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 자기 행동의 일관성을 따라간다. 한나라당이 좋기 때문에 찍는게 아니라 저번에 한나라당 찍었는데 이번에 안찍으면 그게 모순이므로 한나라당 찍는다. 한나라당이 유익한가보다 자기 행동의 일관성이 더 중요한 문제로 된다. 되도록 룰을 바꾸지 않으려는 보수성이 작동한 것이다.』
칼럼 - 인간 행동의 이해 에서 발췌.
노인층에서 유독 한나라당의 지지가 높은데 이런 문제로 부모 자식간에 정치 얘기를 하다가 다툰다는 경험담을 주변에서 많이 듣습니다. 잘 모르니까 가르쳐 드려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들이 잘 몰라서 한나라당에 표를 준다는 상대어 개념으로 보면 해결 방법도 쉽게 나오지 않습니다. 백날 입씨름만 하다가 끝납니다.
절대어로 보면 그들이 잘 모르고 무지해서 한나라당을 찍는 게 아니라 그런 일관성이 룰을 바꾸지 않으려는 보수성이 작동한 탓이라고 봐야겠죠?
개가 짓는 것에 대해서도 집을 지키려고 한다는가 하는 식으로 말하는 건 상대어 개념이고
스트레스라고 하는게 절대어 개념인거죠? 낯선 것에 대한 스트레스.
남자가 여자를 좋아하는 것도 자손을 남기기 위하여가 아니라
그렇게 살아가도록 세팅되어 있기 때문에 그 세팅에 의하여 주어진 대로 살아가는 거라고 봐야하는 거겠구요.
한 1년 전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소속의 유명 축구 선수 라이언 긱스의 불륜 두 건이 연달아 터졌을 때
부인 외에 두 명의 여자가 있었죠. 그 중 한 명인 미스 웨일즈 출신의 미모의 여성은 긱스가 부인과 이혼하고
자신에게 올 줄 알았는데 또 다른 여자가 있었던 것에 대해 괴로움을 나타냈습니다. 놀라운 건 긱스를 탓 하는게
아니고 자기가 못나서 그렇다고 스스로를 자책해서 죽고 싶다는 얘기까지 트위터에 썼었죠.
이 상황에 주변의 반응들은
- (불륜 여성의 미모를 보고)역시 남자는 능력이다
- (불륜을 했다는 사실 자체만 보고)긱스 완전 쓰레기야
이런 말들은 전부 상대어 개념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저는 그 일을 두고
- 긱스스러움(제가 갖다붙인 말)이야말로 모든 남자가 살아가는 이유.
이렇게 얘기했는데 이런 식이 절대어 개념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긱스 이야기는 적절하지 않소.
인생을 모르시는구나 하는 생각이 드오.
긱스 역시 인생을 모르는 자라고 할 수 있소.
인간은 절대적으로 완전성을 탐하는 존재요.
플러스 관점으로 보면 완전한 것은 세상에 없소.
마이너스 관점으로 보면 이미 스스로 완전하오.
긱스는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는 아이 같소.
정신적으로 미성숙한 것이오.
철이 없을 때는 이 악기 저 악기 만져보고 신기해 하지만 금방 싫증을 내곤 하오.
철이 들면 자신에게 맞는 하나를 찾아서 끝까지 가보는 것이오.
그 악기는 자기 안에 있고
그 악기를 울릴 수 있는 진짜는 하나 밖에 없기 때문에.
좋은 말씀 고맙습니다.
저 스스로도 제가 아직 많이 부족함을 알고 있습니다.
더 배우기 위해 이 글을 올린 것이기에
답변에 정말 고마움을 느낍니다.
제가 계속 궁금한 부분은
긱스의 저 사건을 두고 단편적으로
"남자는 능력이다"라거나 "긱스는 쓰레기야"라는 식으로만 보는 것은
부족한 의견이 아닐까 하는 부분입니다.
제가 뜻했던 것은
긱스의 그런 행동과 일련의 상황들에 대해
좀 더 명확하게 설명하고자 하는 부분이
절대어를 사용하는 것과 같지 않나 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많은 여자를 만날수록 더 완전해진다는 뜻이 아니라
인간의 본능이 그렇게 세팅되어 있기에 그리 행동한 게 아닐까 하는 것입니다.
