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씨를 보는 한국인들 블랙호크다운이라는 영화가 있다. 내용은 없다. 백인이 유색인을 죽이는게 전부다. 한 사람 당 300명 정도 학살하는데 서너명이 1200명쯤 죽인다. 그들의 눈에는 한국인이 벌레로 보인 것이다. 그야말로 벌레죽이듯 아주 잘 죽인다. 놀라운 것은 영화에서 벌레취급 당한 한국인들이 태연하게 영화를 보더라는 사실이다. 한국의 벌레 평론가들도 마찬가지. 자기네가 벌레취급 당했다는 사실을 모르는듯 했다. 필자도 소리를 지르고 스크린에 물병을 던진게 전부다. 하여간 베트남 사람들도 자기네를 벌레 취급하는 람보 2편을 재밌게 봤다니깐 할 말이 없다. 모욕을 당했을 때는 적어도 모욕당했다는 사실을 인지는 해야 한다. 인종주의는 살아있다. 그런 영화를 보는 자가 트럼프를 찍는 것이다. 색계도 마찬가지다. 한국의 독립운동을 조롱하는 영화인데도 멍청한 한국의 관객들은 친일 박정희를 닮은 남자배우의 고추를 봤느냐만 논하더라. 그런 영화를 보는 관객이나 거기에 점수를 주는 평론가들이 내 주변에도 살아 있다. 무사라는 영화가 있는데 오랑캐는 멋있게 나오고 고려인은 거지로 나온다. 그런 영화를 보면서도 태연하게 극장에 앉아있을 수 있는 강심장의 한국인들을 존경해줘야 한다. 어떻게 그게 가능하지? 제 얼굴에 침을 계속 뱉아대는데도. 최종병기 활이라는 영화도 있다. 이 영화는 기분 나빠서 보지 않았다. 보지 않은 이유는 무사를 보고 크게 데미지를 입었기 때문이다. 활이나 무사나 보나마나 그 나물에 그 밥이 아니겠는가? 그저 한국인을 조롱하는게 전부인 것이다. 아가씨가 한국인을 조롱하는 영화라는건 안 봐도 뻔하다. 내가 화가 나는 이유는 그런 모욕을 당하고도 웃는 얼굴로 태연하게 돌아다닐 수 있는 강심장이 주변에 있다는 거다. 도처에 있다. 서울시내 쫙 깔렸다. 참으로 무서운 일이다. 이현세가 쓰레기인 이유는 일본찬양 만화를 그려놓고 반일만화라고 우기기 때문이다. 일본인은 꽤 멋있게 나온다. 일본이 언제부터 멋있었지? 그거 세뇌된 거다. 한국인은 핫바지로 묘사된다. 찌질이 조선인이 일본인에게 줘 터진다. 멋진 일본인이 총을 뽑는다. 바보 한국인은 맨손이다. 그렇다면? 죽은 거다. 상황종료다. 그런데 조선인 남자가 왜의 총알을 피했다거나 혹은 운이 작용하여 왜의 총이 오발되었다거나 그런 말도 안 되는 전개를 나더러 받아들이라고? 80년대까지 한국 만화의 반은 찌질이 재일교포가 잘난 일본인에게 한없이 줘터지다가 마지막에 '눈알을 한 번 세게 부라렸다'는 내용이었다. 그런 일본찬양 만화를 반일만화라고 우기며 멍청한 한국인 독자들에게 팔아먹는 거다. 참! 분명히 말하자. 80년대까지 세계는 인종주의가 지배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인종주의를 극복해야 한다. 조선왕조 시절 한국인의 일인당 국민소득은 일본과 별 차이가 없었다. 유럽이 똥밭에서 벗어나 사람 꼴을 한 것은 19세기다. 하멜의 표류기나 오페르트의 조선여행기는 한국을 긍정평가한다. 그런데 그 직후부터 갑자기 외국인 선교사의 태도가 돌변하여 한국인은 쓰레기라서 백년이 가도 희망이 없다는 식의 표현이 등장한다. 그 시점은 청일전쟁 직후다. 유럽인들은 침대도 없이 헛간에 짚풀을 깔고 살았는데 갑자기 신성로마제국 황제가 스페인 북부 시골지역을 방문하자 침대를 못 구해서 일대소동을 벌인 끝에 결국 황제도 헛간에서 짚풀을 깔고 잤다는 이야기는 16세기 이야기다. 