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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13541 vote 0 2004.05.11 (23:45:45)

눈길을 처음 걷는 사람은 뒤에 올 사람을 의식해야 합니다. 뒤에 오는 사람은 앞서간 자의 발자국을 따라오기 마련이죠. 오바하지 말라는 충고도 듣고 있지만 사실이지 지금은 민감한 시점입니다.
 
역사적인 정권교체 성공에 이은 첫 의회권력의 교체! 오늘 우리가 첫 단추를 어떻게 꿰느냐에 따라 이후 4년이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69년 7월 21일, 닐 암스트롱과 에드윈 버즈 올드린이 아폴로 11호의 착륙선 이글호를 타고 고요의 바다에 첫 발을 내디뎠을 때, 마이클 콜린스중령은 달 궤도를 선회하던 사령선 콜롬비아호에서 울고 있었습니다.
 
암스트롱이 왼발을 먼저 내디뎠기 때문에 이후 좌파가 득세하게 되었다는 농담을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암스트롱은 말했죠. ‘사람에게는 작은 발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하나의 장대한 도약이다’라고.
 
그들이 줏어온 것은 20키로그램의 돌멩이에 불과하지만.. 2000년 이후 그 많던 휴거소동이 요즘은 잠잠해진 데서 보듯이 .. 보이지 않는 후방효과가 분명히 있는 법이며.. 무엇보다 ‘과학과 인류의 진보’라는 점에서 거대한 낙관주의 기운을 전파한 것이 큽니다.  
 
그들은 왜 달에 갔는가?
고작 돌멩이 20키로그램 줏어오려고?
 
군자당이 있고 소인당이 있습니다. 군자당은 의(義)를 추구하고 소인당은 이(利)를 추구합니다. 우리당은 군자당이고 한나라당은 소인당입니다. 진보가 어떠니 보수가 어떠니 떠들어대곤 하지만, 이러한 본질은 조광조 이래 천년의 세월이 흘러도 달라지지 않습니다.
 
본질을 가지고 논하자는 겁니다. 조광조의 ‘의’는 어디에서 왔습니까? 마르크시즘에서 왔습니까?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에서 왔습니까? 아니면 공희준님의 먹고사니즘에서 나왔단 말입니까?
 
인류의 달착륙이 의미하는 것은?
과학은 몰라도 되지만 ‘과학적 사고’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우리는 과학의 세계 안에 살고있습니다. 우리가 늘상 공기를 호흡하므로 공기의 가치를 모르듯 ‘과학적 사고’의 가치를 판단하지 못하는 거에요. 그것이 얼마나 큰 의미가 있는지를.

 
물론 원근법이 없어도 그림을 그릴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대접받지 못합니다. 화성이론 없이도 음악을 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대접을 받지 못합니다. 이념이 없는 정치는 앙꼬없는 찐빵이요 고전역학 없는 과학인 것입니다.
 
무엇인가? 연금술입니다. 고전역학 없어도 분명히 과학은 있습니다. 이념이 없어도 정치는 있고, 인류가 달에 가지 않아도 과학과 인류의 진보는 있습니다. 그러나 뉴튼 이전과 이후는 분명히 다릅니다. 하늘과 땅 차이로 다릅니다.
 
뉴튼 이전에도 물론 과학은 있었지만 ‘과학적 사고’는 없었습니다. 그때는 과학이 곧 연금술이었지요. 마술사의 잔재주 정도로 치부되었던 것입니다. 암스트롱의 달 착륙은 인류의 진보에 대한 낙관주의의 확산이라는 거대한 의미가 있는 것이며, 환쟁이로 경멸되었던 미술은 원근법이론에 의해 비로소 정당한 대접을 받게 된 것입니다.
 
맹점을 아십니까? ● 이 점 오른쪽으로 6센티 ● 점은 보이지 않습니다. 20센티 거리에서 왼쪽 눈을 감고 시선을 왼쪽 점에 고정시키면 말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맹점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릅니다.
 
두 눈 뻔히 뜨고 보고도 보지 못합니다. 분명히 안보이는데도 안보인다는 사실을 모르는 거에요. 왜?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지요. 우리가 산소를 호흡하면서 산소의 값어치를 모르듯이 모르는 거에요.
 
