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록

1) 달마이다.
2) 달마있다.
3) 달마같다.
4) 달마답다.
5) 달마하다.

이렇게 있다.

1) 달마이다.(이다/아니다)
2) 달마있다.(있다/없다)
3) 달마같다.(같다/다르다)
4) 달마답다.(속한다/배제된다)
5) 달마하다.(맞다/틀리다)

“달마가 서쪽에서 온 까닭은?” 이라는 질문은 많은 전제들을 가지고 있다. 즉 달마이다, 달마있다, 달마같다 등을 전제로 하고 있다. 그런데 과연 그 전제가 성립할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즉 달마아닐 수도 있으며 달마없을 수도 있다.

과연 달마일까?

잘 이해가 안되겠으므로 극한의 법칙을 적용해보자.

석가일까? 부처일까?

그래도 이해가 안된다면

예수일까?

예수이라는 논리는 토마스 아퀴나스 등의 삼위일체설이다. 즉 그는 예수(이다/아니다)에서 ‘예수이다’를 선택한 것이다. 그런데 요즘 양심적병역거부문제로 알려진 여호와의 증인은 ‘예수아니다’의 입장을 가지고 있다.

여호와의 증인은 ‘예수=하느님’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즉 예수는 예수(하느님)가 아니다. 즉 석가는 부처가 아니다. 즉 달마는 조사가 아니다. 달마는 달마가 아니다.

회교에서도 예수는 중요한 인물이다. 그런데 회교에서 예수는 여러 예언자들 중의 한 사람일 뿐이다. 곧 예수아니다. 예수가 하느님이 아닌 것이다. 예수는 예수가 아니다.

마찬가지로 힌두교에서도 석가는 중요한 신들 중의 하나이다. 힌두교에서 석가는 최고의 지위를 가진 신이 아니다. 석가는 비쉬누, 브라흐만, 시바신들에 비해서는 등급이 낮은 신이다. 즉 부처아니다. 부처는 부처가 아니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여라.)

그럼 무엇인가? 달마있다.(달마이다=× 달마있다=○)

여호와의 증인의, 회교의, 힌두교의 관점에서 보면 예수는 혹은 석가는 혹은 달마는 각각 하느님이, 혹은 부처가, 혹은 조사가, 혹은 최고의 지위에 해당하는 즉 이 모든 논리전개에 있어서의 제 1 원인이, 제 1의 대전제가 아니다.

말하자면 데카르트가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고 말했을 때의 그 ‘존재’가 아니다. 그렇다면 무엇인가?

우리가 부처님이나 혹은 하느님이나 혹은 그 어떤 종교적 대상을 말할 때 그 전개되는 논리의 제 1원인으로서, 즉 최고의 대전제로서, 최고권위자로서 '일자'를 내세우는 것이다. 예컨대 이런 것이다.

여섯살 꼬마 삼돌이과 삼순이의 대결

삼돌이 “철수가 그랬단 말야.”
삼순이 “울 엄마가 그랬단 말야.”  

판정 : 삼순이 승(엄마의 권위가 최고의 권위로 대접받음)

열살꼬마 갑돌이와 갑순이의 대결

갑돌이 “울 선생님이 그랬단 말야.”
갑순이 “울 엄마가 그랬단 말야.”

판정 : 갑돌이 승(갑순이 주장은 들어볼 것도 없음. 선생님이 최고로 먹어줌)

열다섯살 소년 철이와 영이의 대결

철이 “테레비에서 봤단 말이야.”
영이 “울 선생님이 그랬단 말야.”

판정 : 철이 승(테레비가 최고의 권위자임)

20살 소년 아제와 신비의 대결

신비 "이링공 뎌링공 하여.."
아제 “아니 도대체 누가 그딴 소리를 하던?”

