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어먹을 또 ‘김당’이다. 대문글 사진은
대통령의 ‘입’ 부분을 부각하고 있다. 디지탈조선 메인의 포토뉴스 사진과 같다. 오마이김당과
조선일보는 공히 그 한장의 사진을 빌어 ‘노무현의 입이 문제다’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맞다. 노무현의 입에서 나오는 그 언어가 지금 문제로 된다. 왜?
‘먹물의가면님’은 ‘이 시대 천재작가 노무현’이라는 제목을 뽑았다. 같은 글 마지막 부분을 발췌인용하면..
『정치는 '말'입니다. 노짱은 천재적 이야기꾼이며 누구보다 더 많은 국민을 감동시킨 베스트셀러의 작가입니다. 그런 천재적 작가에게 말을 골라 쓰라는 둥, 말을 조심하라는 둥 하는 사람들이 제대로 책을 읽을 능력이나 있는 사람들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됩니다.』
그저께 헌재의 선고가 있었다. 또다시 언론들은 노무현의 입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탄핵이후 세상은 둘로 나누어졌다. 노무현의 입이 문제라고 믿는 사람과 노무현의 입 덕분에 오늘 하루를 살아갈 기운을 내는 사람으로 말이다.
‘왜 노무현의 입이 문제인가’ 하는 질문은 ‘왜 조선일보가 문제인가’ 하는 질문과 같다. 동전의 양면인 셈이다. 이쯤 해 두고.. 역시 노무현의 입이 문제라고 생각하는 점에서 적들과 한통속인 민노당의 입은 잘나가고 있는지 구경해 줄 필요도 있겠다.
노회찬, 조금만 비겁하면 정치가 즐겁다
사실 필자는 민노당을 비판하고 싶지가 않다. 아직은 비판보다 격려가 필요한 ‘아기’로 본다. 허나 이건 중대한 문제다. 세살 버릇에 고치지 않으면 평생에 못고친다. 노매드님의 글을 인용하면..
『오늘 노회찬이 조선일보 가서 아양 떨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속이 뒤집어지는줄 알았다. 나는 여태까지 살면서 피가 거꾸로 서는 역겨움을 느낀 적이 한 번 있다. 몇년 전 우연히 주간조선을 흘낏 보게 되었는데, 손호철이라는 놈이 쿠바 기행문이라는 것을 썼더라.
‘체 게바라가 혁명을 꿈꾸며 거닐던 해변’.. 이따위 소리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원래 역겨운 손호철이 체 게바라 운운하는 것도 역겨웠는데.. 그것이 하필 주간조선에 올랐던 것이다. 그 결합의 오묘함이여. 손호철 + 체게바라 + 조선일보.
나는 살면서 여태까지 이렇게 거대한 역겨움의 창조를 보지 못했다. 이번 노회찬의 조선일보 아양사건은 그 정도는 아니였지만, 거의 그에 준하는 역겨움을 자아냈다.』
팔아먹을 수 있다면 조선일보에 체 게바라도 팔아먹는 손호철, 그리고 팔아먹을 수 있다면 조선일보에 민노당도 팔아먹는 노회찬.. 어제 스승의 날에 둘은 그들의 처세술 사부되는 코미디언 전유성에게 꽃이라도 건넸는지 알 수 없다.
왜 노무현인가? 왜 조선일보인가?
노무현정권 1년, 소수파정권으로 곡예를 해 왔다. 때로 그의 말과 행동은 일치하지 않았다. 행동은 보수적인데(파병, 경제정책 등) 말은 개혁적이다. 그러므로 행동은 그 정도면 되었고 이제 노무현의 말만 틀어막으면 된다.
파병을 안했다면 탄핵사유가 되었을 것이고, 송금특검을 안했다면 그 역시 탄핵사유가 되었을 것이다. 요소요소에 덫을 설치해 두었지만 노무현은 요령좋게 잘도 빠져나갔다. 노무현정권을 타도하기 위하여 물리력을 동원할 건수를 잡는데 실패하고 말았다.
적들의 입장에서 보면 그러하다.