어떤 책에서
인간의 삶의 이유를
생존과 번식 이라는 두 단어로 표현을 하는 것을 읽은 일이 있습니다.
긱스의 그 행동은 생존과 번식에 가장 충실한 모습이 아닐까 했던 것입니다.
동렬님이 항상 글에서 강조하시는 부분은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세팅되어 있다고 그대로 따라가지 말라는 것.
다시 말해 긱스스러움은
오르락 내리락 하는 시소에 한 쪽에 타서 거기에 몸을 그냥 맡긴 것이라고 할 수 있겠죠.
다만 여전히 의문인 것은
"그 악기를 울릴 수 있는 진짜는 하나 밖에 없기 때문에."라는 부분입니다.
불교의 연기론의 사고방식을 가져와서 보면
씨앗이 있더라도
그에 맞는 토양과 기후가 뒷받침 되지 않으면 싹을 틔울 수 없는 것처럼
딱 그 사람이 아니면 울리지 않는 것일까요?
인간의 본능이 그렇게 세팅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런 식의 접근 역시 상대어적인 것입니다.
생존과 번식 어쩌구 하는 것도 역시 상대어입니다.
인간이 생존이나 번식에 관심이 있을 리가 없잖아요.
절에 있는 스님들은 뭐 인간이 아니라서 그러고 있는 것은 아니잖아요.
생존도 결과, 번식도 결과 다 결과론입니다.
개미들은 죽어도 고통을 느끼지 않습니다.
고통을 느끼는 신경이 없습니다.
개미전쟁을 해서 수십만마리가 몰사하곤 하지요.
장마철이 오기 직전에 하천바닥에서 흔히 볼수 있습니다.
개미들이 생존과 번식에 관심없는데
인간이 유별나서 생존과 번식에 관심있을 리 없잖아요.
그런 소리는 다 무식한 과학자들이 상대어에 빠져 있어서 하는 헛소리입니다.
인간의 본능과 유전자가 명령하는 것은 완전성을 찾아가는 것이며
그것은 공동체를 찾아가는 것이며
긱스는 공동체를 타격하는 행동을 한 것입니다.
명박이는 전봇대를 뽑아서 공동체의 주의를 끌고
수컷 침팬지는 소동을 피워서 공동체를 주목하게 하며
긱스는 역시 같은 방법으로 공동체에 긴장을 불어넣은 것이며
석궁교수 역시 그 성감대를 보고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겁니다.
이건 유전자의 명령이에요.
다 세팅되어 있다 말입니다.
석궁교수는 그 사건이 대한민국을 흔들어 놓을줄 알고 있었고
탈옥수 신창원은 그래서 1초에 15번 주먹을 내밀수 있다고 개소리 까는 겁니다.
1초에 15번 좋아하네.
미친 놈의 새끼죠.
그는 단지 대한민국을 들었다 놓는데 관심이 있었던 거고
언론기자들이 좋아할 소스를 던져주는데 관심이 있었던 거고
탈옥해서도 하는 행각은 잡히지 않는 것이 아니라
애인과 있다가 잡히는 그림을 원했던 것이며
(아~! 애인과 함께 있다가 빤스바람으로 경찰에 잡히는 장면이야말로
모든 탈옥수의 영원한 로망인것을)
그는 거기에 맞는 탈옥패션까지 구비해 놓았던 거고
긱스는 단지 공동체 전체에 긴장을 유발할 목적으로
(사실은 긱스 자신도 정확히 모름. 본능의 명령에 따를 뿐.)
박정희가 한 더러운 행동을 따라한 것입니다.
이게 절대어입니다.
성철스님은 3000배로 공동체 전체를 긴장시키는 것이며
수첩공주 역시 공동체 전체가 스트레스 받아 돌아벌이는 시점까지
장물재산을 내놓지 않을 것이며
인간은 누구나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생존? 번식? 조까 그런거 없어요.
개무식한 과학자 헛소리입니다.
'악기를 울릴 수 있는 진짜는 하나밖에 없다'는 진술을
한 명의 어떤 사람이라고 받아들인다면 제가 갑갑해서 돌아가십니다.
꽃은 한 순간에 피고
천둥은 한 순간에 소나기를 토해내며
벼락은 한 순간에 하늘에서 땅까지 때리는 것입니다.
미학이란 원래 하나의 극적인 시공간의 지점을 찾는 거에요.
