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는 인간의 관측으로부터 시작된다. 관측은 다름의 관측이다. 태초에 다름이 있었다. 인간은 자연에서 다름을 변별하여 지식을 생산한다. 다름의 출처는 어디인가? 구조론의 결론은 다름은 원래 있었다는 거다. 열역학 1법칙이다. 무에서 유가 생겨나지 않는다. 존재는 원래부터 다름을 내포하고 있었다. 정지해 있던 것은 움직일 수 없다. 움직이는 것은 정지할 수 없다. 가장 근본적인 것은 자체의 성질을 바꿀 수 없다. 변화는 감추어져 있던 것이 밖으로 드러난 것이다. 내부에서 몰래 움직이던 것이 겉으로 드러날 뿐이다. 그렇다면 정지한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움직임이 나란한 것이다. 우주 안의 모든 것은 움직이며 한 시도 멈출 수 없다. 멈춘듯이 보이는 것은 움직임이 비교대상과 나란한 것이다. 모든 관측은 변화의 관측이다. 변화는 변하지 않는 것과 비교하여 변별할 수 있다. 변하지 않는 것은 관측자다. 변화가 관측자와 나란할 때 우리는 그것이 정지해 있다고 믿는다. 문제는 관측자의 변화다. 지구가 돌기 때문이다. 관측대상도 변한다. 달이 돌기 때문이다. 지구에서 달을 관측한다면 지구도 돌고 있고 달도 돌고 있으므로 믿을 수 없다. 변화는 불변과 대칭된다. 관측대상을 놓치지 않고 줄기차게 따라붙는 것은? 그것은 구조다. 그것은 관측대상 자체에 내재한 질서다. 구조는 얽힌다. 얽혀서 나란히 간다. 끝까지 따라붙는다. 외부에서 관측하면 기차가 달리는지 가로수가 뒤로 물러서는지 헷갈린다. 관측자도 변하고 관측대상도 변하는데 구조는 불변의 잣대다. 믿을 수 있다. 지구에서 안드로메다까지 거리를 재려면 세페이드 변광성을 써야 한다. 세페이드 변광성은 밝기가 변하는 주기가 같을 때 별의 밝기가 같다. 거리가 같고 주기가 같으면 색도 같아야 한다. 같은 주기를 가진 같은 크기의 별이 색이 다른 정도를 보고 적색편이를 적용하여 그 별과의 거리를 잴 수 있다. 변하지 않는 것에 의지하여 변화량을 측정한다. 관측대상인 주기의 변화와 얽혀서 나란히 가는 관측자인 밝기의 불변에 의지하여 거리의 변화를 잰다. 여기서 A의 변화와 B의 변화가 나란할 때 변하지 않는 C의 변화를 찾을 수 있다. 밝기의 변화와 주기의 변화가 나란할 때 변하지 않는 거리의 변화가 적색편이로 나타나는 것이다. 이 법칙 하나로 우주 안의 모든 비밀을 들추어낼 수 있다. 그것이 찾아야 할 기세다. 정상에서 굴려지는 눈덩이의 변화와 기슭에서 판단되는 비탈의 변화가 나란할 때 변하지 않는 기세의 변화를 찾아낼 수 있다. 티코와 포르쉐가 같이 정상에서 출발했는데 기슭에서 보니 포르쉐가 더 멀리 갔다면 톱니들이 맞물린 정도의 차이가 포착된다. 품질 차이다. 관측대상 내부에 자체의 대칭이 있어야 한다. 나란히 가며 집요하게 따라붙어야 한다. 그것이 구조다. 포수가 사슴을 관측한다. 믿을 수 없다. 사슴이 도망가기 때문이다. 포수가 저녁에 퇴근하기 때문이다. 집요하게 따라붙는 것은? 사슴의 머리와 꼬리의 간격이다. 그 머리와 꼬리 사이의 간격이 변하면? 그것은 사슴의 성장이다. 이 법칙을 적용하면 경제성장도 알 수 있고 권력성장도 알 수 있다. 순간변화율을 추적하여 미래를 예견할 수도 있다. 머리가 꼬리를 놓치는 일은 절대로 없기 때문에 우리는 변화를 추적할 수 있다. 관측대상 자체에 관측자 혹은 비교대상이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 그것이 대칭이다. 축이 대칭을 붙잡고 유지시키는 것이 구조다. 구조는 얽힘이다. 얽혀서 따라다니며 관측한다. 양자역학은 말한다. 관측이 곧 존재라는 사실을. 존재는 내부에서 서로를 관측한다. 그것을 상호작용이라고 표현한다. 상호작용은 반드시 파트너가 있다. 항상 둘이 짝을 짓는다. 짝이 서로를 관측하면 바르다. 왼발이 오른발을 관측하면 바르다. 오른발은 왼발을 버리고 도망갈 수 없기 때문이다. 외부에서 관측하면 헷갈린다. 상대성 때문이다. 대칭이 축에 꿰어지면 절대성이다. 믿을 수 잏다. 위는 아래를 관측하고 좌는 우를 관측하고 전은 후를 관측한다. 하늘은 땅을 관측하고 어미는 자식을 관측하고 전체는 부분을 관측하고 중앙은 지방을 관측한다. 내외, 상하, 좌우, 전후, 표리가 있다. 대칭되어 있다. 질, 입자, 힘, 운동, 량이다. 질은 닫힌계의 내외를 관측하고, 입자는 코어의 상하를 관측하고, 힘은 대칭의 좌우를 관측하고, 운동은 변화의 전후를 관측하고, 량은 포착된 결과의 표리를 관측한다. 대칭된 둘 중에서 하나를 고정시키고 다른 쪽의 변화를 추적하기다. 원인을 고정시키고 결과의 다름을 본다. 그것이 관측이다. 메커니즘을 고정시키고 출력된 값의 다름을 변별한다. 전체를 고정시키고 부분의 다름을 본다. 시작을 고정시키고 종결의 다름을 본다. 머리를 고정시키고 꼬리의 다름을 본다. 여기에 일정한 방향성이 있다. 인류는 문명의 역사 1만년간 줄곧 실패해 왔다. 관측자가 움직여서다. 카메라가 움직이면 촬영은 실패한다. 모델이 움직여도 실패한다. 움직이지 않는 요소만 추출해서 보는 것은 수학이다. 수학은 추려서 보므로 제한적이다. 수학의 시야는 좁다. 보이는 부분만 본다. 전모를 보려면 보는 방법을 바꾸어야 한다. 보이지 않으면 망원경을 써야 한다. 구조로 보는 방법을 익혀야 한다. 불변과 변화를 나란히 추적해야 한다. 인간이 관측이라는 상호작용을 통해서 인식하듯이 존재도 내부에서 상호작용을 통해 스스로를 성립시킨다. 상호작용은 변화 중에서 나란히 가는 것이다. 따라붙는 것이다. 나란하지 못하면 깨진다. 세상은 원자가 모여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변화가 나란해서 이루어졌다. 원자론은 원자가 왜 한 자리에 모였는지 설명하지 않는다. 에너지는 변화하고 변화는 움직인다. 움직이면 충돌하고 충돌하면 깨지고 깨지면 사라진다. 충돌했는데 나란하면 교착되고 교착되면 커지고 커지면 이기고 이기면 살아남는다. 살아남아서 빅뱅 후 여기까지 굴러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