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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18120 vote 0 2004.05.27 (11: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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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재적소’와 ‘시의적절’은 잘 된 ‘인사’를 위한 필수요소이다. 두 요소가 충족되지 못한다면 적어도 한 요소만이라도 충족을 시켜야 절름발이에 상처투성이 인사가 되지 않는다. DJ 정부에서 신물나게 ‘관람’한 바처럼, 절름발이에 상처투성이 인사는, 그렇잖아도 허약한 권력을 기울게 하는 결정적인 부메랑으로 작용하게 마련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강력하게 밀고 있다는 ‘김혁규 총리’ 카드는 이 두 요소를 모두 만족시키지 못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적재적소’의 관점에서 보자면 세 번이나 경남도지사를 역임한 것을 들 수 있겠으나, 그가 경남도지사를 세 번씩이나 해 먹을 수 있었던 것은 그의 행정가적 능력이 뛰어난 때문이기 보다는 그 지역 정서에 가장 부합하는 정당을 등에 업고 있었던 때문으로 보는 게 옳다.

‘경상남도 CEO 김혁규’라는 그의 캐치프레이즈는 어패가 있을 뿐만 아니라 그가 꿈꾸고 있는 어떤 야심이 드러나 보여 음허하게 느껴진다. 완벽하게 그런다고 볼 수는 없지만, ‘공채 CEO’는 적어도 완전경쟁시장에서 다년간에 걸쳐 여러방면으로 실력이 검증된 사람이 뽑히게 마련이다. 그가 ‘경상남도 CEO’가 된 데에 지역정서라는 뒷배경이 가장 큰 힘이 되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있을까. 다시 말해 그는 CEO이기는 하되 완전경쟁시장에서 실력을 검증 받은 CEO가 아니라 당락을 가르는 결정적인 가산점을 등에 업은 불공정경쟁을 통해 뽑힌 CEO였다는 말이다.

뿐만 아니다. 그는 행정가라기 보다는 차라리 정치인에 가깝다. 단순한 정치인도 아니고, 이른바 ‘대권’의 욕심을 공공연하게 드러내 왔던 야심가적 정치인이다. 그리고 야심을 위해 그가 쌓은 CEO 경력은 실력보다는 뒷배경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의 야심에는 반칙적인 요소가 담겨 있다는 말이다. 뒷배경은 다른 정당에서 쌓고, 야심은 자리를 옮겨서 이룬다?

노 대통령이 총리 자리에 그를 앉히고 싶은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일각에서 제기하는 바처럼 6월 재보선에서 영남권을 공략하기 위한 필승카드 일수도 있고, 벌써부터 불붙고 있는 차기 주자들의 대권자리 싸움을 다른 대권 후보군을 총리에 앉힘으로써 뒤로 순연시키는 효과를 얻는 것일 수도 있으며 어려운 상황에서 자리를 버리고 자신을 도와준 데 대한 보답의 차원일 수도 있겠다. 아니 어쩌면 순전히 김혁규의 능력에 대한 노 대통령 스스로의 판단일 수도 있다.

내 생각에 김혁규가 적재적소가 아닌 이유는, 그가, 참여정부에 요구사항이 많은 국민들의 시대적 목소리를 수용해 내는 데 적합한 인물일까 하는 궁금증에 답할 수 있는 확신할 만한 경력을 보여준 적이 없는 때문이다. 거기에 위에서 지적한 바처럼 오히려 그가 적재적소가 아니라는 것을 증거할만한 여러 부적절한 요소들을 두루 안고 있음으로 해서 참여정부에 기대를 걸고 있는 국민들에게 기대충족이 아니라 오히려 스트레스를 가중시키게 될까 염려스러운 때문이다.

김혁규 카드는 ‘적재적소’에서 뿐만 아니라 ‘시의적절’에서 이미 어긋나 있다. 무엇보다도 노무현 대통령이 복귀한 후 고건 총리가 사퇴 의사를 간접적으로 표명하기 전부터 청와대에 의해 ‘차기 총리’로 입에 오르내리게 된 것은 노 대통령의 부재를 원칙과 소신으로 훌륭하게 지켜낸 고 총리 뿐만 아니라 고 총리의 수고와 노고에 고마움을 갖고 있는 국민들에게까지 모욕적이었다. 그러니까 김혁규의 의도와는 상관없는 지점에서부터 김혁규 카드가 일찌감치 오르내림으로 결과적으로 그에 대한 반감이 구도화 되었다는 말이다.

그 반감은 노 정권에 본질적으로 적대적인 세력에 의해 증폭되는 느낌이다. 우선은 조중동이 그렇고 한나라당이 그렇다. 정책 및 이념 좌표상으로 한나라당보다 열린우리당에 훨씬 더 가까운 민주노동당도 레드카드를 꺼내 들었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노 대통령이 김혁규를 총리 자리에 앉히려 한다면, 다수당인 열린우리당의 표결에 의해 우여곡절끝에 자리를 차지하긴 하겠지만 ‘오기의 정치’니 뭐니 해서 상처뿐인 영광일 가능성이 커져 버렸다. 김혁규를 총리 자리에 앉힘으로써 정권의 제 2기를 힘차게 시작하려 했던 노무현의 기획이 처음부터 대판 어긋나게 될 것이 뻔하게 된 것이다.

적재적소에 다소의 결함이 있어 시의적절만으로 그를 총리 자리에 앉히려고 했다면, 예의 노무현 다운 치밀한 기획으로 몇 가지 시나리오를 준비했었어야 했건만 지금의 상황은 오히려 방치된 느낌이다. 이러다가 반발이 심해지면 그냥 폐기처분하면 될 것이라는 게 노무현의 기획일 것인가. 그가 어떤 카드로 승부를 걸어올 것인지는 모르지만, 큰 승부가 다 끝나서 승자가 된 마당에 이제 그는 예측가능한 카드와 정책으로 국민들의 궁금증을 미리미리 해소시켜야 하지 않을까.

인사의 필수요소를 충족시키지도 못한 데다 이래저래 두들겨 맞아 누더기가 되어가는 듯 싶은 김혁규 카드를 공개적으로 폐기시키고 참여정부에 대해 기대를 갖고 지지를 보내는 국민들부터 이해를 얻을 수 있는 개혁적이고 합리적인 인사를 찾는 데 진력해야 할 것이다. 국민들은 노무현 대통령이 바라는 것보다 좀 더 강력하고 힘있는 상황이 펼쳐지기를 원하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것은 바로 첫 번째는 개혁이요, 두 번째는 과감한 개혁이며, 세 번째는 훨씬 더 과감한 개혁이다.

스피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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