판정 : 아제 승(이 단계에 와서는 누군가의 권위를 내세우면 무조건 패. 하느님 아니라 하느님 할배를 데려와도 안쳐줌)

최근 개미당에서 각축을 벌이고 있는 신비교와 빛이이땅교의 대결에서 과연 누가 승리할 것인지도 이렇게 뻔히 정답이 정해져 있다.   

각설하고 토마스 아퀴나스 등의 교부철학이 왜 3위일체설을 주장했으며 또 그것이 그 당시에 왜 문제로 되고 있었는가가 중요하다. 바로 그 지점에서 기독교가 대분열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그리스정교와 로마카톨릭이 갈라진 지점이 바로 그곳이다.

첫번째 갈림길 등장 곧 '이다/아니다'

결론적으로 달마아닐 수도 있는데 ‘달마가 서쪽에서 온 뜻은?’ 하고 묻는 사람은 달마아닐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배제하는 오류를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왜 귀납적 사고는 안되는가? 전제조건의 맹목적 긍정 때문이다.

아니 그들은 그 물음에 어떤 전제조건이 숨어 있다는 사실 조차도 알지 못한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예수가 하느님이 아닐 가능성, 석가가 부처가 아닐 가능성, 달마가 조사가 아닐 가능성.. 예수는 어떤 목수였고, 석가는 그냥 왕자였으며, 달마는 그냥 여행가였을 수 있다.

1) 달마이다.
2) 달마있다.
3) 달마같다.
4) 달마답다.
5) 달마하다.

의 전제들 중에서 지금까지 ‘달마이다’를 논의했다. 두 번째 단계 ‘달마있다’를 논의해 보자. 어쨌든 보리 달마라 불리는 사람은 실제로 있었다. 석가도 있었고 예수도 있었다. 즉 달마이다는 의심될 수 있지만 달마있다는 의심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천만에. 달마있다도 얼마든지 의심될 수 있다. 달마있다는 달마라는 실존인물의 생애를 의미한다. 그런데 우리가 알고 있는 달마는 전설 속의 달마이고 역사속의 실재 인물 ‘보디 다르마’씨와는 별로 친연성이 없다. (또는 친연성이 낮다.)

즉 우리는 다수가 합의해서 임의로 달마상을 창조해 내었으며, 실존인물 달마는 우리가 그 우리 마음속의 달마상을 창조하는 데 있어서 이름을 빌려준 것에 불과한 것이다. 예수나 석가도 마찬가지다.

각자는 각자의 마음 속에 예수나 석가상을 하나씩 창조하고 있으며, 그 창조의 작업은 개인적인 작업이기도 하고 인류의 공동작업이기도 하다. 이런 식으로 달마같다, 달마답다, 달마하다들도 역시 비판될 수 있다.

그렇다면 비판될 수 없는 것은 무엇인가? 뜰 앞의 잣나무이다. 말하자면 우리가 그 마음 속의 예수상을, 혹은 부처상을, 혹은 달마상을 창조함에 있어서 뜰 앞의 잣나무로 부터 그 이름을 빌리기로 하면, 뜰 앞의 잣나무가 곧 조사이고 부처이고 예수인 것이다.

절대로 의심할 수 없는 것은 무엇인가? 그 제 1원인의 존재 그 자체이다. 불멸의 진리가 존재한다는 사실 그 자체이다.

지구 상에 62억이 있다면 그 62억개의 달마상이 존재하는 것이며 그 62억의 달마상이 거대한 네트워크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인터넷이 아니라 '달마넷'이라 할 것이다. 제 1원인은? 달마넷의 존재 그 자체이다.

말하자면 2000년 전의 실존 인물 예수씨와 무관하게 예수넷이 존재하는 것이며 기독교도들에게 있어서 예수넷의 존재 그 자체가 제 1원인인 것이다. 기독교의 삼위일체설은 예수와 예수넷과 예수티즌들은 하나라는 것이다.

