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르주 멜리에스 감독, 각본, 주연.대포를 이용해 달로 간다는 소재 이외에는 쥘 베른의 원작소설과 다른 분위기다. 최초의 낭만주의 영화, 최초로 세트를 사용한 영화, 최초로 스톱 모션을 도입한 영화, 최초의 SF 영화, 화면 컷을 처음 쓴 영화, 최초의 극영화 등등 온갖 최초를 독식한다. 물론 당시에도 엄청나게 충격적인 영화였다. 최초로 불법 공유로 피해를 입은 영화다. 토머스 에디슨의 기술자들이 이 영화를 복제해서 미국시장에 뿌리는 바람에 멜리에스는 큰 피해를 입는다. 멜리에스는 프랑스 파테 영화사와 저작권 문제로 다퉜으나 패소하여 만들던 영화들을 헐값에 넘기고] 이후로 만든 영화들이 망하면서 결국 파산하여, 아내와 같이 작은 가게를 하면서 잊혀져갔다. 그의 팬인 영화잡지 편집장 레옹 드뤼오 뒤늦게나마 알아보고 그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진다. 드뤼오의 회고록을 보면, 철도역 주변의 작고 초라한 가게에 앉아 하염없이 시간을 보내며 졸던 노인을 보고 충격에 빠졌다고 한다. "멜리에스 씨죠?" 질문하자 눈을 뜬 멜리에스는 "나 같은 노인을 아는 댁은 장난감이라도 사러 오셨소?"라고 말했는데 "아닙니다... 당신의 영화를 좋아하는 영화잡지 편집장입니다." 말하자 멜리에스는 그의 두 손을 잡고 울었다고." 1929년 12월. 70대에 이른 몸이며 아내를 잃고 홀로 외롭게 살아가던 멜리에스는 모처럼 만에 프랑스 영화인들이 주선하는 명예인사 기념 잔치에 나가 미소를 지었다. 뒤늦게나마 재평가되면서 이 영화 달세계 여행이라든지 몇몇 영화들 필름이 보존되어 남게 된다. (엔하위키 발췌)
### 1896년 뤼미에르 형제가 만든 세계 최초의 영화.. 철도역에서..50초 짜리 필름이다. 문제는 이후 6년간 영화 기술상의 진보가 거의 없었다는 거. 그리고 1092년 조르주 멜리에스에 의해 영화는 갑자기 점프를 한다. 사진기는 고정된 사물을 찍는다. 영화는 움직이는 영상을 찍는다. 카메라를 고정시켜놓고 인물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카메라를 들고 움직이는 물체를 찾아다닌다. 움직이는거 뭐 없을까? 움직이는건 기차지. 그래 기차를 찍으러 가자. 이런 식이다. 문제는 이게 5년간 전혀 발전하지 않았다는 거. 조르주 멜리에스는 우연히 사고로 카메라가 정지하고 필름이 엉키는 바람에 편집기술을 생각해냈다. 그때까지는 누구도 필름에 가위를 댈 생각을 하지 않았다는 거. 스티브 잡스가 세룰러폰을 스마트폰으로 진화시키듯이 진화는 단번에 도약한다. 결코 서서히 진화하지 않는다. 한 번 생각을 바꾸면 세상은 완전히 달라지는 것이다. 조르주 멜리에스가 무수히 많은 최초 타이틀을 획득했듯이. 그럼에도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 한 동안 잊혀졌듯이, 세상의 큰 변화는 너무나 쉽게 오는 것이며, 한꺼번에 오는 것이며, 한 명의 뛰어난 인물에 의해 가능한 것이며 그리고 사람들은 단지 그것이 쉽다는 이유로 그 가치를 모른다. 멜리에스가 편집을 선보이자 개나 소나 다 편집을 하게 되었다. 그러자 멜리에스는 잊혀진 거다. 편집? 그건 누구나 할 수 있는 거지. 그게 뭐 대단하다고? 자르고 붙이면 되잖아. 멜리에스 아니라도 누구나 할 수 있지. 이렇게 되는 거다. 그런데 역사에 이런 식의 비약적인 진보는 많다. 쥘 베른은 우리가 소년기에 즐겨 읽었던 온갖 모험소설의 거의 혼자 써냈다. 코넌 도일이 추리소설을 쓴 것이며, 발자크가 사실주의 소설을 쓴 것도 마찬가지다. 인상주의 화풍이 등장한 것도 그러하다. 혼자서 혹은 극소수가 아주 쉽게 단번에 예술을 비약시킨다. 그리고 그 가치는 쉽다는 이유로 절하된다. 고흐가 한 점도 팔지못했듯이. 한 점 팔았는데 그것도 실은 다른 일의 댓가라는 설이 있다. 고흐 그림은 쉽다. 그래서 짝퉁도 많다. 심지어 고흐의 후원자였던 가셰박사도 짝퉁을 생산했다고. 그런데 구조론으로 보면 그렇게 쉽게 모방할 수 있는게 도리어 진짜다. 기교로 힘들게 만든 작품은 안 쳐준다. 왜? 미학은 소통의 수단이며, 소통은 타인에게 쉽게 받아들여져야 하고 원래 모든 아름다움은 타인에게 쉽게 받아들여지려는 한 가지 목적을 가지기 때문이다. 