유럽인이 사람행색을 하게 된 것은 근래의 일이다. 베르사이유 궁전에도 화장실이 없었을 정도다. 강희제 때 중국을 방문한 독일사신들은 황송해서 어쩔줄 모르겠다는 기록을 남겼다. 그러다 갑자기 유럽인들은 중국인을 경멸한다. 왜? 인종주의가 득세했기 때문이다. 대대적인 인종주의 캠페인이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인종주의 사관에 세뇌되어 일본은 원래부터 잘나갔고 조선은 원래부터 가난했고 중국인은 원래부터 개돼지였다는 식으로 착각한다. 속은 건데. 2차대전때 미군은 독일군보다 신체가 작았다. 사진을 보면 알 수 있다. 몽골군은 같은 시대 유럽인보다 덩치가 훨씬 컸다. 지금은 한국인과 비슷해졌다고. 일본인은 키가 작았다. 왜? 못 먹어서 그렇다. 개인은 일본이 더 못살았다. 역사는 길고 한국과 중국이 움츠렸던 시대는 짧다. 제발 역사공부 좀 하자. 다른 나라 역사도 배우자. 한국인을 조롱하는 영화를 보며 넋빠진 표정은 짓지 말자. 올드보이 이후로 박찬욱 영화 안 본다. 그가 지성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올림픽에 마라톤이라는 종목이 있다. 이란을 모욕하는 이름이다. 마라톤이라는 이름을 쓰는 한 올림픽은 인종주의 혐의를 벗을 수 없다. 그리스는 선이고 이란은 악이라는게 올림픽 정신? 태연하게 밥이 넘어가는 사람과 말 안 한다.
다 아시겠지만 이런 이야기는 의도를 가지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
올드보이는 원작만화와 거의 관련이 없습니다.
원작만화는 근친상간 내용이 없습니다.
원작은 초딩 음악수업때 노래를 불렀는데
주인공이 감동해서 눈가에 눈물이 맺혔기 때문에
7년간 가둔 걸로 되어 있습니다.
인간성이라곤 없는 메마른 인간이 되려고 했는데
무심코 인간적인 행동을 해버려서
인간성이 있다는 증거를 들킨게 창피해서.
모든것이 예술이 된다고 생각하지 않고, 인간을 존엄하게 묘사하는것만 예술이 될수 있다고 생각하는 개인입니다. 그런류는 모두 '오락'이죠. 영화팟캐스트에서도 영화관련자조차 박찬욱이 감정적으로 문제가 있는것 같다고 하던데요. 어쨋든 저는 올드보이의 스토리만 들어도 치가 떨려서 못보겠고, 출연배우에 대해서도....
어릴때 일본추리 소설을 많이 읽었는데, 인간이 할 수 있는 온갖종류의 끔찍한 범죄들이 묘사되죠. 일본인의 숨은 마음인듯....
영화제작관련 스텝들과 이야기해보면 몇몇
감독들 빼놓고 대부분은 한국인의 잠자는 의식을
깨우기위해(특히지식인) 의도적으로 욕먹을
각오하고 연출한다는군요. 변태적인 연출 또한
이미 왔거나 다가올 한국사회의 고발이라
하더군요. 이또한 욕먹을것 각오하고.
.
.
외냐면? 제작비가 충분치 않음으로...
이 영화나 올드보이를 보고
변태운운하는 초딩들은 대화상대가 아닙니다.
번짓수를 잘못 짚은 거.
저는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겁니다.
한국인 조롱하는 영화...
박찬욱 감독이 그런 의도를 가지고 만들었다 라는 얘기인가요?
아니면 박찬욱 감독은 그런 의도를 가질 수밖에 없는 사람이라는 뜻?
또는 자기도 모르게 한국인을 조롱하는 영화를 만들었다?
박감독이 jtbc 뉴스룸에 나와서 하는 말
올드보이에서 "미도"의 존재감이 너무 없어서
"친절한 금자씨"부터 여성주의에 눈을 돌렸다 그러던데요?