한 여자, 한 남자 누구 아무개 이런 소리 하면 깝깝한 거구요.
그게 상대어에요.
인간들은 완전성을 꿈 꾸는 것이며
초딩은 장미꽃 해바라기꽃 할미꽃 제비꽃 접시꽃 무슨꽃 모아서
플러스 요법으로 완전성을 탐구하는 것이며
어른은 무슨 꽃이든 그 꽃의 씨앗을 심어 다시 씨앗이 태어날때까지
그 시간적 1사이클에서 완전성을 찾는 것이죠.
이건 껍질을 깨부수고 내부에서 끌어내는 마이너스 요법입니다.
이꽃 저꽃 수집하는 사람은 그 플러스로 절대 완전성에 도달하지 못합니다.
어떤 하나의 시작부터 끝까지 기승전결의 전체과정을 추적해야 완전성에 도달합니다.
뛰어난 감독은
이 선수, 저 선수 중에서 좋은 선수 찾으려들지 않습니다.
김성근 감독이라면
어느 선수든 그 선수의 가장 완벽한 밸런스를 1초만에 찾아냅니다.
그 차이를 말하는 겁니다.
모르시겠어요?
바보 감독 - "메시가 완벽해. 메시가 있어야 우승해."
좋은 감독 - "차두리라도 내가 완벽한 밸런스를 짚어주면 능력을 발휘할 수 있지."
둘 다 완벽이라는 단어를 쓰지만 다르게 씁니다.
바보감독은 상대어를 쓰고 좋은 감독은 절대어를 씁니다.
메시의 완벽은 다른 선수와 비교한 상대적인 완벽이고
차두리의 밸런스는 차두리 몸에 하나밖에 없는 절대적인 완벽입니다.
제가 '한 사람'이라고 하니까 한 명의 어떤 사람이라고 알아들으면 곤란입니다.
열 명이든 백 명이든 상관없어요.
진짜라면 그 사람이 누구든 상관없지요.
걍 마릴린 몬로라 칩시다.
"100명의 헐리우드 여배우 중에서 마릴린 몬로가 가장 완벽해."
.. 이게 초딩이죠.
"마릴린 몬로 인생의 여러 장면들에서 가장 기뻤던 한 순간이
나와의 만남 바로 그 순간이어야 해."
..이게 진짜죠.
당신이 어떤 여자를 만났을 때
그 만남이 그 여자의 인생의 모든 만남 중에서 가장 멋진 만남일 수 있느냐 이거에요.
그게 완전성이죠.
이런 부족한 물음에도
친절하게 답변을 해주신 덕분에 많이 배웁니다.
제가 여기에 와서 글을 읽고 항상 위안을 얻고 희망을 보는 이유는
여기에 답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게 한 사람이라는 말인가 하는 건
혹시나 하는 저의 어리석은 질문이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세상에 답이 없지요.
플러스적인 사고라면
프로가 되지 못하는 운동 선수의 삶은 의미가 없게 되죠.
김태희같은 여자를 사귀지 못한 모든 남자는 실패자가 되는 거죠.
그렇게 되면 세상이 답이 없죠.
누군가는 판사로 의사로 살아가는가 하면
누군가는 환경미화원도 하고
누군가는 경찰도 하고
또 누군가는 거리의 노점상을 할 수도 있고
완전성이란 건 거기서 무엇을 하는가가 아니고
자기가 있는 그 곳에서 어떻게 해내는가를 말하는 거겠죠.
판사나 의사가 되지 못해서 실패한 인생이 아니라
판사나 의사가 되어서도 더 출세하고 더 돈 많이 벌고
이렇게밖에 생각 못하면 그야말로 실패라는 거겠죠.
저는 EPL 축구를 즐겨 보는데
말씀하신 내용에서 바보 감독과 좋은 감독의 얘기를 보니
맨체스터 두 팀의 감독들의 모습이 떠오르네요.
맨유에서 끊임없이 자신의 스타일을 변화시키며 성공을 이어온
퍼거슨 감독은 이번 시즌 현재 주전급만 절반 이상을 포함해서
11명의 선수가 부상자 명단에 오르는 악조건 속에서도 우승 경쟁을 하고 있네요.
그러면서도 새로 선수 영입을 고려하지 않고 있으며
팬들은 맨유인력의 법칙이라는 말을 합니다.
