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에 내용을 업데이트 했습니다. 자석에 쇠가 달라붙은 이유가 뭐죠? 파인만의 유명한 유튜브 동영상이 있다. 우리는 대충 자석이 쇠붙이를 당기니까 붙는다고 말해주면 만족하지만, 그 정도로는 과학자의 성에 차지 않는다. 파인만은 끝도 없이 물고 늘어진다. 댓글에 이런 우스개가 있다. 경찰. '왜 과속했죠?' 파인만. '음 그건 말이야.' 30분 후. 경찰. '선생님. 제발 저를 놔주세요.' 박찬호가 도망칠 판이다. 사건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 꼬리에 꼬리를 물어줘야 한다. 거기에 대칭이 있다. 언어는 전제와 진술의 대칭으로 조직된다. 문장은 주어와 동사의 대칭으로 조직된다. 담론은 조건문과 반복문이 대칭이다. 어떤 사건을 말하려면 그 명제에 대칭되는 그 이전단계가 먼저 제시되고, 그 이전단계에 쌍방이 합의하는 절차를 밟아야 한다. 진술하기 앞서 전제에 합의해야 한다. 까다롭잖아. 전제의 전제가 또 있다. 한술 더 뜬다. 그 전제의 전제의 전제가 또 있다. 단계별로 모두 합의해야 한다. 이런 식으로 끝도 없이 들어간다. 파인만은 그것을 말하고 있다. 말하기 어렵다. 대충 말하기는 쉽지만 조리있게 말하기는 참으로 어렵다. 진리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험난한 절차라도 극복해야 한다. 진정성을 보여줘야 한다. 자석에 쇠가 붙는 이유는 철 원자는 다른 물질과 달리 전자들이 한 방향으로 회전하기 때문이라고. 파인만이 핵심을 짚어줬다. 얼음판에 미끄러졌다면 우리는 그냥 빙판이 미끄러우니까 미끄러지는 것이지 하고 납득하지만, 그 정도로는 과학자의 성에 차지 않는가 보다. 얼음이 스케이트 날의 압력을 받아 순간적으로 물이 되어 마찰력이 감소하는데 그게 결국은 통일장이론을 구성하는 네 가지 기본 힘 중의 하나인 전자기력과 관련이 있는데 아직 중력과의 관계는 해명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 상세한 설명까지는 바라지도 않았다. 나무가 왜 불에 타지? 불에 타니까 타는 거야. 아 그렇구나. 불에 타니까 나무가 타는구나. 돌은 불에 타지 않는데 말이다. 보통사람은 이 정도로 만족한다. 사실은 나무가 불에 타는게 아니고 목탄개스가 타는 것이다. 나무를 가열하면 나무에서 목탄개스가 빠져나오고, 그 개스가 산소와 반응하여 연소반응을 일으킨다. 파인만은 이 정도로 진도를 빼줘야 만족한다. 내부에서 톱니가 맞물려 돌아가는 메커니즘을 들이밀어야 한다. 과학자는 뇌구조가 다르다. 철 원자의 전자가 한 방향으로 회전하는데 왜 자석에 달라붙지? 이걸 설명하려면 전자기력을 이야기해야 한다. 전자기력까지 설명해 달라고 부탁하지 않았는데요? 강력, 약력, 중력에 대해서는 전혀 궁금하지 않은데요? 그냥 쇠가 왜 자석에 붙는지만 설명해 달라고요? 파인만 아저씨 화낸다. 이놈! 하고 꾸짖으면 어쩔래? 전자기력과 자석이 쇠붙이를 당기는 원리가 같다. 알겠느냐. 이놈들아. 이러실 것만 같다. 파고들자면 끝이 없다. 파인만은 포기하지 않는다. 메커니즘을 정확히 말하려면 이야기가 끝도 없이 길어진다. 대충 뻘로 아는 것과 스트럭쳐와 메커니즘과 시스템을 통찰하여 아는 것은 다르다.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진정성이 있는 사람이라면 말이다. 진리에 대한 열정이 필요하다. 그걸 일일이 다 알아서 뭣하게? 메커니즘은 하나를 알면 여러 곳에 써먹을 수 있다. 좋잖아. 30분 투자해서 평생 이익을 누린다 그걸 왜 포기해? 필자가 많은 글을 뽑아내는 데는 이유가 있다. 시스템을 쓰기 때문이다. 필자가 구조론을 연구하게 된 데는 계기가 있다. 초등 4학년 때의 일이다. 자석에 쇠붙이를 붙이는 실험을 했다. 선생님이 실험결과를 발표하란다. 학생들은 당연히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한 명씩 지목하는데 선생님이 원하는 답변이 나오지 않았던지 기어이 내 차례까지 왔다. 자석과 쇠붙이 사이에 어떤 힘의 방향성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고 말하려는데 선생님이 말을 끊고 역정을 냈다. '뭐라카노?' 다음 학생으로 질문을 넘긴다. 