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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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792 vote 0 2019.07.01 (15:14:35)


    거대한 전복의 시작


    구조론이라는 이름은 다윈의 진화론, 마르크스의 자본론, 아담스미스의 국부론에 견줄 만하다는 뜻으로 명명한 것이다. 인류에게 새로운 관점을 던졌다는 점에서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과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을 보탤 수 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나 근래 양자역학의 성취도 인류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미술은 르네상스시대 소실점의 등장으로 크게 진보했고 음악은 피타고라스에 의한 화음의 발견과 바흐에 의한 대위법의 보급으로 크게 발전했다. 천문학은 망원경의 발명으로 시작된 것이며 의학은 온도계와 현미경의 기여가 있었다. 특히 소실점의 발견은 사물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 점에서 각별하다.


    서로 다른 두 사물을 개별적으로 보는 게 아니라 동시에 보자는 것이다. 구조론은 사물이 아니라 사건을 바라보는 관점이며 이는 근본적인 시각교정이 된다. 소실점이 둘 이상의 사물을 하나의 시점에 꿰어서 동시에 보듯이 사건은 작용측과 반작용측을 동시에 본다. 코끼리의 귀와 다리와 몸통을 동시에 봐야 한다.


    사건으로 엮어서 봐야 버스가 가는지 버스 안의 파리가 가는지 알 수 있다. 앞에서 이끌고 가는 것과 뒤에 묻어가는 것을 분별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구조론은 단순한 이론이 아니라 거대한 세계관의 전환이자 패러다임의 교체가 된다. 1만 년 간 인류의 성취와 맞먹는 것이며 동시에 그간의 성취를 뒤엎는 것이다.


    수천 년 동안 작업하여 천동설의 세계관을 잘 구축해 놨는데 코페르니쿠스가 한 순간에 지동설로 엎어버리는 식이다. 구조론은 기존의 어떤 학설을 업그레이드하는 게 아니라 바탕에 깔린 세계관을 뒤엎는 점에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다. 새로운 것을 봤다는 목격담이 아니라 인류가 새로운 눈을 얻었다는 도약이다.


    이론이란 메커니즘을 말하는 것이며 곧 어떤 현상을 새롭게 해석하고 재현하고 예견하면 그것을 이론이라고 말할 수 있다. 장마가 왜 오는지 해석하고 언제 올것인지 예견하여 맞추면 이론이 된다. 혹은 똑같은 것을 만들어서 재현할 수 있어야 한다. 구조론은 사건의 공통점을 해석하고 예견하고 재현하는 이론이다.


    메커니즘은 공장에서 찍어내는 틀이다. 틀이라면 베틀이 원조인데 같은 실을 넣으면 같은 베가 직조된다. 여기서 패턴이 반복적으로 복제되는 것이 메커니즘이다. 구조론의 메커니즘은 필자가 원래 알던 것을 어느 시점에 각성한 것이다. 말하자면 깨달음이다. 남들이 이 방법을 쓰지 않더라는 사실을 알아낸 거다. 


    원래부터 이상했다. 세상과 나 사이에 톱니가 잘 맞물려 돌아가지 않고 삐꺾대는 것이 있었다. 자연스럽지 않다. 세상이 틀렸거나 내가 틀렸거나 둘 중 하나다. 일곱살 때부터 뭔가 낌새를 눈치채고 증거를 수집할 마음을 먹었다. 메커니즘에 주목한 것은 말했듯이 초등 3학년 때 국어사전을 찾기 숙제가 계기가 되었다.


    국어사전의 기술체계가 이상한 것을 포착한 것이다. 요즘은 국어사전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 모르겠으나 당시 사전은 수준이 낮았다. 유방을 찾아보니 젖이라고 되어있고 젖을 찾아보니 유방이라고 되어 있는 식의 돌려막기 기술이다. 국어사전을 동네 아저씨가 쓰지는 않았을 테고 다른 나라의 예를 따랐을 것이다.


