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모임에서 일부 국가에서 명예 살인등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는 것이 단순히 여성 인권 의식이 부족한 등의 간단한 문제가 아니고 사회의 질, 복합적 구조의 문제라는 이야기가 나와서 나도 비슷한 일을 겪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나는 몇 년 간 집 겸 사무실을 쓰던 전세집을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나(이하 A)와 직원(이하 A2)은 주인아줌마(이하 J)한테서 이러 저러 어거지를 당하며 돈도 뜯기고 해서 감정이 좋지 않았습니다.
최대한 간략하게 이번 자초지종을 소개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 A 는 그전부터 이사를 가고 싶은 생각도 있어 2012년 나가겠다는 의사를 표시했다. (계약 기간 중인지 만료되어 자동 연장인지도 사실 몇년 지난 상태라 명확하지도 않음)
- 그런데, 주인 J 는 2012년까지 주로 미국에 거주하여 신경을 많이 못썼고, 한 명 보러 오고는 더 이상 일은 추진되지 않았다. A 도 그후 별 말이 없고 흐지부지 되었다.
- 그런데 2013년 1월 J 는 공사비에 써야 한다며 전세금 200만원을 올려 달라고 요청을 하였다.
- 이에 A 는 그럴 바에는 나가겠다고 의사를 표시하고, 이번 것은 주인 J가 나가 달라고 요청한 것이니 부동산 중개 수수료(이하 복비)는 J 가 부담해야 한다는 점을 주장했다.
- J 는 처음에는 작년에 A 가 나간다고 하지 않았느냐며 부인했으나, A 가 작년은 이미 흐지브지 되었고 이번 것은 주인 측에서 올려 달라고 한 것이고, 안 그러면 다른 사람에게 300만원을 올려 새로 받을 것이라고 했으니, 이번 것은 주인 측에서 계약해지 한 것이고, 당연히 복비는 J 가 내야 한다고 재차 주장하여 수긍을 받아 냄.
- 이 과정에서 A 는 주인 J 가 나중에 식언하고 잡아 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생각을 하고, 상대 모르게 아이폰으로 음성 채증을 해 둠.
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 싸움의 시시비비가 아니고, 흔히 "있는 사람들이 더하다"는 속담처럼 있는 사람들은 조금도 양보안하고 부담을 전가하며, 필요할 때는 어거지, 법, 소송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자기 권리를 챙기면서, 없는 민초들은 억울한 일을 당해도 그냥 손해 좀 보고 좋게 좋게 살지하는 풍토가 과연 옳은지, 이것을 극복할 수는 없는 것인지 하는 것입니다.
- 아니나 다를까 잔금치르는 2월 26일 주인 J 는 언제 그랬냐고 식언을 하며, 복비를 A 가 내라고 우김.
- A 가 당연히 거부하자 잔금 중에서 복비 20만원을 공제하고 준다고 하자 A 는 그러면 인정하는 것이 되므로 그것도 역시 거부.
- 이에 A 는 J 자신이 말한 것 들어 보라고 아이폰을 꺼내자 J 는 부동산 공인중개사 (이하 G) 사무실이 떠나갈듯 고래 고래 소리를 지르며 이것 저것 다른 이야기를 함.
- 이 시점에서 A 측이 결정적 실책을 하는데, 동석해 있던 직원 A2 가 J 에게 똑바로 살라고 반말을 하며 둘이 말싸움이 붙음.
- 결국 채증은 들어 보지도 못하고 중개사 G 는 다들 나가라고 내보냄.
이 경우 잔금 지불이 완료되지 않았기 때문에 A 는 집을 잠그고 아무도 못들어오게 할수 있습니다. 주인 J는 물론이고 새로 이사올 세입자 (이하 B) 도 마찬가지고, A의 허락 없이 들어 오면 주거침입죄가 성립 됩니다.
