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선택이냐 유전자 선택이냐? 주워들은 이야기지만 진화생물학과 분자생물학은 앙숙관계라 한다. 학자들이 서로를 부정하며 치열하게 다투고 있다고. 인문학이라면 적절히 타협할 텐데 이공계라면 절대 타협이 안 된다. 이공계는 연역적 사유를 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수학이라면 반드시 끝장을 보는 거다. 그러나 수학자라면 다투지 않을 것이다. 왜냐? 이미 끝장 봤기 때문에. 전투가 끝나버리는 거다. 수학은 명쾌하게 증명이 되니까 승패가 확실히 가려진다. 물리학도 예전에는 많이 다투었다는데 요즘은 모르겠다. 진화생물학과 분자생물학이 다툰다면 둘 다 허점이 있는 거다. 그래서 구조론이 대안을 제시한다. 구조론의 정답은 ‘유전자 선택’이다. 자연선택은 없다. 무엇보다 자연선택은 의미가 없는 허어다. ‘자연선택’이란 것은 어쩌다보니 우연히 결과가 그렇게 되었다는 말이다. 결과론이라 하겠는데 이건 이론이라 할 수 없다. 이는 언어학 문제다. 이론의 부정이다. 이론을 부정하는 이론이다. 틀렸다. 정답은 유전자 선택이다. 유전자는 모듈원리를 따르므로 진화에는 일정한 방향성이 있다. 모듈원리란 유전자 세팅에 드는 비용을 줄이기 위해 유전자가 몇 가지 간단한 모듈로 돌려막기를 한다는 거다. 인간설계 어렵다. 유전자에게 '너 인간 설계해 봐.' '코딩작업이 넘 힘들어요.' 안 한다. 그렇다면? 복제한다. 몇 개의 주요 유전자를 대량복제해서 여기저기에 가져다 맞춘다. 그러므로 결이 생긴다. 결따라 가는 것이다. 즉 유전자는 복제해먹기에 쉬운 방향으로 복제해먹어 버린다는 것이다. 진화는 절대 우연의 산물이 아니다. 그러므로 외계의 어느 별에 지구와 같이 생명체가 진화하고 있다면 지구와 비슷할 수밖에 없다. 환경에 먹히는 몇 개의 유전자 패턴을 반복하여 쓰는 것이다. 비유하면 유전자는 독일군의 6호전차 티거보다 러시아의 T34를 쓰는 셈이다. 성능은 티거가 우수하나 제작비가 많이 든다. 유전자는 비용이 싸고 호환이 잘 되는 것을 쓴다. 복제하기 쉬운 것을 쓴다. 복제과정에서 에러가 많이 나므로 수리하기도 쉬워야 한다. 그러므로 뻔한 길로 간다. 외계인도 지구인과 생김새가 비슷하다. 독특한 창의 따위 안한다. 아이폰보다 갤럭시 쓴다. 품질이 구려도 상관없다. 질보다 양으로 승부한다. 왜? 피곤하니까. 유전자에게 진정성이나 장인정신을 기대할 수는 없는 것이다. 유전자는 베끼고 훔치고 별 짓을 다 한다. 유전자가 모나리자 같은 걸작을 만든다고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지구의 동물은 대부분 눈이 두 개지만 외계의 어느 별에 사는 동물은 대부분 눈이 넷이라든가 그런 경우는 있을 수 없다. 눈이 넷이면 의사결정의 측면에서 비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이는 우연이 아닌 필연이다. 유전자는 의사결정 모듈이며 여기에는 일반원리가 작동한다. 유전자가 추구하는 것은 의사결정에 있어서의 효율성이다. 의사결정의 효율성을 담보하는 것은 일관성이다. 의사결정의 일관성을 따르는 것이 전략이다. 전략이란 서로 다른 여러 가지 의사결정을 한 줄에 꿰어 연동시키는 것이다. 하나가 결정될 때 동시에 많은 게 결정된다. 이것을 이렇게 결정하면 거기에 연동시켜 다른 것의 결정이 제한된다. 이것이 구조론이다. 질은 입자를 제한한다. 입자는 힘을 제한한다. 힘은 운동을 제한한다. 운동은 량을 제한한다. 그러므로 선택지는 점차 줄어든다. 구조론의 마이너스 원리다. 뭐든 점점 좁아지는 것이다. 자동차를 운전하려면 차도 좋아야 하고 도로도 좋아야 한다. 돈이 없다면? 