조기숙은 ‘행실이 바르니 말을 트집잡는다’고 했지만 필자가 보기엔, 실천에 있어서는 소수파정권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상당한 정도의 타협이 있었다. 그러나 현재를 타협했을 뿐 미래까지 타협하지는 않았다.
명백히 노무현은 ‘반미면 어때?’ 하는 그 기백으로 밀어붙이지 못했다. 노무현이 기세좋게 밀어붙였다면 그것이 또한 탄핵사유가 되었을 것이다. 노무현은 구체적인 정책의 시행에 있어서는 여러번, 최선이 아닌 차선을 선택했던 것이다.
대신 노무현은 미래를 약속했다. 그 미래의 담보는 언어다. 노무현의 정치개혁과 검찰의 차떼기 수사 성과들은 명백히 적들의 미래를 압류하고 있다. 이에 대응하여 조선일보들은 노무현의 현재를 차단하는데 성공한데 이어 개혁세력의 미래까지 압류하려 드는 것이다.
왜 조선일보인가? 역시 조선일보의 ‘입’이 문제다. 그들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차압하려 한다. 쩐 몇 푼에 민감한 중앙이나 수구독자에 아부하는 동아도 못돼먹긴 매한가지지만 그들의 관심사는 주로 현재의 것이다.
노무현의 언어와 조선의 언어가 극적으로 충돌하는 지점은 대개 미래에 관한 것이다. 파병문제, 경제문제 등 현안에 있어서는 노무현이 많이 밀렸다. 대신 정치개혁과 차떼기수사로 적들의 미래는 완벽하게 봉인되었다.
무엇인가? 노무현의 입만 틀어막으면 적들의 완벽한 승리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에 대응하여 우리가 할 일이 무엇인지도 자명하다. 대통령은 국정에 전념해야 한다. 노무현이 했던 일을 이제부터는 우리가 대신 떠맡아야 하는 것이다.
이념보다 스승인 경우가 많다
왜 노무현의 입이 문제인가? 곰곰히 생각해보라. 적들이 노무현의 입만 틀어막으면 만사형통이라 믿게 된 연유가 무엇인가를. 왜 노무현은 구설을 낳을 것을 알면서도 굳이 화두가 되는 한 두마디를 툭툭 던져야만 했는가를!
이념과 철학의 문제이다. 이념과 철학이 100미터 앞에서 등불을 비쳐주지 않으므로 툭툭 던지는 말로써 돌파해 갈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시민혁명’까지 나가게 된 것이다. 등불(이념)이 비춰주지 않으니 지팡이(언어)로 풀숲을 헤쳐가는 격이다.
스승의 날을 보내며 생각한다. 이념이라 말하지만 실제로는 그 이념을 실천해 보이는 스승인 경우가 많다. 큰 스승이 그립다. 조광조와 같은, 백범과 같은, 장준하와 같은, 함석헌과 같은, 계훈제와 같은 만인의 지지를 받는 큰 어른이 우리에게 있었으면 좋겠다.
그 스승의 역할을 대신하는 것이 이념이고 그 스승을 지속적으로 생산하는 것이 이념이다. 지금 우리는 스승이 고프다. 우리는 이념이 고픈 것이다.
정간법을 개정하고 언론개혁을 한다해도 형편은 당장 나아지지 않을 것이다. 생각이 바뀌고, 삶이 바뀌고, 문화가 바뀌고, 공동체의 지향점이 바뀌지 않는다면.. 우리의 이념이 고픈, 스승이 고픈 상태는 계속될 것이다.
모든 이념은 궁극적으로 공동체의 이념이다. 우리가 지역과, 성별과, 계층을 넘어 한 민족이고 한 가족이라는.. 더 나아가 인류가 한 가족이라는.. ‘공동체에의 기여에서 개인의 삶의 보람을 찾아야 한다’는 삶의 태도와, 철학과, 가치관과 문화가 곧 이념이다.
그런 큰 가르침을 던져주는 묵직한 스승이 지금 우리에겐 없다. 스승의 날에 스승이 고프다. 강준만 떠나고 노회찬 자살하고 있다. 바람찬 세파에도 휘둘리지 않고 꿋꿋하게 제 길을 가는 큰 스승이 참으로 그립다.
