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트를 개편하며 요즘은 출석부에 올릴 사진 구하기도 힘들다. 다들 유튜브로 가버려서 그런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이놈의 출석병을 치료해야 하는데 말이다. 너무 많은 시간을 출석에 허비하고 있다. 21대 총선도 끝났고 방문자 수도 감소함에 따라 소수정예 개념으로 사이트를 개편하게 되었다. 하루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은데 사이트 활성화에 에너지를 쏟다 보면 구조론을 연구할 시간이 남아나지 않는다. 방랑하며 조용히 혼자 사색할 때가 좋았는데 말이다. 지금은 뭔가 쫓기는 마음이다. 내 안에 들어있는 것을 죄다 털어놓고 가야 되겠는데 하는 생각뿐이다. 팟캐스트는 5월까지만 진행하고 잠시 휴식한 다음 내년부터 유튜브에 도전해볼 작정이다. 그동안 구조론연구소를 홍보하는 개념이었다면 이제부터는 구조주의 사상의 제자를 양성하는 개념이다. 열 명의 뜨내기 방문자보다는 한 명의 제대로 공부할 제자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구조론이 언제 세상에 알려질 것인가 하는 물음에 40년이 걸린다고 대답한 적이 있다. 그새 20년이 지났다. 40년이 걸리는 이유는 제자의 제자까지 가는데 대략 40년이 걸린다고 보기 때문이다. 시조 소크라테스에서 2대 플라톤과 3대 아리스토텔레스로 이어가는 흐름이 그렇다. 공자의 손자인 자사의 문하에서 맹자까지 가는 흐름이 그러하다. 소크라테스는 방향을 제시했고 플라톤은 체계를 세웠고 아리스토텔레스는 현실에 대입했다. 공자는 방향을 제시했고 자사는 천 개념을 확립했고 맹자는 사람과 연결했다. 비로소 대중이 도를 실천하게 되었다. 바른말을 하더라도 군중은 '그래서 어쩌라고?' 하고 반문하기 마련이다. 떠먹여 줘야 한다. 방향제시만으로 부족하고 도로와 자동차까지 건설되어야 한다. 소크라테스와 공자는 지도를 만들었고, 플라톤과 자사가 도로를 닦았다면 아리스토텔레스와 맹자는 자동차를 제작했다. 대승의 큰 배가 만들어져야 사람들이 각자 역할을 얻어 떼로 가담하는 법이다. 3대를 가야 도구는 건설된다. 당대에는 집단 내부에서 경쟁자의 편견과 질시 때문에 새로운 사상이 확립되기 어렵다. 사상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사람에게 굴복한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예수라는 이름의 어떤 목수에게 굴복하기 어렵고, 예수의 제자라는 어떤 어부에게 굴복하기도 어렵지만 이방인 바울은 냄새걱정이 없다. 이방 세계에서 왔기 때문에 유대인 냄새도 하층계급 냄새도 나지 않는다. 외부로 연결해 주관의 세계에서 객관의 세계로 도약하는 공식이다. 한국이라는 울타리를 넘어야 객관화된다. 내부는 대칭원리가 작동하므로 방해자에게 가로막힌다. 마호멧이 메카에서 막혀서 메디나로 탈출하는 원리다. 석가의 사상이 인도를 탈출했을 때 비로소 대승의 큰 배가 닻을 올렸던 것과 같다. 모두가 공유하는 구조가 건설되는 절차다. 구조론은 세상이 물질이 아닌 구조로 되어 있다는 존재론이며 거기에 맞는 세계관과 삶의 양식을 공유하는 사람이 구조론의 제자다. 이제는 구조주의 사상에 맞는 삶을 실천해 보일 때다. 그것은 인류가 힘을 합쳐 집단 지성을 완성하는 것이다. 구조론은 도덕가를 바라지 않는다. 치열하게 토론하고 경쟁하며 상호작용하는 사람을 구한다. 많이 아는 사람이 아니라 대화가 되는 사람을 구한다. 