예산을 차에만 집중투입하거나 도로에만 투입하거나 방향을 정해야 한다. 이 길을 가면서 동시에 저 길을 갈 수는 없다. 아쉽지만 하나를 포기해야만 하는 상황이 있다. 이랬다 저랬다 하면 낭비다. 이왕 하나를 포기할 바에는 미련을 갖지 말고 그쪽 분야를 송두리째 포기해 버려야 한다. 예산을 찔끔찔끔 배정하면 도로공사에 10년이 걸린다. 그동안 주민 불편은 말할 수 없다. 이 도로에 예산을 몽땅 때려박고 저 도로는 내년에 하는 수밖에 없다. 그래야 비용이 절감된다. 이쪽 저쪽에 공사판을 벌여놓고 하나도 완공을 못하면 주민불편은 극대화된다. 유전자도 이러한 고민이 있다. 그러므로 유전자는 전략을 가지며 그러므로 진화에는 일정한 방향성이 있다. 세력전략이냐 생존전략이냐다. 전략을 미리 정해놓고 앞일을 예측하며 전진하는 거다. 방향성은 의사결정비용을 줄인다. 닫힌계 내부의 모순을 줄여서 마찰에 따른 비용을 없앤다. 자연스럽게 조화된다. 그래서 눈이 네 개인 동물은 없다. 등 뒤에 눈이 있는 동물은 없다. 천적이 없는 동물도 잘 없다. 인간을 제외하고 말이다. 500살 넘게 오래 사는 동물도 없다. 우리는 생각해 보아야 한다. 벼는 왜 멍청하게도 인간에게 먹히는 걸까? 비정한 약육강식의 세계에 말이다. 인간에게 따뜻한 인정을 베풀다니 황당하다. 천사가 따로 없다. 천만에. 벼가 인간을 길들인 것이다. 벼는 인간이 벼를 먹도록 유인하여 씨앗을 퍼뜨리는 전략이다. 먹히면 죽는데도? 그런게 신경 안 쓴다. 죽으면 어때? 생존에 집착하는건 인간뿐이다. 동물은 쉽게 죽는다. 봄가뭄이 들면 하천에 재첩과 고동이 떼로 죽어 있다. 아주 새카맣게 죽어 있다. 장마철 앞두고 개미떼가 싸움을 벌여도 그렇다. 수만 마리 개미가 까맣게 죽어있다. 죽는게 뭐 어때서? 어차피 가을이 되면 낙엽은 죽어서 땅으로 떨어지는데 말이다. 개미는 죽어도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 왜? 여왕개미가 몸통이고 자신은 낙엽신세니까. 여왕개미의 페로몬에 지배되기 때문에 어차피 독립적인 의사결정의 단위가 아니라서 죽거나 말거나다. 개는 왜 인간을 따를까? 개가 인간을 길들인 것이다. 개는 늑대의 무리에서 나왔지만 늑대보다 지능이 낮다. 개는 늑대보다 체구도 작고 지능이 낮은데도 사람의 신호를 잘 알아듣는다. 사람이 키우는 늑대에게 물건을 가리키면 늑대는 사람의 지시를 알지만 따르지 않는다. 사람이 모자를 가리키면? 모자를 가리키는구나. 그래서 나보고 어쩌라고? 개는 다르다. 모자를 가리키면? 나한테 일거리를 주는구나. 뭔지 모르지만 일단 물고와 보자. 개가 사람의 명령을 다 이해하는게 아니다. 일단 사람을 좋아한다. 사람이 원하는 행동을 할 의사가 있다. 개는 의사결정비용을 줄이기 위해 사람을 따르는 전략을 선택한 것이다. 사람에게 의지해 비용절감했다. 개는 갈수록 뇌가 작아지고 있다고 한다. 늑대는 자연의 온갖 복잡한 환경에 적응해야 하므로 일단 뇌가 크다. 다양한 환경에 적응하도록 갖가지 생존능력을 갖추었다. 반면 개는 생존능력을 많이 잃었다. 대신 인간에게 의지하는 기술을 발달시켰다. 인간은 개에게 길들여졌다. 개가 귀여움 공격을 가하면 인간은 바로 함락된다. 개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원래 개는 여우처럼 냄새가 심했을 것이다. 사람에게 길들여져 호르몬이 줄어들었다. 러시아 과학자가 여우를 길들였더니 호르몬이 변해 냄새가 약해졌다고 한다. 여우들 중에서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 여우만 골라서 번식시켰다. 이 과정을 되풀이하여 몇십 세대가 지나자 중대한 변화가 일어났다.