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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4507 vote 0 2021.05.30 (09:06:19)

    운칠기삼이라고 한다. 운은 외부환경이고 기는 내부노력이다. 인간은 환경이라는 말을 타고 있다. 승마경기는 말이 7이고 기수가 3이다. 기수가 잘해봤자 말이 가지 않으면 이길 수 없다. 정유라가 비싼 말을 고집하는 이유다.


    인생은 환경이 7이고 노력이 3이다. 틀렸다. 인생의 정답은 운도 아니고 노력도 아니고 기세다. 기세는 숨은 플러스 알파다. 그것은 외부에 드러나지 않는다. 남들 모르게 움직이므로 이길 수 있다. 


    고수는 노력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노력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고수는 외부에 의존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외부를 무시하는 것도 아니다. 외부와 내부 사이에 긴밀한 관계를 형성한다. 그리고 그 관계를 바꾼다. 말과 기수가 호흡을 맞춘다. 마침내 기수가 말을 이긴다. 말을 길들여서 말이 기수에 복종하게 만든다.


    운칠기삼이라고 했다. 고수는 운을 바꾼다. 하수는 환경에 적응하고, 중수는 환경변화를 기다리고, 고수는 적극적으로 환경을 변화시킨다. 문제는 어떻게 환경을 변화시킬 것이냐다. 기세를 어떻게 디자인 할 것인가? 


    공세종말점을 설계해야 한다. 합기도의 합기원리다. 대칭을 교착시켜 팽팽하게 만든다. 영천 할매돌과 같다. 상대가 힘을 쓸 수도 없는 구조를 만든다. 가랑잎 하나가 아슬아슬한 시소의 밸런스를 흔들어버릴 수 있는 구조다. 


    그러려면 상황을 극도로 단순화 시켜야 한다. 노름을 해도 양쪽 다 올인하면 무조건 돈 많은 사람이 이긴다. 운도 필요없고 기술도 필요없고 무조건 내가 이기는 상황을 설계해야 한다.


    내가 노력하여 준비한 것과 환경변화가 일치할 때 기세가 오른다. 고스톱을 쳐도 손패와 더미패와 바닥패가 맞아떨어져 양의 피드백에 의한 선순환이 일어난다. 인간은 노력하여 환경에 맞추려고 하지만 환경변화가 뒤통수를 친다. 


    내게 유리한 쪽으로 환경변화가 일어나는 것은 운이다. 환경변화를 따라가면 늦고, 막연히 앉아서 변화를 기다리면 안이하고, 내가 능동적으로 변화를 설계해야 한다. 내가 게임의 주최측이 되어야 한다. 그러려면 미리 정해놓은 인생의 대원칙이 있어야 한다. 장기전을 하고 일관되게 밀어붙여야 한다. 전략을 가동해야 한다.


    게임은 정상에서 시작된다. 정상에서 기슭을 향해 눈덩이를 굴린다. 정상에서 기슭으로 내려가는 음의 진행에 의해 거기에 대칭되는 양의 피드백을 일으키는 것이다. 배우는 무대에 올라야 이야기가 되고, 작가는 펜을 쥐어야 이야기가 되고, 연주자는 피아노 앞에 앉아야 이야기가 된다. 


    거기가 정상이다. 어떻게든 그 자리에 앉아야 한다. 그 정상에서는 외부환경의 개입이 없다. 거기가 공세종말점이다. 요란한 총소리는 사라지고 고독하게 혼자가 된다. 닫힌계가 만들어지면 외부는 개입할 수 없고 내 안에서 자원을 백 퍼센트 조달한다.


    사건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진행되고 있는 사건의 중간지점에 끼어들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다. 환경변화에 휘둘리게 된다. 운에 영향을 받는다. 좌충우돌 한다. 기껏 정상에 올랐다가 '이 산이 아닌게벼.'를 되풀이 하게 된다. 남의 사건에 꼬리를 물지 말고 내 사건의 머리를 일으켜야 한다.


    안철수처럼 노무현 흉내를 내볼까, 마크롱 흉내를 내볼까, 트럼프 흉내를 내볼까 하는 것은 남의 사건에 꼬리를 무는 것이다. 자체 엔진 없이 묻어가려는 책략이다. 무동력으로 예인선에 끌려가는 신세다. 망한다. 이런 짓을 하면 운이 절묘하게 비켜간다. 


    49까지 잘 가는데 51의 고비를 넘지 못한다. 기세가 없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이 나의 게임에 가세할 수 없기 때문에 뒷패가 붙어주지 않는다. 내가 머리를 일으켜서 남들이 내 꼬리를 물고 따라오게 연출해야 한다. 기세는 그곳에 있다.


    누구도 운명을 피할 수 없다. 인생은 환경에 맞춰 사는 것이다. 거북의 등껍질 같은 운명의 굴레를 벗어던지지 못한다. 인간은 주어진 조건 안에서 그냥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존재다. 그런데 이쪽에 맞추면 저쪽과 틀어진다. 내게 맞추면 환경과 틀어진다. 억지로 환경에 맞추면 스트레스를 받아서 암에 걸린다. 화병 나고 공황장애 온다.


    일단은 나를 확인해야 한다. 그것은 자기다움이다. 고유한 캐릭터를 얻는다. 집단 안에서 포지션을 얻고 역할을 얻는다. 그런데 나다우려고 하면 환경과 틀어진다. 내가 고집을 피우면 동료가 떠난다. 동료에게 맞춰주면 내가 상처 입는다. 연애를 해도 그렇다. 