- 다음 날 B가 도배 공사를 하러 들어 오고 주인 J 가 부수고라도 들어간다고 하여 A 는 경찰을 부름. 일단 당일 도배 공사는 허용.
- A 는 새 세입자 B 에게 계약 파기하고 대신 J 에게 파기 손해배상으로 수백만원 받을 수 있는데 그러시겠냐고 제안.
- B 는 당장 내일 들어 와 살 집이 문제고, 생업이 바빠 신경 쓸 시간도 없다. 똥이 더러워서 피하지 무서워서 피하냐며 A 에게 원만한 해결을 권유.
- A 는 몇 달이고 소송하며 싸움을 할 여력이 있지만, 그 와중에 B 가 제일 큰 피해를 보게되자 할 수 없이 뜻을 접음.
- 다시 중개사 G 사무실에서 A 와 J 가 만났는데 주인 J 가 먼저 세상 서로 타협하며 사는 거라고 복비 반반씩 부담할 것을 제안하여 A 가 수락하여 일단락.
결국 사건은 주인 J 가 10만원을 A 에게 부당하게 떠넘기는 것으로 결과가 되었는데, 그 와중에서 사건 당사자들과 주변인의 태도를 보니 올바로 시시비비를 가리겠다는 자세는 A 혼자 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물론 20만원의 부당이득을 취하려다가 10만으로 깍인 J 는 정당한 권리 이상을 취하게 되는 결과가 되었습니다. 결국 권리를 끝까지 주장한다는점에 있어서는 A 와 J 가 비슷한 마인드였고 나머지는 전부 그렇지 않았습니다.
직원 A2 : 저런 못된 J 에게 욕이라도 실컷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 이에 나는 그런 싸움이 붙을 때 큰소리 치는 놈이 결국은 불리하다고 타이름. 살다 보면 억울한 일을 당한 없는 사람들이 감정만 앞세워 욕설, 위협, 어떤 경우 폭행까지 하다가 꼬투리 잡혀서 결국 권리를 포기하는 일이 허다하다. 실제로 이번에 J 는 A2 를 모욕, 위협 등으로 경찰에 고소할 움직음을 보였습니다. 그때 그 J 가 소리를 고래 고래 지를 때 A 측은 차분히 말한 바를 먼저 들어 보자고 유도를 하는 것이 상책이었습니다.
A 의 부모 : "세상에 복비 20만원 때문에 수천만원 전세 잔금을 안 받는게 어디 있냐"며 크게 화를 냄. "그냥 그런건 포기하고 좋게 좋게 넘어 가라.", "똥이 더러워서 피하지 무서워서 피하냐", "내가 그냥 20만원 줄께 끝내라."
새 세입자 B : 역시 "똥이 더러워서 피하지 무서워서 피하냐", 저런 사람하고 싸우면 싸우는 사람만 손해다. 대충 양보해라.
공인중개사 G : 나중에 채증 내용도 들어 보려고도 하지 않는 등 대단히 무책임한 태도를 보임. 엄연히 양쪽 다 자신의 고객의 일이고 자신들이 받아야 할 복비의 책임이 어디에 있는지는 자신들의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엮이기 싫다며 둘이 알아서 하라고 회피. 그리고, 채증이 있던 없던 집주인이 전세금을 올려 달라고 해서 나가면 복비를 집주인이 부담하는 당연한 상식조차 외면하며 불개입.
경찰 : 경찰은 일단 문은 열어 주고 공사를 하게 해 주라고 권유. 사실 법대로만 따지면 경찰은 현 사용자 A 외에 다른 사람들은 못들어오게만 하면 됨. 경찰 역시 대충 양보하고 끝내기를 바라는 눈치로 해석했음.
