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리드(Buried). 인터넷에서는 반전영화라고 많이
알려져 있는 영화입니다.
이 영화의 특징은 단순한 구조에 있습니다.
제목 그대로 어느날 갑자기 땅 속에 파묻힌 남자의
이야기를 다루는 스릴러 물입니다. 그리고 핸드폰
하나만으로 이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하지만 이동진 평론가의 말을 빌리자면
"형식적 제약이 도리어 창의적인 날개가 되었다"
고 말할만큼 긴장도나 몰입도가 상당한 영화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티즌들의 평가는 호불호가
갈립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그 이유는 이 영화의
매력으로 꼽히는 반전 때문이기도 합니다.
사실 이 영화를 극찬하는 사람들조차도 반전에
대해서는 허무하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다만 사회적인
메시지, 독창성, 충격적인 결말이라는 이유를 들어
그 허무함을 희석시키려는 태도를 갖습니다.
그렇다면 왜 관객들은 허무함을 느낄까요?
그것은 이 영화가 관객들의 기대를 완벽하게
배반했기 때문입니다.
보통 영화의 경우 먹을 것을 주며 입을 '아' 벌리라고
하면 조금 뜸을 들이더라도 대개는 관객의 입에
넣어주죠. 그리고 나면 관객들은 그 맛으로 영화를
평가합니다.
하지만 베리드의 경우는 입을 '아' 벌리라고
해놓곤 관객의 입이 아닌 자신의 입에 넣어버립니다.
그리곤 약올리듯 이런 음악을 틀어놓으며 영화를 마치죠.
때문에 이 영화를 보고 희망고문이다 혹은 관객들은 희롱하는
기분이 들어 화가 났다는 식의 감상평들이 적지 않은 편이죠.
하지만 이 영화를 본 제 견해는 조금 다른데요.
이 영화는 희망고문의 영화가 아니라 희망 그 자체인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즉 위 엔딩 곡은 관객들을 희롱
하자는 의미가 아니라 이 음악의 느낌이 이 영화의 주제와
맞닿아 있다고 봅니다.
- 여기서부턴 스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사람들은 이 영화를 사람이 2시간 동안 고생하다 결국
허무하게 죽는 영화로 보는 시선이 많습니다. 또한 그 죽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해 영화 안에서 의미를 찾거나 혹은
영화 밖으로 확장시켜 사회적 메시지로 해석하는 모습도 많습니다.
하지만 제가 본 이 영화는 사람이 죽음 속에서 2시간이나
삶을 지탱하는 희망을 엿본 영화입니다. 그리고 그 희망
이란 역시 부단한 상호작용이었구나 하는 끄덕거림도
함께 였습니다.
만약 주인공에게 핸드폰이 주어지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마 없던 패쇄공포증도 생길테고 도저히
희망이 보이지 않는 공간 속에서 미쳐 아마도 자살을 했을
거라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희망이란 상호작용이기 때문
입니다.
즉 사람들은 살기 위해 희망을 갖는다고 생각하지만
제 생각으로는 사람이 희망을 갖기 때문에 살아갈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즉 구조론의 관점을 빌려 생각해본다면
희망이란 생존의 하부구조가 아니라 상부구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므로 마지막 관이 무너지지만 끝까지 핸드폰을
손에서 놓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담은
엔딩 역시도 부단한 상호작용이 계속된다면 인간은 어떠
한 상황에서도 희망을 놓치 않는 구나하는 깨우침을
주는 장면이었습니다. 그전까지는 저는 인간이 포기하기
때문에 희망이 사라진다고 생각했었거든요. 하지만 인간이
포기하는 것은 주변과 상호작용을 못하고 있다는 징후일뿐
그 사람을 탓할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마 이번에 포기하지 않는 투혼으로 국민들을 감동시켰던
20세 이하 청소년대표팀의 포기하지 않는 집념이란 끈임
없이 상호작용을 거듭하는 끈끈한 조직력에서 나오지 않
았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때문에 저에게 있어 엔딩은 허무함을 낳기보다는 끊임없는
상호작용만이 인간을 인간답게 할 수 있는 희망이구나하는
느낌을 주는 기분좋은 장면이었습니다. 덕분에 엔딩크레딧
에 흐르는 저 유쾌한 음악 역시 기분 좋게 감상하게 되었죠.
이 영화를 보면서 문득문득 떠오르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바로 파이이야기였습니다. 벗어날 수 없는 공간 속에 갇혀
그 안에서 생사의 투쟁을 벌여야 하는 맥락이 닮아있다고
보았습니다.
다만 이 베리드와 파이이야기의 차이를 들자면
베리드는 법의 영화이고 파이이야기는 세의 영화라 볼 수 있습니다.
즉 과거 동렬님의 말씀처럼
◎ 법(法)은 배의 이물이 앞이라 한다. - 착취당해 죽는다.
베리드의 경우도 주인공이 요구조건을 내세우는 테러리스트
에게 휘둘리며 착취당해 죽는 모습입니다.
그에 반해 파이이야기는 자신의 방향을 창출함으로써 호랑이
나 바다에 휘둘리지 않고 살아남았습니다.
결국 상호작용이 생존의 상부구조라는 깨달음과 함께
부단한 상호작용이 덧없는 희망이 되지 않으려면
상호작용이 상부구조라는 이 믿음을 전제로 하부구조인
생존에 휘둘리지 말고 또한 상호작용 그 자체에만 안주
하지 말고 그 상호작용을 수렴하는 사건 자체를 연역하는
관점에 서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러므로 베리드에서 주인공의 상호작용의 방향이 만약에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미 죽은 목숨 제대로 딜이라도 해보자'
라는 태도였다면 그의 삶이 다른 방향으로 흐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물론 제 삼자의 입장에서니 이런 이야기를 하지 만약 제가
당사자였다면 난리도 아니였으리라 생각합니다만^^
하지만 사람이란 환경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는 없다고
생각됩니다. 때문에 사람의 행동을 그 사람 자체로서의
옳고 그름으로 판단할 수 없는 거겠죠.
덕분에 사람이 먼저다라는 말의 의미를 되새겨보게
되네요. 사람이 먼저이기에 앞서 그에 수반하는 전제
들을 곱씹어보게되는 계기가 된 영화인 듯 합니다.
음악, 왜이리 경쾌하죠...
폐소공포증 때문에 스토리 알고 기피했던 영환데...
한번 보고 싶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