    인류의 모든 사전이 이런 식이라면 인류는 죄다 돌대가리란 말인가? 체계가 없잖아. 족보가 없잖아. 짜임새가 없잖아.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하긴 얼마전까지만 해도 창조론이 학계의 정설이었다 하니 확실히 인류는 멍청한 게 맞다. 그렇다면 결국 나밖에 없나? 내가 인류를 무지의 수렁에서 구해야 한다는 말인가?


    그래서 연구했다. 4학년 때 자석에 쇠붙이를 붙여보는 실험을 하다가 메커니즘에 주목하게 되었다. 자기장의 메커니즘은 자석과 쇠붙이에만 해당되는 특수현상이 아니고 우주의 보편적 원리가 아닐까 하고 추측한 것이다. 자석과 쇠를 통일하는 자기장처럼 어떤 대칭된 둘에는 반드시 이를 통일하는 제 3자가 있다.


    그동안 축적된 아이디어가 영향을 미쳤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린네의 생물분류를 보고 구조론을 착상한 것이다. 린네가 학명에 자기 이름을 붙여놓은 것이 괘씸하게 여겨졌다. 그렇다면 나는 무생물을 분류하고 모든 사물에 내 이름을 붙여버려? 사람들이 약오르겠지. 그래서 분류해 봤는데 물질이 가장 큰 개념이다.


    처음 분류한 것이 물리, 물질, 물성, 물상, 물체다. 죄다 물자가 붙었다. 분류기준은 인과관계다. 물체는 형태가 있다. 처음 물체에 형태가 주어지는 과정이 물상이다. 물상은 변화가 있다. 그 변화가 주어지는 원인이 물성이다. 물성은 바탕이 있다. 물성의 원인이 물질이다. 물질은 공유하는 이치가 있다. 그것이 물리다. 


    물리보다 위는 없다. 물리의 위는 관측자인 인간에게 대상화되지 않기 때문이다. 물리, 물질, 물성, 물상, 물체는 관측자인 인간과 대칭된다. 자석과 쇠는 자기장에 의해 자체적으로 대칭된다는 점이 각별하다. 반면 자석이나 쇠붙이는 인간과 대칭된다. 관측자와 엮이는 것이다. 스스로 엮여서 인과하면 그 위로는 없다.


    물질이 물리에 이르면 인간과 엮이지 않고 자기 스스로 엮인다. 자체적으로 엮여서 대칭을 이루는 것이 모든 사건의 최종보스이며 궁극적인 원인이 된다. 베틀이 씨줄날줄로 엮이듯이 외부의 개입이 없이 스스로 엮이는 것이 메커니즘이다. 메커니즘이 파악되면 관측자인 인간으로부터 독립하여 별개의 존재자가 된다.


    연필이나 망치는 독립하지 못한다. 인간이 사용하지 않으면 존재로 기능하지 못한다. 인류가 멸종하면 연필은 사라진다. 그러나 물레방아는 스스로 작동한다. 에너지의 입력과 출력이 있다. 독립적으로 하나의 사건을 이룬다. 태풍은 스스로 생겨난다. 생물은 스스로 자란다. 에너지 입력에서 출력까지 메커니즘이 있다.


    분류해 봤더니 다섯 단계에서 이런 식으로 끝단이 떨어지는 것이었다. 다섯 단계만 인과관계를 구축하면 사건은 독립해 버린다. 관측자인 인간과 상관없이 돌아간다. 반대로 다섯 단계가 아니면 에너지원의 상실로 독립하지 못한다. 병균이 침투해도 발병하지 않는다. 에너지 순환이 끊겨서 사건이 거기서 중단된다.


    불이 꺼지지 않으려면 연료와 산소의 공급과 타는 불이 일정한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태풍이 소멸하지 않으려면 계속 더운 공기가 유입되어야 한다. 그 안에 함수관계가 있고 작동하는 메커니즘이 있다. 하나의 메커니즘이 찾아지면 하나의 이론이 탄생하는 것이다. 그런데 왜 인간은 그동안 여기에 주목하지 않았지? 