암스트롱이 줏어온 돌멩이 20키로가 가치있는 것이 아니라, 인류의 달 착륙 이후 그 많았던 신화와 허구와 신비주의와 속임수와 미신이 일거에 사라진 것이 진정으로 값어치있는 것입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음베키대통령은 아직도 에이즈라는 질병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으며, 알고보면 모든 것이 미국의 음모이고 에이즈로 알려진 증상들은 주술사가 더 잘 치료한다고 우겨대는데(최근 음베키도 에이즈를 인정함) 이런 말도 안되는 일이 그날 이후로 없어진 것입니다.  
 
인터넷이 등장한 이후 그 많던 초능력자들이 대거 사라졌습니다. 디지탈 카메라의 보급 이후 UFO가 사라지고 있듯이 말입니다. 방송사 간의 묵시적 담합을 우리의 딴지일보가 깨뜨려버린 거에요. 조중동의 속임수를 오마이와 서프가 폭로하듯이 말입니다.
 
밀레니엄신드롬이 가치있는 것이 아니라.. 실은 그날 이후 더 이상 휴거소동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이 가치있는 겁니다. 자 여러분은 이제 맹점을 발견하셨습니까? 한국인은 지난 5000년 동안 원근법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두 눈 뻔히 뜨고 보고도 발견 못한 것입니다.
 
원근법은 숨어있지 않아요. 그냥 딱 보면 보입니다. 근데 왜 5천년동안 몰랐지요? 맹점도 보입니다. 한쪽 눈을 감으면 특정한 위치의 부분은 시야에서 사라집니다. 그런데 왜 눈 뜨고도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지 못했지요?
 
음악의 화성이론도 마찬가지입니다. 뉴튼의 고전역학도 마찬가지입니다. 뉴튼 이전에는 과학이 연금술에 지나지 않았어요. 과학은 있는데 과학적 사고는 없는거죠. 왜 이 점이 중요한가?
 
물론 우리 조상들도 과학을 아주 무시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론이 없으면, 과학이 있어도 ‘과학적 사고방식’이 없기 때문에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조선의 선비들은 미술을 천시했습니다. 왜? 원근법을 몰랐으니까.
 
공자왈
"人而不仁, 如禮何? 人而不仁, 如樂何?"
 
공자는 6예라 하여 음악을 중시했습니다. 왜? 그는 음악에서 질서를 발견하고 그 질서에서 ‘예’를 터득한 것입니다. 화성이론은 조화의 이론입니다. 유교주의가 중요시 하는 중용(中庸)의 가치 곧 균형과 조화를 현실에서 증명하는 것이 바로 음악이었던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정치를 혐오합니다. 국회의원을 국해의원이라 부릅니다. 왜? 대접해줄 가치가 없기 때문입니다. 왜? 닐 암스트롱이 없었기 때문에, 그 한 사람의 조광조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념이 없는데 정치를 대접해줄 이유가 있겠습니까?
 
이념없는 정치는, 화성이론 없는 음악이요, 원근법 없는 미술이요, 고전역학 없는 과학입니다. 과학은 있는데 과학적 사고방식이 없어서 기여하는 만큼 대접받지 못하는 비극성 말입니다.
 
실용주의가 무엇입니까? 고전역학 이전 시대의 과학 곧 연금술과 같은 것입니다. 구한말에 친러파와, 친일파와, 친미파와, 친청파가 대립하던 양상이 바로 실용주의입니다.
 
왜 그들은 친러에, 친일에, 친미에, 친청으로 갈갈이 찢어졌겠습니까? 줏대가 없어서 그렇습니다. 왜 줏대가 없어졌습니까? 이념 버리고 실용하니까 줏대가 없어지는 겁니다.
 
실용주의자 광해군이 강홍립장군에게 밀지를 내렸지요. ‘형세를 보아 향배를 정하라!’ 그래서 형세를 보았더니 실정이 이렇습니다.
 
