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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6]id: 15門15門
read 8590 vote 0 2013.10.27 (22:39:03)

무제.jpg


저는 이 '계륵'이라는 말을 중국집에 가서 내뱉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짜장면을 시킬까? 짬뽕을 시킬까?


꽤나 성격이 우유부단했던 저인지라 이 별것아닌

고민으로 기다리다 지친 친구들의 원성을 듣기도

했었습니다.


그런데 이 고사의 주인공이었던 조조도 꽤나 고민을 

했던 모양입니다. 바로 이


게륵3.jpg 


닭갈비를 두고 말이죠. '먹자니 별거 없고 버리자니 아깝고...'


흔히 '계륵'이란 이렇게 의사결정의 난맥을 의미합니다.

어떤 것을 선택하기에도 힘든, 이른바 50/50의 가치를

갖는다고 인식되어지는 선택지 사이에서 종종 발생하는

상황입니다.


때문에 고민하기도 힘들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어떤 것을 선택해도 나쁠 것 없는 상황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모든 선택지의 가치가 동등하다고 인식되기

때문이죠.


그렇기 때문에 '계륵'같은 상황에서 중요하게 대두되는

것이 바로 선택자 자신의 의지입니다. 즉 자신의 의지로

선택하는 셈이니까요. 


그러므로 운명의 순간 흔히 내뱉는 

'자신의 의지로 인생을 결정한다' = 의사결정 이라는

맥락이 성립된다고 믿어집니다.


근데 하나 여기서 집고 넘어갈 것이 있습니다.

모든 선택지의 가치가 똑같다면 왜 우리는 '계륵'

같은 상황에서 고민을 할까요? 무엇이든 선택해도

나쁠 것 없는 상황인데 말입니다.


게다가 고사의 주인공이자 간웅으로 칭송받는 

조조조차도 상당히 고민을 했다는 맥락. 

역시 의사결정이란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근원일까요?


바로 이부분에서 제가 그전에는 놓치고 있던

부분이 보였습니다.


그것은 바로 '계륵'을 낳은 전제입니다.


제가 중국집에서 짜장과 짬뽕으로 갈등하기전

제가 왜 중국집에 왔는지를 되짚어봤습니다.


'난 어디든 가도 괜찮아.'


이게 바로 제가 한 말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말은

친구가 중국집에 가자고 결정을 내리자 제가 거든

말이기도 합니다.


결국 제가 짜장과 짬뽕으로 갈등을 하게 된 것은

제가 식사할 곳을 결정하는 의사결정을 미루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미루어진 의사결정은 사라지지 않고

그대로 짜장과 짬뽕으로 제 앞에 다시 나타난

것이죠. 


그때문에 저는 50/50의 가치를 가지는 선택지

사이에서 고민을 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실

둘다 제겐 별로였기 때문인거죠.


그러므로 제가 가고 싶은 음식점을 결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궁극적으로는 짜장과 짬뽕

어느 것을 선택하더라도 저는 실패인 것입니다.


고사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유비가 한중을 침략해 차지하자 발끈해서 

전장에 뛰어든 조조는 고전하다가 '계륵'이란

말을 내뱉습니다.


이는 

어떤 것을 선택해야하나? 라는 말이 아니라

이 상황은 실패이구나. 라는 탄식인 것이죠.


그 이유는 한중을 전장으로 결정한 것은 조조가

아닌 유비였기 때문입니다. 유비의 전장에서 조조가

뒤늦게 온갖 의사결정을 한 들 이미 뒤늦은 의사결정

이자 실패인 셈입니다. 


때문에 조조는 '계륵'을 버림으로써 실패를 최소화하고

유비의 전장에서 벗어나는 결정을 내린 것입니다.

이는 결코 자신의 의지가 아닐겁니다. 왜냐하면

누구나 실패를 선택하고 싶진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실패를 선택하는 건 선택지에 실패밖에 없기

때문인 것이죠. 그리고 그 실패란 의사결정을 미루거나

하지 않아 '계륵'을 낳은 질을 장악하지 못한 것이고

'계륵'이란 바로 본인에게 실패를 알리는 일종의 징후라는 

생각입니다.


즉 '계륵'이란 상황이 본인에게 들이닥칠 땐 이미

늦다는 것이죠. 왜냐하면 본인의 의지로 이미 의사결정을

미루었으니까요. 그 상황에서 본인의 의지는 대공황

시절 이미 휴지조각이 되어버린 주식과도 같은 것이겠죠.


결국 의사결정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본인의 의지가

아니라 상황의 방향을 읽어낼 수 있는 관점이 아닐까 합니다.

오히려 본인의 의지란 이러한 관점에 있어 방해가 되는

부분이 많다고 생각됩니다. 일종의 자기개입이라고

할까요?


여기서 저는 의사결정이라는 언어에 좀더 깊숙히

다가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의사결정이란 본인의 의지로써 임의로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공간의 흐름, 시대의 방향, 또한 그 시대를 이끌어가는 신의 

의지를 읽어낼 수 있는 연역의 관점을 가지고 그에 부합하지

못하는 것들을 골라내고 남아 있는 것은 취하는 일련의

필연적인 과정이라는 생각입니다.


즉 의사결정이란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아닌 것을 골라낸 뒤 

맞는 것을 추리는 것에 가깝지 않을까하는 느낌을 갖습니다.


제가 오늘 갑자기 계륵에 대해 꽂힌 것은

흔히 의사결정이라는 것이 너무 결정하기가

어려워 큰 부담이나 스트레스로 작용할 때가 많아서

'나는 가만히 있는데 왜 자꾸 세상은 날 괴롭히지?'

란 우울이 도발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해보니 저렇게 생각이 되네요.

'내가 가만히 있기 때문에 자꾸 세상이 날 괴롭히는 거구나."


내가 의사결정이 괴롭게 된 건 의사결정이 어렵기 때문이 아니라

그동안 의사결정을 미루거나 회피했기 때문이구나라는 결론이 

마음에 자리잡습니다.


때문에 이 우울이 가져다주는

'살아서 무엇하지?' 란 생각은...


결국 제 스스로를 제가

계륵으로 보아왔던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쇼생크_탈출.jpg


저에게 이런 계륵같은 상황이 왔다는 것은

꽤 늦었다는 말이겠죠. 그리고 이제 제가 선택해야할 

선택지는 아마도 실패밖에 없을 겁니다.


긴 방황 속에 제게 남은 선택지란 이것뿐입니다.


꿈을 갖고 살든가. 희망 없이 죽든가...


늦었지만 이제는 미루지 않고 피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끝으로 쇼생크탈출의 마지막 대사를 적어봅니다.



희망의 긴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자유로운 사람... 

무사히 국경을 넘길 희망한다... 

그를 만나 포옹할 수 있길 희망한다... 

태평양이 꿈속처럼 푸르기를 희망한다... 

나는 희망한다.. 

나는 희망한다... 



080320_007_soccer.jpg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3.10.27 (22:59:36)

수십 명의 부인군단으로부터

조앙 조삭 조비 조창 조식 조웅 조표 조충 조우 

조림 조곤 조거 조구 조상 조근 조현 조준 조간 

조승 조정 조경 조균 조휘 조무 (이상 아들)

청하장 헌효 헌목 조화 금향 안양(이상 딸 실제론 수십명 더 될듯) 

등을 얻은 조조는 


더 많은 미녀를 얻어 자식 백 명을 채우기 위해 

한중으로 진군했으나 어느날 곧휴가 서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계륵을 외치는데 훗날 사가들은 


프로필 이미지 [레벨:18]차우

2013.10.28 (00:16:43)

계륵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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