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곡과 퇴계 율곡의 서얼차별 완화 등의 개혁 정책은 하나도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사후 조선에서 거론된 수많은 정책과 개혁론은 그의 사상과 정책에 뿌리를 두고 있다.[나무위키] 아! 일기가 운행 변화하여 흩어져 만수가 되는 것이니, 나누어서 말하면 천지 만상이 각기 하나의 기운이지만 합하여 말하면 천지 만상이 동일한 기운이다. [천도책] 후대의 학자 정약용은 정조와의 대화에서 기대승에게 판정승을 내렸다. 정약용의 집안이 이황의 학통을 이은 남인이란 점을 생각하면 묘한 구석이 있는 부분. 현대 분석철학의 논리적 도구를 이용한 분석 역시 기대승에게 판정승을 내리고 있다. 이황의 주리론은 사단과 칠정을 논리적 기준 없이 우열관계로 구분하려고 하였기 때문에 일관성이 부족했으며, 우주론과 실천윤리를 무리하게 하나의 틀로 통합하려고 시도하였기 때문에 실패한 기획이라는 평이 있다.[나무위키] 해외에서는 퇴계를 알아주지만 한국에서는 역사적으로 율곡이 승리해 왔다. 외국의 그들은 본을 갖추고 말을 구한다. 장식용이다. 오리엔탈리즘이다. 독특한 양념을 구하는 것이다. 퇴계가 외국을 위해서는 양념이 되지만 한국을 위해서는 가치가 없다. 퇴계는 주자의 성리학을 수입하여 번역한 것에 불과하다. 기냐 이냐 따져봤자 부질없다. 언어일 뿐이다. 언어는 고무줄과 같아서 원하는 대로 줄어들거나 늘어난다. 중요한 것은 일원론이다. 귀납은 동사를 본다. 동사는 움직이고 움직이면 둘이 된다. 연역은 명사를 본다. 명사는 머무르고 머무르면 하나다. 자동차의 핸들을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꺾어서 문제를 해결할 것인가 아니면 자동차를 고급차로 업그레이드해서 문제를 해결할 것이냐다. 돈이 없는 사람은 핸들을 꺾어 해결하려고 용을 쓴다. 돈이 있는 사람은 당당하게 신차를 주문한다. 에너지가 있는 자는 율곡을 따르고 에너지가 없는 자는 퇴계를 따른다. 이는 근본적인 세계관의 문제다. 세상을 일원으로 보는 눈을 얻어야 한다. 이원론은 진보나 보수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려고 한다. 그러다가 외통수로 몰린다. 일원론을 따르는 사람은 둘을 동시에 장악하려고 한다. 수요와 공급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면 망한다. 공격과 수비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면 안 된다. 둘을 동시에 장악해야 한다. 그러한 감각을 갖고 있는 사람이 율곡이다. 하나는 선비들의 공론이고 둘은 대립해 있는 두 입장이다. 싸울 것인가 강화할 것인가? 개항할 것인가 쇄국할 것인가? 어느 쪽을 선택하든 무조건 망한다. 필리핀은 조선보다 3백 년 앞서 개항했지만 망했다. 에너지가 없으면 어떤 경우에도 망한다.
아프리카나 남미는 자본주의든 사회주의든 망한다. 인도의 어떤 주는 공산당이 장악했지만 별 차이 없다. 상대방에게 선택을 요구하는 자는 흥한다. 수동적이면 망한다. 어느 편이든 남 뒤에 가서 줄 서면 망한다. 사건을 일으키는 자가 되어야 한다. 임금과 신하의 대립이든 중국과 조선의 갈등이든 남성과 여성의 갈등이든 마찬가지다. 어느 편이든 가담하면 이미 망해 있는 것이다. 이가 어떻고 기가 어떻고 부질없다. 율곡의 판단은 직관적이고 감각적인 것이다. 에너지의 출처는 언제나 하나다.
고려는 귀족이고 조선은 사대부가 지금은 부르주아 계급이다. 부동산 투기나 하고 주식에 투자하는 그 사람들이 권력을 가지고 있다. 도덕론으로 가서 내려놓아라거나 욕심을 버려라거나 하는건 선점하여 성공한 기득권자들의 장식용밖에 안 된다. 자본주의는 그들의 탐욕을 엔진으로 삼아 굴러가는 시스템이다. 극소수가 휘두르므로 불안한 것이다. 숫자를 늘려야 한다. 더 많은 사람을 자본시장에 참여시켜야 한다. 더 많은 사람을 태우고 가야 판이 안정된다. 선비 숫자가 적으면 당쟁을 한다. 동교동이니 상도동이니 한 줌도 안 되는 무리였다. 숫자가 늘어야 판이 안정된다. 지금은 180여 명으로 숫자가 늘었다. 문제를 풀어가는 해법은 언제나 같다. 핸들을 꺾는 방법은 임시변통에 불과하다. 더 많은 사람을 참여시켜 안정화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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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많은 사람을 자본시장에 참여시켜야 한다. 더 많은 사람을 태우고 가야 판이 안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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