『알고보니 후세인의 공화국수비대는 오합지졸이고 부시의 전력이 압도적이란 소식. 전쟁특수 챙겨야지 파병찬성. 근데 부시가 모래폭풍에 걸려 고전하고 있다고? 안되겠다. 파병반대. 그 사이에 바그다드가 함락되었다는 소식! 할수없지. 파병찬성. 근데 유엔이 인정하지 않는다고? 그렇다면 명분없는 전쟁에 파병반대. 어? 유엔이 인정했구나. 그럼 명분있네. 찬성해야지. 근데 알고보니 미국이 주도하고 유엔은 역할이 없다구? 당근빠따로 파병반대. 그 사이에 후세인 잡히고 전쟁 끝났다고? 전쟁도 끝났으니 전후복구 목적의 파병찬성. 근데 다시 전투가 치열해졌다고라고라. 국군의 희생을 막기 위해서라도 파병반대.
 
형세를 보아 향배를 정하려 하니 형세가 이렇게 오락가락 하는 것이 실용주의입니다. 이거 챙피하지 않습니까? 광해군이 왜 망했습니까? 실용하다 망가진 겁니다. 대책없는 실용은 리스크가 너무 큽니다.
 
다 필요없어요. 김구선생이 하지 말라는 짓은 안하는 것이 옳습니다. 이념이 별게 아니고 그게 이념입니다. 일관성을 담보하는 원칙 말이지요.
 
실용주의? 경우의 수는 천가지 만가지입니다. 오락가락 합니다. 조변석개합니다. 오전이 다르고 오후가 다릅니다. 그런 사람을 어떻게 믿습니까?
 
인간은 이념적 존재입니다. 주일마다 교회에 가서 십일조를 바치는 전혀 실용적이지 못한 짓을 태연히 하는 인간이 60억 인류의 절반입니다. 도무지 그들은 교회나 사찰에서 무엇을 얻으려 하는 것일까요? 하느님이 기도의 댓가를 들어준다고 순진하게 믿어서일까요?
 
천만에! 아닙니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인간의 본성 안에 원래 '믿음'이란 것이 가득히 들어있는 것입니다. 인간은 본래 이념적 존재입니다.  
 
이념이 무엇인가? 눈길을 처음 걷는 사람이, 발자국을 보고 쫓아올 뒷 사람을 걱정하듯이.. 닐 암스트롱이 달나라에 첫발을 디딜 때, 궤도를 선회하며 울고있는 콜린즈중령을 의식하듯이 하는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작은 발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하나의 장대한 도약이다"
 
왜 조광조는 고집을 부렸습니까? 왜 그는 타협하지 않았습니까? 그의 작은 한걸음이 훗날 그의 뒤를 따른 수천 수만의 발걸음을 위한 길잡이가 된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유시민 서영석의 채팅을 앞두고
요즘 서프의 분위기는 지나치게 벤처분위기입니다. 우리당은 벤처당 같아요. 한건 해보자는 식입니다. 나침반도 없이 기항지도 모르면서, 요령좋은 선원의 감에 의존해서 무모한 항해를 계속해서 되겠습니까?  
 
필자가 유시민의원을 비판한 사실을 두고 오바한다는 지적이 있군요. 개혁당에 참여하며 유시민의원을 지켜본 바를 말씀드리면 유의원은 너무 벤처하듯이 개혁당을 하는 거에요. 하긴 벤처 치고는 대박입니다. 본전 건지고도 남았죠.
 
그렇지만 진짜 인터넷당을 하는 줄만 알고 있었던 개미들은 지금 울고있습니다.
 
그는 그가 내딛는 한 걸음의 의미를 과소평가 한 거에요. 이념이 무엇인가? 우주적 시야에서 보는 것입니다. 천년 세월을 뛰어넘어 통시적으로 보는 것입니다. 조광조가 뒤에 올 천사람, 만사람을 의식하고 굽히지 않았듯이 말입니다.
 
하얀 눈길 위를 처음 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암스트롱이 인류의 장대한 도약을 의식하며 조심스레 왼발을 내딛듯이 조심스레 걸어가야 했습니다. 유시민은 첫 눈을 반기는 아이처럼 아무 생각없이 폴짜꿍 뛰어간 것이 아닌지.
 
오늘 서영석, 유시민 채팅에서 성과있기를 바라며 저의 이런 뜻이 만분지 일이라도 전해지기를 기대합니다.(오해 없으시기를. 단지 유의원이 우리 네티즌들의 대장으로서 과단성있게 나서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전하자는 의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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