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성이란 사건의 흐름안에서 제 역할을 해내는 것이다. 총은 총알을 발사해야 완전하고
이쑤시개는 이를 쑤셔야 완전하고 보스는 의사결정을 해야 완전하다. 에어컨은 찬공기를 뱉어야 완전하고,
마우스는 커서를 움직여야 완전하다. 존재는 작용에 반작용해야 완전하다. 반작용하지 못하는 즉,
그것은 무존재다. 반응하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다.
사건의 관점, 일의 관점에서 모든 존재는 기능해야 하고, 모든 기능은 A에서 B로의 배달이다.
대통령은 민의를 받아 정책을 배달한다. 보스는 외부환경을 받아 의사결정을 부하에게 배달한다.
외부환경에 대응하지 않으면 망부석처럼 의사결정을 하지않으면 보스가 아니다.
민의를 대표하지 않으면 대통령이 아니다. 형식이 내용을 결정하고 기능이 존재를 결정한다.
아뿔싸, 우리는 이를 쑤시는 역할을 하는것을 이쑤시개로 부르기 시작했고, 사람사이에서 통화를 가능하게
해주는 것을 전화기로 부르기 시작했다.
책은 정보를 인간에게 배달한다. 정보가 없으면 책이아니고, 인간이 볼수 없으면 역시 책이 아니다.
마우스는 손과 커서 사이에 있다. 커서를 움직일수 없으면 마우스가 아니고, 손이 닿을수 없으면 마우스가 아니다.
전화기는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사이에 존재한다. 음성을 받을수 없으면 전화기가 아니고 음성을 들려즐수 없으면
역시 전화기가 아니다.
완전은 더 강한총이아니고, 더 많은 돈이 아니고, 사건의흐름에서, 일의 질서에서 제대로 배달을하고 있느냐
제대로 에너지가 연결되느냐의 문제다. 돈은 시장에서 돌아야 완전하고, 총은 총알을 발사해야 완전하다.
완전은 공간에 없고 시간에 있다.
부하라는 놈이 있는게 아니고, 보스에게서 의사결정을 받아서 일을 집행하면 그것이 부하다.
보스라는 놈이 있는게 아니고, 외부환경에 대응해서 의사결정을 부하에게 전달하면 그것이 보스다.
내용은 없고, 질서는 있다. 배달하면 완전하고 배달하지 못하면 불완전하다.
아무것도 배달하지 않으면 그것은 없다. 인간은 무엇을 배달하는가?
김기덕 감독은 영화 "일대일"에서 이른바 역할론에 대한 의문을 제기합니다.
인간의 역할이 끝날 때 인간은 죽는것인지, 죽어서 역할이 끝나는 것인지.....
신과의 일대일 이라면
신이 배달하는 것은 무엇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