최고 레벨의 사람과 지식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이라야 한다. 인류호의 브릿지에 오를 수 있는 사람이라야 한다. 인류의 의사결정 중심에 쳐들어가는 사람이 진짜다. 서양이 발전한 것은 지식 때문이 아니고 천재 때문도 아니고 저작권과 논문제도와 학회의 발달 덕분이다. 특허권은 지식을 공유하는 대신 이권을 챙기는 교환제도다. 학회와 논문은 지식을 공유하고 평가하는 제도다. 탁월한 아이디어는 남의 생각을 어깨너머로 봤을 때 얻어진다. 이론을 다른 분야에 적용했을 때 비로소 진가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옆에서 구경하던 사람이 알맹이를 챙기곤 한다. 그것을 허용할 것인가다. 내가 어렵게 구한 지식을 남들이 날로 해 먹는 사태를 내가 용납할 것인가다. 진정한 교육은 그러한 지식의 공유그룹을 세팅하는 것이다. 일본 애니의 전성기를 연 만화가들도 한 건물에 모여 살며 서로 베꼈다. 만화잡지 학동사가 주선하여 데즈카 오사무를 필두로 토키와 장이라는 건물에 모여 살며 서로의 아이디어를 훔친 것이다. 그럴 때 막강해진다. 슬램덩크만 해도 농구잡지에 나온 NBA 사진을 그냥 해 먹은 거다. 네이버 웹툰도 작가들이 서로 친한 척할 때가 전성기였다. 지금은 엄청난 수익의 차이로 인해 소원해졌을 것이다. 어쩐지 아이디어가 신선하지 않더라. 아프리카 팀은 부족이 다르면 패스를 하지 않는다. 교육받지 못하면 서로 견제하다가 망하고 교육되면 서로 훔치며 성장한다. 올바른 지식의 공유시스템을 건설하려면 방해자를 쳐내는 것이 중요하다. 남의 지식은 훔치고 자기 지식은 감추는 자와는 대화할 이유가 없다. 자기 생각은 절대 밝히지 않으면서 남의 생각을 물어보고 그 질문에 대답하면 트집을 잡아 반격하는 기술을 구사는 얌체는 퇴출이 맞다. 지식을 공유하려면 무리가 일제히 한 방향으로 가는 일원론이어야 하고 보편성과 절대주의와 합리주의와 지성주의라야 한다. 이원론이니 다원론이니 하는 방해자가 등장하면 지식의 공유는 불가능이다. 개인의 영역인 특수성과 상대주의와 경험주의를 주장하면 공유는 무리다. 상대주의는 당연히 상대의 뒤통수를 친다. 집단의 머리가 아닌 손발이 되려고 하는 보수꼴통과는 지식을 공유할 수 없다. 좋은 지식도 도구가 건설되기 전에는 현장에서 먹히지 않는 공리공론에 불과하다. 남의 지식을 현장에 적용하여 해먹을 궁리만 하는 자가 보수꼴통들이다. 음모론의 추종자는 튀려고 하므로 당연히 방해자다. 종교의 광신도는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기본적인 대화조차 안 된다. 개소리하는 환빠는 닥쳐야 한다. 초능력, 귀신, UFO, 마법, 심령술, 점집 따위 괴력난신에 현혹되는 바보들과는 깊은 대화를 할 수 없다. 일단 공유가 안 된다. 공유가 안 되면 가짜다. 한의사가 진맥을 하는데 본인만 잘하고 제자를 양성하지 못하면 그게 가짜라는 증거다. 진짜라면 유튜브에 올려놓은 동영상만 보고 복제할 수 있어야 한다. 열 가지를 마구잡이로 투척하여 하나를 요행으로 맞추겠다는 자와는 일체의 대화를 삼가야 한다. 구조론은 마이너스다. 방해자를 쳐내면 남는 것이 정답이다. 하나가 틀리면 전부 틀렸다고 보는 관점이다. 구조론은 구조와 관계와 사건과 에너지와 완전성으로 파악하는 일원론 사상이다. 구조론은 합리주의, 절대주의, 보편주의, 진보주의, 지성주의, 강자의 철학을 지향하고 있다. 일원, 합리, 절대, 보편, 진보, 지성, 강자가 별게 아니고 지식을 공유하면서 방해자를 제거하면 자연히 그렇게 된다. 남의 아이디어에 끼워팔고 묻어가려 하므로 이원론이니 다원론이니 하는 가짜들이 생겨나는 것이다. 