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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4127 vote 0 2021.03.08 (20:50:25)

     이미지 1.jpg


    요즘 사람들은 ‘네 잘못이 아냐.’ 하고 위로해 주는 것을 좋아하는 모양이다. 자기계발서나 처세술 코너에서 유행하고 있다. 내 잘못이 아니면 당장 내가 어떤 액션을 해야하는게 아니다. 추궁되지 않는다. 멱살 잡고 끌고 가지 않는다. 자책할 이유가 없다. 그뿐이다. 


    내 잘못이 아니라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전혀 아닌데 말이다. 누구 잘못인지가 중요한가? 어쨌든 스트레스는 당장 내 멱살을 쥐고 흔든다는 점이 각별하다. 그래서 히키코모리는 집을 나서지 못한다. 문 앞의 괴물 때문에. 행복이든 성공이든 출세든 포기한다.


    영광이든 명성이든 포기하면 편하다. 결혼도 포기하고 취업도 포기하면 된다. 다만 당장 내 멱살을 쥐고 흔드는 이 녀석 좀 어떻게 해 달라고. 스트레스를 해결해 달라고. 행복이건 쾌락이건 결혼이건 출세건 죄다 플러스다. 내가 전진하여 목표를 움켜쥐는 것이다. 


    그런데 스트레스는 내가 가만있어도 내 집 대문을 노크한다. 바깥으로 나가지 못한다. 집에 틀어박히게 된다. 많은 노빠들이 암 걸려 죽은 데는 이유가 있다. 방문 앞의 괴물은 누가 쫓아주지. 영화 '굿 윌 헌팅'의 로빈 윌리엄스는 사실 헛다리 짚고 있는 것이다. 


    뭐 영화니까 좋게 넘어가지만. 행복이든 출세건 명성이건 내가 전진하여 어떤 성과를 움켜쥐는 것이다. 그것들이 내게 이래라저래라 명령을 내리고 있다. 그래서 힘들다. 성과를 내는 것은 타인에게 증명하려는 것이다. 내가 이 정도로 잘났다구. 무시하지 말라고. 


    날 우습게 보면 큰코다칠 거야. 나 대단한 사람이야. 나 요즘 잘나간다구. 이런 거다. 다 포기하자. 다 내려놓고 문 앞의 괴물을 퇴치하고 히키코모리를 탈출하자. 스트레스는 가만있어도 내 집으로 쳐들어온다. 나를 창으로 찔러댄다. 나를 괴롭히지만 말아 달라구. 


    답을 알고 대응 매뉴얼을 정하면 스트레스는 물러간다. 답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예컨대 필자가 페미니즘을 위해서는 여대를 없애야 한다고 말하지만 당장 여대를 없애서 성과를 내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방향을 알고 조금씩 확률을 높이면 된다.


    내가 못 가면 후손이 가면 된다. 기회는 넉넉하다. 내 대에 안 되면 다음 대에 하면 된다. 인류가 이 방향으로 간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당장 신에게 점수를 따서 천국행 열차표를 챙겨야 해 하고 조급해할 이유가 없다. 신의 존재를 알아채는게 중요하다.


    진리는 분명히 있다는걸 알아야 한다. 한 사람이 깨달으면 만인이 깨달은 것이다. 과연 깨달음이 있느냐가 중요하다. 어쨌든 지구는 있다. 자연도 있다. 하늘도 있고 땅도 있다. 당신도 있다. 그렇다면 요리의 재료는 넉넉히 준비된 셈이다. 그런데 과연 내가 있을까?


    있다. 권력의지다. 당신에게 권력의지가 있으면 당신의 존재는 성립되었다. 자연도 있고, 우주도 있고, 나도 있다면 요리재료가 갖추어진 셈이다. 그렇다면 요리는 언제 되어도 상관이 없다. 시간문제일 뿐 언제 되어도 된다. 지구가 과연 있을까? 우주는 과연 있을까? 


    그거 알면 문제의 반은 풀렸다. 지구가 있고 우주가 있고 너와 내가 있다는건 당신도 알고 있다. 답이 있다면 그리고 그 답을 안다면 문제에 맞서는 대응매뉴얼을 만들어놓고 하나하나 맞대응을 한다면 문 앞의 괴물을 퇴치할 수 있다. 스트레스를 극복할 수가 있다. 


    그러면 된 거다. 해결 끝. 출세하고, 성공하고, 결혼하고, 취직하고, 고급차 한 대 뽑아서 추석이나 설날에 고향 내려가서 부모님 앞에서 큰소리 한 번 쳐주려는 것은 증명하려는 것이다. 남들이 눈을 크게 뜨고 나를 우러러보게 만들고 말겠다는 거다. 포기하면 편하다. 


    다만 하나 악착같이 나를 괴롭히는 것은. 방을 나가지 못하고 히키코모리가 되게 하는 문 앞의 괴물. 답을 모르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것. 답을 알고 실천하여 성과를 내면 좋지만 굳이 성과를 내서 남들에게 증명할 이유는 없다. 신이 알고 내가 아는데 말이다.


    진리를 알고 답을 알고 방향을 알고 조금씩 확률을 높여가면 된다. 그래도 안 되면? 그건 재수가 없기 때문이다. 재수가 없는건 신의 잘못이다. 신 너 요즘 뭐하냐? 장단을 못 맞춰주네. 하고 신을 꾸짖으면 된다. 신이 내게 맞춰주지 못한 것이다. 스트레스 극복한다. 


