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읽기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6861 vote 0 2016.06.21 (23:51:55)

     

    “어진 사람만이 타인을 좋아할 수 있고 타인을 미워할 수 있다.”


    모진 사람은 깨진 돌처럼 마음에 모가 나 있으니 다른 사람을 다치게 한다. 반면 어진 사람은 모서리가 닳아 원만하니 다른 어진 사람과 어울려 큰 세력을 형성한다. 그러므로 어진 사람은 타인과 공존할 수 있다. 공자가 어진 사람만이 타인을 미워할 자격이 있다고 말한 점이 각별하다. 노자는 원수를 덕으로 갚으라고 했으니 어진 사람은 나쁜 사람도 사랑해야 한다는 말이다. 왜인가? 노자는 선악을 개인의 내면적 속성으로 보았으니 착한 사람은 내면에 선의 원소가 가득 들어차 있다는 식이다. 공자는 선악을 사회관계로 보았다. 선은 개인의 사유물이 아니라 집단의 공물이니 도시의 공원과 같다. 모두가 이용하는 공원에 누가 똥을 싸놓으면 안 된다. 모두가 이용하는 샘물에 농약을 타면 안 된다. 선은 사회의 시스템이므로 적극 지켜야 한다. 가수가 노래하고 있는데 행인이 방해하면 청중이 피해를 본다. 청중은 무대에 난입하는 행인을 제압하여 퇴장시켜야 한다. 선은 개인의 품성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가꿔가야 할 문화다.


    "참으로 인에 뜻을 둔다면 악한 것이 없어진다.“


    ‘어질다.’는 말을 단순히 사람을 사랑한다는 정도로 좁게 해석하면 곤란하다. 공자는 어진 사람만이 미워할 수 있다고 했다. 미워하는 것은 어진 것이 아닐진대 왜 미워하라고 말했겠는가? 선과 악을 대칭개념으로 이해한다면 좋지 않다. 악은 선의 반대가 아니라 선의 실패다. 세상에는 선과 악이라는 두 방향이 있는게 아니라 선이라는 한 방향만 있다. 실패를 미워함으로써 그 선의 방향을 성공시켜야 한다. 인생에는 성공과 실패라는 두 방향이 있는게 아니라 오직 성공이라는 한 방향이 있을 뿐이며 실패는 그 성공이 잠시 미뤄진 것이니 재도전해야 한다. 등산과 하산의 두 방향이 있는게 아니라 등산이라는 일방향만 있고 하산은 등산의 일부다. 등산가는 있어도 하산가는 없다. 날아가는 총알은 있어도 돌아오는 총알은 없다. 역시 선을 개인의 내면적 속성으로 본 것이 아니라 사회관계로 본 것이다. 배가 고프면 다툼이 일어나니 곧 악이다. 배가 부르면 다툼을 멈추니 곧 선이다. 음식이 남아돈다면 악당도 싸울 마음을 잃는다. 인류의 생산력이 증대하면 악은 소멸한다. 그것이 참된 인이다. 개인의 도덕적 수양보다는 사회관계를 바로잡음으로써 선에 이른다. 필요악이라는 말이 있다. 선을 위해 악이 필요한 지점이 확실히 있다. 그러나 큰 틀에서 보면 역시 필요악은 없다. 도둑의 폭력을 제압하는데 경찰의 폭력이 쓰이지만 본질은 역시 선의 실패다. 폭력을 쓰지 않는 다른 방법으로 도둑을 제압하는데 실패한 것이다. 필요악을 정당화 해서는 안 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단히 선의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부와 귀는 사람들이 바라는 것이나 도道로써 얻은 것이 아니면 누리지 않는다. 빈과 천은 사람들이 싫어하는 것이나 도道로써 얻은 것이면 피하지 않는다. 군자가 인을 버린다면 어떻게 명성을 이루겠는가. 군자는 밥먹는 동안에도 인을 어기지 않는 것이니 황급한 때에도 인을 지키고, 위급한 때에도 인을 지켜야 한다."


