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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4502 vote 0 2021.11.14 (23:08:56)

    세종은 혼자 갈고 닦아서 한글을 만들었다. 왜 만들었을까? 검색해 보면 여러 가지 이야기가 나오지만 대개 설득력이 없다. 세종 자신의 입장은 백성들을 위하여 만들었다는 것이지만 구조론은 '위하여'를 인정하지 않는다. 남들 앞에 물건을 내놓을 때는 그럴듯한 명분이 필요한 것이다. 임금이 백성을 위하여 글자를 만들었다는데 누가 시비를 하겠는가? 


    실제로 한글을 쓴 사람은 양반가의 여성들과 그 여성들과 편지를 주고받는 남성들이었다. 백성을 위한 글자인데 양반이 사용한다. 중인들도 한글을 사용했으니 봉건군주가 통치체제의 강화를 위하여 한글을 만들었다고 주장하면 그럴듯해 보이지만 이런 식의 접근은 잘난 척하기 좋아하는 3류 지식인의 자기과시 행동이다. 고뇌하는 지식인이 비판적 입장을 견지하는 척하면서 뻔한 클리셰로 개소리를 하는 것이다. 


    세종이 한글로 한 일은 불경을 번역하고 용비어천가를 짓는 것이었다. 이런 짓을 하려고 글자를 만든 것은 아닐 텐데? 불경번역은 유교국가에서 신하들과 마찰하기 딱 좋은 일이고 용비어천가는 낯간지러운 가문자랑이다. 진실을 말하자. 세종이 한글을 만든 이유는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못 만드는데 그것을 만들겠는가? 그는 전율했던 것이다. 반응이 왔다. 해봤는데 되더라. 


    그리고 더 높은 세계를 보았다. 방아쇠는 격발되었다. 정상에서 눈덩이를 굴리면 기슭까지 쉬지 않고 굴러간다. 그는 정상에 섰고 눈덩이를 굴렸다. 정확히 500년 만에 세종의 뜻은 이루어졌다. 세종이 조선의 백성들을 위해 한글을 만든 것이 아니다. 반포하면서 말을 그렇게 했을 뿐이다. 그는 하늘의 반응을 보고 싶었던 것이고 또 그것을 보았던 것이다.


    조선의 백성들이 이 글자를 사용해서 모두가 충신이 되고 효자가 되고 열녀가 되기를 바랬을 것이다. 세종이 신하들과 논쟁한 것은 그런 부분이다. 이게 과연 쓸모가 있느냐? 표음문자는 오랑캐나 쓰는 것인데? 닥쳐! 고을마다 충신 나고, 효자 나고, 열녀 난다니깐? 두고보자구. 백만 원빵 내기해 봐? 


    북을 치면 소리가 난다. 왜 북을 치는가? 소리가 나기 때문이다. 소리가 나지 않는 북을 치는 사람은 없다. 그는 하늘의 반응을 보았다. 그리고 전율했다. 필자가 구조론을 연구한 것도 같다. 아침에 진리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상관없는 것이다. 툭 건드렸는데 소리가 났다. 슬쩍 만들어 봤는데 졸지에 28자가 이루어졌다. 눈덩이는 비탈을 따라 계속 굴러간다. 


    나는 진리를 볼 만큼 봤다. 동물을 넘어 인간이 되고 싶었고 인간을 넘어 신이 되고 싶었다. 신이 되지는 못했지만 신의 입장을 들었다. 아직 모르는 것이 있지만 이 정도면 많이 아는 것이다. 단서를 잡았으면 그다음은 일사천리다. 부르는 목소리에 응답하는 목소리가 없을 때 슬픈 것이다. 나는 신의 응답하는 목소리를 들었고 그래서 계속 나아갔다. 


    70억을 넘겼고 80억이 될 텐데 그들이 모두 귀에 대못을 박은 것은 아닐 것이다. 나는 때때로 소리를 듣는다. 세종이 들은 그 소리다. 발견이 발명에 앞선다. 세종이 한글을 발명한 것은 그전에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는 무엇을 보았던가? 그것은 위대한 만남이다. 


    작게는 자음과 모음의 만남, 음과 양의 만남, 군주와 백성의 만남, 우주의 밸런스의 이루어짐, 신과 인간의 일대일, 역사와의 만남, 문명과의 만남. 운명의 첫 키스는 그렇게 이루어졌다. 한 번 그것을 본 사람은 결코 멈추지 않는다. 종이 있으면 결국 친다. 세종이 하늘을 울렸고 하늘이 세종을 울렸다. 그렇게 즐거웠다.


    나는 자유인이 되고 싶었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내가 까불면 신이 반응하지 않을까? 나는 봤고 내가 본 것을 말한다. 나는 스스로를 탐구하는 사람으로 규정했다. 내가 깔고 앉은 이 땅덩이 혹시 모르니까 구석구석 잘 살펴봐야 안심이 되지 않겠는가? 세월이 흘렀고 서른에 죽지 못했고 한 페이지가 넘어갔다. 이제는 가르치는 사람이 되어야 할 판이다.


    만들 수 있으니까 만든다는 말은 사건이 벌어져 있고 에너지가 걸려 있고 흐름에 휩쓸린다는 말이다.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려고 손을 내미는 것은 누구에게 칭찬을 듣기 위해서도 아니고 선행을 많이 해서 천국을 가기 위해서도 아니다. 물에 빠진 사람은 손을 내밀게 되어 있고 당신은 그 손을 잡게 되어 있다. 반응한다. 그리고 전율한다. 인간은 거기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레벨:4]고향은

2021.11.15 (13:11:09)

"조선의 백성들이 이 글자를 사용해서 모두가 충신이 되고 ... ... 바랬을 것이다"


세종은 한글이, 99마리의 양을 포함해서
잃어버린 1마리의 양까지, 1 나로 묶어주는
화합물이 되기를 바랐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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