    답은 권력이다. 권력은 만남에서 촉발된다. 혼자 있으면 권력의지가 없다. 그냥 밥이나 먹고 산다. 만나면 복잡해진다. 옆구리를 찌른다. 당신은 장관도 될 수 있는 사람인데 왜 여기서 이러고 있지? 권력의지 발동이다. 만나면 상대와 맞춰줘야 한다. 장단을 맞춘다. 


    만남은 간격을 만들고 간격을 0으로 만들려고 하는 것이 권력의지다. 상대의 단점을 들추면 안 되고 장점과 맞춘다. 서로 장점을 맞추다 보면 목표가 높아진다. 그러다가 인생을 건다. 굿윌 헌팅에서 맷 데이먼의 고통은 세상이 자신에게 맞춰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불협화음이다. 위층의 층간소음과 같다. 가만있어도 층간소음이 고막을 때린다. 가만있어도 세상의 등신들이 맷 데이먼을 짜증나게 한다. 그래서 스트레스다. 이것들이 통 맞춰주지를 못하네. 차라리 내가 지휘자가 되어버릴까 보다. 로빈 윌리암스를 만난 거다.


    그래! 사실은 네가 지휘자였던 거야. 네가 바보들의 소음에 맞춰서 연주해야 하는게 아니라구. 네 연주를 따라오지 못하는 청중이 잘못한 거라구. 악보는 내가 조달해줄게. 로빈 윌리암스가 해야 하는 대사다. 그걸 못해서 네 잘못이 아냐만 열네 번 반복하고 있다.


    만남에서 시작된다. 만나려면 오지게 만나야 한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는 잘못된 말이다. 먼저 천하를 만나서 미션을 받아야 한다. 국가를 만나서 적과 맞서고 제가를 이루니 도원결의하여 동료를 규합한다. 그다음에 내게 주어진 역할을 완수하면 그게 수신이다. 


    임무 안에서 내 몫을 해내면 된다. 만남은 거리가 있고 그 거리를 0으로 만드는 것이 권력의지다. 답은 그곳에 있다. 간격을 넓게 정하고 조금씩 좁혀가면 된다. 실패는 초장에 간격을 너무 좁게 정하기 때문이다. 큰 방향을 정해야 하는데 작은 성과를 수확하려 한다. 


    남들은 열쇠 다섯 개 챙겼다는데. 남들은 멋진 이벤트를 해줬다는데. 남들은 명품 지갑을 사줬다는데. 이러면 피곤해진다. 큰 의리를 먼저 이루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은 세상과의 관계를 정립하는 것이다. 천하와 나의 거리를 0으로 만들 때 의리는 진정 완성된다.


    천하의 슬픔을 내 슬픔으로 할 때 자아는 완성된다. 권력은 완성된다. 천하 앞에서 당당하게 발언할 수 있다. 천하의 야심을 내 야심으로 할 때 내 인격은 완성된다. 천하와 함께하는 연주다. 잘못된건 천하가 옆에서 장단을 못 맞춰줘서야. 나는 할 만큼 하고 있잖아. 


    천하야 천하야! 네가 똑바로 연주하라구. 노무현은 할 만큼 했고 국민이 못 맞춰준 거다. 스트레스를 이길 수 있다. 히키코모리도 문을 나선다. 천하라는 넘의 목을 비틀어야 하니까. 인간이 살기 힘든건 목표달성에 실패해서가 아니라 내가 직접 공격받기 때문이다.


    언제나 나를 해치는 것은 스트레스다. 스트레스는 성과를 내지 못해서가 아니라 답을 모르기 때문이다. 대응 매뉴얼이 없기 때문이다. 무대인 진리를 알고, 지휘자인 신을 알고, 주어진 악기인 권력의지를 알고, 펼쳐진 악보인 내 역할을 안다면 내 연주를 할 수 있다. 


    악보를 읽을 수 있으면 내 몫의 연주를 할 수 있다. 그러면 된다. 로빈 윌리엄스는 다 있는데 악보가 없는 맷 데이먼의 악보가 되어줄 뿐이다. 무대도 있고, 청중도 있고, 연주회도 있는데 악보가 없다면 어색하다. 스트레스받는다. 그래서 인간의 삶은 곤고한 것이다. 


    옛날에는 히키코모리가 없었다. 그때는 돈이 없었고 먹을 것이 없었다. 그것들은 내가 밖으로 나가서 조달해야 한다. 대신 형제가 많았다. 형들과 동생들 사이에 적당히 섞여 있으면 추궁받지 않는다. 형이 알아서 하겠지. 다 동생 때문이야. 그 녀석이 저질렀다구.


    면피할 수 있다. 지금은 형도 없고 동생도 없다. 내가 독박을 쓴다. 그때 그 시절 형들과 동생들 사이에 섞여서 내 역할을 찾듯이 지금은 진리와 신과 역사와 진보와 투쟁 사이에서 역할을 찾아야 한다. 내가 할 몫을 알면 스트레스는 사라진다. 구조론이 악보가 된다.


    자동차를 새로 샀다면 거리가 있다. 운전에 서투르다. 최신 옵션을 사용해보지 않았다. 거리를 0으로 만들어야 한다. 익숙해져야 한다. 나 자신과의 거리를 0으로 만드는 것이 자아다. 세상과 거리를 0으로 만드는게 권력의지다. 천하와 나의 앙상블이 깨달음이다.


[레벨:4]고향은

2021.03.09 (14:26:44)

"천하와 나의 앙상블이 깨달음이다"

훌륭한 구조물은 개체와 시스템의 절묘한 화음에 있다
/발효가 잘 이루어진 술과 같다/트윈폴리오가 주조하는 음색이다

그 시절에 <송창식.윤형주/윤형주.송창식>의 화음을 듣고
행복했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되지 않는 불협화음도
분명 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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