남의 이론을 해 먹으려면 현장에 적용하면서 적당히 왜곡한다. 그러한 변개를 변명하는 논리가 이원론에 다원론에 상대주의다. 집단지성의 방해자는 일체 반지성주의다. 반사회적, 반문명적, 반철학적, 반문화적 태도에 따른 이원론, 다원주의, 실용주의, 경험주의, 유물론, 허무주의, 약자의 철학을 주장하는 자가 방해자다. 그들의 도구가 없다. 구조론은 바로 그 도구를 건설한다. 대승의 세계로 가려면 울타리를 넘어야 한다. 제자의 제자까지 흐름을 만들면 객관화된다. 사람에 숙이지 않고 진리에 가담한다는 기분이 든다. 지금은 본능적으로 팔짱 끼고 관망하며 '그래 니들이 재주부려 나를 납득시켜봐.' 하는 태도다. 호르몬이 방해하므로 그들은 절대 납득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다. 머리가 따라가지 못하는게 아니고 본능이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무엇인가? 조주빈, 부따, 갓갓이 범죄를 저지른 이유는 텔레그램을 도구라고 믿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드론 조종사가 사람을 죽인다. 마우스를 움직이고 자판을 쳐서 1만 킬로 밖의 전장에서 아프가니스탄 민간인을 학살하는 것이다. 자신이 아니라 도구가 사람을 죽이므로 마음의 동요가 없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도구가 들어가야 호르몬을 이기고 객관화된다. 남녀가 만나더라도 중매인을 끼워야 어색하지 않다. 모임에는 사회자나 진행자가 있어야 한다. 쿨해지려면 도구가 필요하다. 구조론은 도구다. 무리가 함께 큰 배를 타고 대양을 건너가는 것이다. 모든 철학과 사상이 반드시 거치는 통과의례다. 어떤 사상이 이런 절차 없이 대중적 인기를 얻었다면 보나마나 대중에게 아부한 것이다. 라즈니쉬 수법이 먹힌 것이다. '그냥 하고 싶은 것을 해라. 네 잘못이 아냐.' 대중은 이런 말을 듣고 싶어 한다. 자기 생각을 말하지는 않고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대신 말해주는 수법이다. '니들이 원하는게 이런거 아냐? 노력타령, 사랑타령, 행복타령, 내려놓아라 타령, 비워라 타령. 무, 허, 공, 멸, 영, 기 따위 아무런 뜻도 없는 허무맹랑한 단어들 좋아하지 않아? 생각하기 싫어하는 자들에게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특권을 주면 좋아한다. 나는 제자의 제자까지 3대에 걸쳐 커다란 하나의 배를 건설하려 한다. 그것은 집단지성의 방해자를 제거하는 시스템이다. 모세와 무리는 가나안에 발을 딛지 못했고 광야에서 태어난 자손들이 가나안에 입성했다. 바울은 예수를 만난 적도 없다. 스탈린을 추종한 소련인들은 마르크스를 본 적이 없다. 모택동을 추종한 중국인들도 마찬가지다. 영국에서 마르크스는 직접 힘이 작용하는 통제대상이다. 반드시 방해자가 있다. 그러나 바다를 건너면 다르다. 소련이나 중국에서 마르크스는 도구에 불과하다. 지불해야 할 대가는 없다. 이론에 구애되지 않고 마음대로 변개하여 현장에 적용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든 맹자든 3대에 이르러 시조를 떠나 거기까지 전개하여 간 것이다. |
"지식을 공유하려면 무리가 일제히 한 방향으로 가는 일원론이어야 하고 보편성과 절대주의와 합리주의와 지성주의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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