    귀납적으로 사물을 바라보고 있더라. 나는 원래부터 연역으로 보는 시선을 가지고 있었다. 어떤 실체가 있는 것이 원인이라고 지목되면 일단 아니다. 아무개 때문이라고 하면 상식적으로 그건 아니잖아. 원인이 뭐지? 저것 때문이야. 이렇게 대상이 지목되면 감각적으로 그건 틀린 것이다. 보나마나다. 그럴 리가 없다.


    왜? 에너지가 없기 때문이다. 누구 때문이라고 하면 무조건 틀렸다. 누구 때문일 수가 없잖아. 왜? 힘이 없기 때문이다. 누구에게 힘을 불어넣어준 그것이 원인이다. 자석 때문이다? 아니다. 자기장 때문이다. 자기장이 자석에 힘을 밀어넣어준 것이다. 그것은 항상 시스템으로 존재하며 대칭된 양쪽을 동시에 지배한다.


    독일이 침략하기 전에 인종주의가 먼저 있었다. 일본이 침략하기 전에 제국주의가 먼저 있었다. 그것이 침략자에게 힘을 불어넣어준 배후다. 갈등을 낳고 불화를 일으킨다. 어떤 가리켜 지목될 수 있는 물질적 대상은 사건의 진짜 원인이 될 수 없다. 에너지를 품고 이쪽저쪽의 공간을 차지하며 겹쳐있는 것이 원인이다.


    사람들이 세상을 귀납적으로 바라보기 때문이며 연역해야 바로잡을 수 있다는 논리로 구조론을 정리한 것이 스물네살 때다. 이 정도면 사람들에게 말해도 되겠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그런데 세상이 과연 구조론을 필요로 할까? 인류는 좋은 것을 가질 자격이 있나? 지켜보다가 자격이 된다 싶어서 사회로 복귀했다.


    망원경이 없으면 천문학을 할 수 없다. 소실점을 모르면 옳게 그릴 수 없고 대위법을 모르면 작곡할 수 없다. 몰라도 어느 정도는 가능하겠지만 확실히 수준차가 있다. 구조론도 마찬가지다. 세상이 전방위적인 대칭으로 이루어져 있는 사실을 모르면 세상을 거의 모르는 것이다. 통제가능성을 모르면 모르는 것이다.


    자연은 대칭을 통해 스스로를 통제하고 있다. 대칭을 움직이는 에너지원을 찾으면 메커니즘의 포착이다. 반드시 그런 것이 있다. 정치든 경제든 사회든 문화든 마찬가지다. 생물이든 무생물이든 마찬가지다. 그것을 낳는 존재의 자궁이 있다. 그것을 그것이게 하는 그것이 반드시 있다. 메커니즘 위에는 시스템이 있다.


    세상을 불연속적인 입자의 관점으로만 바라보는 사람과는 깊이 있는 대화를 할 수 없다. 구조를 알면 인식의 깊이가 단번에 5배로 늘어난다. 사람들은 쉽게 이렇다 혹은 저렇다고 말해버린다. 입자를 찾아 지목하는 것이다. 이거 아니면 저거라서 대화는 쉽게 끊어진다. 결론이 너무 쉽게 나온다. 프레임에 갇혀 버린다.


    구조론을 알면 이것도 되고 저것도 되는 자궁을 획득한다. 그것을 얻어야 진영논리의 프레임을 탈출 할 수 있다. 자린고비가 직원을 뽑으려고 면접시험을 보는데 1+2는 얼마냐?는 질문이 있었다. 대부분 떨어졌는데 한 사람이 취직되었다. 그의 정답은 얼마로 해드릴까요? 였다. 그는 유태인이었다. 이런 유머가 있다. 