끝내 만족스런 대답을 얻지 못하고 결국 선생님이 스스로 결과를 발표했다. 이 실험의 결과는 자석이 쇠를 당긴다는 것이다. 끝. 뭔 개소리야? 교실을 한바탕 뒤집어 엎어놓고 겨우 한다는 소리가 뭐 쇠를 당긴다고? 당긴다는게 뭔데? 적어도 자기장의 존재 정도는 언급되어야 뭔가 설명한 거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 화가 났다. 이건 아니지. 끝도 없이 생각을 이어갔다. 그때 나는 왜 화가 났을까? 나는 어렴풋하게라도 메커니즘을 봤는데 선생님은 고작 동사 따위로 설명했기 때문이다. 이건 과학에 대한 모독이다. 당긴다는 말은 동사다. 그건 사람이 눈으로 본 것이다. 보아하니 당기는구나. 그건 사건의 결과이지 원인이 아니잖아. 어떻게 당기는데? 도대체 당긴다는게 뭔데? 파인만은 달랐는데 말이다. 언어는 동사로 시작된다. 동사의 전제는 명사다. 명사의 전제는 주어다. 언어는 전제와 진술이 대칭을 이루며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거기에 돌아가는 메커니즘이 있다. 원인의 원인의 원인의 원인의 원인으로 계속 추궁해 들어가야 한다. 우리가 눈으로 본 것은 코드다. 코드의 원인은 액션이다. 선생님이 말한 당긴다는 표현은 액션이다.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파인만이다. 액션의 근거는 스트럭쳐다. 스트럭쳐의 근거는 메커니즘이다. 메커니즘의 근거는 시스템이다. 처음 눈으로 본 코드는 자석에 쇠가 붙는 모습이다. 거기에서 당긴다는 액션을 찾고, 다시 철 원자 속에서 전자의 회전방향이라는 스트럭쳐를 찾고, 다시 자기장이라는 메커니즘을 찾고, 다시 전자기력과 통일장이론이라는 시스템을 찾아야 한다. 그 정도는 파고들어야 촌놈이 뭔가를 안다고 말할 수 있다. 전자의 회전이 전자기력을 낳고, 전자기력이 자기장을 낳고, 자기장이 철을 정열시키는 것이 우리 눈에는 쇠붙이가 자석에 달라붙는 모습으로 보인 것이다. 이 정도 가줘야 똥꼬부터 머리털까지 뻑적지근하게 차오르는 충일감이 느껴지는 거다. 뭔가 설명했다는 느낌이 든다. 답은 언어에 있다. 언어에는 구조가 있다. 언어는 동사로 시작한다. 동사에서 명사를 찾아 문구를 이루고, 다시 술어에서 주어를 찾아 문장을 이루고, 거기서 다시 진술에서 전제를 찾아 명제를 이루고, 거기서 다시 반복문과 조건문을 대칭시켜 담론을 완성해야 한다. 이 정도 가줘야 아 촌놈이 말 좀 해줬구나 하는 것이다. 그냥 동사 하나만 불쑥 내뱉으면 곤란하다. 성의가 없다. 그런 사람과는 같은 테이블에 마주 않아 대화할 수 없다. 당긴다구. 뭘 당겨? 왜 당겨? 누가 당겨? 어떻게 당겨? 잡아야 당길 수 있다. 그냥 당기면 손이 미끄러진다. 어떻게 붙잡지? 자기장으로 붙잡는 것이다. 입력에서 출력까지 에너지를 순환시키는 시스템 안에, 사건의 머리와 꼬리를 연결시키는 메커니즘 안에, 다시 축과 대칭의 의사결정구조 안에서 명사와 동사가 자리를 잡고 액션을 취하는 것이며 마지막에 우리가 눈으로 그 결과를 보고 인지하는 것이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사건의 머리부터 꼬리까지 통찰하여 알려는 노력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코드 - 동사와 인간의 관측대칭 언어는 단계적으로 대칭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꼬투리 하나 잡았다고 의기양양해 하면 안 된다. 나는 트집을 잡는 포지션을 차지하고 양반처럼 에헴 하고 앉아있을 테니 니가 종놈처럼 부지런히 움직여서 나를 한 번 납득시켜봐라 하는 식으로 삐딱하게 나오는 자는 어른들의 대화에 끼어주면 안 된다. 그런 자는 대화를 일종의 게임으로 보고 오로지 상대를 이겨먹으려는 것이다. 내가 10분간 자초지종을 들어 설득하면 상대는 듣지도 않고 1초 만에 반격한다. '왜?' 한 글자로 조진다. 두 단어도 투자하지 않는다. 그들은 대화에 더 적은 에너지를 투입했으므로 자신이 이겼다고 생각하고 좋아한다. 관종본능이다. 이들은 대화에는 관심이 없고 암시를 걸어 상대의 마음을 조종하려고 하는 것이다. 상대를 화나게 하면 이기는 게임이다. 이겨먹으려는 말대꾸 행동 물리쳐야 한다. |
감사한 분석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