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록
read 10503 vote 0 2004.04.30 (16:56:04)

자살은 인간만 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동물의 자살을 목격한 일이 있다. 우연히 다람쥐를 잡은 일이 있다. 도로변 시멘트로 된 수로에 빠진 다람쥐가 도망칠 곳이 없었던 것이다.

다람쥐를 잡아 작은 우유곽 속에 넣고 다시 박스에 넣은 다음 자전거 짐받이에 실었다. 다람쥐가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상자 속을 어둡게 해 주었다. 한참 후에 상자를 열어보니 다람쥐는 제 배를 물어뜯어 창자가 배 밖으로 나와 있었다.

다람쥐는 자살해버린 것이다. 아마 흔들리는 자전거 안에서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은 때문일 것이다.

인간이 자살하는 이유는 자살 유전인자가 있기 때문이다. 우울증이 그 연장선 상에 있다. 자살은 단순한 가치판단의 결과가 아니라 그 이상의 것이며, 때로는 치료를 받아야 하고 때로는 심리치료사의 상담을 받아야 한다. 주위의 적극적인 도움이 필요한 것이다.

동성애와 비슷하다. 인간이 비뚤어져서 죄를 짓는 것이 아니라 원래부터 동성애자로 태어난다. 자살도 마찬가지다. 원래부터 조울증 유전인자를 가지고 태어난다. 원래 동성애유전자를 가진 사람에게 이성애를 강요해서 안되듯이 조울증 환자 앞에서 막연하게 자살을 비난해서는 효과없다.

동물들도 자살을 한다. 북극쥐 레밍의 집단자살은 잘 알려져 있다. 그들은 무리가 늘어나면 갑자기 떼로 절벽 아래로 뛰어든다. 왜 그런 어리석은 짓을 할까? 그들이 반드시 죽을 목적으로 바다로 뛰어드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점은 때로는 그런 방식으로 빙하를 건너 새로운 땅을 찾아내기도 한다는 점이다. 즉 1만마리의 레밍이 바다로 뛰어들면 대부분 죽지만, 어떤 경우 그 중 10마리나 100마리가 이웃한 다른 땅을 찾아내기도 하는 것이다.

쥐는 모든 대륙에 고루 퍼져 있다. 즉 최초에 어떤 용감한 쥐가 죽음을 무릅쓰고 바다에 뛰어들어 북극을 지나 아메리카까지 헤엄쳐 간 것이다. 빙산을 타고 떠내려갔던 것이다.

수백만, 수천만, 수억마리의 쥐가 바다로 뛰어들었다. 그 중 극소수가 살아남았고 살아남은 쥐는 거기서 새로운 왕국을 열어제쳤던 것이다.

무슨 뜻인가? 어리석기 짝이 없는 쥐떼의 자살에도 알고보면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말이다. 마찬가지다. 인간의 자살에도 충분한 이유가 있다.

그냥 ‘자살하지 마라’ 이건 아니다. ‘자살해봤자 너만 손해다.’ 이것도 아니다. ‘사는게 죽는 것보다 낫다.’ 이것도 아니다. 자살 유전자를 가진 사람에게는 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 못할 수도 있다.

삶의 분명한 동기부여에 성공해야 한다. 오늘 하루를 사는 이유가 제시되어야 한다. 김기덕의 봄여름가을겨울에 그런 이야기가 나온다. 죄를 지은 주인공은 호흡을 멈추어 자살하려고 한다.

스님은 마루바닥에 쓴 경전을 칼로 새기라고 한다. 그것을 마저 완성시키라고 한다. 그것을 완성시키려는 의지 때문에 인간은 또 오늘 하루를 사는 것이다. 곧 미학이다.

우리의 삶은 언제나 미완성이며, 그 끝을 보고 싶다는 심리, 완성에 도달하고 싶다는 간절한 심리 때문에 오늘 하루를 살아내기에 성공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순간 그 순간순간의 완성을 찾아내고서야 살아내기에 성공할 수 있다.

오늘 하루의 완성, 올 한해의 완성, 내 삶의 총체적인 완성을 위해 노력할 때, 매 순간이 절절한 삶, 삶 다운 삶에 도달할 수 있다. 그 전체의 완성을 추구하는 것이 곧 이념이고 그 부분부분의 완성을 규명하는 것이 미학이다.

즉 인간은 미학 때문에 오늘 하루를 살아내기에 성공하는 것이며 이념 때문에 인생을 살아내기에 성공하는 것이다.

자살방지유전자도 있다. 자살방지유전자가 두드러지게 많이 발현되는 사람은 자살하지 않는 대신, 까불다가 사고로 죽는데 그렇게 죽는 숫자가 또한 자살자의 숫자와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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