    이렇게도 저렇게도 출력할 수 있어야 한다. 내부에 대칭형태의 조절장치가 있다. 그것이 사건이 존재하는 방법이다. 이렇게도 저렇게도 대응할 수 있는 툴을 손에 쥐었을 때 우리는 비로소 무언가를 안다고 말할 수 있다. 그 전까지는 알아도 아는 게 아니다. 자동차를 멀리서 한 번 본 것을 가지고 안다고 하면 안 된다. 


    그 자동차에 올라타고 운전할 수 있어야 한다. 어느 분야든 돌아가는 내부 메커니즘이 있으며 그것을 쥐었을 때 안다고 말할 수 있다. 수요와 공급으로 나타나는 시장의 가격결정 메커니즘을 안다면 비로소 경제를 안다고 말할 수 있다. 아, 이 바닥이 이런 식으로 돌아가는구나! 하고 핵심을 알아챌 수 있는 것이다. 


    대립되는 양쪽을 동시에 틀어쥐고 조절하는 것이 반드시 있다. 경마장이라면 고객과 마주와 기수를 동시에 틀어쥔 마사회가 있다. 카지노라면 고객과 딜러를 동시에 주므르는 주최측이 있다. 정치도 여야를 동시에 지배하는 유권자의 균형감각이 있고 패션에도 트렌드가 있다. 내부에 의사결정구조를 갖추고 있다.


    새로운 도구가 등장하면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 천문학은 망원경이 없던 시대로 돌아갈 수 없고 그림은 소실점 없던 시대로 돌악갈 수 없고 음악은 대위법이 없던 시대로 돌아갈 수 없다. 언어를 획득하고 인류는 유인원과 결별하고 다른 세계로 나아갔다. 구조론은 거대한 전복이다. 패러다임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


    세상은 5다. 왜인가? 세상은 엮여서 이루어졌다. 엮이려면 원인과 결과 사이에 엮임이 있어야 한다. 곧 구조다. 원인과 결과 둘 만으로는 엮일 수 없다. 상부구조의 질 입자 힘과 하부구조 힘 운동 량이 엮이려면 원인>엮임>결과(원인)>엮임>결과로 두 사건이 중첩되어야 한다. 질>원인>엮임>결과>량으로 중첩된다.


    버스가 서울에서 부산까지 갔다. 파리도 서울에서 부산까지 갔다. 두 사건이 하나의 사건으로 엮이려면 파리사건이 버스사건에 올라타고 중첩을 이루어야 한다. 원인과 결과 둘 만으로는 파리를 버스에 태울 수 없다. 버스가 원인이고 파리가 결과라면 버스가 부산까지 가도 파리는 가지 않았다. 그 버스를 타지 않았다. 


    그런데 왜 파리는 부산에 가 있지? 파리를 버스에 태우는 절차가 규명되어야 하는 것이다. 버스가 가는 원인과 결과에 파리가 타는 원인과 결과가 둘이 중첩되어 파리가 날갯짓 한 번 하지 않고 가만이 앉아서 부산까지 묻어가는 사건의 원인과 결과가 해명되는 것이다. 파리가 버스에 올라타는 토대의 공유가 질이다. 


    버스가 입자라면 버스의 운행에 따른 관성력이 파리로 전달되는게 힘이고 버스가 부산까지 가는 것이 운동이고 부산에서 파리가 발견되는 것이 량이다. 버스가 원인이 아니고 버스와 파리의 공존이 원인이 되는 것이다. 항상 이런 식이다. 남북한은 휴전선을 공유하고 여야는 국회를 공유한다. 공유가 진짜 원인이다.


    보통 한 가지 사건의 결과가 다른 사건의 원인이 되는 식으로 엮인다. 그런데 결과는 관측자인 인간과 대칭되므로 자체적으로 엮이지 않는다. 자체적으로 엮이려면 매개변수는 다섯이어야 한다. 에너지의 입력과 출력은 사건 외부와 연결되므로 질과 량 사이의 입자 힘 운동이 원인>엮임>결과로 조직되어야 하는 거다.