이번 영화도 여성주의 시선으로 만들었다 라고 하더군요.
그 말을 듣고 난 뒤 아가씨를 보았는데, 조롱이라는 느낌은 안 생기더라구요.
이번에 김민희 불륜을 가리켜 동렬 선생이 신분상승이라고 하셨지요?
영화속 김민희는 신분상승보다는 "자기애"라는 자기 감정에 자신을 맡기고 있다 라는 생각이 드네요.
어른들의 대화에 끼려면 공부를 해야 합니다.
맨 밑에 퍼런 색으로 쓴 것을 읽어보세요.
공부를 하라구요?
지금 이렇게 내 생각을 밝히면서 자문을 구하는 것!
이거도 공부 아닌가요?
조금 더 친절히 가르쳐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깨달음에 이르기 전에는 상대도 않겠다"
그러지 마시고요.
쉽게 설명해 드립니다.
아가씨를 보고 변태적인 묘사에만 눈이 간다면 공부가 덜 된 것
아가씨를 보고 왠지 모욕 당한 느낌이 들면 공부할 준비가 된 것
그 다음은 동렬님께 질문해 보세요.
노마드님...
제가 "아가씨"를 보고 변태적인 묘사에만 눈이 갔다 라고 생각하시나요?
노마드님도 아직 동렬님 생각을 잘 모르시는 거 같네요.
쉽게 설명해도 모르는데
어렵게 이야기하면 알아듣겠습니까?
예술이 뭐냐에 대한 관점이 다르면 대화가 안 되는 겁니다.
관점이 다를 때는 설명하는게 아니라 타격하는 겁니다.
대부분 쉽게 말해달라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쉽게라는 단어가 그 쉽게가 아니죠.
어려운 전문용어 하나 던져주면 쉽게 이해했다며 좋아하는게 한국인들.
아가씨 보고 평 다는 네티즌들은 '나 미장센이라는 단어 알아.'
이 단어를 써먹기 위해 평을 쓰는 거죠.
아가씨는 안 봤으니까 논외로 하고
올드보이를 제가 비판하니까 사람들이 정반대로 해석하더군요.
원작에는 근친상간 이런게 없어요.
화려한 미장센, 아름다운 화면, 그럴듯한 플롯 이런 것은
제가 20년 전부터 일관되게 비판해온 것입니다.
한국인 조롱하는 영화라는건 제가 의도를 가지고 씹는 겁니다.
무의식적으로 조롱할 수도 있는 거죠.
니들 이런거 좋아하지 않아? 이런거 해주면 니들 뻑가지.
람보 속편을 보고 모욕을 당했다고 느끼는 관객이 몇이나 될까요?
애초에 대화가 안 되는 겁니다.
관객의 수준을 좆으로 보니까 그런 영화를 만드는 거죠.
평론가들은 악평을 하고 관객들은 극찬을 하죠.
근데 박찬욱은 썩은 한국 평론가들에게 극찬을 받죠.
내 입장에서는 람보 속편에 열광하는 쓰레기 관객이 한국 평론가들이라는 거죠.
람보 1편은 아니고 2편부터는 빌어먹을 인종주의 영화이기 때문에
그건 영화가 아니라 범죄입니다. 패죽여야 되는 거죠.
이 정도만 하죠. 예술은 다른 겁니다.
퍼니게임을 보고 화를 내는 관객이 대부분인데 정상적인 반응입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영화를 안 본 거죠.
하여간 람보2를 만든 감독에게
관객을 조롱하려고 이런 똥을 만들었냐고 물으면
'나를 공격하는 거냐?' 하겠죠.
그러니까 "올드보이"의 경우
원작에는 어떤 자극이나 충격 없이도 독자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 힘이 있는데
박찬욱 감독이 원작을 그대로 영화로 만들지 않은 까닭은
관객들이 전혀 반응을 하지 않을 것이다. 해서, 조금 더 그럴듯한(알기 쉬운) 장치를 집어 넣었다 라는 거죠?
일본은 통하는데 한국은 안 통한다.
일본은 수준이 높은데 한국은 그렇지 않다.
이런 생각이 박찬욱 감독 머리 속에 있다 이건가요?
