 씨앗 1킬로가 가을의 수확 1킬로보다 비싸다. 연결된 전체는 부분의 합보다 세다. 자연의 모든 변화는 대칭으로 연결된 것을 끊는다. 변화는 받침점의 이동이며 받침점이 주변보다 세다. 만약 그 반대로 가는 현상이 보인다면 전체가 아닌 부분을 본 것이다. 부분을 보고 꼼수를 쓰면 청구서를 받는다. 우주 안의 모든 것은 엔트로피로 설명된다. 국힘당은 왜 저럴까? 선거전이 닫혀서 내부 엔트로피가 증가했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왜 정권을 뺏겼을까? 엔트로피가 증가한 것이 똥파리의 난이다. 세계는 왜 이 모양인가? 역시 엔트로피가 증가한 청구서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온난화의 청구서를 뒤늦게 받은 것이다. 지구 전체의 엔트로피 증가는 주로 바닷물 속에 숨어 있다. 바다가 열을 비축하다가 천천히 내뿜기 때문이다. 러시아, 인도, 사우디, 브라질, 중국이 일제히 미국에 반기를 드는 것이 엔트로피 증가다. 지구는 점차 개판이 되고 있다. 그럼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때는 왜 괜찮았지? 열린계로 외부에서 에너지가 들어왔기 때문이다. 무엇이 들어왔지? 컴퓨터, 인터넷, 스마트가 들어왔다. 외부에서 들어오면 엔트로피가 감소한다. 지식이 들어오고 혁신이 들어오고 생산력이 들어오면 엔트로피가 감소한다. 뭐든 엔트로피로 설명할 수 있다. 그런데 설명하지 않는다. 왜? 모르기 때문이다. 엔트로피를 아는 사람은 지구에 없다. 인간들은 일면을 봤을 뿐이다. 인류가 아는 엔트로피는 무질서도 증가다. 반대편에 있는 연결의 힘, 상호작용의 힘, 기세의 힘, 진행중의 힘을 모른다. 자석의 힘은 무엇일까? 중력의 힘은 무엇일까? 그것은 진행중의 힘이다. 관성력과 같다. 상태를 바꾸려고 하면 힘이 든다. 상태를 바꾸지 않았는데? 겉은 바꾸지 않았지만 속을 바꾸었다. 원자 단위를 넘어 양자 단위로 가야 스핀의 방향이 보이고, 자기장의 방향이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