대문에 올리지 않은 ‘헌재, 나 이쁘지’를 보시려면 클릭
맞다. 노무현의 입에서 나오는 그 언어가 지금 문제로 된다. 왜?
‘먹물의가면님’은 ‘이 시대 천재작가 노무현’이라는 제목을 뽑았다. 같은 글 마지막 부분을 발췌인용하면..
『정치는 '말'입니다. 노짱은 천재적 이야기꾼이며 누구보다 더 많은 국민을 감동시킨 베스트셀러의 작가입니다. 그런 천재적 작가에게 말을 골라 쓰라는 둥, 말을 조심하라는 둥 하는 사람들이 제대로 책을 읽을 능력이나 있는 사람들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됩니다.』
그저께 헌재의 선고가 있었다. 또다시 언론들은 노무현의 입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탄핵이후 세상은 둘로 나누어졌다. 노무현의 입이 문제라고 믿는 사람과 노무현의 입 덕분에 오늘 하루를 살아갈 기운을 내는 사람으로 말이다.
‘왜 노무현의 입이 문제인가’ 하는 질문은 ‘왜 조선일보가 문제인가’ 하는 질문과 같다. 동전의 양면인 셈이다. 이쯤 해 두고.. 역시 노무현의 입이 문제라고 생각하는 점에서 적들과 한통속인 민노당의 입은 잘나가고 있는지 구경해 줄 필요도 있겠다.
노회찬, 조금만 비겁하면 정치가 즐겁다
사실 필자는 민노당을 비판하고 싶지가 않다. 아직은 비판보다 격려가 필요한 ‘아기’로 본다. 허나 이건 중대한 문제다. 세살 버릇에 고치지 않으면 평생에 못고친다. 노매드님의 글을 인용하면..
『오늘 노회찬이 조선일보 가서 아양 떨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속이 뒤집어지는줄 알았다. 나는 여태까지 살면서 피가 거꾸로 서는 역겨움을 느낀 적이 한 번 있다. 몇년 전 우연히 주간조선을 흘낏 보게 되었는데, 손호철이라는 놈이 쿠바 기행문이라는 것을 썼더라.
‘체 게바라가 혁명을 꿈꾸며 거닐던 해변’.. 이따위 소리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원래 역겨운 손호철이 체 게바라 운운하는 것도 역겨웠는데.. 그것이 하필 주간조선에 올랐던 것이다. 그 결합의 오묘함이여. 손호철 + 체게바라 + 조선일보.
나는 살면서 여태까지 이렇게 거대한 역겨움의 창조를 보지 못했다. 이번 노회찬의 조선일보 아양사건은 그 정도는 아니였지만, 거의 그에 준하는 역겨움을 자아냈다.』
팔아먹을 수 있다면 조선일보에 체 게바라도 팔아먹는 손호철, 그리고 팔아먹을 수 있다면 조선일보에 민노당도 팔아먹는 노회찬.. 어제 스승의 날에 둘은 그들의 처세술 사부되는 코미디언 전유성에게 꽃이라도 건넸는지 알 수 없다.
왜 노무현인가? 왜 조선일보인가?
노무현정권 1년, 소수파정권으로 곡예를 해 왔다. 때로 그의 말과 행동은 일치하지 않았다. 행동은 보수적인데(파병, 경제정책 등) 말은 개혁적이다. 그러므로 행동은 그 정도면 되었고 이제 노무현의 말만 틀어막으면 된다.
파병을 안했다면 탄핵사유가 되었을 것이고, 송금특검을 안했다면 그 역시 탄핵사유가 되었을 것이다. 요소요소에 덫을 설치해 두었지만 노무현은 요령좋게 잘도 빠져나갔다. 노무현정권을 타도하기 위하여 물리력을 동원할 건수를 잡는데 실패하고 말았다.
적들의 입장에서 보면 그러하다.
조기숙은 ‘행실이 바르니 말을 트집잡는다’고 했지만 필자가 보기엔, 실천에 있어서는 소수파정권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상당한 정도의 타협이 있었다. 그러나 현재를 타협했을 뿐 미래까지 타협하지는 않았다.