    사람을 사랑하는 작은 인이 아니라 신과의 일대일에서 의사결정하는 큰 인을 말하는 것이니 곧 ‘도道로써 얻은 것’이다. 모든 의사결정에 인이 쓰인다. 구조론으로 보면 ‘질은 결합하고, 입자는 독립하고, 힘은 교섭하고, 운동은 변화하고, 량은 침투한다.’ 인은 어떤 일의 착수에 있어서 첫 번째 의사결정 곧 질의 결합이다. 밥을 먹을 때라도 숟가락과 결합해야 하고, 길을 나설 때라도 신발과 결합해야 한다. 인이 쓰이지 않을 때가 없다. 그러한 자세를 일관되게 견지해야 한다. 인위적인 인을 버려야 한다는 도교의 주장이 있으나 착각이다. 인은 자연법칙이니 자연의 작동원리라 오히려 무위자연과 맞다. 노자의 천지불인은 틀렸다. 태양은 인을 베풀어 언제라도 지구에 햇볕을 줄 뿐 반대급부를 바라지 않는다. 세종은 한글을 베풀어 언제라도 이득을 줄 뿐 저작권을 행사하지 않는다. 진리는 생명을 베풀어 인간에게 인을 행사할 뿐 그 반대의 경우는 없다. 인의 작동원리는 에너지의 일방향성 곧 엔트로피다. 137억년 전 빅뱅때 우주에 에너지가 가득찼으니 에너지는 일방적으로 베풀 뿐 그 반대의 경우는 없다. 회수하는 것이 없다.


    "나는 어진 것을 좋아하는 이를 보지 못했고, 모진 것을 미워하는 사람도 보지 못했다. 어진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면 다행이겠으나, 모진 것을 싫어해도 어진 것이 행해져 모진 것이 내 몸에 달라붙지 못하게는 한다. 하루를 어진 것에 쓰는 사람이 있겠는가? 나는 그것에 힘이 모자라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그런 사람이 있을 것이나 나는 아직 보지 못했다.“


    단지 선을 좋아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적극 악을 미워해야 하며 현장에서 그것을 실천해야 한다. 그런 사람은 현실에 없다. 타인과 공존하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공자는 단지 착한 사람을 찾아다닌 것이 아니다. 공자에게는 선을 현장에서 실현할 수 있는 기술자가 필요했다. 그 기술을 갖춘 사람은 없지만 그것을 갖춘 팀은 있다. 안회가 그 마음씨로 어진 사람이 되고, 자공이 그 지혜로 모진 것을 미워하고, 자로가 그 용맹으로 모진 사람을 처단하면 된다. 공자는 안회와 자공과 자로가 합쳐진 완벽한 인격을 찾으려고 했다. 그런 사람은 현실에 없지만 어딘가에 있다. 역사 속에 있고, 세월 속에 있고, 위대한 문명의 진보에 있다. 선을 추구함이 최선이나 악을 미워함도 차선이 된다는 대목이 각별하다. 선을 추구함은 발명으로 인류에게 혜택을 주는 것이니 스티브 잡스의 아이폰이 그러하다. 악을 미워함은 독재타도로 일베충의 발호를 막으니 오유가 하는 일이다. 세종은 어진 것을 좋아했고 이순신은 모진 것을 미워했다. 선을 좋아함은 꽃을 심음과 같고 악을 미워함은 잡초를 제거함과 같다. 먼저 심고 다음에 가꾼다.


    “사람의 허물은 그 사람이 소속된 당파에 따라 정해지니 일의 경과를 보면 그가 인자인지 아닌지 알 수 있다.”


    어진 사람인지 모진 사람인지는 그 사람의 소속이 진보냐 보수냐에 따라 판정된다. 진보는 어질고 보수는 모질다. 진보와 보수의 일하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진보는 자연의 순리에서 이득을 취하고 보수는 남의 것을 빼앗는다. 진보는 잘못을 저질러도 역사의 확률 속에서 용해된다. 다양한 진보실험의 시도 끝에 인류의 나아갈 큰 방향이 정해지기 때문이다. 진보의 실패는 실험결과의 축적이니 나쁘지 않다. 반면 보수는 남의 것을 빼앗으므로 성공할수록 실패한다. 실패한다 해도 인류 전체의 성공확률을 높이는 방향으로 기동하면 진보이고, 성공한다 해도 성장 잠재력을 빼앗으면 보수다. 역시 공자가 선악개념을 개인의 내면적 속성이 아니라 사회관계로 보고 있음이 각별하다. 구조론과 통하는 관점이라 하겠다. 선악이 내면의 속성이면 수양하고 노력해야 하지만 사회관계라면 밀당을 해야한다는 점이 다르다. 긴밀한 상호작용이 사회의 선을 높인다. 실내에서 담배 피우지 말라고 애연가를 괴롭히는게 선이다. 까칠한 마음이 선일 때가 많다. 사회관계 총량을 높이는 방향으로 기동하면 선이다. 공자는 인자한 시골 할아버지가 아니라 까칠한 인권운동가다.


