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는 구조에 있다. 우리가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는 것은 모두 어떤 둘 사이의 간격을 재는 것이다. 그러므로 착시가 있다. 서로 다른 것도 간격이 같으면 같은 것으로 판단하는 수가 있기 때문이다. 소리가 음파의 간격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안다. 색깔도 간격이고 촉각도 간격이다. 깊이 따지고 들어가면 간격 아닌 것이 없다. 어떤 둘 사이에 간격이 있는게 아니라 사실은 어떤 그것도 간격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일이다. 컵을 컵으로 만드는 것은 간격이다. 컵에 닿는 입술, 컵을 쥐는 손잡이, 컵에 담기는 물. 주변과의 간격이 컵을 컵으로 만든다. 컵 자체도 플라스틱으로 만들든 나무로 만들든 흙으로 구워 만들든 간격이 있다. 원자핵과 전자 사이는 멀고 원자핵을 구성하는 소립자들도 별과 별 사이만큼 멀다. 전자기력이 없다면 컵 둘을 충돌시켜도 그냥 통과한다. 죄다 간격이다. 어떤 것 자체의 고유한 성질은 없고 외부와 접촉하는 간격의 차이가 성질의 차이를 만든다. 그래서 세상은 널리 이루어졌다. 간격은 다양하게 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을 던지면 개는 공을 쫓아간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관측대상을 주목한다. 사슴을 잡고 호랑이를 피하려면 그래야 한다. 그러나 지혜를 얻으려면 보는 방법을 바꿔야 한다. 대상을 보지 말고 간격을 보라. 어떤 사람을 보려면 그 사람의 배후에 누가 있는지를 봐야 한다. 주변과의 관계를 봐야 한다. 그가 속한 그룹의 성질이 그를 규정한다. 우주 안에 고유한 것은 없다. 모든 존재는 주변과의 관계에서 수학적으로 성질을 획득한다. 소수가 나누어 떨어지지 않는 것은 그냥 그런 거다. 피타고라스의 정리도 그냥 그런 거다. 원주율이 끝이 없는 것도 그냥 그렇다. 어쩌라고? 수학이 그렇다면 그런 거다. 자성은 없다. 나라는 것은 없고 대신 권력의지가 있다. 권력이 어디서 나오는지를 보라. 울 아빠가 누군지 알아? 이렇게 말하는 사람의 권력은 아빠에서 나온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는 말이 있다. 잘못된 말이다. 천하가 먼저다. 권력은 천하에서 나와야 한다. 천하와 내가 어떤 관계인지를 봐야 한다. 천하와 나의 간격이 얼마나 떨어져 있는가? 그것이 이념이다. 그것이 그 사람의 나아가는 방향을 결정한다. 다음 국가와의 관계, 다음이 가족이나 동료와의 관계, 마지막으로 개인을 봐야 한다. 고유한 성질이란 것은 없다. 짝수는 어릴 때 기름을 먹어서 잘 나눠지고 홀수는 어릴 때 모래를 먹어서 똑 부러지는가? 아니다. 그냥 그렇다. 세상은 수학에 지배된다. 중요한건 방향성이다. 간격은 넓은 데서 시작하여 좁은 데서 끝난다. 사건은 원인과 결과가 있다. 방향성의 판단이 중요하다. 간격이 만들어지면 성질을 획득하고 간격이 0이 되면 성질은 죽는다. 남녀가 처음 만나면 간격은 멀다. 간격이 0이 되는 순간 스토리는 끝났다. 춘향과 몽룡이 다시 만난 것이다. 하나의 이치에 의지하여 올바른 방향감각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면 무리가 없다. 인간은 권력의지의 동물이며 천하와의 관계에서 방향감각을 얻고 간격이 0에서 끝난다. 간격을 0으로 만들려고 하는 것이 권력의지다. 명상가들은 자아는 세계다 하는 식의 생뚱맞은 말을 한다. 천하를 발견하고 거리를 0으로 만들려는 권력의지가 작동하는 것이다. 그것이 인간을 움직이는 엔진이다. 먼저 커다란 거리를 만들고 다음 거리를 좁혀가는 것이다. 그 사이에 스토리를 촘촘하게 채워넣는다. 세습하고 상속하면 너무 일찍 거리가 좁혀져서 권력의지가 없다. 망한다. 반대로 거지가 되면 너무 거리가 멀어서 포기한다. 도원결의하여 동료를 얻고 의리를 이루면서 천하를 발견하고 권력의지를 발동시키는 것이다. 한 사람을 만나면서 세상을 모두 만나고 싶다는 야망이 눈을 뜬다. 한 사람을 만나고 한 하늘을 만나야 한다. 이야기는 시작된다. 노무현을 만나고 진보를 발견하라. |
길은 외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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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 놀
<박목월의 나그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