    일단은 나를 확인한다. 내가 어디까지 견디고 어디까지 상대에게 맞춰줄 수 있는지 그 한계를 인식하기다. 그러다가 상처 주고 상처 입는다. 연애도 해봐야 는다. 적절히 새로운 게임으로 갈아타야 한다. 이번에는 제대로 해야 한다. 내가 다치지도 말고 남을 다치게 하지도 말아야 한다.


    나를 찾아야 한다. 나다움을 찾는 것이다. 먹어주는 캐릭터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내 안에도 내가 없고 내 밖에도 내가 없으며 너와 나의 부단한 상호작용 속에 진정한 내가 있다. 나답다고 믿어지는 것은 타인에 의해 규정된 가짜다. 


    넌 남자니까 이래야 해. 넌 여자니까 이래야 해. 외부에서 주입된 가짜다. 나의 스타일? 나의 성격? 전부 가짜다. 인생은 나를 찾는 것이며 그것은 나를 버리는 것이다. 껍데기를 버려야 알짜배기가 나온다.


    내 안에는 내가 없다. 남들 앞에 전시된 나는 가짜다. 평판도 가짜고 명성도 가짜다. 남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든 전부 가짜다. 성공이니 행복이니 쾌락이니 선악이니 정의니 도덕이니 사랑이니 하는 관념들은 전시용에 불과하다. 타인들에게 나의 극중 캐릭터를 설명할 때나 쓰는 말이다. 그것은 우스꽝스런 연극이다. 거기서는 누구나 어설픈 삐에로가 된다.


    진정한 나는 단에 있다. 단은 정상에 있다. 단은 공세종말점에 있다. 팽팽하게 교착된 대칭상태에 있다. 서로 올인했을 때 단이 펼쳐진다. 단은 끝단이다. 일의 시작점이다. 사건의 단서가 되며 일의 실마리가 된다. 비로소 사건의 첫 단추가 꿰어진다.


    배우는 무대가 단이다. 작가는 펜이 단이다. 자동차는 운전석이 단이다. 기수는 말잔등이 단이다. 거기가 정상이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거기서 결과물을 만들어야 한다. 내가 단에 위치하면 타인이 내게 말을 걸어온다.


    내가 운전석에 앉으면 ‘이 버스 노량진 가나요? 하고 승객이 질문한다. 상대방이 내게 질문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럴 때 주도권을 쥔다. 비로소 게임을 운영할 수 있다. 운을 설계할 수 있다. 환경변화를 끌어낼 수 있다.


    사람들이 보석을 소유하고 명품을 사들이는 이유는 단을 차지하려는 것이다. 타이틀을 붙이고 간판을 달고 명찰을 다는 것이다. ‘그 보석 어디서 샀어요?’ 상대방이 먼저 내게 질문해 오기를 기대하면서 말이다. 우쭐해서 말이다. 허술한 수작이다.


    단은 사건의 시작점이다. 시작점을 차지해야 환경변화를 주도할 수 있다. 정상에서 어느 비탈로 눈덩이를 굴릴 것인지 정할 수 있다.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든, 플라톤의 이데아든, 유교의 사단칠정이든, 도교의 음양오행이든, 석가의 고집멸도든, 기독교의 삼위일체든 단을 세우려는 노력이다. 사단은 네 가지 단이다. 인의예지가 인간의 본성이며 그것이 모든 게임의 출발점이라는 말이다. 옛날에 할배들이 임의로 꾸며낸 말이다. 그럴 리가 있나?


    단은 사제단의 계통이다. 베드로가 계통을 이었다. 카톨릭이 정통이다. 아니다. 단은 성경이다. 말씀 외에 아무 것도 없다. 개신교로 갈아타야 한다. 웃기고 있네. 다 필요없고 하느님한테 직통계시를 받아야 한다. 내가 간밤에 계시를 받았다. 짜잔~! 이러고들 노는 것이었다. 웃기잖아. 유치하잖아. 시시하잖아.


    시작점은 새로운 게임에 있다. 남들 다 하는 게임은 단이 없다. 원자도 없고, 이데아도 없고, 사단칠정 없고, 음양오행 없고, 고집멸도 없고, 삼위일체 없다. 뻥 좀 치지 마라. 인간들아. 사건의 기승전결에서 기에 포지셔닝 하는 것이 단이다. 언제라도 사건의 원인측에 서야 한다. 게임의 주최측이 되어야 한다.


    단은 원자와 같다. 작고 단단하고 변하지 않으면서 모든 변화의 주인이 된다. 그런데 원자는 아니다. 그것은 게임의 룰이다. 단을 차지하면 자원들을 긴밀하게 맞물려 돌아가게 하여 기세를 얻을 수 있다. 조여주기만 하면 이익이 나온다. 마이너스만 하면 플러스를 얻는다. 음의 진행으로 양의 피드백을 얻는다. 정상에서 눈덩이를 굴리기만 하면 기슭에서 눈사태가 일어난다.


    인생의 정답은 운도 아니고 노력도 아니고 기세다. 기세는 기승전결로 이어가는 단계들의 매끄러운 맞물림이다. 남의 사건에 끼어들면 안 되고 자신의 사건을 띄워야 맞물려 돌아가는 톱니들의 간격을 조절할 수 있다. 


    환경과 조화를 이루되 머무르지 말고 그 환경을 변화시켜 사건을 다음 단계로 끌고가는 것이 기술이다. 남의 게임에 초대받는 사람이 되지 말고 나의 게임에 초대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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