    구조론은 사건이 엮여서 돌아가는 메커니즘이다. 모든 존재는 내부에 이러한 구조의 갖춤이 있다. 에너지의 입력과 출력 사이에 원인>구조>결과가 있다. 이를 정리한 것이 질, 입자, 힘, 운동, 량이다. 구조론은 인과율의 원인과 결과에 의사결정구조를 더해 셋을 만들고 여기에 에너지의 입력과 출력을 추가한 것이다. 


    원인과 결과 두 단어만으로 사건을 설명하려 든다면 터무니 없다. 그 사건에서 배운 것을 다른 곳에서 써먹을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이 죽었다. 살인사건이다. 범인을 잡았다. 끝? 그런데 사건은 또 일어난다.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사건은 복제되기 때문이다. 에너지를 공급하는 원천이 있으면 사건은 반복된다.


    감기는 전염된다. 전쟁은 또 일어난다. 사건의 복제를 막으려면 원인의 원인까지 해결해야 한다. 원인이 입자면 원인의 원인은 질이다. 감기 바이러스가 입자라면 병에 대한 저항력은 질이다. 전범이 입자라면 제국주의가 질이다. 사건은 내부에서 자체적으로 복제한다. 질 입자 힘 운동 량은 그 자체의 복제를 나타낸다.


    복제 메커니즘을 알았을 때 비로소 거기서 배운 것을 다른 데서 써먹을 수 있다. 안다는 느낌이 와주는 것이다. 졌다. 왜 졌지? 적이 강하다. 그렇구나. 적이 강해서 졌구나. 원인을 알았어. 되었나? 되긴 개뿔! 적이 왜 강한지 알아야 내가 베껴서 써먹을 수 있고 그래야 답을 알아낸 것이다. 복제할 수 있어야 아는 것이다.


    복제하려면 사건 내부에 복제 메커니즘이 갖추어져야 한다. 원인과 결과만으로는 메커니즘이 안 된다. 베낄 수 없다. 베낄 수 없는 것은 답이 아니라는 사실 쯤은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아는 것이다. 이건 아니잖아. 하부구조는 상부구조에서 복제된다. 하나의 사건 안에서 어미와 새끼가 갖추어져야 한다.


    바둑 고수는 초반 포석으로 자궁을 만들어 놓고 거기서 무궁한 신수와 묘수를 조달한다. 보통은 내가 여기에 두면 상대가 저기에 두는 식으로 원인과 결과가 너와 나 사이에 있다. 고수는 포석을 이렇게 두면 행마를 저렇게 한다는 식으로 원인과 결과가 다 자기 안에 갖추어져 있다. 관측자를 배제하고 독립하는 것이다.


    상대와 상관없이 돌아가는 이러한 내부구조를 갖추었을 때 그것을 메커니즘이라 한다. 이것은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아는 것이다. 하나의 사건 안에서 자체의 원인과 결과가 갖추어져 있어야 뭔가 좀 배웠다는 충일감이 와주는 것이다. 똥꼬로부터 머리꼭대기까지 차오르는 뻑적지근한 완전성의 느낌 말이다.


    스물네살 때 이 원리를 알았고 이론의 완성이라고 생각했다. 간단하다. 복제할 수 있으면 그것은 완성된 것이다. 베끼기 쉽다. 고흐 그림을 표절하는 사람이 많지만 그것은 베낀 것이 아니다. 창의성의 자궁을 베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고흐 바둑의 포석단계를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결과물을 베낀 것은 베낀게 아니다.


[레벨:5]나나난나

2019.07.01 (15:26:50)

마지막 문단의 도국가>도구가 네요.

물리 물질 물성 물상 물체가

다시

질 입자 힘 운동 량에 매치되는건가요?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9.07.01 (15:39:55)

감솨요. 매치됩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7]systema

2019.07.01 (16:18:05)

인과관계를 축구하면 > 구축의 오타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9.07.01 (16:29:42)

감솨요~

프로필 이미지 [레벨:10]kilian

2019.07.02 (04:46:15)

"복제할 수 있으면 그것은 완성된 것이다."

http://gujoron.com/xe/1102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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