명백히 노무현은 ‘반미면 어때?’ 하는 그 기백으로 밀어붙이지 못했다. 노무현이 기세좋게 밀어붙였다면 그것이 또한 탄핵사유가 되었을 것이다. 노무현은 구체적인 정책의 시행에 있어서는 여러번, 최선이 아닌 차선을 선택했던 것이다.
대신 노무현은 미래를 약속했다. 그 미래의 담보는 언어다. 노무현의 정치개혁과 검찰의 차떼기 수사 성과들은 명백히 적들의 미래를 압류하고 있다. 이에 대응하여 조선일보들은 노무현의 현재를 차단하는데 성공한데 이어 개혁세력의 미래까지 압류하려 드는 것이다.
왜 조선일보인가? 역시 조선일보의 ‘입’이 문제다. 그들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차압하려 한다. 쩐 몇 푼에 민감한 중앙이나 수구독자에 아부하는 동아도 못돼먹긴 매한가지지만 그들의 관심사는 주로 현재의 것이다.
노무현의 언어와 조선의 언어가 극적으로 충돌하는 지점은 대개 미래에 관한 것이다. 파병문제, 경제문제 등 현안에 있어서는 노무현이 많이 밀렸다. 대신 정치개혁과 차떼기수사로 적들의 미래는 완벽하게 봉인되었다.
무엇인가? 노무현의 입만 틀어막으면 적들의 완벽한 승리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에 대응하여 우리가 할 일이 무엇인지도 자명하다. 대통령은 국정에 전념해야 한다. 노무현이 했던 일을 이제부터는 우리가 대신 떠맡아야 하는 것이다.
이념보다 스승인 경우가 많다
왜 노무현의 입이 문제인가? 곰곰히 생각해보라. 적들이 노무현의 입만 틀어막으면 만사형통이라 믿게 된 연유가 무엇인가를. 왜 노무현은 구설을 낳을 것을 알면서도 굳이 화두가 되는 한 두마디를 툭툭 던져야만 했는가를!
이념과 철학의 문제이다. 이념과 철학이 100미터 앞에서 등불을 비쳐주지 않으므로 툭툭 던지는 말로써 돌파해 갈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시민혁명’까지 나가게 된 것이다. 등불(이념)이 비춰주지 않으니 지팡이(언어)로 풀숲을 헤쳐가는 격이다.
스승의 날을 보내며 생각한다. 이념이라 말하지만 실제로는 그 이념을 실천해 보이는 스승인 경우가 많다. 큰 스승이 그립다. 조광조와 같은, 백범과 같은, 장준하와 같은, 함석헌과 같은, 계훈제와 같은 만인의 지지를 받는 큰 어른이 우리에게 있었으면 좋겠다.
그 스승의 역할을 대신하는 것이 이념이고 그 스승을 지속적으로 생산하는 것이 이념이다. 지금 우리는 스승이 고프다. 우리는 이념이 고픈 것이다.
정간법을 개정하고 언론개혁을 한다해도 형편은 당장 나아지지 않을 것이다. 생각이 바뀌고, 삶이 바뀌고, 문화가 바뀌고, 공동체의 지향점이 바뀌지 않는다면.. 우리의 이념이 고픈, 스승이 고픈 상태는 계속될 것이다.
모든 이념은 궁극적으로 공동체의 이념이다. 우리가 지역과, 성별과, 계층을 넘어 한 민족이고 한 가족이라는.. 더 나아가 인류가 한 가족이라는.. ‘공동체에의 기여에서 개인의 삶의 보람을 찾아야 한다’는 삶의 태도와, 철학과, 가치관과 문화가 곧 이념이다.
그런 큰 가르침을 던져주는 묵직한 스승이 지금 우리에겐 없다. 스승의 날에 스승이 고프다. 강준만 떠나고 노회찬 자살하고 있다. 바람찬 세파에도 휘둘리지 않고 꿋꿋하게 제 길을 가는 큰 스승이 참으로 그립다.
대문에 올리지 않은 ‘헌재, 나 이쁘지’를 보시려면 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