    “선비가 도에 뜻을 두고도 남루한 옷과 나쁜 음식을 부끄러워한다면 더불어 의논할 사람이 못된다.“


    도는 일이니 선비는 일 자체의 되어가는 결을 따른다. 일은 기승전결로 이어지며 그 사이에 고저장단으로 펼쳐가며 온갖 다양한 색깔을 만들어낸다. 넓어지고 좁혀지며 빨라지고 느려진다. 일로 불행해지고 혹은 일로 비참해지며 혹은 일로 행복해지고 혹은 일로 존엄해진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허상이다. 일의 결과일 뿐이다. 진짜는 일 그 자체의 되어가는 모양새다. 일 자체의 가쁜 호흡이다. 에너지를 가지고 기세좋게 치고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므로 일의 결과만을 평가하는 타인의 시선에 신경쓴다면 미처 일을 깨닫지 못한 것이다. 진짜라면 결과에 신경쓰지 않고 일의 에너지 활력에 주목한다. 때로는 남루한 옷과 거친 음식이 도리어 활력이 된다. 좋은 옷을 입고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활력이 없다면 죽은 것이다. 도의 본의는 세상과 상호작용하는 것이니 긴밀하게 밀당하는 것이다. 자극해야 한다. 좋은 옷을 유행시켜 세상을 자극하기도 하지만 빌 게이츠와 잡스는 나쁜 옷으로도 세상을 자극한다. 어느 쪽이든 큰 뜻을 일으켜 의분으로 세상을 자극함만 못하다.


[레벨:10]다원이

2016.06.22 (04:39:15)

읽을수록 힘이 나는 글입니다.
[레벨:8]펄잼

2016.07.07 (00:17:34)

감사합니다.
List of Articles
No.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공지 설의 어원 김동렬 2024-12-25 8637
3552 사랑 119, 사랑의 통제권 1 김동렬 2016-06-27 5725
3551 대화가 끝나는 지점 image 3 김동렬 2016-06-23 7282
» 논어 더보기 2 김동렬 2016-06-21 6861
3549 사랑 118, 결단의 에너지 1 김동렬 2016-06-21 6438
3548 서세원과 조영남 2 김동렬 2016-06-20 7108
3547 구조론의 원점 김동렬 2016-06-17 6208
3546 구조론의 출발 3 김동렬 2016-06-16 6225
3545 사랑 117, 낚이지 말고 낚아라 1 김동렬 2016-06-16 6097
3544 이스터 섬의 진실 image 1 김동렬 2016-06-14 7186
3543 최초에는 최초가 없다 image 김동렬 2016-06-13 6105
3542 인지혁명이 시작되다 image 1 김동렬 2016-06-13 6970
3541 사랑 116, 쾌락과 고통 image 4 김동렬 2016-06-13 6007
3540 무속과 종교의 차이 image 1 김동렬 2016-06-10 6769
3539 인생의 의미는 있다 image 1 김동렬 2016-06-10 6213
3538 역사는 종교로부터 시작되었다 image 6 김동렬 2016-06-09 7052
3537 공자의 최종결론 image 1 김동렬 2016-06-08 6407
3536 한국인에게만 있는 것 image 김동렬 2016-06-08 6485
3535 한국이 강한 이유 image 김동렬 2016-06-07 6686
3534 사랑 115, 나를 키우는 것이 정답이다 2 김동렬 2016-06-07 6372
3533 율곡의 천도책 image 3 김동렬 2016-06-06 65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