이렇듯이 우리 사회 문화가 대체로 시시비비를 끝까지 가리면 너무 손해가 많으니 대충 양보하고 사는 풍토가 많은 것 같습니다. 특히 있는 사람들은 돈, 시간 등 싸울 여유가 있지만 없는 사람들은 그럴 여력도 없고 잘못되면 큰 타격을 받습니다. 그래서 이번 관계자들에게 한마디씩 했습니다. "없는 사람들이 자꾸 이런 식으로 있는 사람들의 부당한 횡포를 받아 들이며 사니 우리나라가 이꼴 아니냐?"
나중에 생각해 보니 조선일보의 왜곡보도를 끝까지 법정 판결까지 끌고 가서 승소한 노무현 대통령 생각이 났습니다. 그 역시 주위에서 다들 그렇게 한다며 대충 끝내라는 무수한 권유를 받았다고 알고 있습니다.
반대로 전여옥 같은 경우는 당연한 표절 의혹 제기에 대해 본 연구소 김동렬님등을 비롯한 무고한 사람들을 몇 년 간 소송으로 괴롭혔습니다.
사실 이번 사건에 A 는 전세금 반환 청구 소송을 내고, B 는 계약 파기 손해배상 소송을 내면, J 는 그야말로 큰 손해를 볼 뻔 했습니다. 20만원 복비는 차치하더라도 수천만원의 전세금과 전세금의 10% 정도의 손해배상금을 내주지 않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건 소송해보나 마나입니다. J 가 지급을 거부하면 연리 25% 지연 배상금만 차곡차곡 올라가고 끝까지 버티면 집은 경매에 넘어 갑니다. 내가 나중에 부모님에게 그랬죠. 요새 25% 짜리 투자처가 어디 있냐고. 부모님은 소송하면 너만 피곤하다고 했지만, 사실 나야 느긋하게 기다리면 되는 거고, 진짜 큰 피해는 J 가 보는 것입니다.
칼자루는 완전히 A 와 B 가 쥐고 있으면서도 J 의 어거지에 결국 일부 굴복을 한 것으로 결과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똑똑한 J 는 A 가 소송 돌입을 가시화하면 분명히 이같은 사실을 깨닫고 꼬리를 내렸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마지막 날 먼저 10만원 감축 제안을 내놓은 것도 A 의 강경한 태도가 영향을 미쳤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A 주위에 A 와 뜻이 같은 사람이 하나도 없는 등의 이유로 그냥 양보를 하고 말았습니다.
나는 주인 J 가 어떤 사람인지 겪었고, 분명히 자기가 말한 것도 식언을 할 사람이라는 것을 충분히 예상하고, 거기에 대한 대비를 해 놓고도 A2등 주변 사람들과 호흡이 맞지 않아 결국 약간 손해를 보고 말았습니다.
제가 평소에 많은 생각을 했던 테마인데 노매드님께서 지적 하셨네요.
큰바위님의 말씀처럼 우리나라에만 있는 일이 아니니 그냥 수긍하고 넘어가야 할까요.
아닙니다. 어떤 방법으로건 바꿔야 합니다.
외국사정에 밝지 못하니 딴나라의 일까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주변에서 너무도 당연시 되고 있는 이런 사회적 분위기는 큰 문제라 여겨집니다.
점점 더 악화되어 가고 있으니까요.
고위 공직자들의 청문회 때 마다 불거지는 크고 작은 의혹들- 그냥 덮고 지나가는 게 맞습니까?
법이 왜 필요하며 윤리도덕에 왜 가치를 부여 할까요.
사소한 교통법규 위반에도 수입에 비하면 거금의 범칙금을 내야 하는 서민들입니다.
원칙의 잣대가 서민에게는 추상같고, 힘있는 자들에게는 망가진 그물같다면 어찌 민주사회라 할 수
있을까요.
그러한 사회구조가 점점 더 빈익빈 부익부를 심화 시켜 가는 거라고 봅니다.
시골 농로길 포장공사를 비롯한 잡다한 토목공사들이 많습니다.
모두 관급자재(조달물자)를 사용합니다. 이러한 건설분야의 예산은 비교적 덩치가 큽니다.