예수넷=예수=예수티즌은 하나다. 실제로 기독교도가 예수님께 혹은 하느님께 기도를 할 때 실제로 그 기도를 받는 대상은 2000년 전에 죽은 어떤 목수아저씨가 아니라 예수넷 그 자체이다. 2000년 동안 수많은 기독교도가 공동작업으로 만들어온 기독교의 전통과 그 전통으로 하여 얻어진 권위와 배후에서 그 모든 것을 가능케 한 바탕이 되는 진리의 어떤 속성에다 기도를 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석가=석가넷=석가티즌이 있을 수 있으며 또한 달마=달마넷=달마티즌이 있을 수 있다.

달마가 서쪽에서 온 뜻은? 달마가 서쪽에서 온 목적은? 나무가 씨앗을 퍼뜨리는 목적은?

나무가 원인이고 씨앗은 그 결과다.

여기서 ‘달마가 서쪽에서 온 목적은?’ 이라고 할 때 그 목적은 ‘위하여’이다. 즉 달마는 뭐뭐를 위하여 서쪽에서 온 것이다. 이것이 귀납적 사고이다.

위하여가 아니라 ‘의하여’이다. 달마에 의하여 달마넷이 만들어지고 달마티즌이 생겨난 것이다. 즉 달마가 달마넷을 건설하기 위하여 혹은 달마티즌을 모으기 위하여 서쪽에서 온 것이 아니라, 거꾸로 달마에 의하여 달마넷이 혹은 달마티즌이 생겨난 것이다.

즉 나무가 씨앗을 퍼뜨리기 위하여 꽃을 피운 것이 아니라, 거꾸로 나무가 꽃을 피웠기에 의하여 씨앗이 퍼뜨려진 것이다. 이것이 연역적 사고이다.

땅 속에 숨어있던 것이 거센 비바람의 할퀴기에 의하여 노출되어 드러나듯이, 우리 마음 속에 있는 달마가 그제 드러난 것이다.  

원점으로 돌아가서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은 무엇이오?(祖師西來意)”
“뜰 앞의 잣나무로다(庭前栢樹子).”

“잣나무 따위의 비유를 들어 말하지 마오.”
“나는 비유를 들어 말하지 않는다.”

“다시 묻소.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은 무엇이오?”
“뜰 앞의 잣나무로다.”

예의 선문답을 읽고 약간의 뇌가려움증을 느낀 사람은 이미 달마넷에 접속한 것이니 달마티즌이라 할 수 있다. 그대가 뇌가려움증을 느꼈다면 그대 안의 달마가 몸을 꿈틀거리며 깨어난 것이다. 아직 뇌가 가렵지 않다면 01410으로 다시 접속하시오.

하여간 스타크를 하려면 베틀넷에 접속해야 하고 리니지를 하려면 리니지월드에 접속해야 한다.

List of Articles
No.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270 학문은 인문학이다. 2004-06-11 4987
269 우연과 필연 2004-06-07 5188
268 위험한 라즈니시병 2004-06-07 7156
267 라즈니시 그리고 진짜와 가짜 2004-06-06 5220
266 “뜰 앞의 잣나무로다.” 2004-06-04 4654
» 달마가 서쪽에서 온 까닭은? 둘 2004-06-02 5387
264 달마가 서쪽에서 온 까닭은? 2004-06-02 7291
263 부처님 오신 날에 2004-05-26 4583
262 나쁜남자 이해하기 2004-05-24 5381
261 유교주의의 병폐와 한계 2004-05-04 6825
260 인간이 자살하는 이유 2004-04-30 10503
259 세상은 구조다 2004-04-27 5105
258 내가 누군가요? 2004-04-27 5341
257 매트릭스의 실패에 관하여 2004-04-22 5184
256 인생의 세 친구 2004-03-27 5169
255 인터넷의 쌍방향성과 문화권력 2004-03-25 4893
254 사마리아의 남은 국물 2004-03-08 4720
253 통쾌한 이야기 2004-03-05 5729
252 김기덕의 사마리아 감상법 2004-03-02 5443
251 소통은 어디까지 가능한가? 2004-02-15 49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