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는 진보하고, 종교는 털린다. 종교가 털리는 이유는 잘 해서다. 잘 해 주었고 그래서 털리는 것이다.
일하는 존재는 다섯이다. 정보> 만유> 생명> 인류> 세력(팀)/개인
정보가 처음이고 만유가 나중이다. 만유가 처음이면 생명이 나중이고, 생명이 처음이면 인류가 나중이다. 인류가 처음이면 개인이 나중이다. 그리고 그대가 마지막이다. 지금 사유하고 있는 "나"가 마지막이다.
처음과 나중 사이에 구멍이 있다. 강물과 같고 젖줄과 같다. 나중이 처음을 착취하는 젖꼭지가 있다. 이 구멍이 다섯이다. 이 다섯을 발견하고 바루어 조율하는 것이 인류의 일이다.
인류의 일은 채집> 수렵> 농경> 산업> 정보로 전개하여 발달하고 있다. 정보까지 완성하면 끝이다. 다섯 구멍의 조율을 끝내는 것이 정보시대 일의 완성이다.
종교는 인류가 팀을 세력을 이루어 일하기 시작한 처음에 발명한 것이다. 그 발명의 모든 것이다. 집단의 성취를 종합하여 묶어 둔 것이다. 채집과 수렵의 시대를 지나면서 종교는 털린다. 종교를 털어 정치를 내고, 종교를 털어 학교를 내고, 종교를 털어 경제를 내었다. 인류의 일은 진보했고, 종교는 털렸다.
마지막이 남았다. 종교는 털려야 한다. "지록위마"를 용인하여 주는 것은 어제까지다. 사슴은 사슴이고 죽음은 죽음이다. 죽은 자의 부활은 없다. 구라다. 사슴을 말이라 한 것은 소속을 분명히 하는 반란의 절차일 뿐이다. 폭압의 제국을 전복하고 사랑의 천국을 건설할 선의를 품었다고 해도 구라는 구라다. 사슴은 사슴이고 예수는 죽었다.
일은 주문이 있어야 시작된다. 주문> 투자> 생산> 유통> 소비다. 완성을 주문해야 한다. 진리를 주문해야 한다. 진보를 주문해야 한다. 존엄을 주문해야 한다. 존엄을 주문해야 종교다. 지나간 그때의 존엄이 아니다. 지금 오는 시대에 맞는 존엄을 주문해야 오늘의 종교다.
모세는 노예된 부족을 이끌고 독립의 대장정을 떠나야 했다. 인두껍을 쓴 모든 신, 아버지와 형의 신들에 목을 치고 시작했다. 모세와 대화하는 신, 하나만 남기고 모든 신을 폐했다. 강한 신들로 부터는 도피했고, 약한 신들은 정복했다. 모세에게는 민족을 이끌어 도피할 광야가 있었다. 정복할 미개척지가 있었다. 예수는 로마와 제사장에게 이중으로 복속되고 가두어진 민족을 깨워야 했다. 우상은 치고, 허언은 멸했다. 예수와 실천할 하나의 말만 남겼다. 사랑이다. 예수는 이야기가 되었다. 정보의 광야로 도피했다. 정복할 미개척지를 창조했다. 인류이 바깥뇌에 장구한 사랑 이야기를 심은 것이다.
모세도 예수도 존엄을 주문했다. 그때 그 시절 버전으로 말이다. 오늘은 내일에 맞는 스마트 버전 존엄을 주문해야 한다. 모세도 부다도 예수도 잘 해주었다. 그땐 그 정도가 놀라울 수 있는 최대한 이었다. 그리고 성공했다. 그래서 오늘 털리는 것이다.
정보시대다. 이젠 부족신 종교나 사랑이야기 종교는 주류가 아니다. 문화유산일 뿐이다. 무형문화재다. 그때 종교는 그때 사람들이 붙들고 살도록 두고 가던 길 가야 한다.
정보부터 개인까지 다섯 젖줄의 조율이 가능한 시대가 열렸다. 발견의 경전은 지금도 작성되고 있다. 모세라면 부다라면 예수라면 촌각도 지체하지 않고 달려 들고 파고들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경험한 모험담을 신명나게 떠들어 줄것이다. 설레이지 않는가? 두근두근하지 않는가?
뇌가 있거든 각성하라. 존엄을 주문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