얼마나 필요한 곳에 사용될까요?
하다 못해 이장,통반장을 비롯하여 건설업자, 담당공무원들간에 먹이사슬로 얽혀진 작품들이 꽤 많습니다.
힘없는 근로자, 하층민들에게 얼마나 혜택이 주어질까요?
시골에 노인 요양원이 많이 생겨 났습니다.
정부의 복지예산이 많이 투입됩니다. 그 예산들이 온전히 노인 복지를 위해 쓰여질까요?
보육시설도 많이 늘었습니다. 행사 한다며 사진 몇장 찍고 증거만 남기면 됩니다.
죽음을 목전에 둔 병약한 노인들과 유아들이 항변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들춰내면 무수한 사례들이 있지만 알만큼 아는 내용들이라 그치겠습니다.
바늘 한 개 만큼의 권력만 쥐어줘도 그걸 휘두르고 싶은 인간의 본능이 있나 봅니다.
특히 "빨리빨리" 좋아하고 "좋은게 좋지"를 선호하는 사회풍조는 바늘 한 개를 잘 휘두르는 자를
능력있다고 평가하여 다음에는 칼을 쥐어 줍니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되고, 꿩잡는 게 매다"
해방 후 친일파 들을 요직에 등용했던 것 처럼 말입니다.
그래서는 안되는 줄 알면서도 대충 빨리 끝내는 게 좋은 거라는 생각.
약자가 따지고 들면 "진상"이고 강자가 시원하게 밀어 부치면 "쿨하다"는 생각.
공권력도 어찌 할 수 없는 거대기업의 횡포를 보고도 그저 숨죽이고 살아야 한다면 비참한 사회죠.
저는 아직 구조론적 사고는 못하는 경지이지만 살아가며 스치는 사례들에서
노매드님의 일화처럼 몹시 잘못 되었다고 느낄 때가 많습니다.
한쪽에서는 냅다 부자되길 희망하고,
한쪽에서는 냅다 사람들을 가난하게 만들고........
구조론이 제시하는 것은 그런 구조를 객관적으로 볼 뿐만아니라,
모두의 수준을 높이기 위해 본질을 다루는 것이라고 봅니다.
한 사람이 소중한 것은 그 한 사람이 몇 십만, 몇 백만 사람들의 몫을 할 수 있다는 건데,
그걸 깨닫는게 가장 소중한 일이 아닐까 합니다.
공정무역이라든가,
지금 한국에서 법제화 되어서 실행되고 있는 협동조합의 일이라든가,
팟캐스트에서 사람들을 깨우치는 일이라든가,
위키피디아,
TED 등은
모두의 수준을 높이는 움직임으로 보여집니다.
잘못된 구조 속에서 고치려 들기보다는
아예 새로 물갈이를 하는 것이 낫습니다.
애를 새로 낳아야 창의가 이루어지고,
창조된다고 봅니다.
그러면 지금 있는 것은 어쩌고? 이 질문은 없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우리 사회 뿐 아닙니다.
전세계에 하루 2달러 정도의 비용으로 사는 사람들이 반이나 되고
1달러 (1,100원) 정도의 비용으로 사는 사람이 12억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Jimmy Carter, Our Endangered Values: America's Moral Crisis (New York: Simon & Schuster, 2006), 179에 기록된 수치가 보여주듯 부자와 가난한 사람들 간의 격차는 점점 더 벌어지고 있습니다. “1969년에 상위 20%의 부자들이 하위 20%의 가난한 사람보다 약 30배나 더 많은 부를 소유하였다. 1990년에는 상위 20%의 부자들이 하위 20%의 가난한 사람보다 약 60배나 더 많은 부를 소유하게 되었다. 현재 그 차이는 83배로 늘어났다.
우리 사회 뿐 아니라, 사회보장제도가 잘 되어 있는 몇 나라를 제외하고는 부익부 빈익빈은 계속 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