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치기 페미는 가라 진보는 엘리트가 이끌어야 하는데 언제부턴가 일베가 페미의 이름으로 진보를 주도하고 있다. 꼬리가 머리를 흔드는 판이다. 예컨대 흑인 민권운동을 한다고 치자. 흑인 중에서도 상대적으로 피부색이 짙은 사람이 주도권을 잡는다면? 그럼 오바마는? 일부 흑인 입장에서 오바마는 흑인이 아니다. 곤란해진다. 원래 개혁의 초기 단계에는 한풀이 한마당이 펼쳐지는 법이므로 이해할 수는 있다. 한풀이 페미니즘이라도 양해한다. '동네방네 사람들아 이내 말씀 들어보소. 애고애고 내 팔자야. 원통하고 애통하다. 억울하고 분통하다.' 이런 모드로 밀어붙이면 반짝 뜨겠지만 관객은 점차 피곤해진다. 잘 우는 배우가 권력을 잡는다. 상갓집에서는 곡쟁이가 스타가 되는 법이고 극장에는 신파가 인기를 얻는 법이다. 점점 이상해진다. 배가 산으로 간다. 가만 놔두면 절대로 마이너스 된다는 것이 구조론이다. 살아남으려면 외부와 손을 잡아야 한다. 동정심에 호소하는 전략으로는 고립될 뿐이다. 주도권을 잃기 때문이다. 약자의 전략을 쓰면 약자가 된다. 눈물을 참고 이를 악물고 의연한 태도를 보이는 자가 진보를 이끌어야 한다. 연대고 나발이고 내 몫만 챙기겠다는 실속주의 모드로는 수준을 들킨다. 우주는 에너지의 법칙에 의해 작동한다. 답은 생산력이다. 여성의 생산력이 증가했다. 문화분야에서 강점을 보이는 여성의 지적 생산력과 IT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여성의 물적 생산력이 증대된 현실이 정치에 반영된다. 물적토대의 변화를 근거로 권력을 창출하는게 정답이다. 우는 전략이 먹히면 더 울어야 하는데 이게 끝이 없다. 페미진영 안에서 가장 열등한 자가 권력을 잡는다. 그리고 망한다. 남자를 규탄하여 양심적인 남자에게 양보를 받아서 권력을 잡겠다는 생각이라면 지갑 주우려는 태도다. 그렇게 얻은 권력은 내 것이 아니라서 운전을 못 하고 도로 뺏긴다. 권력을 가져도 사용할 줄 몰라 도로 반납한다. 진보는 권력을 줘도 못 먹는다는 말이 괜히 나왔겠는가 말이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이유는 산업구조의 변화로 여성주의가 먹히는 시대흐름에 페미세력 안에서 자신이 주도권을 잡기 위해 배제전략을 쓰기 때문이다. 정치권 안에서 여성은 소수고 페미는 더욱 소수다. 소수파로 몰리면 불안하고 초조하다. 조급한 마음을 먹는다. 요행수를 바라고 한 탕을 노린다. 그러다가 망하는게 소수파의 악순환이다. 페미뿐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그러하다.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진정한 페미만 남고 얼치기 페미는 가라.’ 이런 식으로 전개되는게 문제다. 원래 수세에 몰리면 세력전략을 버리고 생존전략을 채택한다. 생존모드 들어가면 도덕적 순혈주의로 간다. 이는 무의식적인 본능이다. 동물이 위기를 느끼면 본능적으로 2세를 남기려고 한다. 동료를 늘리기보다 혈통의 보존에 힘쓴다. 그래서 망한다. 식물도 환경이 나쁘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그리고 말라 죽는다. 다수가 소수를 갈라치기는 누워 떡 먹기로 쉽다. 다수파는 원래 잘 분열되지 않는다. 집단이 많으면 방향을 틀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소수는 방향전환이 쉬워서 분열한다. 