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록
read 4937 vote 0 2004.02.15 (11:48:57)

질문..

언어에 대한 관심이 좀 있으신것 같던데... 이종의 언어를 사용하는 두 명의 화자가 대면하지 않은 상태에서 온전히 소통하는 것이 가능한가요? 표정, 어조, 몸짓이 배제된 상태에서 온전히 텍스트만 가지고 말입니다...

질문이 너무 모호했군요... 정확히 묻고 싶었던 것은 다른 경험과 다른 세계관을 가진 두 사람이 완전한 소통을 하는 것이 가능한가였는데...가끔 의문이 들때가 있어서요. 내가 지금 이해하고 있는 내용이 저 사람이 말하고자한 내용과 몇 퍼센트나 들어맞는건지, 내가 하는 말을 저 사람이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답하여..

구조론적으로 말하면 정보를 전하는 쪽 A와 정보를 받아들이는 쪽 B는 동일한 복잡도를 가져야만 서로 소통이 가능합니다. 곧 우리가 전하는 언어나 기호들은 정보를 전하는 것이 아니라 실은 그 정보의 분해와 조립에 대한 규칙을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컨대 제가 한글파일로 100바이트의 정보를 순류님께 전송한다면 제 한글파일의 100바이트가 순류님 컴퓨터로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실은 내 컴퓨터에서는 아무것도 빠져나가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도무지 무엇이 전송되는가?

순류님 컴퓨터 안에서 한글파일을 불러들여서 조합하는데 관한 정보를 전달하는 것입니다. 즉 내가 가진 망치를 순류님께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담너머로 순류님을 불러서 망치를 보여주면 순류님이 자기집 헛간에서 망치를 찾아내는 것입니다.

즉 정보는 절대로 이곳에서 저곳으로 가지 않습니다. 무엇인가?

깨달음이 이와 같은 것입니다. 나의 깨달음을 타인에게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깨달아있는 당신의 의식 안에서 사용되지 않는 그것을 발현시키고 활성화시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깨달음이라고 말하는 거죠. 잠든 것을 깨우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깨달은 이 만이 깨달을 수 있는 것이며 모든 사람은 깨달아서 태어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언어로 정보를 전한다는 건 착각에 불과합니다. 표정, 기호, 매체, 도구, 언어들은 정보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정보를 분해, 전송, 재조립하는 규칙에 불과하므로 진정한 소통은 언어와 기호를 넘어서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체험한 것을 상대방도 이미 체험하고 있지 않다면 어떤 종류의 소통도 불가능한 거죠. 체험의 공유가 없다면 차라리 개와 대화하는 것이 빠를 것입니다. 반대로 체험의 공유가 있다면 언어를 넘어선 소통이 가능하지요.  

언어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원시어는 ‘이것, 저것. 그것’ 하는 식의 지시대명사가 90프로입니다. 이러한 방식의 의사소통이 가능하려면 거시기와 같아서 거시기를 거시기한 사람과만 의사소통이 가능합니다.

즉 거시기가 거시기 되지 않은 거시기와는 거기시가 안되는 것입니다. 아기들의 말도 그렇죠.

“엄마 이거”

이렇게 말하면 이것을 달라는 말인지 먹자는 말인지 버리라는 말인지 알 수 없죠. 동사가 없으니까요. 그러므로 체험의 공유가 담보된 즉 거시기가 거시기 된 거시기만이 거시기되어 소통이 성립하는 것입니다. 거시기란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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