반면에
맨체스터 시티의 만치니 감독은 끝없는 선수 영입에
현재 부상 선수조차 하나도 없는 상황인데요
아직도 선수가 모자르다고 하고 있더라구요.
거기에는 메시가 와도 또 뭔가 모자르다는 얘기가 나와겠죠.
그렇게 되면 세상에 답이 없게 되죠.
니체의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에서 발췌한 내용...
『신뢰관계가 있다면 담담해도 좋다
지나칠 정도로 친밀한 태도를 보이는 것.
이것저것을 구실삼아 상대와의 친밀함을 얻어내려 하고,
필요 이상의 연락을 빈번히 해오는 사람은
상대의 신뢰를 얻었는지 전혀 자신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이미 서로 신뢰하는 사이라면 친밀한 감정에 의지하지 않는다.
제삼자의 눈에는 오히려 무미건조한 교제처럼 보이는 경우가 많다. 』
완전성을 얻었다면
보는 데에 성공했다면
위에 글에서처럼 빈번하게 연락하려 할 필요도 없다는 거겠죠.
자주 보고 자주 만난다과 해서 이뤄지는 게 아니라
한 번을 봐도 완전성을 얻었다면 그게 성공이라는 거겠죠.
무튼 이번 답변글 덕에
마음이 가벼워졌습니다.
막혔던 게 시원하게 뚫린 기분입니다.
앞으로도 더욱 정진하도록 해야겠습니다!
다시 한번 고맙습니다.
이런거 생각해봐야 합니다.
자연에는 역설이 작동하므로 항상 의도와 반대로 됩니다.
인간이 생존을 꾀한다면 도리어 생존에 실패하고
번식을 꾀하면 오히려 번식을 못합니다.
생존경쟁, 번식경쟁 끝에 최종 우승자 한 넘만 생존하고
유전적 다양성 확보 실패로 전염병 돌아서 줄사망.
결과 - 인류 멸종.
지구상의 모든 바나나는 인공으로 종자개량한 한 종 뿐이라서
전염병 돌면 모든 바나나 전멸
지구인의 식탁에서 바나나 소멸. 완전퇴장.
인간이 생존한 것은 생존욕구 때문이 아니라
공동체의 중심으로 뛰어드는 본능 때문입니다.
인간은 공동체의 중심으로 들어설 수 있다면
폭탄을 들고 적의 토치카로 태연히 뛰어듭니다.
그게 인간이에요.
안 그럴거 같죠? 천만에요.
전태일은 생존본능 때문에 산화한 것이 결코 아닙니다.
스님들은 번식본능 때문에 산 중에서 저러고 있는거 아닙니다.
한국의 젊은이들 중 다수는 결혼도 안 하고 있어요.
박근혜의 번식본능은 어디로 갔다는 말입니까?
가족의 형성은 공동체의 중심으로 뛰어드는 하나의 방법이며
스님들이나 수녀님들 역시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겁니다.
그건 피해갈 수 없죠.
이건 절대어입니다.
공동체가 꼭 인간 공동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에요.
소로우처럼 호숫가에 혼자 살아도 그 안에 공동체는 있는 겁니다.
상호작용의 중심에 서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어디에 있든 그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상호작용을 꾀합니다.
혼자 있으면 자기 안의 전체
하루 중에는 오늘 하루를 관통하는 무언가.
아침에 뉴스를 보는 이유는 그 긴장이 하루를 관통하기 때문입니다.
커피를 마셔도 동일한 효과를 얻죠.
항상 바운더리가 존재하며 그 전체를 꿰어내려 합니다.
집단에 스트레스가 걸리면 그 집단의 전체를 꿰어내려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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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이기적으로 행동하는듯 하지만
결과적으로 상부구조인 공동체를 보호하는 행동을 합니다.
상부구조가 살아야 하부구조가 사는 거죠.
그리고 아마존 정글족을 관찰해보면 섹스는 그다지 비중이 없습니다.
섹스가 관심의 대상이 된 것은
현대인의 상상력 부족, 상호작용 부족 때문입니다.
아프리카의 부족민은 살아가는 환경과 매우 밀접한 상호작용을 하기 때문에
섹스에는 신경쓰지도 않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앞으로
더 고민하고 생각해야겠습니다.
타인의 프라이버시에 대한 꼴사나운 관심. 영국의 불치병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