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의 권력과정power process이 교육의 정답이다
공자의 가르침과 다른 모든 잡다한 사상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그것은 교육이다. 다른 사상은 적응이다. 교육은 환경을 바꾸는 것이고 부족을 갈아타는 것이다. 적응은 고정된 환경에 자신을 맞추는 것이다. 인간의 문제는 나를 바꿔서 될 문제가 아니고 세상을 바꿔야 해결된다. 교육이냐 적응이냐는 스크라테스의 철학과 소피스트들의 궤변만큼 차이가 있다. 소크라테스는 진리에 천착했고 소피스트는 재판에 이기려는 목적이 있다. 애초에 방향이 다르다. 군대라도 간부와 부사관은 방향이 다르다. 간부의 목적이 인원의 통솔에 있다면 부사관은 목적은 문제의 해결에 있다. 이건 다른 거다. 실용이나 경험은 문제해결에 소용된다. 교육의 근본은 지식을 공유하는 시스템의 건설에 있다. 실용이나 경험을 들고나오면 공유가 깨지고 시스템이 깨진다. 철학과 반철학은 다르다. 문명과 야만은 다르다. 문화와 반문화는 다르다. 교육과 적응은 다르다. 교육은 지식의 공유라는 목적이 있고 적응은 현장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인류가 집단지성을 이루어 하나의 단일한 뇌처럼 움직이게 하는 것이 교육의 목적이다. 개인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처세나 적응이지 교육이 아니다. 교육의 목적은 집단의 의사결정구조 안으로 들여오는 것이다. 의사결정권자가 되기다. 집단의 권력과정power process에 포함되는가다. 공자의 길에 있는 것이 존 듀이에게 없다. 그것은 집단의 권력과정이다. 집단이 목표를 세우고 역할을 나누고 상호작용하여 결과물을 도출하는 과정에 참여하게 하는 것이 교육이다. 동물은 서열정리로 이 문제를 해결한다. 알파독이 무리에게 역할을 부여한다. 인간은 같은 가족이나 집단 안에서는 대략적인 서열이 정해져 있지만, 피부색이 다르고, 나이가 다르고, 성별이 다르고, 언어가 다르면 서로 눈치를 보며 시간을 끈다. 서로 어색해하고 불편해한다. 냄새가 다르면 본능적으로 스트레스를 받는다. 이 지루한 과정을 자유와 민주로 미화하면 안 된다. 그것은 교육되지 않은 집단의 의사결정 난맥상이다. 기독교는 세례로 이 과정을 단축하고 불교는 수계로 해결한다. 하루 만에 다른 사람이 된다. 교사의 말 한마디로 해결할 것을 몇 개월간 신경전을 벌이곤 한다면 교육이 잘못된 것이다. |
"집단이 목표를 세우고 역할을 나누고 상호작용하여 결과물을 도출하는 과정에 참여하게 하는 것이 교육이다."
- http://gujoron.com/xe/12039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