아기가 예쁜 것은 엄마에게 받아들여지기 위해서다. 아기의 얼굴은 단순해야 한다. 아기가 복잡한 얼굴을 하고 있으면 곤란하다. 예술은 단순해야 한다. 그림에 복잡한 메시지가 들어가면 안 된다. 그거 그림 아니다. 복잡한건 이미지가 아니라 텍스트로 해결봐야 한다. 쥘 베른의 소설은 열심히 공부한 문학도가 보면 이거 뭐야? 구라잖아. 문장의 화려함이 없잖아. 그냥 SF장르를 개척하고 그 모험 하나를 무인도, 지하세계, 달나라, 세계일주, 바닷속 등등으로 자기복제한 거잖아. 그게 다 자기표절이지 하고 우습게 본다. 그런데 구조론은 서부극이나 홍콩영화처럼 이런 식의 비약적인 진화>대량복제>아류범람을 더 높게 쳐주는 거다. 머리를 쥐어짜서 온갖 화려한 기교를 부려봤자 이발소 그림이다. 진정한 창작은 쉽게 가는 거다. 주유소 습격사건이 처음 나왔을 때도.. 평론가들은 비슷하게 대응했다. 이게 영화라고? 악당이 이긴다고? 이건 너무 날로 먹잖아. 영화가 어려운건 주인공이 정당하게 악당을 물리치기 어려워서인뎅. * 영화학도의 고민.. 착한 주인공이 온갖 비열한 암수를 쓰는 나쁜 악당을 어떻게 이겨. 더 연구해보자. * 박정우 작가의 방법.. 주인공이 악당이면 되잖아. 주인공이 온갖 암수를 써서 이기면 되잖아. 쉽잖아. 간단한 반칙이다. 발상의 전환이다. 왜 착한 주인공이 이겨야 하지? 왜 필름을 가위로 자르고 붙이면 안 된다는 거지. 필름을 자른다>붙인다. 너무 쉽잖아. 근데 이걸 5년 동안 아무도 한 사람이 없다고? 왜? 그들은 고정관념에 잡혀있었다. 착한 주인공이 이겨야 한다는게 고정관념이다. 악당이 이기면 어때? 룰을 깨라. 그것이 구조론이다. 순수문학을 한다며 온갖 화려한 문체와 기교와 내러티브를 훈련하는 문학도들이여. 그래봤자 그것은 발견이 아니다. 발견은 멜리에스가 어? 필름을 가위로 자르면 되잖아. 이런 거다. 쥘 베른이 말도 안되는 공상과학 지어내면 되잖아. 이런 거다. 많은 작가들이 말 되는 이야기를 쓰려고 고민할 때 쥘 베른은 간단히 해결했다. '말 안되는 이야기 하면 되잖아.' * 멜리에스.. 남들이 움직이는 물체를 찾아다닐 때 그는 가위로 필름을 잘랐다. 물체가 움직이는게 아니라 가위가 움직이는 거다. 필름이 움직이는 거다. * 쥘 베른.. 남들이 말 되는 이야기를 고민할 때 공상과학의 미명아래 지저세계가 있다는 지구공동설을 떠벌이는 등 말 안 되는 거짓말을 태연하게 썼다. * 주유소습격사건.. 남들이 주인공이 악당을 물리치는 방법을 고민할 때 박정우 작가는 거꾸로 악당이 이기는 영화를 만들었다. * 스티브 잡스.. 남들이 자판으로 컴퓨터에 복잡한 명령을 전달할 때 그는 손가락으로 화면을 쓰다듬는 촉감에 주목했다. 소비자를 아기 취급한 거다. * 홍콩영화.. 남들이 내러티브에 골몰할 때 그냥 속편하게 피아노줄을 썼다. * 인상주의.. 남들이 기교로 아름다운 감정을 불러 일으킬 때 질감과 컬러를 대비시키는 간단한 방법으로 뇌에 도장을 찍었다. 이들은 간단한 발상의 전환을 한 것이다. 그리고 어느 면에서는 트릭을 쓴 거다. 그림은 아름답고 고상한 감정을 불러 일으켜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간단하게 인상주의라는 도장 하나 찍어준 거다. 강렬한 인상.. 뇌에 도장 한 방 콱. 이거다. 왜 인상주의인가? 아무리 그림이 고상하고 아름답고 섬세하고 화려하고 멋진 포즈를 만들어내더라도 그것은 발견이 아니다. 그러므로 가치는 한없이 0에 수렴한다. 이발소 그림도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그래서 사는 거다. 그러나 가치는 0. 발견만이 가치있다. 인류의 진보에 기여하기 때문이다. 발견은 갑자기 점프한다. 그리고 굉장히 쉽다. 작가가 머리를 쥐어뜯는게 아니라 독자와 작가의 관계를 바꾼다. 코넌 도일의 추리소설이 그렇다. 게임으로 만든 것이다. 반전영화들이 그렇다. 독자와 작가의 게임이다. 이야기는 일방적으로 들려주는 건데 추리소설이나 반전영화는 쌍방적이다. 게임에 참여하지 않으면 유주얼 서스펙트를 보고 속았다며 화를 낸다. 잘 속았다 하고 통쾌해 해야 하는뎅. 관계를 바꾸라. 쉽게 가라. 평면에서 입체로 도약하라. 그것이 진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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