원작은 일본에서도 안 통합니다.
사설감옥이라는 아이디어가 신선할 뿐.
예술이 관객과 작가의 머리싸움이라고 본다면 박찬욱이 진거죠.
요즘 먹어주는 소재가 레즈비언이잖아 이런걸 들켰으니까.
올드보이 원작은 인간의 본성에 대한 탐구인데
영화는 그냥 시시한 복수극입니다. 액션이 괜찮긴 하죠.
그냥 눈요기나 하라고 만든 아저씨용 상업영화를
극찬하는 한국의 기이한 평론계 풍토를 제가 씹는 거죠.
예... 잘 가르쳐 주셔서 고맙습니다.
싸구려 영화를 만드는 감독
눈요기 영화를 극찬하는 평론가
그 평론을 보고 좋은 영화 봤다고 생각하는 관객들 가운데 저도 들어 있었군요.
근본적으로 예술에 대한 관점의 차이가 있습니다.
아카데미파와 인상주의파는 서로 인정하지 않는데 해결이 안 됩니다.
물론 아카데미파 그림이 다 쓰레기는 아니죠.
근데 그거 쓰레기 맞습니다.
아니 그림이 아닙니다.
그림이 뭐냐에 대한 정의가 다르다는 거지요.
영화보고 재미타령 하는 사람과는 대화 안 합니다.
그림을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는둥 이런 소리 하는 똥들과 대화해야 합니까?
명작을 보면 감동이 밀려온다는 쓰레기들과 대화해야 합니까?
감동이 밀려왔으면 당연히 쓰레기죠.
절대 화해할 수 있는 어떤 지점이 있는 건데
뭐 무명감독이 그딴거 만들었다면 제가 씹지 않지요.
돈 벌겠다는데 아 먹고살겠다는데 제가 왜 말리겠습니까?
근데 뽕짝하는 사람도 가수일까요?
아마 가수라고 대답하는 사람이 많을 겁니다.
왜냐하면 그래야 잘난척 하는 가수들에게 재갈을 물릴 수 있으니까.
서로 상대방을 견제하는 수단을 쟁취하려는 거.
하여간 올림픽 정신이 인종주의라는 사실은 누구나 아는 거.
쿠베르탱은 백인의 우월성을 입증하려고 그런 일을 벌인 거.
이상이 고결할수록 더 오점이 없어야 한다는 거.
그래서 절대 화해할 수 없는 어떤 지점이 있는 겁니다.
그 지점이 예술의 소실점이 됩니다.
그 한 지점을 건드려 계 전체를 통제할 수 있다는 거.
하여간 홍상수 김민희 사건만 해도 대중들의 의도는
연예인이나 잘난척 하는 사람들에게 재갈을 물려 통제하려는 의도가 있는 거고
반대로 저와 같은 사람들은 그 대중들에게 재갈을 물려 통제하려는 의도가 있는 거고.
뽕짝이라도 가수다. - 대중의 권력을 행사하여 예술가를 통제하려는 의도.
뽕짝이면 쓰레기지. - 대중을 통제하여 한국의 예술을 세계최고로 단련하려는 의도.
천번 때리면 단이고 만번 때리면 련이라고 하던데
박찬욱이 천번 만번 두들겨 맞은건 아니죠.
하여간 제가 스필버그 비판할 때는 잘 납득하던데
스필버그는 외국인이라 씹어도 괜찮은 거?
"월등한 인종인 백인종에게 다른 모든 종족은 충성을 바쳐야 한다". . 쿠베르탱 어록
박찬욱은 이야기의 소스를 일본의 작품에서 가져온다.
일본에 많이 의지한다.
올드보이도 근친상간이라 할 수 있는데
우리나라 이야기는 아니다.
모르고 한 아빠와 딸의 관계,
일본 이야기이이다.
이십대초반에 올드보이를 보고 아빠를 멀리했다는
친구들 이야기 많이 들었다.
나도 올드보이 이후로
박찬욱것은 거들떠도 안 본다.
현대에는 모더니즘
모든 장식을 없애는
미니멀리즘으로 가는 데
이번 영화는 왜색이 짙고
로코코풍, 귀족풍의 장식이 달려있다.
시대에 역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