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는 머리와 꼬리가 있다. 물고기는 머리 쪽으로 움직인다. 거기서 중요한 의사결정이 일어난다. 사건은 머리와 꼬리가 있다. 사건은 언제나 머리 쪽에서 의사결정이 일어난다. 전체와 부분이 있다. 전체가 우선이다. 수렴과 확산이 있다. 수렴이 우선이다. 필연과 우연이 있다. 필연이 우선이다.
수렴 - 확산 수렴, 필연, 전체, 머리, 원인은 같은 것이다. 수렴이면서 우연일 수는 없다. 수렴은 한 지점에 모이고, 모이면 선택지가 하나뿐이기 때문이다. 선택지가 하나이면 그것은 우연이 아니라는 말이다. 수렴은 모이고, 모이면 연결되고, 연결되면 전체다. 그러므로 부분일 수는 없다. 원인이라는 말 자체가 의사결정이 일어나는 지점을 의미하므로 언제나 수렴이 원인이다. 흩어지면 의사결정할 수 없다. 언제나 필연이 원인이다. 우연은 원인이 없다.
모임 - 흩어짐 세상은 에너지의 모임과 흩어짐, 사건의 연결과 단절로 모두 설명할 수 있다. 무슨 일이 일어나려면 일단 모여야 한다. 싸움을 해도 모여서 싸우고, 사랑을 해도 모여서 사랑하고, 헤어져도 모였다가 헤어진다. 모임이 만유의 원인이다. 흩어짐은 결과다. 모임은 필연이다. 과학은 필연을 탐구한다. 과학은 모임을 추적한다. 반드시 한곳에 모아주는 깔때기가 있다. 사건을 연결하는 닫힌계가 있다. 오늘날 과학이 잘 나가다가 길을 잃어버린 이유는 전체를 한 줄에 꿰어서 바라보는 시선이 없기 때문이다. 모이느냐 흩어지느냐, 이 하나의 문제만 풀면 나머지는 자동으로 해결된다. 방향만 알면 다 해결된다. 방향은 그 자체로 모이는 것이다. 흩어지면 방향이 없다. '어디로 모이느냐?'는 말은 있어도 '어디로 흩어지느냐?'는 말은 없다. 방향이라는 말 자체가 모여있음을 전제로 성립하는 말이다. 모임과 흩어짐은 동전의 양면이다. 모이면 흩어지고 흩어지면 다시 모이게 된다. 결국 모임이라는 관문에 다 걸리게 되는 것이다. 과학의 관문을 빠져나갈 수 없다. 2층에서 흩어진 것은 1층에 모여있다. 정상에서 흩어진 것은 기슭에 모여 있다. 용케 1선을 뚫는다 해도 2선에서 다 걸린다. 문제는 과학철학의 빈곤이다. 학문의 방법론 부재다. 동전의 양면 중에서 일면만 보고 포기한다. 모임과 흩어짐 중에서 흩어짐을 보고 포기해 버린다. 흩어지면 또 모이는데 말이다. 우연과 필연 중에서 우연을 보고 포기한다. 우연을 뒤집으면 필연인데 말이다. 우연은 흩어지는 것이고 반대편에 그것을 흩는 장치가 있다. 그것은 모으는 것이다. 방향감각만으로 모든 것을 알 수 있다. 과학의 정답은 수렴방향이다. 그것은 모이는 것이다. 문제는 방향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다. 원심분리기를 돌리면 비중대로 줄을 선다. 키질을 하면 가벼운 것이 날아간다. 체로 치면 작은 것이 아래로 빠진다. 여기서 걸러내는 것이 있다. 원심분리기는 비중으로 거르고, 키는 바람으로 거르고, 체는 눈으로 거른다. 그것이 방향을 생산한다. 호박은 그냥 있는데 호박을 도마 위에 올려놓고 칼로 내려치면 좌우로 나누어진다. 방향이 만들어진다. 그 방향은 칼과 도마가 만들어낸 것이다. 좌우는 그 칼의 작용에 대한 좌우다. 방향은 원래 있는게 아니고 에너지의 작용이 만든다. 에너지는 처음 확산과 수렴만 있다. 전후, 좌우, 상하, 내외라는 것은 질, 입자, 힘, 운동, 량의 거듭된 칼질로 만들어낸 것이다. |
아래서 두 번째 문단
전후, 좌우, 상하, 내외는 것은 => 문장이 이상함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