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을 뿐 아니라 냄새도 나지 않게 된 거다. 여기서 냄새 유전자와 사람을 기피하게 하는 유전자가 모듈화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여우는 냄새공격으로 외부세력의 접근을 막고 또 외부세력에게 잘 접근하지도 않는 것이다. 냄새는 나와 타자를 구별하는 수단이다. 냄새가 나는 사람은 가까이 할 수가 없는 거다. 고양이가 사람에게 다가와 얼굴을 부비는 것은 자기 냄새를 묻혀두는 것이다. 냄새가 다르면 공격하므로 사람이 자신을 공격할까봐 자기 냄새를 익숙하게 만들어 두는 것이다. 사람이 좋아서 스킨십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무서워서 사람의 공격을 미리 예방하는 것이다. 개는 골치아픈 먹이활동을 인간에게 맡기고 편해졌다. 개는 늑대가 가진 야생에서의 생존능력을 잃었고 따라서 뇌가 작아졌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진보냐 보수냐도 전략적 선택이다. 진보는 사회성이라는 한 분야를 깊이 파고들고 보수는 보다 다양한 환경에 잘 대응한다. 그래서? 인간의 뇌가 작아졌다. 21세기 현대의 인류는 3만 년 전 크로마뇽인 시절보다 뇌용적이 200CC나 줄었다고 한다. 왜? 인간은 다양한 원시의 능력을 잃었다. 원시의 후각도 잃었고 몽골인의 7.0 시각도 잃었고 청각도 약화되었다. 그만큼 뇌 크기가 작아져도 된다. 갈림길이 있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하나를 선택하고 하나를 버려야 한다. 구조론으로 말하면 두 길을 다 가야 한다. 단 우선순위를 정해야 하며 언제라도 진보가 우선이다. 먼저 진보하고 나중 보수한다. 길을 닦아도 그렇다. 먼저 새 길을 내고 다음에야 낡은 길을 보수한다. 낡은 집을 수리한 다음에 거기다 새 집을 지으면 어떻게 되나? 집수리를 마친 다음 부수고 새로 짓는 바보는 없다. 먼저 집을 짓고 그 집이 낡으면 수리한다. 집짓기와 집수리를 둘 다 해야한다면 집짓기를 먼저 해야 한다. 그래서 전략이 필요한 것이다. 우선순위 지정이다. 유전자는 전략이 있으며 그래서 우선순위가 있다. 유전자는 다음 단계를 내다보고 대비한다. 진화는 결코 우연의 산물이 아니며 확률로 결정되는게 아니다. 진화는 상황별 대응매뉴얼을 갖추었다가 거기에 맞는 카드를 조합해낸다. 도박꾼이 돈을 딸 수 있는 카드를 내밀 듯이. 야생환경은 복잡하다. 추위도 있고 더위도 있다. 다양한 환경에 적응하려면 다양한 본능을 갖추어야 한다. 뇌가 커진다. 인간은 이때 사회화 전략을 쓴다. 뭐든 사회화로 해결해버린다. 추우면 난로를 쓰고 더우면 에어컨 쓴다. 추위에 살아남게 하는 뇌의 능력은 필요가 없다. 추위에 살아남게 하는 생존의 지혜가 필요없다. 인간은 오직 사회화에만 올인한 것이며 따라서 뇌를 더 좁게 쓴다. 공부는 많이 하지만 인디언 추장의 지혜는 없다. 뇌를 좁게 쓰므로 뇌용적이 클 이유가 없다. 역시 의사결정 비용을 줄인 것이다. 유전자도 이런 방법을 쓴다. 까마귀와 앵무새는 머리가 좋다. 세 살 사람보다 세 살 까마귀가 더 영리하다. 세 살 까마귀는 머리를 써서 문제를 해결하지만 세 살 사람은 어른을 불러 해결한다. 울어버리면 되는 거다. 침팬지 실험으로 증명되었다. 인간은 머리를 쓰지 않는다. 그냥 울어버린다. 엄마가 한다. 인간의 지능이 뛰어난 것은 오랫동안 데이터를 축적했기 때문일 뿐 분별력은 없다. 침팬지보다 영리하지 않다. 문제해결능력이 없다. 엄마를 부르면 되니까. 실험자는 쓸데없는 동작을 하고 먹이를 꺼낸다. 그걸 지켜본 침팬지는 쓸데없는 동작을 생략하고 바로 먹어치운다. 인간은 쓸데없는 동작을 일일이 따라한다. 