페미니즘 세력이 순혈주의를 버리고 광범위한 연대를 통해 다수를 만드는게 전략이 되어야 한다. 진정한 페미니즘은 없다. 소아병적인 말트집 페미는 그만둬야 한다. 진보의 울타리 안에서 답을 찾아내야 한다. '마초는 빠져.' 이렇게 되면 울산 창원의 노동자는 정의당을 탈당할 수밖에 없다. 구조론으로 보면 일을 진행하는 프로세스가 있을 뿐 단서는 없다. 단서는 출발점이 되는 것이다. 예컨대 물리학이라면 원자나 원소가 단서다. 그런거 없다. 퇴계가 찾으려고 한 단서는 인의예지다. 그런 것은 없다. 최종보스만 찾으면 만사형통으로 풀리고, 만병통치약이 될 거 같지만 그런거 없다. 이것이 이렇게 되면 저것이 저렇게 된다. 이것과 저것의 연쇄고리에서 맨 앞에 오는 이것만 찾으면 실마리를 잡고 실타래를 풀 수 있다고 믿지만 그건 없다. 맨 앞에 가는 것이 첨단이고 첨단이 사단이니 인의예지다. 퇴계가 찾으려고 한 것이 그것이다. 제 1원인, 만병통치약, 최종보스, 플라톤의 이데아, 진정한 도덕가, 완벽한 영웅, 완전체 성인. 그거 하나를 찾으면 다 된다고 믿고 순혈주의, 도덕주의로 가다가 '얼치기 페미는 가라. 순수한 페미만 와라.' 이러다가 동료를 배척하고 고립되어 멸망하는 것이다. 다른 분야라도 마찬가지다. 호남이 집권하려면 영남 일부와 연대해야 한다. 정통 호남을 찾으면 된다? 정통 페미만 찾으면 된다? 완전체 도덕가를 찾으면 된다? 그러다가 박원순이야말로 진보진영에 남은 마지막 영웅이야. 진보의 진정한 히어로는 박원순이지. 이러다가 치를 떨며 맨 먼저 돌 던진다. 의리 없는 자들이다. 구조론은 단서가 없는 대신 프로세스가 있다. 마이너스로 간다. 단서찾기 이원론은 맨 앞에 오는 최종보스를 찾는 것이고 구조론은 앞과 뒤의 연결고리를 찾는 것이다. 원인과 결과의 연결고리가 중요할 뿐 최종원인 따위는 없다. 진보는 최종보스에 대한 환상을 버려야 한다. 영웅은 없다. 노무현은 영웅이 아니고 노빠가 영웅이다. 노무현과 노빠의 의리가 진짜 정답이다. 노무현은 노빠를 위해 자신을 희생했고 노빠는 노무현의 뜻을 이어간다. 나는 노란 옷만 입고 노란 우산을 쓰고 단무지만 먹고 노란 똥을 누는데요? 변이 황금색입니다만? 이런다고 진정한 노빠인가? 그런거 없다. 큰 강물을 이루어야 한다. 페미든 친노든 최종보스, 최초의 단서, 고결한 영웅, 진정한 노빠, 순결한 페미, 완벽한 도덕가. 이런 것을 찾으려고 하면 안 된다. 그게 동료를 배제하고 혼자 떠보려는 소인배 행동이다. 우리가 의리를 지키고 폭넓게 연대하여 숫자를 다수로 만들어야 한다. 도덕은 숫자 안에서 저절로 생긴다. 왜? 도덕이 손발을 맞추기 쉽기 때문이다. 부도덕하면 손발이 맞지 않는다. 동료의 패스를 받지 못한다. 팀플레이가 안 된다. 다수가 손발을 맞추고 패스를 올려주다 보면 자연히 도덕적으로 된다. 노무현은 젊은 386 참모들과 어울리다가 도덕적 인물로 되었다. 물론 문제를 일으킨 나이 많은 참모들도 있었다. 주변과 좋은 관계를 맺는 것이 중요하다. '백두에서 한라까지 흙가슴만 남고 얼치기는 가라'고 외치면 혼자 이쪽 시장을 다 먹지만 시인의 헛된 명성을 얻을 뿐이다. 그게 껍데기다. 진짜는 낙관주의를 가지고 폭넓게 연대하여 큰 강물을 만들어낸다. |
"우리가 의리를 지키고 폭넓게 연대하여 숫자를 다수로 만들어야 한다. 도덕은 숫자 안에서 저절로 생긴다. 왜? 도덕이 손발을 맞추기 쉽기 때문이다."
- http://gujoron.com/xe/12197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