침팬지는 먹이를 찾는데 관심이 있고 인간은 데이터를 기억하는데 관심이 있다. 인간의 쓸데없는 과잉모방은 본인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써먹으려면 10년이 걸릴텐데 자연계에 이런 장기전략은 잘 없다. 뭣하러 10년이나 투자해? 동물의 방법은 단기적으로 도움이 된다. 침팬지와 인간을 정글에 보내면 침팬지는 살고 인간은 죽는다. 어린 침팬지 10마리와 어린 인간 10명을 정글에 보냈다고 치고 3년후 가보면 침팬지는 9마리가 살아남고 인간은 4명이 살아남았다. 100년 후에는 인간이 더 많아진다. 진보와 보수의 차이다. 진보는 인간의 전략을 쓰고 침팬지는 보수의 전략을 쓴다. 단기적으로는 보수가 유리하다. 고립된 곳에서도 보수가 유리하다. 대도시는 진보가 유리하다. 더 긴밀하게 협력하기 때문이다. 장기적으로는 진보가 유리하다. 일베충은 일단 침팬지 맞다. 정리하자. 의사결정원리가 있다. 진화를 추동하는 힘은 의사결정원리다. 의사결정의 효율성이다. 빠르고 정확하게 적은 비용으로 의사결정을 해내는 유전자가 이긴다. 그러나 이것이 꼭 생존에 도움이 되는건 아니다. 생존에 도움이 될 필요는 없다. 생존이 중요한 건 아니다. * 진화생물학 - 유전자를 남겨 생존하는게 중요하다. * 구조생물학 - 환경변화에 대응할 카드의 보유가 중요하다. 유전자는 다음 세대로 이어가면 된다. 다음 세대에 환경이 변했을 때 대응할 수 있는 카드가 있느냐가 중요하다.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 언제 하는가? 환경이 변할 때 한다. 환경이 변했는데 대응할 카드가 없으면 난감하다. 보수가 더 많은 카드를 가진다. 카드가 많아서 실패다. 진보는 카드가 서너 장뿐이다. 환경이 변화면? 카드를 복제하고 조합하여 새로운 카드를 만들어낸다. 이전에 없던 새로운 전염병이 등장했다. 보수는? 이미 그 전염병을 막을 유전자를 갖추고 있다. 보수는 즉시 새로운 전염병을 퇴치한다. 진보는? 카드가 없다. 몰살을 당한다. 그런데 한두 명이 살아남는다. 살아남은 한두 명은 유전자를 변화시켰다. 돌연변이를 일으켜 농약에도 안 죽는 모기가 된다. 이것이 진보의 전략이다. 보수는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고 진보는 아무런 대책이 없다. 보수는 준비한 대책을 다 쓰고 진보는 새로 전술을 개발한다. 어느 쪽이 이길까? 작은 집단이면 보수가 이긴다. 진보는 새로운 전술을 개발해야 하는데 이철희와 박영선이 방해한다. 한겨레가 딴짓하고 김어준이 한눈팔고 김용민이 삽질하고 진중권이 헛소리하고 유시민은 얼빠졌다. 그런데 큰 집단이면? SNS가 활발하게 움직여준다. SNS가 움직여주면 유시민이 정신차리고, 김어준이 감각 찾고, 진중권이 바른말 하고, 김용민이 성실히 돕고, 한겨레도 돌아온다. 죽었던 팀플레이가 다시 살아난다. 결국은 진보가 이기지만 쉽게 못이기고 개고생 한 다음에 겨우 이긴다. 이번에도 5퍼센트 싸움 막판까지다.
진화는 유전자 모듈에 의해 일어납니다. 모듈은 매우 비효율적입니다. LG전자의 모듈폰이 망한게 그 때문입니다. 유전자의 절대 다수는 쓸모없는 유전자입니다. 일종의 노이즈라는 거지요. 그러나 백수가 스타트업 성공시킵니다. 일본처럼 완전고용 되면 벤처창업 아무도 안 합니다. 비효율적인 것이 효율적인 것입니다. 사회는 언제나 백수와 게으름뱅이와 엉뚱이가 살립니다. 모범생은 별로 도움이 안 됩니다. 남들 편한 길 갈 때 엉뚱하게 특전사 간 사람이 사회를 살립니다. 엘리트가 특전사 가는 건 비효율입니다. 그러나 변화의 시기에는 비효율이 효율입니다. |
닥 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